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침대에 누워있다. 하루 중 서서 움직일 때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길어진 건 엄마가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고 난 후다. 걷는 운동을 권유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힘이 없어 운동하다가 행여나 넘어 질까봐 무섭다는 것이다. 엄마 심정이 이해는 간다. 그렇다고 종일 누워 있게 둘 수는 없었다. 겨우 설득하여 손에 지팡이를 지어주면 마당 한 바퀴 돌고는 또 방으로 들어가 눕는다. 유머 차 끌고 산책 삼아 마을 입구 까지 가자는 내 말에 돌아오는 엄마의 답은 못해, 못 걸어 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 좋아하는 나이트클럽 갈까 라는 말로 농담을 건네 본다. 엄마는 몸이 무거운지 힘겹게 돌아눕더니 알아 듣지도 못하는 말을 중얼중얼 한다. 낮에는 문을 안열고 밤이 되어야 사장이 출근을 하는데 지금은 나이트클럽이 없어졌다는 걸 모르나 보네 라는 말을 하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눈빛이 많은 말을 대신하고 있다. 밤이 되고 나이트클럽 사장이 출근해서 문을 열어도 나는 결코 손님은 될 수 없을 거야. 그날이 마지막 일거야. 61번째 생일. 엄마가 떠올리고 있을 오래전 그 일이 생생하다.
엄마가 환갑을 맞았다. 환갑을 축하해주겠다고 외가식구에 친정식구가 다 모였다. 좁디좁은 시골집이라 발 디딜 틈이 없어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온 가족이 마당에 빙 둘러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술잔도 오갔다. 점심때부터 시작한 삼겹살 파티는 저녁이 되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자리에서 점심 저녁이 해결이 되어 편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찰라 엄마가 핸드폰을 찾는다. 술에 취한 엄마는 핸드폰을 붙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찾으면서 혀 꼬인 말로
“오늘 내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팔팔 나이트 쏜다." 하신다. 그 말에 친척 가족 모두 의아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엄마는 핸드폰을 나에게로 던지며 팔팔 나이트 동생 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어 바꿔 달라고 했다. 핸드폰에 저장 할 정도로 나이트클럽 사장하고 친분이 있단 말인가. 겨우 번호 찾아서 통화 버튼을 누른 후 엄마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 동상 우리지금 갈테니 테이블 두개 잡아나"
동상? 엄마가 말하는 동상이 누구지? 옆에 있는 이모 말고 엄마 동생이 또 있단 말인가.
"엄마 이모 말고 동생이 또 있어? 술에 잔뜩 취한 엄마는 혀 꼬인 말로 설명을 했다.
“팔팔나이트클럽 사장이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자꾸 언니 삼고 싶어 하길래 언니 동생 하기로 했지.”
환장 할 노릇이다. 도대체 팔팔나이트클럽을 얼마나 자주 갔으면 사장하고 의자매를 맺는단 말인가! 그리고 그렇게 자주 간 나이트킅럽을 누구랑 갔단 말인지. 술친구 이면서도 친하게 지내는 뒷집에 사시는 복자어르신하고 갔을려나. 뒷집 복자어르신과 엄마는 40년 지기 친구이다. 두 분은 술을 좋아 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왜 엄마 만 나이트클럽 사장이랑 의자매를 맺었는지가 의문이다.
팔팔 나이트사장얼굴이 궁금하다. 서둘러 읍으로 갔다. 읍으로 가는 차안에서 고향읍내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읍내에 있는 팔팔나이트클럽으로 가고 있으니 맥주 한잔 하러 나오라고 했다. 친구는 망설임 없이 바로 오케이를 외친다. 팔팔나이트 안으로 들어서자 친구가 먼저 와 있다. 우리형제는 친구가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모랑 외삼촌은 엄마 손에 끌려가 사장하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조용한 음악이 끝나고 신나는 노래가 나오자 제일 먼저 엄마가 스테이지로 나갔다. 그 뒤를 외삼촌 이모가 뒤따른다. 외삼촌 이모와 달리 엄마는 맨발로 춤을 추고 있다. 환갑을 맞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는 현란한 몸짓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생들이 한마디씩 한다. 나이만 환갑이지 몸은 이팔청춘이라는 둥, 나이트클럽에 돈 많이 갔다 줬겠다는 둥, 그동안 자식한테는 말도 안하고 도대체 여기를 얼마나 다닌거야 라는 둥....
신나는 음악이 끝나고 잔잔한 부르스곡이 나오자 맥주잔을 기울이던 친구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야이 저 팔팔나이트사장 읍에서 좋은 소리 못들어. 문경 오기전에 사기를 쳐서 교도소에 있다가 나왔데. 엄마보고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해. 저번에 너네집 아버지꺼 순금 목걸이랑 반지 팔찌 시계 몽땅 도둑 맞았다며?.”
친구 얘기를 듣는데 얼마 전 일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졌다. 몇 달 전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니 장롱 깊숙이 보관 해둔 금덩어리가 없어졌다고 울먹였다. 장날이라 읍에 가서 장보고 집에 들어오니 장롱 서랍이 열려 있어서 서랍안에 손을 넣어보니 순금이 있어야 자리가 텅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물건을 찾느라 여기저기 뒤진 흔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애써 울음을 참는 듯 하더니 이내 대성통곡 했다. 애지중지 하던 아버지 물건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읍내에 있는 금은방 사장님한테 행여나 금을 매매 하러 오는 손님 있으면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해달라 했다. 친구들 말은 하나같이 읍내에서 그걸 매매 하겠나 저 멀리 타지역에 가서 팔겠지 했다. 그러면서도 읍내 금은방에 가서 부탁은 해놓겠다고 했다. 그 순금을 도대체 누가 가져갔을까 라는 생각에서 빠져 나오게 한건 친구의 핵폭탄 같은 말이었다.
