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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16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라. / 박기완 목사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허락받아 입주는 하였지만 아직 가나안 땅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어서 그들을 정복해야만 가나안 땅이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여리고 성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들어갈 때에 가장 첫 번째로 맞이하게 되는 성이요, 그들로서는 가장 첫 번째로 무너뜨려야할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은 크고 강하여 작고 약한 이스라엘로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의 왕과 수많은 군사들을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셨고, 열세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과 칼을 쓰지 않고서도 완전히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전략은 참으로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일주일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되 엿새동안을 그렇게 하고, 제 칠일에는 그 성을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언약궤 앞에서 양각 나팔을 불며 백성들은 일제히 큰소리로 외치면 그 여리고 성은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할 때... 여리고 성은 제 칠 일째 되던 날, 원자폭탄을 맞는 것처럼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적군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저희들끼리 치고 받고 自中之亂(자중지란)이 일어나서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무너뜨려야 할 여리고 성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그리고 교회가 무너뜨려야 할 여리고 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교회에서 실시하는 '여리고 함락작전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우리들이 무너뜨려야할 여리고 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함락되므로 승리로운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영광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놀라운 비밀의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1. 믿음
상대를 무너뜨릴려면 상대방보다 더 큰 힘이 있어야만 하는데,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 보다 어떤 더 큰 힘이 있었을까요?....
그들에게 무슨 힘이 있었길래 그 철옹성과 같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단 말입니까?....
대체로 힘의 근원으로서 우리는 몇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1) 첫째는 '경제적인 힘'입니다.
돈의 힘을 말합니다. 돈으로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역시 돈은 필요하고, 부자가 힘의 상징으로 나타나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 그러나 둘째로 이보다 더 큰 힘은 '지식의 힘'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옳은 말입니다. 현대는 기술의 시대로서 아는 자가 결국 모르는 자를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모르면 힘이 없고 무능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3) 세번째는 '경험의 힘'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다고 해도 처음하는 일에는 자신이 없는 법입니다. 처음 찾아가는 초행길은 두렵고 이리저리 헤매게 됩니다. 그러나 늘 다니던 길은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처음하는 일은 서투르고 자꾸만 일을 그르치지만 익숙하도록 경험한 일은 자신이 있고 힘이 있는 법입니다.
4)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힘만으로는 살수가 없습니다. 한 차원 높은 또다른 힘이 있는데, 그것은 '도덕적인 힘'입니다.
사람은 불의 할 때.... 힘을 잃게 되는 법입니다. 의롭지 못할 때에는 겉으로는 목소리가 커지지만 그 마음은 심히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떳떳하지 못하므로 힘이 없는 것입니다. 우선 자기 양심이 성원해 주지 않기 때문에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로울 때, 정결할 때, 양심의 성원을 받을 때.... 사람은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있고, 지식이 있고, 경험이 있어도... 더러워진 인격, 죄를 지은 인간은 힘이 없습니다.
5)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은 '봉사와 희생적일 때' 힘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지 자신만 아는 사람, 나 하나만 잘 되고자 하는 이기심은 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사람은 대체로 비겁합니다.
그러나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지 자신은 남을 위하고, 이웃에 봉사하고,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혹은 세계 평화를 위하여 일한다고..... 스스로 느끼는 확실한 명분이 있으면.... 그 사람은 힘이 솟아나고 용기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만을 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6) 기독교인에게는 또 다른 힘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5가지의 힘이 다 중요하지만 그것 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경제적인 능력이나, 지식의 힘이나, 경험과 도덕적인 용기.... 그리고 희생적인 삶 위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믿음의 힘 속에 승리의 비밀이 깃들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5:4절 말씀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이 이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고, 믿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가 397장을 지은 '죤 예이츠'는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하고 찬송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높게 쌓여 있고, 굳게 닫힌.... 불가능한 여리고 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이룬 역사였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실을 밝히 증거하고 있는데, 히브리서 11:30절 말씀을 보면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다" 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은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힘으로 무너뜨린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무너 뜨린 후... 약 1,5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하루는 예수님께서 그 여리고 성을 지나가시게 되셨습니다.
그때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부르신 후에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소경 바디매오는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상식적으로 소경이 눈을 뜬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을 갖았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눈을 만지시며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9:29).
그러자 그의 믿음대로 눈이 밝아지고 모든 사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리고 성이 믿음으로 무너진 바로 그 자리에서.... 1500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은 다시한번... 소경이 눈을 뜨는 불가능한 사실도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들, 여리고 성에 들어간 자들은 다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자들은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을 믿는 것이고, 그런 믿음의 보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여리고 성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순종
둘째로, 여리고 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무너졌습니다.
