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모두가 함께 복직하는 시대의 길을 걸으며
부산 호포역에서 3명으로 시작한 '희망뚜벅이'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여 참여로 5명이 되고 7명이 되고 10여 명이 되고 100여 명이 되고 1000여 명이 되었습니다. 사진은 호포역에서 원동역까지의 첫 구간에서 세찬 바람을 맞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 ©️장영식
2020년 12월 30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청와대까지 걷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처음엔 호포역에서부터 세 명으로 시작한 ‘희망뚜벅이’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85호 크레인 고공 농성 때 ‘스머프’로 알려졌던 빛바랜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달려왔습니다. 원동역까지 걷는 길에는 바람이 얼마나 심하게 불었던지 한 걸음을 떼어 놓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손에는 동그란 하얀 부채가 있었습니다. 그 부채 한쪽에는 “한진중공업 고용 안정 없는 매각 반대!”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가 구호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이른바 ‘부채 요정’의 등장이었습니다.
삼랑진역 앞에서의 김진숙 지도위원의 모습. ©️장영식
청도 구간을 걷고 있는 '희망뚜벅이'들의 모습. ©️장영식
12월 31일 오전, 원동역에 도착했을 때는 10여 명 ‘희망뚜벅이’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남대 의료원 고공 농성을 진행했던 박문진 지도위원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해찬 스님도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차가운 날씨임에도 천태산을 넘어 삼랑진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희망뚜벅이’들의 행진은 때로는 수십 명에서 때로는 200-300명 대오로 청와대를 향했습니다. 청와대를 가는 길에서 비바람을 맞기도 했고, 눈보라를 맞기도 했습니다. 서영섭 신부는 단식 36일째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 계속 울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전역을 목전에 둔 옥천에서 노모의 위독한 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긴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신탄진역에서 다시 합류하여 청와대로 뚜벅뚜벅 길을 걸었습니다.
대구 시내를 걷고 있는 '희망뚜벅이'들의 모습. ©️장영식
추동나무 휴게소에서 신동역 구간을 걷고 있는 '희망뚜벅이'들의 모습. ©️장영식
충북과 충남을 지나는 길에 청와대 앞에서 단식 중인 녹색당 성미선 씨가 40일 만에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녹색병원으로 달려가서 성미선 씨를 면회하고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경기도로 향하는 중에 경찰 병력의 제지가 시작되었습니다. 평택에서부터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합류했습니다. 전주에서 문규현 신부와 골롬반 외방선교회 함 페트릭 신부도 오셨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평택역에서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던 땅. 공장 밖 천막 농성장에선 아이들이 자라고, 공장 안에선 ‘오 필승 코리아’가 귀를 찢고, 돌팔매가 난무하던 곳. 이곳 평택엘 다시 왔습니다”라며 “이곳 평택을 떠나 부산 영도까지 부르튼 발로 핏자국을 찍으며 천 리 길을 걸어왔던 쌍차 동지들. 11년 만에 그 길을 거슬러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승리의 시간은 짧고, 고통의 시간들은 길지만, 우린 또 헤쳐 나갈 것입니다. 그 길이 노동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인간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정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021년 1월 21일, '희망뚜벅이' 일정 중에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노동자 김진숙 명예회복 및 복직을 위한 긴급 국회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토론회에 참석하기 전에 청와대에서 단식 농성 중인 동지들과 따뜻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영식
저는 솔직하게 경기도로 접어들기 전에 복직 소식이 올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복직 소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경기도로 접어들면서 대오는 더 늘어났습니다. 대오가 늘어난 만큼 경력도 증가됐고, 행진을 제지하는 경력과의 마찰 횟수도 많아졌지만, ‘희망뚜벅이’들의 행진은 계속됐습니다. 인덕원역을 향한 행진에는 세월호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 님과 태안화력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 군의 어머니 김미숙 님께서 ‘희망뚜벅이’들과 동행해서 ‘3숙’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김미숙 님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29일 동안 단식을 했습니다. 이날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도 참석했습니다.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선인 남태령 고갯길은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서울로 진입하면서 ‘희망뚜벅이’ 대오들보다 경력이 더 많았습니다. 남태령을 지나면서 경력은 인도로 걷는 행진 대오를 물리력으로 제지하기 시작했고, ‘희망뚜벅이’들은 강력하게 항의하며 청와대를 향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행진을 계속했습니다. ‘부채 요정’의 부채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에서 “‘노동존중’ 사회는 어디로 갔습니까?”라는 글귀로 바뀌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겨울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청와대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영식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희망뚜벅이'들의 행진은 계속되었습니다. ©️장영식
이 과정에서 어렵게 열린 노사교섭에서 사측은 전혀 해결 의지 없이 기만으로 일관했습니다. 사측은 ‘복직’이 아니라 ‘재취업’과 ‘배상’이 아니라 ‘위로금’과 임원들의 ‘성금’을 모아서 일정액을 지급하겠다며 교섭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비열한 짓이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송경동 시인이 국회의장과 면담을 가진 후 국회의장실에서 물과 효소마저 끊고, 정치권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문제의 해결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국회 경비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왔습니다. 송경동 시인은 이 과정에서 실신하여 병원으로 이송하며, 생명의 위중함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 밤에 “국회로 가겠다”라고 했지만, 만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쌍차 동지들이 있는 평택으로 향하는 '희망뚜벅이'들의 당당한 모습. ©️장영식
인덕원역에서 흑석역까지는 500명이 넘는 대오가 참석했습니다. 강정에서 문정현 신부도 오셨고, 김진숙 지도위원을 생각하는 시민들이 달려왔습니다. 과천을 지날 때는 과천 시민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는 깃발들을 길 위의 가로수에 걸어 두었습니다. 감동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흑석역에 도착해서는 너무나 많은 대오로 전체 기념 촬영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흑석역에서 녹색병원으로 달려가 송경동 시인과 성미선 씨를 면회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46일을 굶고, 국회에서 끌려 나왔던 시인이 웃습니다. 세상 마음이 놓이는 웃음. 치료도 받고 물 같은 미음도 마시기 시작했답니다. 성미선 님은 이제 2단계 보식을 시작하셨구요. 두분 다 몸에 치명적인 손상이 남겼지만, 치료에만 집중하셔서 얼른 뽀얗게 회복하시길”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습니다.
