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벌고 3년 썩으면 OK!” 조폭이 돈 벌기 쉬운 나라

[보라토끼]

“10억 벌고 3년 썩으면 OK!” 조폭이 돈 벌기 쉬운 나라

8월 1일 오후 8시 전직 조폭 A(41)를 부산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170cm 중반의 체격, 검은색 모자에 흰 반소매 티셔츠. 밖으로 드러나는 문신은 없는 평범한 인상이었다. A는 부산 지역에서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스무 살에 생활을 시작해 13년간 조직에 몸담다 7년 전 손을 씻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합니까?”(A)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했다면서요. 왜 했습니까?”(기자)
“내 이야기 털어놓는 게 부담스럽습니다.”(A)
“약속 장소까지 나왔는데, 못 할 게 뭡니까.”(기자)

A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안 나오려다가 형님이 부탁해서 나온 겁니다. 익명은 철저하게 지켜 주세요.”

기자는 도박 사이트에 가담한 조폭을 찾아 한참을 수소문했다. 도박판이 왜 조폭 먹이사슬의 중심에 놓이게 됐는지 알기 위해서다. 취재 도중 알게 된 전직 조폭이 A를 연결해줬지만, 만남은 번번이 실패했다. 수십 번에 걸친 설득 끝에 인터뷰가 성사됐다.

도박 사이트를 직접 운영했던 전직 조폭 A를 1일 부산에서 만났다. 신분 노출을 우려해 얼굴 촬영은 끝내 거부했다. 양수민 기자

A는 2014년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을 시작했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또래 조폭이 사이트로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가 아팠다.

“점마(저 녀석)도 하는데 내가 못 하겠나는 생각에 뛰어들었지요.”

마침 A는 ‘반달’(건달과 일반인 사이에 있는 반쪽짜리 건달) 형님이 개설한 불법 도박 사이트 일을 돕고 있었다. ‘노하우도 알고 있겠다,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있다가 필리핀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직접 운영하면 사무실을 거기에 두려고 했거든요.”

필리핀 세부의 부촌으로 꼽히는 IT파크 인근 고급 아파트에 사무실을 설치했다. 다섯 대의 컴퓨터를 두고 불법 스포츠 토토를 띄워 24시간 운영했다. 한국 경찰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고, ‘부촌’이기에 인터넷이나 전기가 끊길 걱정이 없었다.

“잠깐이라도 정전되면 도박 사이트는 망합니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데 사이트가 멈추고 초기화되면 불안해서 다시는 찾지 않아요.”

사무실 운영비, 직원 인건비 등을 제하고도 매월 수억원의 수입을 챙겼다.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녔다. 그러나 A의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사이트를 운영한 지 2년 차, 동업자가 돈을 몽땅 들고 한국으로 도망갔다. A에게는 남은 게 없었다.

 생긴 빚은 사비로 메웠고, 사이트는 공중분해 됐습니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니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빈털터리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얼마 뒤 조폭 생활을 접었어요. 

“가오 위해 돈 벌기엔 도박 사이트 최고”

2007년 영화 '친구'의 주인공이었던 조직폭력배 준석(유오성 분)의 모델로 알려진 폭력조직 칠성파의 전 행동대장의 결혼식이 열린 부산의 한 호텔 정문 모습. 중앙일보

조폭 세계에선 ‘폼이 나야 조폭’이다. 또래 조폭 결혼식에 가려면 멋들어진 명품 클러치 하나쯤은 들어야 하고, 수십~수백만원의 뭉칫돈을 축의금으로 내야 한다. 예전엔 폼 유지비를 갈취·협박을 통해 조달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이런 전통적 방식은 더는 통하지도 않고, 곧바로 철창 신세를 질 공산이 커졌다.

기자는 전‧현직 조폭 15명에게 요즘 조폭들이 돈을 어떻게 버는지 물었다. 유흥업소 운영, 보이스피싱 등 여러 대답이 나왔지만 ‘가장 많이 하는 돈벌이’는 도박이었다.

 당연히 도박이죠. 요새는 사이트 안 하면 조폭 취급도 안 해줍니다. 사이트 하는 아들(애들) 못 만났어요? 

“유흥업소 갈취 못하자 도박 사이트로”

지난해 9월 경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검거한 조폭 일당이 운영했던 불법 도박 사이트 사무실 모습. 사진 경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조폭은 왜 도박 사이트에 기생하게 됐을까. 19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이 계기였다. 조직원들이 폭력행위처벌법에 걸려 대거 감옥에 다녀왔다. 회칼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던 조폭의 전쟁은 확 줄었다. 유흥업소나 사창가의 보호비 갈취가 어려워졌다. 조폭들은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

현역 시절 30여 년간 조폭 수사를 했던 안흥진 국제범죄연구소장은 “조폭이 경제 범죄로 노선을 틀자 불법 도박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김영희 디자이너

수치가 현실을 보여준다. 2022년 한 해 동안 ‘업소 갈취’로 검거된 조폭은 24명으로 10년 전(146명)보다 줄었다. 반면에 도박으로 대표되는 ‘사행성 영업’으로 검거된 조폭은 같은 기간 74에서 751명으로 10배 이상 폭증했다.