여리고 성은 굳게 닫혀있고, 높고 견고했지만... 그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일곱명의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 나팔을 손에 들고 제일 앞서 가게 하고, 그 뒤에 언약궤가 따르고, 그 뒤에 백성들이 따르면서,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바퀴씩 육일 동안을 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칠일에는 일곱바퀴를 돌게 하며, 일곱 바퀴를 돈 후에는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팔소리가 날 때 백성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리고 성은 무너질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돌 때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수6:10).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성을 돌았습니다. 이것은 이유를 대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순종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육일 동안은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제 칠일에 일곱바퀴를 돌았다는 사실도 순종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육일 동안은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제 칠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아야 하는지를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시키는 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이유를 따지지 않고, 절대적으로 순종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무너 뜨릴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유를 묻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침묵하며 순종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고통을 잘 표현한 유고슬라비아 민화 가운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부분만 말씀드리면... 어떤 임금님이 있었는데, 이 임금님의 이상한 습관은 항상 머리에 아주 큰 모자를 푹 눌러 쓰고는 절대로 벗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이를 닦을 때도, 심지어 목욕을 할 때에도 모자를 벗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임금님이 모자를 벗은 모습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와 같이 매우 컸기 때문에 임금님은 이런 사실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고, 비밀로 붙인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궁금해하며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모자를 벗은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임금님의 머리를 깎아준 이발사였습니다.
임금님의 머리를 깎아준 이발사들은 이상하게도 집으로 돌아온 사람이 없었지만 어느 나이 어린 이발사가 임금님의 머리를 깎으면서 한번도 웃지 않고 깎아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 임금님의 귀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을 발설하면 그는 곧 죽게 되므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병이 되어 그는 배가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고, 그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할 수없이 병원을 찾아 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이 병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아서 생긴 병이오! 도대체 무슨 말을 그토록 많이 참았길래 이렇게 배가 많이 나왔소?" 하고 물었습니다. 이발사는 이 말은 절대 비밀인데, 만약 이 말을 하면 나는 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말하기를 그렇다면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삽으로 구덩이를 깊게 파고 그 속에다 머리를 넣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라고 했습니다. 이발사는 의사의 제안대로 깊은 산속에 들어가 구덩이를 파고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는 얘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돌 때, 만약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면 그들은 "왜 오늘은 한 바퀴만 돌아야 하나요? 왜 오늘은 어제와는 달리 일곱바퀴나 돌아야 하나요?" 하면서 그들의 궁금증을 토로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궁금증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불평을, 불평은 불신을 낳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성을 돌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의심도 있고 불만도 있었겠지만 모두들 침묵으로 궁금증과 불평을 삭이며.... 하나님의 깊은 뜻을 마음 속에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고 자꾸만 곱씹자... 그들의 심령속에는 점점 의심은 사라지고 믿음이 생겼으며, 그 믿음은 굳건한 반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순종하자 여리고 성은 저절로 무너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여리고 성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다만 순종하여 따르기만 하면 무슨 여리고 성이든지 무너지게 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새벽기도
셋째는 새벽기도를 할 때 여리고 성은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일 동안 일찍 일어나서 성을 돌았습니다(수6:12). 그러나 제 칠일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성을 일곱바퀴를 돌았습니다(수6:15).
성을 일곱 바퀴를 돈 후에는 제사장들은 나팔을 길게 울려 불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신호와 함께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로 그때에....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성을 일곱바퀴 돌고, 일곱 제사장들은 크게 나팔을 울려 불고, 백성들이 크게 소리질러 외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는 통성으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새벽제단을 쌓을 때 여리고 성은 무너진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고.... 우리를 가로 막는 높고 견고한 여리고 성은.... 우리가 새벽에 일어나 부르짖어 기도할때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46:5절 말씀에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새벽에 모든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새벽에 홍해가 갈라졌고(출14:21-24, 27), 새벽에 여리고 성이 무너졌고, 새벽에 베드로가 회개했으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바로 그 새벽에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다윗 왕이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 친 것도 바로 새벽이었습니다(삼상30:17).
이와같이 역사적으로 큰 인물들은 바로 새벽을 잘 선용한 것입니다.
새벽에 하나님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이른 아침....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어여삐 보시고 우리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새벽은 가장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우리의 마음을 다하는 정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마다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저도 목회 사역 부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역시 새벽 기도입니다. 새벽에 빠짐없이 나와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은 보통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시계 종소리를 듣지 못하고 잘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4∼5개 되는 시계를 무심코 꺼 버리고 자는 경우도 있습니다.
