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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란 말 새겨 보기
선생이란 말의 뜻은 자기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즉 자기보다 먼저 태어나서, 지식과 덕망이 나중에 태어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다, 이에 상대되는 말이 후생이다. 자기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 즉 후배에 해당하는 사람이 후생이다.
‘선생’은 원래 일찍부터 도를 깨달은 자, 덕업(德業)이 있는 자, 성현의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 국왕이 자문할 수 있을 만큼 학식을 가진 자 등을 칭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교육이 강조되자,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란 좁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의 외연이 점점 넓어져 지금은 상대방에 대한 존칭으로 쓰이기도 하고, 심지어 비칭의 의미로도 쓰이게 되었다.
이렇듯 선생이란 말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넓어졌으나, 그 말 속에는 배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만은 여전히 담겨 있다. 그래서 예부터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였다.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고 하였다. 좋은 것은 좇고 나쁜 것은 고치니 좋은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나쁜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뜻인데 참으로 중요한 말이다.
인간이란 다른 동물과는 달리 항상 사고하며 그 속에서 무엇을 꾸준히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므로 항상 배움의 과정을 통하여 자기를 성장시키고, 품고 있는 이상을 실현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언제나 선생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공자 같은 성인도 "내가 나면서부터 저절로 도를 안 것이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 되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명쾌한 답을 더한 글에 한유의 사설(師說)을 들 수 있다. 그 전편을 읽어보자.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란 도(道)를 전하고 학업을 내려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존재이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면,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되었으면서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된 것은 끝내 풀리지 않게 된다.
내 앞에 태어나서 그가 도를 들은 것이 진실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따라서 스승으로 삼을 것이고, 내 뒤에 태어났더라도 그가 도를 들은 것이 또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따라서 스승으로 삼을 것이니, 나는 도(道)를 스승으로 삼는다. 어찌 그의 나이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뒤에 태어남을 알 필요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귀하고 천함도 없으며, 나이가 많고 적음도 없이 도(道)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아! 스승 삼는 도가 전해지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으니, 사람들이 의혹이 없기를 바라기가 어렵게 되었다. 옛날의 성인(聖人)은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것이 심했지만 오히려 스승을 따라 물었는데,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성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또한 심하지만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한다. 이 때문에 성인은 더욱 훌륭해지고 어리석은 이는 더욱 어리석어지니, 성인이 훌륭한 이유와 어리석은 이가 어리석은 이유가 아마 모두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자기 자식을 사랑하여 스승을 골라 가르치도록 하고,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스승 삼기를 부끄러워하니 미혹된 것이다. 저 어린아이들의 스승은 그들에게 책을 주고 구두를 익히게 하는 자이니, 내가 말한 바의 도(道)를 전하고 의혹을 풀어주는 자는 아니다. 구두를 알지 못하는 것과 의혹을 풀지 못하는 것에, 어떤 것은 스승을 삼아주고 어떤 것은 그렇게 하지 않아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은 버리니, 나는 그들이 현명하다고 볼 수 없다.
무당과 의원, 악사(樂師)와 모든 기술자들은 상대를 스승 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사대부의 무리들은 스승이라 하고 제자라고 하면 무리지어 모여서 그들을 비웃는다. 그들에게 물으면 “저 사람과 저 사람은 나이가 서로 같고 도가 서로 비슷하다.”라고 하면서 지위가 낮으면 부끄러울 만하다고 여기고, 벼슬이 높으면 아첨에 가깝다고 여기니 아, 스승 삼는 도가 회복되지 않음을 알겠다. 무당과 의원, 모든 기술자들은 군자들이 끼워주지도 않지만, 지금 그들의 지혜는 도리어 미칠 수 없으니 정말 괴이하도다.
성인(聖人)은 일정한 스승이 없어서, 공자(孔子)는 담자(郯子), 장홍(萇弘), 사양(師襄), 노담(老聃)을 스승 삼았으나, 담자의 무리는 그 현명함이 공자에 미치지 못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이 아니요,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도(道)를 들은 것에 선후가 있고 학술에 전공이 있으니, 이와 같을 뿐이다.
모르는 것은 항상 묻고 배워야 한다. 우리는 종종 어떤 것을 남에게 물으면 자신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여 주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바르지 않다. 묻고 배우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유는 “공자 같은 성인(聖人)은 보통사람보다 뛰어났지만 자기보다 못한 담자, 장홍, 사양, 노담 같은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물었는데,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성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심한데도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더욱 훌륭해지고 어리석은 이는 더욱 어리석어지니, 성인이 훌륭한 이유와 어리석은 이가 어리석은 이유가 아마 모두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리라고 하였고, 이어서 “의혹되었으면서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된 것은 끝내 풀리지 않게 된다.”라는 말로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나보다 더 아는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나의 스승이라고 깨우친다.