조폭이 도박하기 좋은 나라

중국에 본사를 두고 5조7000억원대 규모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650억원을 챙긴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압수한 도박 수익금. 사진 인천경찰청

도박은 조폭이 어둠의 세계에 빌붙어 기생하기 적합한 영역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을 도왔던 전직 조폭 B(41)는 “운영하면 최소 한 달에 1억원, 회원·사이트 관리만 해도 한 달에 500만~600만원은 우습게 가져간다”고 말했다.

돈 되는 사업이라도 주먹을 쓸 줄 모르면 이 바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조직원들의 수익 배분 불만 등 운영 과정에서 갖가지 마찰과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불법 사업이다 보니 법에 의지할 수도 없다. 온라인 도박에 사용되는 대포통장도 그렇다. 대포통장에 돈이 머무르는 동안 실제 명의자들이 “내 돈”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엔 법보다 주먹이 빠르다. 부산시 사하구의 폭력조직원이었던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겁박과 협박으로 일을 달성하는 건 조폭의 전문 분야”라고 말했다.

탈법과 불법을 거리낌없이 저지를 조직원이 필요하다. 조폭은 ‘빵동기’(감옥생활을 같이한 다른 조폭)나 친한 조폭에게 경험자를 소개받는다. A가 프로그래머를 구한 통로도 인맥이었다. 사이트의 흥망은 접속자 수로 판가름난다. 아무리 음식이 맛있어도 손님이 없는 가게는 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이트로 끌어들일 도박꾼을 모집할 때, 조폭만 한 전문가가 없다고 기자가 만난 조폭들은 입을 모았다.

수원 폭력조직의 중간보스급인 C(52)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폭 주변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회인이 있겠습니까. 고생은 하기 싫고, 돈은 쉽게 벌고 싶은 백수와 건달이 도박에 뛰어듭니다. 왜 그런 부류들이 조폭 주변에 많냐고 물어도 똑 떨어지는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조폭들 인생이 그렇습니다. 

조직폭력배 일당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지난달 초 서울 용산구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90도 인사를 하고 있다. 석경민 기자

도박 사업을 할 해외 국가를 정할 때도 ‘법보다 앞서는 주먹’은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경찰 등 공공기관에 부정부패가 먹혀들 여지가 있는 나라여야 한다. 또 현지 폭력조직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도박 사이트가 성행한 2010년대에 인기였던 국가는 필리핀, 지금은 베트남이 대세다. 한국 경찰이 몇 년 전부터 필리핀에 수사본부를 차리는 등 현지 경찰과 협업에 나서자 조폭들 사이에서 ‘필리핀 탈출 러시’가 일었다는 후문이다.

기자가 접촉한 조폭들에게서 드라마 ‘카지노’가 현실 고증을 잘해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디즈니+ '카지노'는 필리핀 카지노의 제왕 차무식(최민식)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벼랑 끝에 서는 이야기를 다뤘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필리핀 가보셨어요? 차무식(최민식 분) 같은 사람이 진짜 많아요. 돈으로 경찰들 매수하고, 카지노 정킷방(고액 베팅자들을 위한 별도의 방)에 VIP들 모아다가 게임시키고 그래요. 한두 명이 아닙니다. 양정팔(이동휘 분)처럼 손님 모아오는 애들도 있어요. 필리핀 조폭은 조직화가 잘 안 돼서 한국 조폭한테 상대가 안 됩니다. 

도박 사이트 운영은 처벌 수위가 낮다는 점도 조폭을 유혹한다. ‘로 리스크 하이 리턴(Low Risk High Return, 위험은 낮고 수익은 높다)’. 부산을 무대로 활동했던 조폭 D(42)는 “불법 토토는 많이 받아야 징역 3년이다. 10억원 벌고 3년 감옥 살면 괜찮은 장사 아니냐”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 출신인 윤재필 변호사의 지적이다.

 도박공간개설죄는 법정형이 5년 이하다. 징역 10년 이하인 사기죄의 절반밖에 안 된다. 도박은 참여한 사람도 불법이다. 그러다 보니 불리한 일을 당해도 신고하지 않고, 내부 고발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서울 마포경찰서가 도박공간 개설 혐의로 송치한 전모(27)씨 등 일당 9명이 생중계한 불법 도박 장면. 사진 서울 마포경찰서

딱 걸린 조폭 “어떻게 아셨어요?”