늦어도 나갈려고 노력합니다만, 새벽기도에 못 나가는 경우가 일년에 한 두 번 정도는 발생합니다. "저도 인간입니다" 하는 것을 증명해 드리는 거지요....
못나간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합니다. 몸도 아픈 것 같습니다. 영 개운치 않습니다. 그러나 늦어도 나가면 마음이 편합니다.
새벽기도는 오랜 습관이 몸에 베어 있어야만 합니다. 전날 저녁에 일찍 자야하고, 모든 시간을 새벽에 맞추어야 합니다.
만약 새벽기도회에 한 분도 나오지 않는다면 저도 나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히 나오시는 분들이 계시므로 그 분들이 저에게는 선생님입니다. 그분들이 계시므로 이 몸을 쳐서 십자가에 복종하게 만듭니다.
또 아침에 오랜시간 기도하는 분이 계셔서 저는 참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분이 저에게는 스승이요, 동역자입니다. 바로 그런 분들이 나를 이끌어 주시고 기도하게 만드십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는 분들이 적으면 점점 빠지는 숫자가 많아질 것이고, 그렇게되면 새벽 기도회를 없애 버리자는 의견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믿음으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깨워주는 이가 있어야 하고,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칭찬의 말을 하고 격려를 해 줌으로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용기를 얻어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마귀의 방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18절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하늘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응답을 방해하는 마귀의 세력을 묶어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돌 때 이미 믿음의 밧줄은 여리고 성을 묶고 있었습니다. 두 바퀴 돌 때는 두번 감기고 세 바퀴 돌 때는 세번 감긴 것입니다.
칠일째 일곱 바퀴를 돌 때까지 믿음의 밧줄은 여리고 성을 칭칭 동여 매었습니다. 마지막 마음을 모두어 힘껏 소리를 지른 고함 소리는 감긴 그 믿음의 밧줄을 힘차게 잡아 당긴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마귀와의 영적 전쟁입니다. 마귀는 끝까지 결사적으로 저항할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끝까지 대적해야 합니다. 일곱번 돌라는 말씀은 "완전히 대적하라" "절대로 물러가지 말아라" "끝까지 대적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일곱번 기도하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렸지만 오늘날에는 산 제물로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제물이란 죽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고집이 죽고, 자기 중심이 죽고, 인본주의가 죽고, 불순종이 죽고..... 완전히 하나님, 그 발 앞에 내 자신을 내어 놓고 온전히 순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나는 주의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리고 성을 일곱번 돈다는 것은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고 완전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산제물로 드릴 때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문제의 성이 무너지고 고통의 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귀의 진이 회파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108:2절에서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일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건강법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입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생체리듬을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생활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거의가 야행성 기질로 변하고 있습니다. 늦은 밤까지 잠을 안자고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 시간을 몽롱하게 보내게 됩니다.
그런 습관은 신앙생활도 힘들게 만듭니다. 새벽기도 생활을 못하는 원인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한 성도에게 신년도 집사를 임명할 테니 순종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체질이 야행성이어서 저녁 늦게까지 잠을 안 자는 것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습니다만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죽어도 못합니다. 집사가 되면 새벽기도회에 나가야 할텐데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합니다. 새벽기도 나오라는 말씀을 안 하신다면 집사직을 맡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죽어도 못 일어나는 새벽기도를 어떻게 억지로 하겠습니까 혹시 깰 수 있거들랑 나오시지요" 라고 했더니 "그럼 해보겠습니다" 해서 집사직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3월말이 되어서 어느 날 새벽 4시 30분에 목사님이 교회로 나오시다가 길에 서 있는 그 집사를 만났습니다. 깜깜하고 추운 새벽이었습니다.
"아니, 집사님, 웬일로 이렇게 밖에 서 계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친구들하고 낚시하러 가기 위해 차를 기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하면서 헤어졌습니다만 속으로 "야행성이라 죽어도 새벽엔 못 일어난다더니..." 하는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새벽을 깨우는 것은 마음 정하기에 달렸습니다.
마음이 없는 것이지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다 핑게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 관리하는 태도와 습관도 고쳐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라!"
우리 인생의 여러 가지 여리고 성들....
1) 믿음으로
2) 순종으로
3) 새벽기도를 통해서... 무너뜨리므로.... 승리로운 삶을 살아가고, 빛나는 면류관과 상급이 예비되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