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10호 너의 상상력의 전원을 끄지 말라 (창26:12~18)
집회차 미국에 갔을 때 갈보리 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를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그분이 한국에 오셨을 때 제가 호텔에서 대접한 적이 있어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분은 교회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교회 측에서는 목사님이 기도하러 가셨다고 했습니다. 제 관념대로 기도원이나 아니면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 말이 바다로 기도하러 가셨다는 겁니다. 생소해서 물었지요, “바다에서 기도하다니요?” 그랬더니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기도한다는 겁니다. 정말 쇼킹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두고두고 생각했습니다. “맞아, 그럴 수 있지. 하나님의 사람이면 그래야지. 정말 멋지다.”
기독교인의 병폐 중 하나가 부자로 살면 왠지 죄를 짓는 것 같다는 생각, 거룩하게 살려면 청빈(淸貧)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주의 종들이 복, 복 이야기하는 교회는 기복신앙이니 주의하라’고 가르치니 더욱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하실까요? No. 예수님이 가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고 하셨습니다. 또한 신명기 28장을 보면 온통 ‘복’ 이야기입니다. 나가도 복, 들어와도 복, 심지어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꾸어줄지라도 꾸러 다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것이 기복신앙입니까? 이는 가르치는 자가 잘못 가르쳐서 그런 겁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니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격입니다.
목회 초, 저는 우리 성도 모두를 학교버스에 태우고 방배동의 한 호텔 뷔페식당으로 갔습니다. 35년 전쯤의 일이니 뷔페식당을 가본 사람은 거의 없었고, 더욱이 호텔뷔페였으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저는 그들에게 맘껏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비싼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이것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거 교회 돈 아닙니다. 사비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것도 좋습니다만 내가 잘돼야 나눠줄 것 아닙니까? 내가 지지리 궁상인데 누구에게 뭘 나눠줍니까? 여러분을 이곳에 모시고 온 것은 여러분 생각의 틀을 깨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나도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주입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먹어봐야 맛을 알지요. 부자가 어떻게 사는지 봐야 부자가 되고 싶지요. 제가 돈 자랑한 것이 아니라 가난이 정상인 줄 알고 사는 그들 생각의 틀을 깨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여러분, 잘 사는 게 죄가 아닙니다. 혹자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는 말씀을 걸고넘어지는데요. 그들이 그다음 구절을 안 읽어서 그런 겁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에 놀라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주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의 문에 들어가기 불가능한 부자들에게도 열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늘귀를 크게 만들면 약댄들 못 들어가겠습니까?
또 “예수님이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하는 분들, 성경을 잘못 읽은 겁니다. 잘 보십시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라고 되어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죄입니다. 돈을 사랑하게 되면 돈의 노예가 되어 질질 끌려다니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해서 몸도 팔고, 사람도 죽이는 등, 악을 행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찾아오셨지만, 우리가 평생 가난한 자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福音), 기쁜 소식이 들어가 부유케 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구제하고, 나눠주며 복음을 널리 전파하기 원하십니다.
복음이 현실을 떠나면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타종교는 스스로 고행의 길을 가며 진리를 터득한다고 하는데, 우리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낳은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자녀된 우리가 이 땅에서도 잘 살고, 누리고 살다가 천국에 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던 믿음의 선친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을 다 부자, 거부(巨富)로 만드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아브라함이 소떼, 양떼가 넘치게 하셨고, 이삭은 당년에 백배 축복을 주셨고, 야곱에게는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까지 친히 가르쳐주셨으며, 요셉을 약관의 나이에 대국의 총리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여러분, 돈은 참 좋은 겁니다. 돈은 배신하는 법이 없고, 언제나 제 가치만큼 충실히 봉사하는 하인이요, 충신입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니라”(잠10:15). 돈이 없으면 “가난한 자는 그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찌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잠19:7)고도 하시며, 돈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돈이 많은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이 잘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고아원도 짓고, 양로원도 짓고, 교회도 짓고, 선교도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9월에 가는 페루집회도 상당한 선교자금이 들어갑니다. 성령을 제외하고 모든 것은 돈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니 우리 잘살아 봅시다. 그래서 선한 일, 주의 일을 많이 합시다.
그러려면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의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부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자본금이나 기술력이 아닙니다.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변해야 말이 변하고, 말이 변해야 행동이 변하고, 그 행동이 삶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으로 얼마든지 상상을 할 수 있지요?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하는 겁니다. 입을 왕창 크게 벌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러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 상상은 보이지 않으나 결국 그것이 보이는 실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그렇게 나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우리 성도분이 명예퇴직을 해서 풀이 죽어 있었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여보, 하나님이 이제 남의 밑에서 일하지 말고, 사장되라고 명퇴시킨 거니까 힘내요.”라고 말하고는 “의자에 폼 나게 앉아서 ‘미스 김, 커피 좀 가져와요.’라고 해봐요. 사장인 당신 모습을 자꾸 그려봐요.”라고 했답니다. 남편분이 처음에는 쑥스러워 못했는데 아내가 자꾸 시키니까 한 번, 두 번 해보더니 나중에는 행동도, 말투도 사장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정말 사업을 운영하는 사장이 되었답니다.
‘팔자야, 운명이야’ 이런 소리하지 말고, ‘나도 부자가 되어보리라’, ‘나도 누구처럼 잘살아 보리라’ 생각하세요. 별 거 아닌 것 같은 그 생각이 여러분을 부자로 만들 것입니다. 사과 속의 사과 씨는 헤아릴 수 있지만 사과 씨 안에 사과는 헤아릴 수 없거든요. 저는 저의 상상력의 전원이 꺼질까 늘 노심초사합니다. 제가 지금 세계 73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세계교구’라는 상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광명 철산리 지하 교회에서 한 명을 놓고 목회를 시작할 때 ‘세계교구’라는 말에 모든 자들, 저를 사랑하는 스승마저도 비웃었지만, 저는 늘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때가 되니 정말 이뤄집디다. 저는 그날에 주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며 심판하는 상상을 종종 합니다. 말도 안 된다고요? 그날 보시면 알게 됩니다.
자동차가 운전하는 사람 마음대로 움직이듯 생각은 내가 조절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가느냐, 후진만 할 것이냐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이왕이면 부자가 되는 길로 몰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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