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교 일 자 : 2023년 06월 11일
▶ 말씀 선포자 : 임 용 주 목사님
▶ 설 교 제 목 : 생고생 하지 않으려면(연속강해80번)
▶ 성 경 구 절 : 사도행전 27 : 12 ~ 26
▶ 성 경 본 문 :
❤❤❤❤❤❤❤❤❤❤❤❤❤❤❤❤❤❤❤❤❤❤❤❤❤❤❤❤❤❤❤❤❤❤❤❤❤❤❤❤❤❤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
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
할렐루야!!
우리는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데 있어서 언제 풍랑이 올지 또 고난이 올지 모르는 가운데 살아
갑니다.
사실 우리 주변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있습니까?
어쩌면 여기 계신분들 중에서도 한 주간 많은 고난과 고통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삶속에서, 대인관계속에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많은 상처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고난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많은 고난과 고생중에는 고생을 안해도 되는데 고생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에따라 오늘 설교 제목은 “생고생을 하지 않으려면”으로 정했습니다.
본문 15절과 16절을 보면 “15-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보면 많은 사람이 배에 탔지만 배가 바람에 밀려서 스스로 제어를 못하고 지중해
한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도가 치게 되니 본문 17절을 보면 배에 손상을 입 을 수 있게 되어 배가 깨지지
않도록 밧줄로 묶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본문 18절을 보면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결과 애를 쓰다가 짐을 바다에 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안되어서 본문19절을 보면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의지하던 기구를 버렸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본문 20절을 보면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나침반도 없었던 시절이어서 방향도 못잡고 잇었으며 큰 풍랑이 계속되어 그들은
구원의 소망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정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왜 이처럼 생고생을 하고 있었을까요?
본문 21절을 보면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바울의 얘기를 듣지 않고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였기에 그들은 생고생을 하게된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사람의 말과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사람의 말과 경험을 하나님의 말보다 더 우선했을까요?
그들은 좀 더 편안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우리가 이땅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 편안함을 위해 하나님 대신 내 편안함을 선택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다수의 의견이라도 소수의 의견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 진리의 말씀은 우선되어야 합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남풍이 순하게 불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순풍을 보며 자신의 뜻을 이룬 줄 알았지만 사실 이는 헛고생이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일이 잘될수록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희비가 교차할 때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날마다 주와 함께 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도 고난과 어려움은 있습니다. 그러나 생고생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려움속에서 바울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본문 24절을 보면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속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환란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남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25절과 26절을 보면 “25-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
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결과 고난을 통과한 바울은 위로하는 자기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에게 오는 고난은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위로하는 자가 되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