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 김언수 / 문학동네
사람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는가에 따라 삶의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 태어난 장소, 자란 마을, 전공, 직장, 그리고 첫 사랑에 결혼까지 한 마디를 시작할 때의 선택에 따라 그 마디의 모습은 대충 결정된다.
식물의 뿌리처럼, 세상의 모든 비극은 자신이 발 디딘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34쪽)고 했다면 행복도 내가 디딘 그곳에서 꽃 피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인공 래생(來生)은 쓰래기 더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자란다. 그 도서관은 청부업계의 본산이다.
책을 읽다가 책이 언제 발행되었는지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 [John Wicks] 시리즈를 모두 보았는데, 바로 영화속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책의 초판은 2010년이고, 첫 번째 [John Wicks] 영화는 2014년이니 아이디어를 한 쪽에서 가져갔다면 그 방향은 쉽게 짐작이 가는 일이다. 이전에 자객들을 관리하는 집단을 소재로 다른 이야기를 나는 들은 바 없으니 당연히 이 두 작품만을 비교할 수 밖에...
내가 뿌리내린 곳을 떠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불가능이란 Zero(0)는 아니지만 거기에 가깝다는 말이다. 사회에서 계급 간의 장벽을 깨고 위로 오르는 경우도 "용"에 비유를 했으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겠다. 래생도 그 세계를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리고 그 세계의 일원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청부업계에 몸담은 사람은 악인이고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성인일까? 돈믈 받고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악인일까 아니면 돈을 주는 사람이 악인일까? 죄의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이 있다고 하지만 야바위꾼에게 들리운 저울처럼 세상의 어떤 저울도 믿을만한 것은 없다.
절대의 선이란 존재하지 않고, 역으로 절대 악이란 존재하지 않듯이, 그저 몸 담고 사는 세계가 다른 것일뿐, 서로의 세계에서는 선과 악의 기준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닐까? 청부 업계라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다. 홍등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다. 야쿠자 집단같은 패거리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는 나는 잘 모르지만 익명성이 보장되고 우위를 매기고 이익이라는 것을 챙길 수 있는 돈을 저장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언제나 앞의 집단이나 환경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적 동물이란 인간의 정의에 이미 그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 유명한 영화 "대부"를 보면 현재의 "악"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더 큰 "악"을 만나지만, 베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늘 베풀지 못해 고민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뭔가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 세계에 그냥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사는 사람이 다수인데 반하여 알에서 나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도전이 앞에 놓이게 된다.
소설이 재미있는 영화같다.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질 듯하다.
"책을 읽으면 부끄럽고 두려운 삶을 살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을 생각이냐? 36
도서관은 이렇게 조용하고,이곳에 가득 쌓인 책들은 저토록 무책임한대. 135
세상이 이 모양인 건 우리가 너무 얌전하기 때문이야. 무엇을 하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당신 같은 체념주의자들 때문이지. 284
"사람들은 나 같은 악인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악인은 지옥 같은 데 가지 않아. 여기가 바로 지옥이니까. 마음속에 한 점의 빛도 없이 매순간을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 게 지옥이지. 언제 표적이 될까, 언제 자객이 올까, 내내 두려움에 떨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지옥인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살고 있는 게 바로 지옥니지." 376
단지 같이 서 있어서 나는 이 아름다운 숲의 일원이 되었다 . 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