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단상
임병식 rbs1144@daum.net
설을 막 센 지금은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든 때와 그것으로 간장과 된장을 만드는 시기의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전후 이 개월로 보면 사 개월 동안 메주는 시렁에 매달려 발효과정을 거치는 셈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보면 어느 가정이나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대청이나 골방에 메주가 매달려있지 않는 집이 없었다. 남의 집에서 얻어오기 꺼리는 것으로 된장이나, 불씨는 한집안의 정체성이요,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 두가지 만은 아무리 어려워도 지키고 보존하였다.
메주의 주원료는 콩이다. 그것도 씨알이 굵은 대두(大豆), 메주콩을 사용한다. 그런 만큼 메주콩은 대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것을 삶으면 부피가 크게 불어나 분량이 많아진다. 이것을 확보하기 위해 농가에서는미리서 논두렁과 밭두렁을 가리지 않고 빈터만 보이면 심어두었다.
메주 만들기는 그 닥 어려운 과정이 아니다. 너무 진득하지 않게 점성이 생길정도로만 찧어서 결정체를 만든다. 크기는 대개 목침크기이다. 무슨 틀 속에 넣어서 만든 것이 아니어서 집집마다 형태는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지만 이것을 지푸라기에 싸서 시렁에 매단 것은 동일하다.
메주 쑤기는 동지를 전후하여 날씨가 쌀쌀해지고 눈발이 조금씩 기미를 보이는 시기에 행하여졌다. 식구의 구성 따라 가족이 많은 집은 많이 준비하고 적은 집은 적게 준비를 한다. 메주가 시렁에 매달리면 어느 집에서나 공통으로 메주 특유의 냄새가 풍겼다. 조금은 쿰쿰하고 비릿한 냄새였다.
이것은 메주가 볏짚에 기생하는 고초균에 의해 발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풍겨 나온다. 메주가 잘 뜨면 유익한 곰팡이가 피어나고 이것은 상호작용하여 항암물질과 칼슘, 미네랄을 만들어 장내활동을 돕는다.
시골에서는 메주가 시렁에 매달리면 큰 방을 제외하고는 그리 안전한 곳이 없어진다. 메주가 떨어져 다쳤다는 말은 못 들어 봤지만 그 아래 머리를 두고 있으면 불안하다. 그 무게가 상당하니 떨어지면 다칠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떤 이가 한해 신수를 보니 밖에 나가면 객사를 할 운세가 나왔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할 일이 많았지만 안전을 위해서 집에 있기로 했다. 맨달 골방에 들어박혀 움직이지 않고 잠만 잤다.
그런데 어느 날 변고가 생겼다. 자고 있는 그의 머리에 난데없이 메주가 떨어져 즉사를 해버린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죽을 운수에 놓인 사람은 ‘접시 물에도 빠져죽는다’는 말과 같이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는 예화로 널리 퍼져있다.
메주가 마르고 나면 장 담그기에 들어간다. 이때는 음력 3월 삼짇날 무렵으로 강남 간 제비가 돌아온 때이다. 메단 메주를 꺼내어 큰 독에 넣어두고 소금물을 붓는다. 이때의 농도는 계란이 2/3쯤 잠기는 정도로 한다. 함께 붉은 고추와 숯을 넣어 항균을 돕니다. 이것을 두어달 쯤 이어간다.
이때부터는 한낮에는 뚜껑을 열어놓고 밤으로는 덮어둔다. 나는 이 시기 독을 들여다보면 높고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된 속에서 흰 구름이 무리 져 떠가던 광경을 잊지 못한다. 왜 그렇게 맑은 하늘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보이는지 들어다보며 감탄을 했다.
