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대림초에 대해 물어봐서 모르는게 많은지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퍼온글인데 혹시 잘못 쓰여진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셔요.
대림환 : 가정에서 대림시기 의미 되새기며 기도를
대림시기 전례의 장식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대림환이다. 사실 대림환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대림환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개신교 선교사인 요한 비허른(J.H.Wichern)으로 1833년 함부르크에서 무의탁 청소년들을 위해 대림시기 동안 촛불을 켜놓았던 것에서 시작됐다. 요한 비허른은 1860년대에 대림시기에 사용하는 초를 전나무가지로 푸른 환 형태로 만들면서 현재의 대림환과 유사한 형태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후 대림환의 풍속은 급속히 전파돼 독일을 비롯한 유럽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대림환이 교회의 전례에 소개된 것은 1977년 독일의 축복예식서(Benediktionale)로 대림환의 강복에 대한 예식이 담겨있다.
4개의 초와 둥근 사철나무 가지로 구성된 대림환은 다양한 상징을 담고 있다.
먼저 4개의 초는 구약의 4000년과 대림시기의 4주간을 의미한다. 보라색, 연보라색, 분홍색, 흰색의 4가지 초로 구성된 대림초는 대림주간이 지남에 따라 어두운 색에서 밝은 색의 순으로 촛불을 밝혀 나간다. 이는 성탄시기의 절정인 빛을 향해 단계적으로 밝아지는 광명을 나타낸다. 또한 대림초의 주변을 둥글게 감싸는 나뭇가지는 푸른 사철나무의 가지를 이용하는데 푸른 나뭇가지는 생명을, 둥근 모습은 승리와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느님을 의미한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이사야 9,1)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처럼 대림환은 구원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면서 정의의 태양이 솟아오르기까지 긴 밤을 점차 밝히는 예언의 빛을 상징한다.
대림환의 온상은 바로 가정이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원칙과 지침」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초록색 잎들로 엮은 환 위에 4개의 초를 꽂아두는 것은 대림시기의 상징’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사 중 제대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대림시기의 의미를 되새기며 기도할 때 대림환은 그 참된 의미를 살리는 것이 된다. -이승훈 기자 가톨릭신문 20121209
대림초와 대림환 - 김홍락 신부 (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
대림초
대림절이 4주간으로 나뉘어 있기에 대림초도 모두 4개입니다. 대림 제1주일은 진한 보라색의 초를, 그리고 제2주일에는 그보다는 조금 연한 보라색 초를 켭니다. 왜냐하면 보라색은 회개를 뜻하기 때문에, 성탄을 준비하는 첫 시기에 맞춰 상징적인 의미로 보라색 초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대림 제3주일이 되면 장미색 초를 밝힙니다. 앞서 설명 드렸듯이, 대림 제3주일은 ‘기쁨주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림 마지막 주인 제4주일에는 연한 장미색 또는 흰색 초를 켭니다. 보라색 초에서 연한 보라색 초로, 그리고 장미색 초에서 흰 초로 변화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탄생이 임박했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성적 측면에서 보자면, 대림초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대림초의 색이 진한 보라색에서 점차 흰색으로 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이 이제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림환

대림환을 처음으로 고안한 독일의 루터교 목사 요한 비헤른 |
대림절 장식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대림환(待臨環)입니다. 대림환은 다른 대림절 전통에 비해 가장 최근의 것입니다. 환(環)은 글자 그대로 '고리' 또는 '돌다'라는 뜻이지요. 대림초 주위를 무엇일가로 둥글게 장식했다는 의미입니다.
대림환을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은 독일의 루터교 목사 요한 비헤른 (Johann H. Wichern, 1808-1881)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미네소타 소재 ‘루터 신학교’(Luther Seminary) 교회사 교수인 메리 헤믹(Mary J. Haemig)에 따르면, 요한 비헤른이 1833년 독일 함부르크에 자신이 설립한 무의탁 청소년들을 위한 ‘기숙학교 (Rauhes Haus)’에 대림절 동안 촛불을 켜 놓은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숙학교 아이들은 매일 그 초를 보며 비헤른에게 “예수님께서 아직 안 오셨어요?”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1839년, 비헤른은 19개의 작은 빨간 초와 4개의 큰 흰 초를 세우고 그 주위를 마차의 수레바퀴 모양으로 둥글게 푸른 나무줄기로 둘러 장식을 했습니다. 흡사 왕관을 연상케 하는 모양으로 말이죠.
