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d week : 치유하는 글쓰기(박미라)
SEP 14, 2015 / 23기 이슬기
주제 : 무의식이
보내는 사인
나는 주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민감해진다. 결벽증정도는
아니지만, 옷이 아무데나 걸려 있거나 설거지가 쌓여있으면 무엇을 해도 신경이 쓰인다. 기숙사 생활을 했을 때도 방청소는 늘 내가 도맡아 했다. 정리되지
않으면 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같이 사는 친구가 정리를 잘 안하는 편인데, 내 영역이 아닌데도 보는 순간 짜증이 일어난다. 당연히 공동구역 청소도 내가 하는데, 어차피
혼자살아도 하는 거니까 괜찮다 싶다가도 문득 “왜 집안일은 나만해?”라며 짜증날 때가 있다.
아마도 이것은 관계 사이에서 선을 잘 긋는 나의 태도 때문인 것 같다. 자기 몫은 각자가
했으면 좋겠고, 내 삶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의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성향이 이용당하고 느낄 때, 내가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엄마 같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도와줄 일이 보여도 돕지 않았고, 누군가 내게
의지하려고 하면 밀어냈다. 나를 있는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느끼는 순간을 견디기 힘들다.
마찬가지
이유로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에 대해서 신뢰도가 낮다. 가령 시간 약속이나 할 일을 제 때 하지 않거나, 갑작스럽게 일을 넘기는 등 미리 계획하지 않은 시간을 빼았길 때 화가 많이 난다. 내 시간은 다른 사람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그들의
게으름과 무책임을 내가 같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다. 나는 빈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할 일을
미리 계획하고, 해야 할 일 먼저 끝내 두는데 상대방은 흘러가는데로 시간을 써서 결국 내 시간까지 잡아먹는다고
느낄때, 마찬가지로 삶의 경계가 침범당한다고 느낀다.
이런 삶의 경계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아마도 가족관계에서 정서적으로 착취를 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 너무 많은 포지션을
할당받았다. 엄마한테는 할머니의 시집살이로 부터 지켜줘야하는 남편으로,
아빠한테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어떤 이상을 이루는 첫째로, 동생을 부모처럼 관리감독했어야
했다. 실제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빠도 나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위화감없이 이런 역할들을 맡아주어서 가정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고. 그 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수년이 지나서 나에 대해 돌아보고 상담을 받으면서 아빠의 의도적인 방기에 무척 화가 났다. 나는 내
삶을 가꾸는 것이 가장 먼저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삶을 돌보는데 내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해 왔다. 그렇다고 무슨 성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게 가족들이 정서적으로
내게 의지하고 기대는게 버거웠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내게 기대거나, 많은 역할부담을 지울 때면 순간 분노가 엄청 올라온다.
그래서 성격도 무뚝뚝해지고, 표정도 무표정하게 있는다. 내게서 뭔가를 뺏어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다. 그건 그간
너무 많이 뺏기고 살았다는 피해의식과 더불어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자원이 많지 않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런
내모습이 찌질하다며 타박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시간을 충분히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지금 얼마 가지고 있지 않은 에너지를 잘 유지하고, 나아가
이를 씨드머니 삼아 더 증폭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무리하지 않고, 나를 있는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댓글 어제 이슬기님께서 초반에 읽으셨는데, 그 후 가끔씩 이슬기님의 표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표정이 다양하시더군요^^ 밝게 웃으시는 모습도 무척 보기 좋았고요. 그 누가 규정한 이슬기님이 아닌 가장 이슬기님 다운 모습이 드러날 때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울지 기대가 됩니다.
저도 어저께 슬기씨 표정 간간이 봤는데 밝고 포시시 웃으시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엄마같다'는 것이 본인은 스트레스로 들리겠지만 '엄마'가 누굽니까? 이세상 그 어떤 찬사보다 귀한거고 그 어떤 직위나 명예로도 감히 들을수 없는 말인데 그만큼의 찬사라고 생각하신다면 어떨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엄마라서 너무 감사하고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라서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사람입니다.
약간 개인주의 적인 성향이신데 공동체 위주의 우리 생활에 약간 아픔이 있으신 느낌? 많이 공감이 됩니다. 내면과 외부의 적절한 공존이 이루어 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