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치우창법 蚩尤槍法.
황망 慌忙하기 이를 데 없다.
모두가 한준의 신묘한 창술에 놀랐지만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혈창루 모용척이었다.
모두가 조용하니 이중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 달 전, 음산에서 화살을 만들 때, 시비가 붙어 제가 막대기로 두 번 한준은 가격하였는데, 낫으로 막는 방어술이 처음 보는 이상한 괴초식인 것을 느꼈습니다”
“...”
“저는 당시에 한준이 잘 사용하지 않는, 손에 들고 있던 낫으로 얼떨결에 막았기에 이상한 방어술이 나왔나 무심코 넘겼는데, 오늘 창술을 보니 무척 손에 익은 수법처럼 보였습니다”
좌중이 웅성웅성 소란스럽더니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럼, 우리 몰래 오래전부터 다른 창술을 연마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네”
그러자 말없이 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혈창루의 눈이 순간, 번쩍하고 크게 떠졌다.
“아 하, 그렇구나!”
좌중의 모두가 숨을 죽이며 혈창루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
“십이지살 十二指殺의 무공비급을 한준이 가져갔는데, 그 비급 속의 창술 槍術을 한준이 익힌 모양이야.”
“그 무공비급이 무엇입니까?”
“그건 나도 모르고 죽은 친구인 십이지살도 정확히 모르는 내용이야.”
“...”
“상여집 인근 암혈 巖穴에 오래 방치되어 서두 序頭와 말미 末尾가 낡고 썩어버려 제목도 모르고, 저자 著者도 알 수 없는 죽간 竹簡이었어”
“그럼, 그 비급을 어떻게 한준이 가져갔습니까?”
“나와 십이지살이 같이 발견하였으니 공동 소유라고 볼 수 있는데, 십이지살이 적의 습격으로 죽어가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그 비급을 한준에게 주라고 하는데 어쩔 수 없었지”
“그럼, 무공비급의 명칭이나 내용을 아예 모르시는 겁니까?”
“십이지살과 논의한 결론은 치우 蚩尤 13식 창법 아니면, 천오창술 天烏槍術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지”
“두 창술 모두 지금은 실전 失傳되어 버린 그 위력이 어마어마한 전설적인 고대 古代의 창법 아닙니까?”
“그렇지, 치우천황은 13식 창법으로 동이족을 이끌고, 황제 헌원을 앞세운 하화족을 무찔렸지”
“천오창술 역시 단군 조선에서 우리 흉노에게 전래한 무적의 창술로 알고 있는데요”
“일설에는 우리 흉노가 단군 조선으로부터 이탈 離脫할 때, 탱그리(단군) 님으로부터 ‘천오창술’을 전수 傳受 받은 후, 그 엄청난 위력에 자신감을 얻어 알타이산맥으로 옮겨가 독립하였다고도 하지”
“그리고 한준의 창술을 지켜보니 술법이 20여 초식이 넘는 ‘천오 창술’보다는 초식이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위맹 威猛스러운 ‘치우 13식 창술’이라는 느낌이 들어”
“그럼, 그런 엄청난 창술을 익힌 한준을 이제 어떻게 상대하죠?”
“...”
“...”
“그러나 그 무공비급의 앞의 두 초식과 마지막 초식은 죽간이 썩어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었으니, 완벽한 창술은 아닌 것은 확실해”
“그럼, 그 열 초식만 막아내면 어떻게 버터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러자 설태누차가 단호하게 후배의 말을 자른다.
“내가 오 합, 걸부황과 함께 협력하여 십여 합을 겨루어 보았지만, 비급 속의 열 (十) 초식을 모두 받아내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아니, 이십여 합을 직접 상대하였는데도 그래요?”
“이십 합을 상대했다 하더라도 한준은 전력을 다하지 않은 느낌이야.”
“그러니까 비급 초식을 모두 발휘하지 않았다는 말씀이죠?”
“그렇지, 그러니까 문제지”
“...”
답이 없으니 회의장 분위기가 어둡다.
내일 당장 선봉장을 맡을 장수가 필요한데, 모두 말이 없다.
* 13식 十參式 치우창법
용경호퇴 龍警虎退.
용을 놀라게 하고 호랑이를 물리친다는 가공 可恐스러운 위력의 치우창법이 실전 失傳된 지 아득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무술인이 치우창법의 비술을 찾아, 배우고자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虛事였다.