대림절 평일에는 매일 작은 빨간 초에 불을 하나씩 밝혔고, 주일에는 큰 흰초를 하나씩 더하여 밝혔다고 합니다. 비헤른의 이 대림환은 1860년대 오늘날과 같이 커다란 초 4개의 형태로 변화하여 독일 개신교 전체로 확대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이 대림환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920년대 독일 가톨릭교회였습니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북미 가톨릭교회로 전파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림환의 역사는 180여년 정도, 가톨릭교회에서는 약 9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초기에 대림환을 붉은 초와 푸른 가지로 장식하게 된 것은 아마 대림환의 창시자인 비헤른 목사가 루터교 소속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루터교와 일부 개신교에서는 가톨릭과는 달리 대림을 상징하는 색으로 빨간색을 사용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또한 가톨릭에서 푸른색이 생명을 상징하는데 비해 루터교에서는 희망과 기다림을 상징합니다. 즉 루터교에서 푸른색은 대림절의 또 다른 상징인 셈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대림환은 둥글게 만들어집니다. 이 둥근 모양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분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또한 대림환은 늘푸른 전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푸른 색은 생명을 상징하며, 희망과 미래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대림환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 선물로 받은 생명을 그리스도의 탄생과 더불어 생각하게 되고, 또 영원한 생명을 바라게 됩니다. -catholicnews 20121212
대림환(待臨環)과 대림초
대림시기 동안 푸른 나뭇가지와 네 개의 초로써 대림환을 만들어 매주 촛불을 하나씩 더해 가면서 밝히는데 이는 구세주가 어느 정도 가까이 오셨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 사제는 자색 제의를 입는데 자색은 회개와 보속을 뜻합니다. 이 시기에는 미사 중에 대영광송은 바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순시기와는 달리 ‘알렐루야’는 바칩니다. 대림시기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기쁨과 희망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초 하나는 천년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야를 기다려 왔던 4천년을 의미해서 네개를 켠다. 대림초는 대림 1주에 보라색 초를 켜는 것으로 시작으로 연보라색(제2주), 분홍색(제3주), 흰색(제4주), 순서로 한주에 하나씩 늘려가며 밝혀준다. 첫째주는 세상 종말에 대한 준비와 경고를, 둘째주는 세례자 요한의 구세주 오심에 대한 속죄와 권유 셋째주는 구세주 탄생의 임박함에 대한 준비와 기쁨을, 넷째주는 성모마리아의 넘치는 기쁨을 상징한다.
대림환(待臨環)은 대림시기 동안 푸른 나뭇가지와 네 개의 초로써 대림환을 만들어 구세주께서 어느 정도 가까이 오셨는지 알려주며,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기 위하여 매주 촛불을 하나씩 늘려 켠다.
대림환에 불을 켜며 드리는 매일 기도
대림 제1주간 :오 임마누엘, 예수그리스도모든 민족의 소망이시며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시여 우리 가운데 오시어 거하소서.
대림 제2주간 :모든 민족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람들의 참 기쁨이시여 당신의 사람들에게 오시어 구원하소서.
대림 제3주간 :다윗의 열쇠 예수 그리스도, 하늘 문을 여시는 이여, 오시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소서.
대림 제4주간 :지혜이시며,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세상 만물을 손에 품고 계신 이여 오시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소서.
우리는 대림시기에 우리 존재 전체가 주님께 향하도록 기도와 선행[자선]과 극기를 하면서 성사의 의미를 다시 인식하고 주님께서 우리 생활 속에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겠다. 구세주의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이 어떻게 구세주를 기다릴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은 눕혀져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4-5). -pio.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