“순금 도둑맞기 전날 저 나이트사장이 너네 엄마 준다고 도토리묵을 들고 너네 집에 갔었데. 근데 그날 너네 엄마가 집을 비워서 마침 지나가던 복자어르신이 봤나봐. 커피나 한잔 하고 가라니까 도토리묵 주러 왔다며 황급히 가더래. 복자어르신이 그러시더라. 집안을 뒤진 흔적이 하나도 없는걸로 보아 아는 사람 소행이 분명 한데 증거가 없으니 말은 못하고 답답해 죽을지경 이라고 너네 엄마만 그쪽으로 생각안하고 계시더만...”
머리가 물미역이 되도록 춤을 춘 엄마가 지쳤는지 집에 가자고 한다. 술 값 계산을 마친 남동생이 엄마를 부축해서 신발을 신겼다. 나이트 사장이 다가와 아들이 효자라며 이번 환갑 선물로 돈봉투도 많이 드렸겠네 하며 너스레를 떤다. 그 말에 엄마는 우리아들이 효자 인데 돈도 잘 벌어서 봉투에 돈을 빵빵하게 넣어서 줬다며 자랑을 한다. 엄마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와 달리 남동생은 술에 취한 엄마가 넘어 질까봐 염려를 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내 추측은 이랬다. 나이트사장이 도토리묵을 핑계로 엄마가 없는 시간에 친정집에 들어와 방안에도 들어가 보고 장롱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봐두었을 것이며, 술에 취한 엄마가 나이트클럽에서 장롱 서랍 안에 아들이 해준 아버지 순금 목걸리 팔찌 반지가 있다며 아들 자랑에 순금 자랑까지 곁들여 했을 것이다. 마을 어르신들 앞에서 그런 자랑 하는 걸 평소에도 좋아했지만 도난 사고는 한번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이트클럽 사장이 나이 많은 엄마를 언니언니 하며 따른 이유가 뭔지를 모르겠다. 술 좋아하고 노는거 좋아하는 엄마라 굿이 언니를 삼지 않아도 vlp 고객이 되었을텐데 말이다.
끝내 도둑은 잡지 못했으며 엄마가 62번째 생일을 맞기도 전에 나이트클럽도 문을 닫았다. 언니 언니 하며 살갑게 굴던 나이트클럽 사장이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났다고 엄마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이트클럽이 있던 자리에 노래방이 들어섰다. 연락도 없이 훌쩍 친정으로 떠나는 날이 더러 있다. 그때마다 엄마는 복자어르신하고 들마루에 앉아 술 한 잔 기울이고 있었다.
“야가 철딱서니는 없는데 운전을 잘하고 노래도 잘한다. 복자야 오늘 내가 노래방 쏘께. 야 차로 읍내 노래방가가 야는 노래 부르고 우리는 춤추고 놀다 오자.”
애지중지 하느라 팔지도 못한 순금을 도둑 맞고도 저래 놀 생각하는 엄마가 못마땅 하여 옆에 앉아 술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때 마다 엄마는 잔소리 할려면 너네 집으로 가라고 역정을 냈다. 순금을 도둑맞고 난 후로 엄마가 술을 마시면 원망과 미움이 배로 커졌다. 그러다가 복자어르신이 저 멀리 아들네 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심 기뻤다. 이제 엄마가 술을 멀리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는 한숨을 쉬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이 많았다. 사는 재미가 없다는 말도 자주 했다. 술 친구도 떠나고 그 좋아하는 나이트클럽도 없어져셔 그렇다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엄마의 푸념에 짜증이 먼저 치밀어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말했다. 자식 다섯은 하나같이 당신의 하소연을 듣기 싫어하는데 떠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당신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고 눈물도 닦아 주었다고 한다.
동네 어르신들도 알고 고향친구들도 알고 경찰도 알고 있었던 순금도둑을 엄마만 몰랐다는게 이상하다. 엄마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눈감아 주었을지도 모른다. 마을어르신 읍내 사는 고향친구들도 모르는 나이트클럽 사장의 고초를 엄마 만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어찌 되었던 자식도 이해해주지 못한 엄마의 외로움을 떠난 사람들은 보듬어 주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 자리가 술자리가 되었던 나이트클럽이 되었던 엄마에게 그리움의 대상을 만들어 준 자리니 만큼 지루한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을것이다.
엄마는 허리 디스크 수술 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 만 끊으면 엄마가 건강하게 살 줄 알았다. 소주병을 수북하게 쌓아 놓았던 자리에 유머차가 있고 지팡이가 종류별로 놓여 있다. 술에 취해 맨발로 춤을 추던 엄마 모습이 그립다. 내가 이런데 엄마는 오죽할까.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몸이 말을 안들어 사는 재미도 줄었을 것이고 삶이 서럽고 서글플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살가운 딸이 되기는 커녕 아프다 소리를 늘어놓으면 맛있는거나 먹으러 가자고 엄마 입을 막기 일쑤였다.
내가 결혼을 하고 도둑이라는 말을 들었다. 친정에 들려 고추장 된장 김치를 들고 오니 도둑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고추장 된장 김치를 통에 담아 오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댓가도 지불하지 않았지만 미안해 하지 않았다. 순금을 훔쳐간 도둑은 수시로 엄마의 술친구도 해주고 엄마의 넋두리도 들어주면서 자신 인생도 그렇다고 공감 까지 해주었을 것이다. 엄마는 돈을 도둑 맞는것 보다 외로움이 더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살가운 딸이 되어 고추장 된장 대신 엄마의 외로움을 훔쳐와야겠다.
첫댓글 건강을 도둑 맞는건 과거에 건강 했다는 얘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