“내 앞에 태어나서 그가 도를 들은 것이 진실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따라서 스승으로 삼을 것이고, 내 뒤에 태어났더라도 그가 도를 들은 것이 또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따라서 스승으로 삼을 것이니, 나는 도(道)를 스승으로 삼는다. 어찌 그의 나이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뒤에 태어남을 알 필요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귀하고 천함도 없으며 나이가 많고 적음도 없이 도(道)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라고 하였다.
진실로 배움의 길을 가리키는 올바른 잠언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성어도 사실은 그런 데서 나온 것이다. 북위(北魏)의 이밀(李謐)은 어려서 공번(孔燔)을 스승으로 삼아 학문에 정진했다. 몇 년이 지나자 이밀의 학문이 스승을 능가하게 되었다. 그러자 공번은 이밀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그를 스승으로 삼기를 청했다. 그러자 동문들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푸른색은 쪽에서 만들어졌지만 쪽이 푸른색보다 못하다네.”
북사(北史) 이밀전(李謐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곧 배우는 데는 일정한 스승이 없다는 뜻의 ‘학무상사(學無常師)’와 같은 뜻이다. 학무상사는 논어 자장편에 나오는 구절에서 연원한다.
위(衛)나라 공손조가 자공에게 물었다.
“당신의 스승 중니(공자)는 누구에게서 배웠습니까?
자공이 대꾸했다.
“우리 선생님이 누구에겐들 배우지 않았겠습니까? 또 어찌 영원한 스승이 따로 있었겠습니 까?”
공자는 정해진 스승이 따로 없고, 누구든지 자기의 스승으로 삼아 묻고 배웠다는 것이다.자기보다 지위가 낮거나 비천한 사람에게서도 배울 것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배우고 깨친 두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덕산이라는 유명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금강경 연구에는 일가견을 갖고 있어서 평소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사실 그는 금강경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름 대신 그에게 '주금강'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그렇게 불렀다.
북중국에서 금강경을 놓고 숱한 논쟁을 벌인 결과 쟁쟁한 스님들을 모두 격파한 그는, 남쪽의 하찮은 무리들 사이에 선종이 크게 바람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남쪽으로 내려가 그들을 혼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용담이라는 승려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금강경과 주석서를 등에 짊어지고 남쪽 예주로 내려간 주금강은 용담이 있는 절에 거의 다다라, 허기를 느끼고 길가에서 떡 파는 노파에게 점심을 부탁한다. 그때 떡장수 노파가
"스님, 등에 무겁게 짊어진 게 뭔가요?"
하고 묻자. 주금강이
"아! 이건 금강경과 주석서라오. 나는 금강경은 모르는 게 없는 주금강이라는 사람인데, 이 근처 절간에 용담이라는 중이 진리를 깨우쳤다는 등 잘난 척을 한다기에, 내가 혼 좀 내주려고 금강경을 지고 멀리 북쪽에서 왔소.”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떡장수 노파가
"그래요? 그럼 방금 전에 스님께서 제게 점심(點心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을 부탁하셨죠? 그런데 금강경에는 '과거심도 잡을 수 없고, 현재심도 잡을 수 없고, 미래심도 잡을 수 없다'고 했는데 스님께서는 어느 마음에 점을[點心] 찍으시려오?”
하고 물었다. 주금강은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이 멍하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대꾸도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지고 있던 금강경과 소초들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풀이 죽어 용담 스님을 찾아 절간으로 올라갔다.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다. 금강경에 대해서는 달통했다고 자신하는 주금강이 노파의 질문에 그만 꽉 막혀 답을 하지 못하고 쩔쩔맸다는 이야기다. 과거의 마음은 지나간 것이니 잡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으니 잡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잡을 수 없는 것이니, 제 아무리 금강경에 능한 덕산이라도 그 질문에 대해 어찌 답을 할 수 있겠는가.
수십 년 간 금강경을 공부하고 연구한 덕산이라 하더라도, 길가에서 떡을 파는 하찮은 노파에게도 배울 것은 있는 것이다. 그 노파의 덕분으로 주금강은 그길로 용담에게 가서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오직 그러한 계기를 마련해 준 떡장수 노파 때문이었다. 노파가 바로 주덕산의 스승인 셈이다.
우리 속담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배운다’는 말이 있다. 한유의 말처럼,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진시황이 말년에 죽음이 두려워 죽지 않으려고 불사약을 구하였다. 그러던 중 누가 이르기를 수탉이 낳은 알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를 들은 진시황은 신하인 감무에게 수탉이 낳은 알을 구해 오라 하였다. 이에 감무 대신은 어이없는 황제의 명령에 어쩔 줄을 몰라, 한숨만 푹푹 내쉬며 시름에 잠겨 있었다.
