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여인숙. 대전의 원도심(구도심)인 대흥동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투숙객의 고단한 하루를 품어주는 곳이었다. 지금 그곳은 예술가들과 여행객들이 드나드는 게스트하우스로 바뀌었다. 산호여인숙은 대흥동 지역의 5인이 공동으로 설비투자 를 하고 노력봉사, 청소봉사 등을 함께하여 만든 곳이다. 개관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이미 산호여인숙은 대전의 원도심 문화를 활성화하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부선과 호남선의 접점 지역에 있어 성수기에는 월평균 100명에서 150명 정도의 인원이 이곳을 거쳐 간다.
산호여인숙은 숙박업을 빙자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산호여인숙의 블로그바로가기 에는 '문화와 예술이 문안(問安)하는 산호여인숙'이라는 문구가 있다. 숙박업을 하던 공간의 기억을 되살린 점은 같지만 지금 이곳은 단순한 숙박공간이 아니라 예술을 품어주는 독특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두 개 층 가운데 위층은 여행자들을 위한 침실이고 아래층은 전시와 공연, 퍼포먼스 등이 열리는 예술의 장이다. 게다가 2층의 여러 방 가운데 한두 개는 예술가들이 머무는 장‧단기 레지던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으니 산호여인숙은 명실공히 작지만 알찬 '복합문화공간'이다.
입구
숙박업을 빙자한 문화예술 공간
2층
6인실
이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송부영 대표는 스스로를 '산호지기'라고 부른다. 예전의 여인숙 공간을 빌려서 셋집살이를 하는 산호여인숙에는 구석구석까지 산호지기의 따사로운 손길이 스며들어있다. 우리의 대화는 셋집살이 형편부터 시작해 그 집을 사들이는 얘기로 이어졌다. 50평 남짓한 산호여인숙 공간은 아마도 수억대를 호가할 것인데, 30대의 송부영 대표에게 이런 돈은 매우 큰 것일 수밖에 없다. 10년 전 홍대 앞에서 카페를 운영해본 나로서는 셋집에 들였던 공력과 그 집이 당시 돈으로 수억 원이었던(지금은 수십억으로 올랐겠지만) 것을 떠올리며 "방법을 마련해 공간을 매입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실천하기 쉽지 않은 조언을 하고야 말았다.
산호여인숙의 수익구조는 아직 버는 것에 비해서 들어가는 게 더 많은 실정이다. 청년창업을 돕는 사회적기업과 청년사회적기업가 육성발굴 사업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사회적기업이라는 것이 국가의 책임과 자본의 책임을 절반씩 조합해서 만들어낸 개념인지라 동의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런 대목에서는 그나마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래도 경제적 자생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좀 들겠지만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한 문화생산기지의 지위를 만들어가고 있다.
송부영 대표
송부영 대표는 공공미술과 관련한 일을 하다가 대전 원도심 커뮤니티아트에 뛰어든 기획자이다. 중학교 시절 대전시 중구 유천동으로 전학한 후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인테리어회사에서 몇 년간 일을 하다가 공공미술 일을 시작해 공공미술프리즘에 2006년부터 5년간 몸을 담기도 했다. 파주 헤이리의 '버스프로젝트', 수인선 협괘변의 '달걀과 사이다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면서 예술이 생활과 만나는 법을 익혔다. 이후 1년간은 서울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도시갤러리에서 도시 디자인 및 공공디자인 전문업체이자 도시 작가그룹인 '어반 플롯'(Urban Plot)과 협업하면서 안국역에서 열린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가 2010년부터 대전의 원도심에서 열리는 예술프리마켓인 '대흥독립만세'에 참여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산호여인숙을 연 것은 지난 해 여름의 일이다.
