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4:10]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 이 말은 '쉐마 본문'을 상기시켜 주는 말인데, 실상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는것은 성경에서 거듭되고 있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따라서 이는 자녀들이 땅에서도 축복받고 잘되게 하는 길일뿐 아니라, 그 자녀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니 마땅히 모든 믿음의 부모들이 힘써야 할 것이다.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온 줄로 생각지 말라 - 예수당시 많은 사람들은 메사야가 와서 정치적 해방과 물질적인 번영을 가져야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는 바로 이 같은 그릇된 기대들을 일거에 거부하시면서 당신이 이땅에 오신 참된 목적을 피력하셨다. 화평이 아니요 - 이 어구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순전히 불화와 반목을 일으키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화평에 대한 유대인들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쉽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화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샬롬'인데 헬라어로는 '에이레네' 로 번역된다. 유대인들은 영적 문제이든 세속적 문제이든지 간에 온갖 종류의 복을 기원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이 세상의 모든 번영이 유대 땅을 중심으로 해서 꽃피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본문에서 화평을 주러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이를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바로서의 화평, 즉 현상적.정치, 경제 등이고 외적인 평화를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실로 예수는 본질적 내적인 평화를 선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검을 주러 왔노라 - 이사야는 메시야의 탄생을 '평강의 왕'이라 예언하였으며, 에수 탄생시 목동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은 그의 탄생을 두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노래하였다. 사실 예수는 평화의 실체이자 평화의 전달자로 이 땅에 오셨다. 따라서 이곳에서 예수께서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왔다고 하신 것은 메시야의 임하심으로 야기되는 그 영향력과 결과들 중의 하나가 불의를 정복하고 악을 제거하는 투쟁일 것임을 밝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주다'는 뜻의 원어 '바레인'은 '던지다'는 뜻으로 긴박하고도 급작스런 전투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문구로서 본문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준다. 여하튼 검이라고 하는 것은 적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며, 무기로서 검을 준다는 것은 적대감을 유발시켜 투쟁과 분열과 전쟁을 발발케 한다는 것이다. 실로 평화의 왕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평화의 신국을 건설키 위해 오셨는데), 이 신국은 곧 땅 위의 죄악된 질서를 척결함으로써 그 위에 세워질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세상은 메시야와 그의 통치를 완강히 거부하게 될 것이고 그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사생 결단의 치열한 혈전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한편 그 전투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가 바로 예수의 십자가이다. 내가...온 줄로 생각지 말라 - 예수당시 많은 사람들은 메사야가 와서 정치적 해방과 물질적인 번영을 가져야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는 바로 이 같은 그릇된 기대들을 일거에 거부하시면서 당신이 이땅에 오신 참된 목적을 피력하셨다.
화평이 아니요 - 이 어구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순전히 불화(不和)와 반목을 일으키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화평에 대한 유대인들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쉽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화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샬롬'인데 헬라어로는 '에이레네' 로 번역된다. 유대인들은 영적 문제이든 세속적 문제이든지 간에 온갖 종류의 복을 기원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이 세상의 모든 번영이 유대 땅을 중심으로 해서 꽃피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본문에서 화평을 주러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이를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바로서의 화평, 즉 현상적(정치, 경제 등)이고 외적인 평화를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실로 예수는 본질적(하나님과 인간의 화목, 내적인 평화를 선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검을 주러 왔노라 -
이사야는 메시야의 탄생을 '평강의 왕'이라 예언하였으며(사 9:6), 에수 탄생시 목동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은 그의 탄생을 두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노래하였다. 사실 예수는 평화의 실체이자 평화의 전달자로 이 땅에 오셨다. 따라서 이곳에서 예수께서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왔다고 하신 것은 메시야의 임하심으로 야기되는 그 영향력과 결과들 중의 하나가 불의를 정복하고 악을 제거하는 투쟁일 것임을 밝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주다'는 뜻의 원어 '바레인'은 '던지다'는 뜻으로 긴박하고도 급작스런 전투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문구로서 본문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준다. 여하튼 검이라고 하는 것은 적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며, 무기로서 검을 준다는 것은 적대감을 유발시켜 투쟁과 분열과 전쟁을 발발케 한다는 것이다.
실로 평화의 왕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평화의 신국(神國)을 건설키 위해 오셨는데(5:9), 이 신국은 곧 땅 위의 죄악된 질서를 척결함으로써 그 위에 세워질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세상은 메시야와 그의 통치를 완강히 거부하게 될 것이고 그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사생 결단의 치열한 혈전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한편 그 전투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가 바로 예수의 십자가이다.
[눅 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화평을...도리어 분쟁케 - 예수의 오심이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 그 평화는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심판을 선행 요건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오심은 선과 악, 참과 거짓, 진리와 비진리간의 갈등과 분열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