마침 어린 손자 감라가 이런 사연을 듣고는 할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제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저와 함께 궁에 가시면 되니 할아버지는 걱정 마시라고 하였다. 며칠 뒤 궁 앞에 도착한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자기 혼자 궁에 먼저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였다. 궁에 들어간 감라는 진시황에게,
“저는 감무의 손자 감라라고 합니다.”
라고 인사를 드리니, 진시황이 말하기를
“할아버지는 안 오고 어찌 너 혼자 왔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감라는
“할아버지는 지금 아기를 낳고 있는 중이라 함께 오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퍽이나 의아한 말에 놀란 진시황이
“아니 남자가 어떻게 아이를 낳느냐 말이냐? 어디 황제 앞에서 함부로 거짓말을 하느냐?”
하고 다그쳤다. 그러자 손자인 감라가 말했다.
”수탉도 알을 낳는데 남자라고 아기를 낳지 못하겠습니까?”
진시황은 그제서야 자기가 감무에게 내린 명령이 그릇된 것임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 말을 꺼집어내지 못하였다.
손자의 가르침 때문에 할아버지는 화를 면하게 되었다. 나이 어란 손자도 할아버지의 스승이 될 수 있다. 한유가 말한 것처럼 나이가 선생을 결정짓는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숙종 시대의 명신 약천(藥泉) 남구만이 쓴 시에 ‘이를 잡는 늙은이’라는 시가 있다.
나이 많은 할머니가 길가에 앉아
아이를 품에 안고 햇볕을 쬐고 있네.
머리를 만지기엔 따뜻한 볕이 좋고
이를 잡으려면 밝은 데가 더 낫지.
편안케 해주려는 마음이 뭉클하고
해로움을 없애려는 심정이 간절하네.
그 누가 이 사연을 가져다가
백성을 보호하는 정성을 펼치도록 할까?
날씨가 찬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늙은 할머니가 햇볕을 쬐면서 아이의 머리를 매만지고 이를 잡아주는 장면이었다. 특별하달 것도 없이 옛날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 약천은 마음이 움직였다. 머리를 만져주려고 따뜻한 햇볕을 찾는 행동에는 아이를 추위에 떨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 엿보였고, 이를 잘 잡으려고 환한 데를 찾아가는 행동에는 아이에게 해로운 것을 다 없애주려는 마음이 엿보였다.
그 모습이 한창 소장 관료로 승승장구하는 약천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정치란 백성을 보호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관료의 기본을 ‘이 잡는 할머니’가 말없이 일깨워 준 것이다.
이 잡는 할머니는, 약천이 선정을 베푸는 관리가 될 수 있도록 깨우쳐 준 스승이 되었다. 깨어 있는 눈으로 보면, 이 잡는 늙은이도 나의 선생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하나의 사항이 있다. 모든 것은 선생에게서 배워야 알게 되고, 또 모든 사람은 다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을 행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어떤 이가 스승인 줄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를 스승으로 삼고 배우려는 강한 의지가 자신에게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배움은 스승을 알아보고 그를 스승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가 함께 할 때 이루어진다.
달마 대사의 제자 혜가(慧可)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기로 하자. 달마는 서역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선(禪)을 일으킨 선종의 일대조다.
달마가 소림사에서 면벽(面壁)할 때의 일이다. 이때 신광(新光)이라는 사람이, 그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을 확신하고, 달마에게 제자가 되기를 간청하였다. 그러나 달마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면벽만 하고 있었다.
몇날 며칠을 밖에서 애원을 하여도 달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해 섣달 아흐렛날 밤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새벽녘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그러나 신광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달마가 물었다.
“그대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리를 구하고자 합니다.”
“진정 그대가 그러하다면 저 흰 눈을 볽게 만들어 보아라.”
그러자 신광은 서슴지 않고 날카로운 칼로 자신의 왼쪽 팔을 잘라 달마 앞에 내던졌다. 흰 눈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마침내 달마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이름을 신광에서 혜가(慧可)로 바꾸어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선종의 2대조가 되었다.
이것이 유명한 혜가단비(慧可斷臂)에 얽힌 이야기다. 사찰의 벽화에 이를 표현한 그림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른바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란 것이 그것이다. 무엇을 배우기 위해 팔을 자르기가 그리 쉽겠는가?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화에서 배움에는 결연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만은 얻을 수 있다. 곁들여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이러한 의지는 스승을 스승으로 알아보고 믿는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군사부일체를 부르짖었고, 스승의 그림자를 밟아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이러한 스승관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진정한 배움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교권이 무너진다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쉴새없이 듣고 있다. 실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