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절경(絶景) 철원 한탄강(漢灘江) 계곡
철원군 관내도 / 주상절리 잔도(棧道) / 고석정(孤石亭/樓)
<철원(鐵原)의 자연환경(自然環境)>
강원도 서부 최북단(最北端)에 있는 철원군(鐵原郡)은 전역이 수복지역(收復地域)으로 북쪽은 군사분계선과 접하고 있으며, 용암대(鎔巖帶)의 지상에 넓은 평야가 발달하여 강원도 내 최대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고, 이곳 오대쌀은 일찍부터 유명해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도 철원 쌀만 가져다 먹었다고 한다.
지형을 살펴보면 동부는 산지(山地), 중부는 평야(平野), 서부는 구릉지(丘陵地)를 이루고 있는데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광주산맥이 지나고 있어 동남부에는 흰바우산(1,179m), 적근산(赤根山, 1,073m), 대성산(大成山, 1,175m), 복주산(伏主山, 1,152m) 등 1,000m 이상의 고산들이 연이어 솟아있어 강원도 화천군(華川郡)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에는 금학산(金鶴山:947m), 명성산(鳴聲山:923m)이 경기도 포천군(抱川郡), 연천군(漣川郡)과 경계를 이룬다.
북한의 평강군(平康郡)에서 흘러 내려온 강줄기인 한탄강(漢灘江)은 철원군을 통과하며 포천(抱川)과 연천(漣川)을 차례로 지나고 한강과 임진강에 합류하는데 한탄강 유역은 빼어난 명승지가 많고 한국전쟁(6.25) 당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던 곳으로 전적지에는 전적비와 기념물들이 수없이 산재(散在)한다.
특히 한탄강은 용암이 굳어서 된 주상절리(柱狀節理)가 잘 발달되어 있어 202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계곡의 뛰어난 경관으로 일찍부터 관광지(觀光地)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후삼국시대, 궁예(弓裔)가 국호(國號)를 후고구려(後高句麗)라고 했다가 태봉(泰封)으로 고치고 이곳 철원을 도읍(首都)으로 정하면서(AD 911년) 후삼국시대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던 곳인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高麗)를 개국하면서(AD 918년) 수도가 송악(松嶽, 황해도 개성<開城>)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곳 철원은 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북한에 편입되었다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치열한 전쟁터가 되는데 이후 일부 지역이 수복되어 1954년부터 민간인 거주가 시작된 곳이다.
위의 지도에서 임남면(任南面), 원동면(遠東面), 원남면(遠南面), 근동면(近東面), 근북면(近北面)은 군사분계선(軍事分界線) 이북(以北)의 비무장지대로 군부대만 있고 일반인들은 거주하지 않는 곳이다.
1. 철원의 지각형성(地殼形成)
승용차로 철원평야를 달리다 보면 갑자기 절벽계곡이 나타나는데 내려다보면 흡사 미국의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즉 넓은 평원에 물줄기가 흐르면서 깊은 계곡이 생긴 것인데 그 형성된 암석들을 조사해 보면 1억 년 이상 축적된 지질형성의 역사가 들여다보인다고 한다.
지질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철원평야는 단단한 화강암(花崗巖)으로 덮여 있었는데 몇 차례의 화산(火山)이 폭발하면서 용암(鎔巖)이 분출(噴出)하여 현무암(玄武巖)으로 뒤덮이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푸석푸석한 현무암이 빗물에 씻겨나가 깊은 계곡이 형성되었는데 단단한 화강암은 높은 바위 덩어리로 남고 현무암은 조각조각 갈라지면서 주상절리(柱狀節理)의 절경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철원과 포천, 연천을 지나면서 흐르는 한탄강(漢灘江)은 가는 곳마다 깊은 계곡을 이루는데 계곡의 벽면은 용암이 굳었다가 식으면서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 온통 기둥모양의 주상절리(柱狀節理)로 이루어져 있다.
2. 고석정(孤石亭)과 임꺽정
한탄강 계곡 절벽 한 귀퉁이에 세워진 고석정은 현판이 고석루(孤石樓)로, 바로 앞에 우뚝 솟아있는 화강암 바위를 고석(孤石)으로 불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고석(孤石)과 고석루(孤石樓) / 유람선 타는 곳
고석정 앞 강변에 우뚝 솟은 바위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고석(孤石)인데 위에 있는 소나무는 흡사 머리카락 같고 바위 면도 얼추 사람 얼굴 형상... 저 정상부근 동굴 속에 임꺽정이 숨어 살았다고 한다. 꼭 올라가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철조망을 쳐놓고 출입 절대 금지.... 끓
조선(朝鮮) 명종조(明宗朝), 당파싸움으로 정쟁(政爭)에 휘말려 나라 꼴이 엉망이 되자 의협심에 불타오른 임꺽정이
‘이 천하에 몹쓸 쓰레기 같은 놈들 모조리 잡아 목을 쳐서 들고 임금님 앞에 나가 엎드려 용서를 빌고야 말겠다.’며 분연히 일어난 것이 ‘임꺽정(林巨正)의 난’인데 바로 이곳이 임꺽정의 고향이다.
그런데 쓸데없는 망상(妄想)인가... 요즘의 세태가 꼭 그러하니... 제2의 임꺽정이 등장??
임꺽정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는데 포졸들이 새까맣게 몰려와 샅샅이 뒤졌지만, 임꺽정은 이미 물고기 꺽지가 되어 물속 바위틈으로 숨어버려 찾을 수 없었다고 하여 이름이 임꺽정(꺽지고기)...
이곳의 경관이 기가 막히게 수려한데 고석(孤石) 앞에는 유람선을 타는 나루가 있고 사람들이 다투어 배에 오르는데 나는 비록 타지는 않았지만, 계곡을 두루 살펴보는 선상(船上) 유람(遊覽)도 볼 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