이번 일정에 저희가 방문하는 지역에 대해 자세히 사항을 알 수 있는
이덕주 교수님의 < 부산, 마산, 진주 지역 > 답사에
대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참고하시길...
부산, 마산, 진주 답사 다녀온 이야기
이번에 마음 먹고 휴가 겸 부산, 마산, 진주 지역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먼 길에 운전을 해 주었고 부산 경성대학교 교목실장이신 박의영 목사님께서 동행해 주셨습니다. 목적에 들었던 웅천교회는 들리지 못했지만 예기치 않은 발견도 있어 의미가 있었습니다.
부산에서는 부곡동에 있는 동래여학교를 먼저 들렀습니다. 이 학교는 1895년 호주장로교 해외여선교부에서 좌천동(부산진교회 앞)에 설립한 일신여학교인데, 1925년 복천동으로 옮겼다가 1940년 폐교된 것을 해방후 개인 재단이 동래여학교로 복교하였고, 1988년 현 위치로 다시 옮긴 것입니다. 학교에는 1925년 호주장로교 여선교부에서 학교를 옮기면서 새긴 기념 돌판이 남아 있었고 복천동 옛 돌 건물을 그대로 옮겨다 지은 역사관 건물이 있습니다. 그 곳 1층은 동래여학교 역사 자료실이 잘 정리되어 있었으며 학교 아래 금정구 문화회관 공원에는 이 학교 출신으로 남편 김원봉(의열단 단장)과 함께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곤륜산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별세한 박차정 열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박차정은 성결교 초기 전도인이던 박문희 전도사의 딸로서 근우회 부산지부장을 역임했으며 답사 길을 안내한 박의영 목사님의 고모가 됩니다.
다음으로 부산진교회와 초량교회를 들렀는데, 이 두 교회는 서로 '부산의 모교회'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좌천동에 있는 부산진교회는 북장로회 베어드 선교사가 시작한 교회로 북장로회가 부산 선교를 접은 후에는 호주 장로교 선교부에서 맡게 되었는데 지금 건물은 1980년대 다시 지은 건물입니다. 다만 1919년 호주에서 가져 온 종이 아직 종탑에 걸려 있고 교회 한 구석에 1935년 별세한 호주 선교사 맨지스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바로 앞에 1905년 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옛 일신여학교 교사가 남아 있습니다. 8월 안에 지방 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삼일운동 때 여기서 여학생들이 대대적인 만세를 불렀답니다. 1925년 학교가 좌천동으로 옮겨 간 후 호주 장로회 선교부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해방 후 부산노회 소유가 되어 장로회 부산신학교에서 사용하였습니다. 2000년 12월 신학교가 김해로 이사 간 후 부산노회에서는 이 건물을 헐고 새 노회 건물을 지으려고 했눈데, 그 무렵 부산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정의화씨가 "부산동구에 문화재급 건물이 없나?" 찾다가 이 건물을 발견하고 서둘러 여론화시켜 이 건물을 존속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결국 노회측은 다른 곳에 건물을 지어주는 댓가로 이 건물을 부산시에 넘기기로 했답니다. 건물이 살아남게 된 것은 다행스럽지만 그 과정에서 교회가 보여준 '몰역사적', '비문화적' 발상에 실망감이 큽니다. 90년 역사를 지닌 선교부 건물 하나 건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코 앞에 있는 부산진교회는 물론이고 부산교계가 모두 부끄러워할 대목입니다.
초량교회에는 1960년대 지은 돌 예배당이 남아 있을 뿐 옛 것을 느낄 수 있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서둘러 복병산으로 갔습니다. 그 곳엔 해방 후 김길창 목사가 시작한 남성여고가 있으며 학교 주차장이 바로 호주에서 첫번째로 한국에 왔다가 1890년 부산에서 별세한 데이비스양의 무덤과 2년 후 별세한 매케이 부인의 무덤이 있던 자리입니다. 해방 후 이 곳에 있던 무덤을 다른 곳(아직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으로 옮긴 후 부산방송국이 여기 있다가 얼마 전 남성여고에서 구입하여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데, 아무런 표지판도 없습니다.
남성여고에서 내려오는 길에 대청동 시장 한 가운데 있는 성공회 부산대성당을 찾았습니다. 거기엔 1924년에 지은 벽돌 성당 건물이 남아 있었습니다. 1981년 성당 남쪽을 늘려 지은 것 외엔 옛날 건물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부산 성공회는 일본인교회로 지어진 것이어서 건물 모양도 일본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 부산 성당을 본 것은 예상 밖의 소득이었습니다.
주일 예배는 마산 문창교회에 가서 드렸습니다. 문창교회는 한석진, 주기철, 함태영, 김석찬 등 기라성 같은 목사들이 거쳐 간 곳으로 해방 후에는 싸움을 많이 하는 교회로 유명했습니다. 본래 추산동에 있던 교회인데 1992년 상남동으로 옮겨 지으면서 옛 모습은 모두 사라졌지만 1층 친교실을 박물관으로 꾸며 역사 자료를 전시해 놓은 것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예배 후 김기현 목사님의 안내로 무학산에 있는 선교사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무덤을 관리하고 계신 회원동 희망촌교회 목사님께서 길을 안내했는데, 거기서 호주 여선교사 매키(민희) 선교사 무덤 말고 김성호, 이승규 등 문창교회 초기 교인들의 무덤을 발견하였습니다. 추측컨대 호주 선교부 혹은 문창교회에서 마련한 교인 공동묘지인 것 같은데(그래서 마산 사람들은 이곳을 '예수등'이라고 한답니다) 소유권도 확실치 않고 무덤 주인들도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좀 더 조사하면 재미 있는 사실들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산을 떠나 경남노회에서 제일 오래된 예배당 건물을 갖고 있다는 칠원 이령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가 보니 예배당 건물은 1960년에 지은 것이고, 부임한지 얼마 안된 목사는 교회 역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94세 된 여찬석 원로 장로님, 84세 된 박소부 원로 권사님 부부를 만나 교회 설립 이야기와 이 곳 교인들이 삼일 만세운동 부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주를 거쳐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 산자락에 위치한 덕산교회로 갔습니다. 그 교회 공동묘지에 호주 장로교 선교사 내피어와 알렌의 무덤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이 무덤은 호주 선교부가 있던 진주 시내 남강변에 있었는데 그곳이 개발되면서 무덤을 옮겨야 했는데, 아무도 무덤을 챙기지 않는 상황에서 덕산교회 이호준 목사님이 "우리 교회가 맡겠다"고 해서 1991년 교회 묘지로 옮겨 건사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의 정성이 고마웠습니다.
이것으로 경남 지역 답사를 일단 마쳤습니다. 새로 뚫린 통영-대전간 고속도로 덕분에 올라오는 길이 시원했습니다. 올라오는 도중에 천안에서 아산, 예산을 거쳐 서산에 들어가 그 유명한 '사산 마애삼존불'의 '백제 미소'를 보았고 해미읍성과 그 근처 천주교 순교 성지를 둘러 보았습니다. 진주에서 하룻 밤 지내면서 한 밤 중 둘러 본 진주읍성과 월요일 오후에 둘러 본 해미읍성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다음에 서산에 가면 추사 고택과 남연군 묘소도 보아야 겠지요.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느낀 것도, 아쉬운 것도 많았던 여행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차분하게 하나하나 띁어볼 계획입니다. 2002년 8월 6일 이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