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달은 다음에는
생각하는 자도 행위자도 없으며,
개체성에 대한 인식도 없다.
마하리쉬는 육체와 마음의
모든 의식적 행위의 이면에는
그 행위를 하고 있는 <나>가
있다는 은연중의 가정이 있다.
즉,
<나는 생각한다> <나는 기억한다>
<나는 이러한 행위를 하고 있다>
라는 등의 생각 속에는
그와 같은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나>가 가정되어 있다.
마하리쉬는 이를
<나라는 생각, 아함 브리티
Aham vritti>라고 하였다.
마하리쉬는
개인(개체성)에 대한 관념을,
바로 이 <나라는 생각>이,
여러 가지 형태로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개체성을
마음과 같은 것으로 보고,
마음을 <나라는 생각>과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에 의하면
개체성의 느낌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마음과
<나라는 생각>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깨달은 다음에는
생각하는 자도 행위자도 없으며,
개체성에 대한 인식도 없다고
강조했든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는 또 진아만이
유일한 실체라고 강조하였으며,
<나라는 생각>은 실체가 없는
그릇된 가정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는
<나라는 생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대상과의 동일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나라는 생각>이
그 생각의 주인처럼
나타나서,
<내가 생각한다>
<내가 믿는다> <내가 원한다>
<내가 행위하고 있다>
라는 식이 되지만,
사실은
동일시할 대상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라는 생각>은 없다.
<나라는 생각>이
마치 실체인 것처럼
계속 나타나는 이유는
<끊임없는 동일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동일시의 밑바닥에는
육체의 소유자 또는
육체와 동일체로서의
<나>가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이,
모든 그릇된 동일시의
근본적인 뿌리이며,
이 동일시를
해소하는 것이
자아탐구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129p)
ㅡ 나는 누구인가ㆍ
라마나 마하리쉬 ㅡ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