동이족 환웅, 치우천황의 13식 창법은 화하족의 대표 격인 황제 黃帝 헌원과 십 수년간 72번의 전투를 하면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는 백전불퇴 百戰不退의 전설적인 창술이다
오랜 기간 모든 무술인이 꿈에서라도 얻고 싶은 동이족 환웅, 치우천황의 창술.
한 자루 창으로 세상의 모든 무예계를 평정할 수 있다.
그 13식 창술 비결을 익히면 지상 최강자가 되는 것이다.
모든 무술인이 갈망 渴望하는 무예다.
따라서 수많은 무인이 치우창술 비결 문을 찾고자 온 누리를 다 뒤집고 헤맸지만, 아직 이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백 수십 년 전, 어떤 무림 고수가 치우 창술 비결을 우연히 발굴하였으나, 다른 무리의 합공 合攻을 받아 창술 비결과 함께 절벽에서 강으로 떨어져 영원히 사라졌다는 소문만 나돌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드디어 사람들은 치우 창술 비결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이젠 전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사람들은 치부 置簿해 버린다.
가공스러운 치우 13식 창술은 그렇게 뭇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치우 13식 창술 중, 마지막 13식은 동귀어진 同歸於盡 초식이라 전해지고 있다.
동귀어진이란 상대방과 함께 죽는다는 뜻이다.
치우천황도 마지막 13식 동귀어진 초식만큼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니, 사용할 필요성이 없었다.
그 엄청난 위력의 치우창법 비결을 한준이 품에 안고, 막북 초원을 마음껏 날고 있다.
* 주석 :
흉노나 중앙아시아의 수 많은 민족들은 고대 문자가 없어, 역사 기록이 없는 관계로 대부분 역사가 구전 口傳으로 구전으로 전래 傳來되어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한민족 韓民族의 상고사 上古史도 완전하지 않다.
부여의 시조인 동명성왕 해모수와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추모왕의 건국기 建國記가
유사 類似하거나 혼용 混用 되기도 하며, 대부분의 사서들은 주몽 추모왕을 해모수의 동명성왕으로 혼돈 混沌 오기 誤記하여 기록하였다.
이참에 확실히 밝혀둘 것은,
동명성왕은 부여를 건국한 해모수 왕을 칭하는 것이며,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 왕은 추모왕으로 정립하여야 한다.
흉노의 역사는 환웅 배달국 시대(홍산문화, 紅山文化)에 이미 시작되었으나, 기록이 없는 관계로 수십 대(數十 代)가 지나고 세월이 흐르니, 단군 조선 이전 以前, 배달 倍達 족의 역사는 상실 喪失하고 말았다.
그리고 단군 조선시대에도 꾸준하게 조선 관할에서 이탈하여, 터가 광활한 흉노영역으로 합류한 기질 氣質이 활달한 동이족들이 다수 多數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부여 夫餘 시대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조선과 부여 시대에는 흉노와의 국경 國境도 별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북 北으로는 대흥안령산맥과 현재의 북경 및 남 南으로는 태항산맥 부근에 생활하는 동이족들은 오늘은 흉노족이었다가 다음 달은 부여의 맥 족 貊族으로 행세 行勢하고, 그다음 해에는 또다시 흉노의 병사 兵士가 되어 전장으로 출전 出戰하는 일들이 허다 許多하였다.
더구나 고구려가 강성 强盛하였을 시에는 북방 유목민들의 대표인 선우 單于 역할을 담당하여, 그 관할 지배 영역이 알타이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미치는 거대한 고구려 제국이었다.
그러니 당시에는 동이족 내의 각 민족의 국경이나 부족의 경계 자체가 불분명하였다.
그러므로 인하여 흉노 및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의 상고사 上古史는 단군(檀君, 탱그리) 한 분이 그 민족의 시조 始祖로 되어있다.
말갈, 거란, 여진족의 후손인 만주인 滿洲人도 단군왕검을 시조로 모시고 있으며,
지금도 고구려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만주인들은 지금도 다른 단어는 몰라도 ‘단군’과 ‘고구려’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정확히 발음하고 있다.
그렇게 동이족의 시원 始元이 단군왕검 한 분으로 정립 定立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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