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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에 걸어보는 용현갯골유수지
용현동갯골유수지는 용현동과 신흥동의 저지대에 비가 많이 내리면 침수되는 것을 막고자 유수지를 조성하고 주변을 수변공원으로 만들어 시민 공간으로 조성했다. 학익천에서 흘러와 서해바다로 가는 미추홀구의 유일한 하천이다. 제2 경인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아암도 너머에 있는 송도국제도시와 연결이 된다.
▲ 용현동갯골유수지는 용현동과 신흥동의 저지대에 비가 많이 내리면 침수되는 것을 막고자 유수지를 조성하고 주변을 수변공원으로 만들어 시민 공간으로 조성했다. 용현갯골유수지를 걷다 만난 강경원 씨.
수인선을 타고 숭의역에 내려 인하대 병원 옆길을 지나 신흥 아이파크아파트 쪽으로 걸었다. 제법 잘 만든 갯골 수변 공원에 단풍이 곱다. 기력이 쇠해 보이는 강경원(82) 씨를 만나 대화를 해 보니 이유가 있었다. 부천에 살다 22년 전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 와서 동갑내기 아내와 잘 살다 그녀가 치매에 걸렸다. 두 달 전, 밤에 소변을 보러 가다 집안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졌단다. 그 이후 코에 줄을 넣어 숨을 쉰다고 한다.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로 면회가 안 되어 할머니가 무척 보고 싶다며 쓸쓸히 말했다.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밥을 해 먹는다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몹시 그리운 모양이다.
옆의 큰 도로에 화물차가 많이 다녀서 공기가 안 좋고 갯골에서 냄새가 올라와서 복개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15년 전에 아파트 쪽은 복개를 해서 그나마 냄새가 조금 덜하다고 설명했다.
▲ 용현갯골유수지를 걷다 보면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의 하나였던 청색해안을 만나게 된다.
▲ 신흥중학교 근처 다리
하천을 따라 걷다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던 지점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가 전함 261척에 상륙군과 한국 해병을 진두지휘하여 작전을 성공한 세 곳의 상륙지점 중 청색 해안이라는 표지석이 제2 경인고속도로 입구 쪽의 길가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아마도 그때는 바다였으리라. 역사적인 장소라 가슴이 뭉클하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기에 오늘의 우리가 평화로운 모습으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비가 오면 공장 쪽에서 폐수가 흘러 들어와 기름때가 농작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편백 나무의 진액을 빼고 난 것을 밭에 뿌리면 오염 방지가 되어 좋다는 것을 알려준다. 용현갯골유수지에는 참게가 많이 살아 근처 밭에 구멍이 나 있고 밤에는 사그락사그락 참게의 움직임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서울 방화동에서 서해랑 길 95코스에 왔다는 한 나그네는 이정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몇 번을 헤맸다고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선학역에서 문학산성을 거쳐 인천역까지 가는 길은 안내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관광지로 좋다고 말한다. 퇴직한 선배들이 주변을 돌아보면 할 일이 무척 많다고 하여 본인도 찾아보니 주말이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천하는 길을 하루 15km를 걷는다고 덧붙였다.
하천 가장자리 쪽에는 철을 잊은 꽃들이 만개했다. 붉은 닭 볏을 한 맨드라미와 보랏빛 수레국화, 주황의 황화코스모스가 지천이다.
▲ 수레국화가 예쁘게 피어 걷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 용현갯골유수지는 새들의 보금자리다. 새 사진을 찍는 전현우, 이재원 씨
용현갯골유수지의 새들을 촬영하는 사진사 두 분을 만났다. 커다란 카메라를 세워놓고 새들의 느긋한 움직임을 포착하여 작품 사진을 찍는 전현우(61) 씨는 20년 넘게 새 사진을 찍어 인스타(jeonhyeonwoo8572)에 올리는데 방문객이 1700명 이상 넘는다. 청둥오리, 때까치, 딱새, 검은머리직박구리, 저어새 등을 주로 찍는데
“새 사진은 기다림의 결과물이에요.”
라는 말과 함께 사진을 찍노라면 힐링이 된다고 언급했다.
남항근린공원에서 드론 애호가들이 가끔 드론을 날리면 맹금류인 줄 알고 새들이 모두 도망을 간다며 날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말한다.
전현우 씨는 무슨 새가 어떤 열매와 나무를 좋아하는지 훤히 꿰고 있다고 옆에서 사진을 찍는 이재원(65) 시민 사진가가 알려준다. 은퇴한 후에 하는 취미활동이라며 카메라가 2천500만 원 정도 하는데 요즘은 렌즈 하나에 2,200만 원을 호가한다니 카메라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가격에 놀란다. 이재원 씨는 새 사진 동호인들은 어떤 새가 어디에 나타났다고 하면 그쪽으로 몰린다며 정보가 아주 중요하다고 표했다.
“한 달 전에 여기에 물수리가 나타났다고 하니까 진사가 육십여 명이나 몰렸어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새가 날아가며 독특한 소리를 낸다. 마침 전현우 씨가 황조롱이라고 알려준다. 새소리만 듣고도 새의 이름을 알아서 깜짝 놀랐다. 윤무부 새 박사 저리 가라다.
▲ 참게가 사는 갈대 숲
▲ 서해랑 길 95코스
갯골호수교 아래에는 청둥오리를 비롯하여 중대백로, 왜가리, 가마우지, 청둥오리 등이 많이 보인다. 한참을 물속에 머리를 박고 궁둥이를 하늘로 쳐들던 청둥오리는 아무래도 먹이를 구한 모양이다. 용현갯골유수지는 새들의 쉼터이다. 아니 새들이 생활하는 그들의 집인 모양이다. 새끼를 키우는지 귀여운 아기새들도 보인다. 사철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멧비둘기는 나무에 앉아 분주하게 따먹는다. 새가 아니라 커다란 열매 하나가 매달려 쪼아 먹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 꽤나 신기하다.
▲ 갯골호수교 청둥오리, 멧비둘기
▲ 전호선 씨
용현 5동에 산다는 전호선(82) 씨는 자전거를 탄다. 6,70대 만해도 펄펄 날아서 대부도에도 다녀왔는데 지금은 아암도와 송도 1교까지 가서 돌아오는 코스로 하루에 두 시간 정도타고 있다. 자전거 타는 일은 봉사가 아니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부끄러워했다. 그 나이에 겸손함이 무척 존경스럽다. 누군가 그랬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라고.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건강을 지키는 일은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용현갯골유수지에서 흐르는 물은 아암도를 지나 서해바다로 향한다. 도랑물이 모여 바닷물이 된다는 동요처럼. 송도 국제도시의 높다란 아파트의 숲이 용현갯골유수지 끝이라고 막아서는 듯하다.
글·사진 현성자 i-View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