수도권에 가까워질수록 경력에 의한 행진의 제지로 마찰도 많았지만, '희망뚜벅이'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영식
2월 7일. ‘희망뚜벅이’들이 청와대로 가는 날입니다. 흑석역에는 1000명이 넘는 대오가 모였습니다. 전국에서 오신 분들이 흑석역을 가득 메웠습니다. ‘희망뚜벅이’ 대오들은 한강교를 건넜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한강 다리 위에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침묵하는 정치권과 청와대가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날까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청와대의 무능이 절망적이었습니다. ‘배임’만을 강조하는 이동걸 산업은행장을 설득하지 못하는 잔인한 한국 사회가 아팠습니다.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금속노조 한진지회 심진호 지회장과 조합원들이 길 위에서 거리 두기를 지키며 “김진숙을 복직!”을 외쳤습니다. 하늘에까지 들릴 듯이 쩌렁쩌렁하게 울렸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서울역 역사 안에서 코레일 네트웍스 농성장을 방문, 해고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녹색병원을 찾아 송경동 시인과 성미선 님을 면회하고 위로하였습니다. ©️장영식
서울역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에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김진숙 복직”을 위한 피켓을 들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길 위에서 이들을 만날 때마다 부채를 흔들며 화답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을 지날 때는 미얀마 노동자들이 군사 쿠테타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광화문을 지나 청운동 거리는 경력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 길을 뚫고 청와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청와대 앞에서 코레일 네트웍스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 앞 마지막 단식자들인 김우 님과 금속노조 부양지부 정홍형 수석을 만나 눈물의 포옹을 나눴습니다. 김우 씨는 청와대 앞 단식 전에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일면식도 없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해 48일을 단식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이겠습니까. 얼마나 미안하고, 아픈 일이었을까요. 그럼에도 김우 님은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 웃음을 “곧 피어날 매화처럼 어쩌면 목련처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마침내 청와대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이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깊은 인사를 나누고, 48일째 단식 중인 김우 님과 금속노조 부양지부 정홍형 수석을 만났습니다. ©️장영식
김진숙 지도위원과 경빈 어머니는 두 단식자와 함께 청와대를 걸어 나왔습니다. 이 길을 위해 김진숙 지도위원은 속보로 청와대를 걸어 왔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청와대에 도착해야 이들의 단식을 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걸어오는 동안 끝내 복직 소식은 없었지만, 단식자들이 단식을 풀 수 있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청와대를 걸어왔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진행된 집회에서 감동적인 발언을 합니다. 그이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최강서의 빈소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어 가는가”라며 비수 같은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청와대를 향해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 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보자기 덮어쓴 채 끌려가 온몸이 피떡이 되도록 맞고, 그 상처를 몸에 사슬처럼 지닌 채 36년을 살아온 내가 보이십니까”라고 절규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동지 여러분,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습니다.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게 이 나라 민주주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먼 길 함께 걸어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을 깎고 뼈를 태우며 단식하신 동지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라고 말을 맺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라고 말을 맺었습니다. ©️장영식
김진숙 지도위원은 부산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모 언론사와 짧은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이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해고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정권이 민주주의를 한 걸음 더 진보시키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절규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진심으로 가지고 있는 애증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이틀 일정을 빼고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걸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걸었던 길은 김진숙의 복직 만을 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오히려 해고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노동운동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걷는 길에는 대우버스와 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들과 LG트윈타워 비정규직 해고 청소 노동자들과 코레일네트웍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아사히 글라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등이 함께 걸었습니다. 김진숙의 길은 불의를 넘은 정의의 길이며 인간화의 길이며 진정한 민주화의 길입니다. 김진숙의 길은 우리 모두가 복직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김진숙의 길은 시대의 길입니다. 이 길에 함께 걸어서 기쁨이었고, 영광이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걸은 길은 김진숙의 복직만을 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우리 모두가 복직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진숙의 길은 시대의 길입니다. 이 시대의 길에 함께 걸어서 기쁨이었고, 영광이었습니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첫댓글 모두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