이렇게 숙성과정을 거치면 내용물은 간장과 된장, 고추장 재료로 재탄생한다. 간장과 된장은 그것을 분리한 것으로 그치지만 고추장 만들기는 또다른 과정이 뒤따른다. 메줏가루에다 찹쌀풀을 넣고 간장과 엿기름, 고추가루를 버무른다. 이때 양파와 다진 마늘도 약간 넣는다. 그리고는 단지을 밀봉하여 숙성에 들어간다. 이것은 한 해 동안 먹을 일용할 반찬과 반찬 재료가 된다.
우리조상님들은 어떻게 이런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되었을까. 어떻게 지푸라기에는 유익균이 살며, 붉은 고추와 숯에는 항염 항균의 성분이 들어있는 것을 알고 활용을 했을까.
그렇지만 이 된장은 한때 서양인으로부터 배척을 받은 적이 있다. 된장특유의 독특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K팝, K음식의 붐을 타고 된장국은 물론, 청국장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상전벽해와도 같은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발효식품이 건강식품이라는 것은 여러 과학실험으로도 밝혀졌다. 세계의 음식문화를 선도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예전 삼월삼짇날에는 집집마다 장독에다 뱀‘巳’자를 써서 거꾸로 붙였다. 부정을 타지 말라는 일종의 부적이었다. 이때는 동면을 하던 뱀도 서서히 기어나와 활동을 개시하는 때로, 침범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생각하면 그런 행위는 얼마나 소박한 것인가.
큰 옹기그릇은 숨을 쉬고 그 과정에서 독안의 간기가 밖으로 노출되는데, 뱀들은 그것을 섭취하려 장독으로 모여든다. 말하자면 그것을 물리치고자 하는 고육책이었다.
그 밖에 장독대 주변에 독성이 있는 봉숭아를 심었다. 그리고는 독 태두리에 금줄을 치고서 붉은 고추와 숯, 솔가지를 끼어 놓았다.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신성한 음식을 깨끗하게 보존하려는 지극 정성이었다.
한 솥밥을 먹고 한식구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그것은 바로 한 가정에서 만든 된장을 풀어서 만든 된장국을 함께 먹으며 지냈다는 것이니 얼마나 깊은 유대인가.
일인 가족이 국민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날로 핵가족화 되어가는 시대에 함께 나눠먹은 간장과 된장은 한 가정의 정체성을 지키는 파수꾼이 아닐 수 없다.
집집의 가정마다 지켜 내려온 된장 맛이 그립다. 고유한 맛을 지켜 온 내력이 눈물겹도록 그리워진다. (2025)
첫댓글 <메주 단상>을 통하여 간장, 된장, 고추장 담그는 과정을 알게 됩니다.
소금물 농도는 계란이 1/3 쯤 잠기는 과정하며 붉은 고추, 숯
뱀이 간기가 밖으로 노출되는 것을 먹으러하니 맨드라미와 봉숭아를 심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니 간장 된장 역사와 농촌 살림의 根源을 생각하는 좋은 글입니다.
농촌의 실상이 무너지고 파괴되어 가는 이 즈음에
고유한 전통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글을 남김은 훌륭한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집에서 장을 담그고 된장을 만드는 것을 보고 어렵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가정마다 메주쑤고 장담그는 일이 김장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지요.
간장이 가득담긴 독을 낯에는 열어놓는데 하늘이 그곳에 어리던 기억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간장과 된장을 우리맛을 지켜온 뿌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달 전에 집사람과 함께 메주콩을 삶아 으깨어 메주를 만들던 생각이 나는군요.
제법 큰 솥에 한 솥 삶았더니 메주 일곱 덩이가 나오더군요.
지금은 누룩곰팡이가 적당히 피고 잘 말라있네요.
메주와 장 담그기는 불가분의 관계죠. 메주를 얼마 만에 건지느냐에 따라 장 맛이 크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소년시절에 어머니와 함께 장을 담그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추억에 젖어드는 글 잘 감상했습니다.
전에는 흔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집에서 직접 메주를 만드는걸 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큰 솥에다 직접 메주콩을 삶았으니 생생한 체험을 하셨군요.
메주콩 삶은 옆에서 얻어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