그의 활동은 공간에 관한 관심으로부터 나왔다. 건축에 대한 관심사를 공공미술, 예술, 도시, 문화 등으로 확산한 것이다. 그는 '건축'이라는 물리적 공간 생성의 영역에서 한 걸음 나아가 문화적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영역의 문화실천가들과 함께 한 시민들과의 만남은 그가 청춘을 바쳐 수년간 체험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속에서 건져 올린 값진 일이었다. 그는 도시공간 속에서 건축을 넘어서 인간의 행위가 어떻게 실천적인 상호작용으로 이어지는지를 체험해왔고 이러한 체험이야말로 생활문화를 바탕으로 예술적 소통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공간 들여다보기
1층
대전에는 몇몇 독립잡지들이 있고 자판기 커피숍이나 개인플레이와 같은 인디밴드들이 있다. 매달 둘째 주와 넷째 주 토요일에 선화동에서 열리는 벼룩시장 '닷찌프리마켓'도 있다. 그리고 이곳 산호여인숙이 있다. 송부영 대표는 대전의 인디씬 한 가운데서도 매우 특이한 활동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긴 행보를 일련의 작업으로 설명한다. 그 작업의 이름은 '공간 들여다보기'이다. 송 대표가 말하는 '들여다보기'란 참여와 개입을 통한 문화적 재해석과 예술적 실천이다. 그 첫 번째가 산호여인숙이고 앞으로 실행할 두 번째 들여다보기는 미용실, 세 번째는 목욕탕이다.
산호여인숙은 일 년에 세 개 정도의 전시와 여러 차례의 퍼포먼스, 공연을 연다. 올 가을에 열리는 '프로젝트대전2012'에서는 원도심프로젝트를 위한 레지던시 공간으로도 쓰일 예정이다. 대전의 예술가들과 대전을 방문한 국내외의 바깥 예술가들이 산호여인숙에 머물면서 커뮤니티아트를 실행하는 것이다. 원도심 투어프로그램도 대전의 원도심으로서는 꼭 필요한 일이며 산호여인숙의 마케팅 전략상으로도 필수불가한 사항이다. 송 대표는 최근에 동네박물관 성격의 '대흥동 트러스트'도 시작했다. 물론 실제 건축물을 살려내는 일까지는 아니지만 일종의 아카이빙 형태로 대전 원도심의 가치를 지키려는 일이다. 또 '찌라시도서관'에서는 대흥동의 인쇄물 모으기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겨울 얘기를 들었다. 한마디로 '혹독한 겨울'이었다고 한다. 난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비수기라 다소간의 냉랭함도 있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을 맞은 산호여인숙에도 따스한 볕이 들고 있다. 담장 밑 화단에 심겨진 고추와 상추의 파릇한 새싹들처럼 대흥동 산호여인숙에 봄의 희망이 새롭게 피어난다. 생의 한가운데, 30대 중반의 젊은 기획자 송부영 대표에게 지금의 일들은 두고두고 활동을 뒷받침하는 저변의 힘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이다. 송 대표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는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낙관한다.
"도시와 공간의 문제를 가지고 팀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지금으로서는 산호여인숙 공간을 꾸리고 여행객 사업을 진행하느라 집중도를 높이기가 어렵지만 차차 팀플레이를 하면서 도시와 공간, 예술과 문화를 고민하고 실천할 것이다".
필자소개 김준기는 홍익대 예술학과, 동대학원 석사 과정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가나아트] 기자, 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 및 공공미술팀장, 2006년 부산비엔날레 조각프로젝트 전시팀장, 공공미술추진위원회 팀장 등으로 일했다. 2007년에 석남미술상 젊은 이론가상(추증 김복진미술상)을 받았으며, 경희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으며(2007-2010), 현재는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artpd68@naver.com" target=_blank>artpd68@naver.com
첫댓글 여인숙... 어릴 때 동네에 있던 그 여인숙이 생각나네요. 옛날을 불러 일으키는 말.. '여인숙'...
^^ 행신동에는 이렇게 공간을 되살릴만한 곳이 어디 없을까요? 창의센터 공간으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