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신윤복 [蕙園 申潤福]
미인도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후기의 화가로 1758(영조 34)에 화원(畵員)이었던 신한평(申漢枰)의 아들로 태어나 정조 시대를 거쳐 순조 때까지 살았던 화가이지만 그의 마지막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단원 김홍도와 함께 훌륭한 풍속화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신윤복은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지만 예술 정신으로 고난마저 극복하며, 서민들의 속까지 드러내는 훌륭한 풍속화를 많이 남겼다. 조선 후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 과 더불어 삼원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고령이며, 호는 혜원(蕙園)이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단지 도화서(圖畵署) 화원으로 벼슬이 첨절제사(僉節制使)까지 이르렀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다. 그의 풍속화는 소재의 선택, 구성, 인물의 표현방법 등에서 김홍도의 풍속화와는 현저히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김홍도가 소탈하고 익살맞은 서민생활의 단면을 주로 다룬 데 반해, 그는 한량(閑良)과 기녀(妓女)를 중심으로 한 남녀 간의 춘의(春意)를 주로 그렸다. 김홍도와의 차이는 인물 묘사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데, 대체로 얼굴이 갸름하고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간 형태로 인물을 그리면서 섬세하고 유연한 선과 아름다운 채색을 적절히 사용했다. 그러나 산수(山水)를 배경으로 풍속화를 전개시키는 경우에는 산수에 보이는 석법(石法)이나 준법(皴法)· 수파묘(水波描) 등에서 간혹 김홍도의 영향이 보이기도 한다.
신윤복의 작품에는 남녀 간의 애정을 그린 것 이외에도 무속(巫俗)이나 주막의 정경 등 서민사회의 풍모를 보여주는 순수한 풍속화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으며, 산수화는 담묵(淡墨)과 담채(淡彩)를 주로 사용해 참신한 감각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등 조선 말기 이색화풍의 대두에 선구적 역할을 했던 윤제홍(尹濟弘)의 화풍과 유사하다. 신윤복은 대부분의 작품에 짤막한 찬문(贊文)을 쓰고 자신의 관지(款識)와 도인(圖印)을 덧붙이고 있는데, 유교적 도덕관념이 강했던 시기에 속된 그림을 자기의 작품이라고 떳떳이 밝히는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그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의 화풍은 후대의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쳐 작가 미상의 풍속화나 민화 등에서 그의 화풍을 따른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띈다. 대표작으로는 〈연당야유도 蓮塘野遊圖〉·〈미인도 美人圖〉·〈단오도 端午圖〉·〈무무도 巫舞圖〉·〈산궁수진 山窮水盡〉·〈선유도 船遊圖〉·〈산수도 山水圖〉 등이 있다.
▼단오도 端午圖
▼무무도 巫舞圖
▼쌍륙삼매(雙六삼매)
▼ 월하정인
▼ 임하투호
▼ 선유도 船遊圖
▼ 나월부폐
▼ 묘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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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2008년 10월 12~26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조선 서화(書畵)의 걸작 104점을 추린 《보화각(�華閣) 설립 70주년 기념 서화대전》이 열린다. '보화각'은 '조선의 보배를 모은 집'이라는 뜻이다. 20세기 전기의 청년 갑부이자 컬렉터인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이 만 서른두 살 때 자택 앞에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을 지으면서 자신있게 내건 현판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화제작은 단연 혜원 신윤복(1758~?)의 〈미인도〉다. 조선 후기, 서울에 사는 기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녀는 몇 번을 봐도 한결같이 새침하고 화사하다. 신윤복보다 13세 연상인 단원 김홍도(1745~1806?)가 그린 〈마상청앵(馬上聽鶯·말을 타고 가며 꾀꼬리 소리를 듣다)〉도 내걸린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혜원은 조선의 인물과 풍속 화를 완성한 천재”라며“〈미인도〉는 작품 완성도와 크기 등 모든 면에서 그의 대표 작이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간송미술관 제공간송 컬렉션 중에서 서화만 추렸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최완수(66)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서화야말로 조선 예술의 핵심"이라며 "그 중 뛰어난 걸작만 추려서 조선 서화의 맥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생전에 간송은 '개인 미술관'을 가진 10만석지기 갑부이면서도 구멍이 숭숭 뚫린 내의를 태연히 입고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검박했다는 뜻도 되고, 오롯이 미술에만 관심을 쏟았다는 뜻도 된다. 간송이 평생 몇 점을 모았는지는 '비밀'이다. 간송미술관은 단 한 번도 소장품 전모를 밝힌 적이 없다. 최완수 실장은 "아직 한 번도 세상에 안 나온 작품도 많다"고 했다. 봄·가을에 딱 보름씩, 1년에 두 번만 문을 열다 보니 간송미술관 전시에는 언제나 벼르고 벼른 미술 애호가 인파가 몰린다. 1998년에 열린 《보화각(�華閣) 설립 60주년 기념전》에는 딱 보름간 10만 명이 몰렸다.
첫댓글 보고 또봐도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묘사가 나를 감동시킨다 진품을 함 보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