수사 기관은 골치가 아프다. 조폭의 운영 수법이 날로 지능화한다고 하소연한다. 2009년부터 폭력조직을 수사한 경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의 한 경감은 진화한 수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도박 사이트 메인 서버는 중국 등 해외에 둔다. 가능하면 사무실도 해외로 옮긴다.
둘째, 한국에 사무실을 둬야 한다면 은밀한 곳에 마련한다. 상가처럼 공개된 장소에 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원룸을 단기 임대한다.
셋째, 사무실은 단속의 손길을 피해 2~3개월마다 옮긴다.
넷째, 범죄에 사용하는 대포통장과 대포폰은 1~2개월마다 교체한다.
다섯째, 분업은 기본이다. 사이트 운영, 도박꾼 모집, 회원 관리, 입출금 담당 등 업무를 세분화하고 각각 다른 조직에 외주를 준다. 내부 분열이 생기기 전까지는 서로 누가 누군지 모른다. 한 무리가 검거돼도 다른 무리는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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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강수대)가 지난해 검거한 조직폭력배 일당은 이런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포항 조폭은 울산에서 사무실을 차렸다. 경찰이 급습한 사무실은 울산에서만 세 번째로 옮긴 곳이었고, 원룸이었다. 대포통장과 대포폰은 매달 교체했다. 현금 인출과 통장 관리는 외주를 줬다. 이진식 경북청 강수대장은 “교묘해진 단속 회피 기법만큼 수사 노하우 역시 발전한다”며 “온라인 도박으로 잡힌 어떤 조폭이 ‘어떻게 아셨느냐’고 경찰에 묻기도 한다”고 전했다.

조폭들이 사이트 운영 노하우와 경찰 피하기 수법을 공유한다고 전직 조폭 E(41)는 말했다. 교도소와 결혼식‧장례식 등 행사장은 거래의 장터가 된다. 프로그래머 등 기술자를 ‘빵동기’나 또래 조폭에게 소개받고, 사이트 운영에 필요한 고객 명단은 조폭끼리 거래한다. 개인정보 1건당 50~100원 수준이다.

수사기관은 고군분투 중이다. 충남경찰청 강수대는 지난 4월 야산에 설치한 도박장을 급습하기 위해 없는 길을 만들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도박꾼의 눈을 피하기 위해 산의 반대편으로 올라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40분을 걸었다. 충북청 강수대는 불법 ‘홀덤펍’을 급습하기 위해 택배원으로 위장했다. 홀덤펍은 칩을 이용해 재미로 도박하는 카페 같은 곳이지만, 칩을 현금으로 환전하면 불법이다. 이재석 충북청 강수대 팀장은 “현금을 숨기지 못하도록 택배원을 가장해 말을 걸며 형사들이 잠입했다”고 했다.

충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22일 불법 도박장을 개설한 조직폭력배 일당을 구속송치했다고 밝혔다. 사진 충북경찰청 강수대

수사기관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도박 사업에는 여전히 조폭이 판친다. 한 전직 조폭의 설명이다.

 안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변 조폭이나 반달을 통해 대포통장이나 사이트 운영에 필요할 기술자를 구하기가 쉽습니다. 주변에는 도박에 친숙한 밑바닥 인생이 많습니다. 여차하면 주먹도 휘두를 수 있고, 처벌은 약합니다. 조폭이 도박으로 돈 벌기 얼마나 좋은 나라입니까. 

“인생 망치는 지름길, 손대지 마라”

구글 검색창에 '꽁머니'를 검색하면 나오는 최상단 사이트에 접속한 모습. 사이트 캡처

불법 도박의 꾐에 빠지는 일반 시민이 늘고 있다. 충남청 강수대가 급습한 야산 도박장에는 절반 이상이 평범한 주부였다. 젊은층에게 친숙한 SNS를 이용해 도박 사이트 홍보가 이뤄지자 10대 청소년도 타깃이 됐다. 조윤희 대한민국교원조합 상임위원장은 “학생들 사이에서 ‘꽁머니’(공짜 사이버머니), ‘꽁포’(공짜포인트) 같은 도박사이트 용어가 인기 검색어가 된 적이 있다. 도박 홍보 문자도 학생 폰으로 온다”고 말했다.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불법 도박 문제로 상담을 받은 청소년은 2017년 503명에서 2023년 상반기에만 1065명이다. 하반기 상담자를 비슷한 수로 추정하면, 6년 만에 4배가 뛰는 셈이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반인이 도박 범죄에 빠지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며 경고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취약한 일반인이 타깃이 될 수 있다. 프로그래머를 뽑는 줄 알고 취업했는데 도박 사이트 기술자가 되거나, 당장 돈이 급해 통장을 빌려줬는데 대포통장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이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 본인

부산시 사하구에서 조폭 생활을 했던 이기동 소장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도박의 위험성을 제시한다.

 도박은 무조건 사이트가 이깁니다. 사이트는 도박꾼보다 자금도, 시간도 많습니다. 운이 좋아 이겼다고 해도 결국에는 집니다. 사이트를 이길 수 있다는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사기꾼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도박은 인생을 망치게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