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62/200111]겨울비, 주민 32명의 ‘동네소풍’
엊그제 7일(화요일), ‘우리도 콧바람 한번 쐬자’며 날을 잡은 작정한 동네 소풍날,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겨울비가 제법 여름비처럼 내렸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나흘 동안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다. 더구나 그 전날은 ‘대한大寒이 놀러 왔다가 얼어죽는다’는 소한小寒이 아닌가. 그런데 올해는 대체 어찌된 일일까? 눈 많이 내린다는 전북 임실. 이제껏 정말로 눈 한번 오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진짜로 겨울이라는 계절季節은 이제 지구온난화현상으로 없어져 버린 것일까? 농사를 위하여 어느 정도 수량水量이 확보되어야 하므로, 비라도 오니 다행이라고 치부해야 하는 걸까? 눈 없는 겨울이 무척 아쉽고 짜증까지 나는 요즘, 날씨는 ‘우라질’ 봄이 와버린 듯했다.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추워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攝理이거늘. ‘남북관계 등 국내외 정치政治가 늘 저 지랄하니 날씨까지 변동을 한다’며 괜히 신경질을 내던 참이었다.
지난 연말, 마을 총회에서 6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긴급제안을 했다. “우리도 다른 동네처럼, 하다못해 여수麗水로라도 관광버스 대절하여 회 한번 먹고 옵시다”. 농한기農閑期가 아닌가. 이럴 때 동네사람끼리 단합을 내세우며 ‘일일소풍’을 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리라. ‘회를 먹고 싶으면 사다가 회관에서 먹으면 되지 않느느냐’는 눈치 없는 70대초 남성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곱지 않는 눈길을 보냈다. 한술 더떠, 버스를 대절하는 데도 100만원 가까이 드니까 경비 절감차원에서 기차로 가면 어떠냐는 의견엔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니, 주민이 몇 명이나 되고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데 기차 운운하냐는 것이다. 기동력 완전 제로.
70∼80대가 대부분인, 진작에 기형화奇形化된 농촌마을, 참가자 신청을 받으니 입원 등으로 빠진 사람이 10명도 안되건만, 모두 32명. 그래도 많은 편이다. 57년생인 필자가 막내이니, 청년靑年이라 할 것이다. 49년생인 문화해설가 유홍준씨가 귀촌한 부여 어느 마을에서 청년회장을 맡았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비가 오든말든, 필자는 고향 정착 5개월만에 ‘이게 웬 떡이냐’는 마음으로 은근히 설렜다. 더구나 딸과 사위집에서 지내다 1년만에 당신의 집으로 돌아온, 동네 최고령 94세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길이니 더했다. 아버지도 당신의 환영식같다며 희미하게 웃으셨다. 버스는 타서 저녁에 내릴 때까지 인기가수 진성의 뽕짝 메들리로 진동을 했다. 안동역 앞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인다는데, 여기는 대체 무슨 꼴이람. 우중雨中에 노인들을 모시고 오동도를 어떻게 다녀오겠는가. 9시 출발, 가깝다고 해도 2시간이나 걸려 여수 도착.
이런 소풍에 이골이 난 운전기사의 제안으로 도착한 곳이 ‘전라남도 해양수산과학관’ 관람. 입장료가 1인 3000원이건만, 55년생 이상은 공짜란다. 막내인 나도 덤으로 무료. 흐흐. 말로만 듣던 총천연색 ‘로봇 물고기’가 수족관을 활개치며 돌아다닌다. 나도 신기한데 어른들은 얼마나 신기하랴. 머지 않아 여기저기서 ‘로봇 인간’이 걸어다니고, 운전할 필요도 없이 자율주행차가 길거리에 횡행할 터이니, 문명의 이기利器는 좋은 것인지 안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날은 입이라도 한껏 호사豪奢를 부려야 한다. 한일관 정식, 1인 4만원이라는 말에 할머니들 입을 쩍쩍 벌린다. 1년내내 죽어라고 농사를 지어 돈을 모은 게, 이런 날, 호강 한번 하려고 한 것 아니냐, 마음껏 드리라는 이장님 말씀에 ‘그려, 그려’ 젓가락을 드신다. 육해공군이 즐비하다. 이파리 달린 애기 산삼도 한 뿌리씩 먹어보자.
점심을 하러 가는 길, 필자는 여수 굴수협 상무로 일하는 꾀복쟁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호적이 3년이나 늦게 돼 아직도 현역이다. 이런 때 와서 50년 전에 떠난 고향 어르신들에게 ‘제가 누구의 자식입니다’라며 인사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 소풍얘기를 하니, 아니나다를까, 반색을 하며 달려오겠단다. 운전기사의 몫까지 선물(안주용 오징어채)이라고 33개 봉지를 가지고 왔다. 전화하기를 참 잘했다. 저도 반갑고 좋아서 하는 일인데, 이게 무슨 민폐民弊랴. 소위 출향인사出鄕人士가 아닌가. 동네어르신들에게 소개를 하는데, 대부분 알지 못하여 친구의 부모 택호宅號를 대니 그때서야 ‘아하-’하신다. 점심을 먹은 후 무엇을 할까? 비가 오니 유람선 타기도 번잡하다. 필자가 긴급 아이디어를 냈다. 아쿠아리움 관람할 때 인근 서커스장 팜플렛을 가져온 게 ‘효자’였다. ‘여수 월드서커스 아트홀’에서 중국 서커스 관람이 ‘딱’이 아닌가. 대인 16000원. 아무 생각없던 이장도 그게 좋겠다며 곧바로 전화 예약을 하고 버스가 그곳으로 향했다.
나는 서커스를 관람하는 70분 동안, 꾀복쟁이 친구와 커피샵에서 모처럼 한담을 나누었다. 50여년 동안 세 번이나 만났을까? 그래도 어릴 적 죽마고우竹馬故友이기에 할 이야기는 많았다. 무엇보다 양쪽 집안사정을 잘 알므로, 궁금한 게 하나둘이랴. 너는 어떻게 살았냐? 나는 이렇게 살았다. 우리 인자 늙어가니 자주 만나 우정을 나누며 살자. 그러자!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 밖에 더 있냐? 서커스를 보고 나오신 분들이 모두 ‘구경 한번 잘했다’는 표정이다. 아이디어를 참 잘 냈다. 역시 눈이 보배이고, 순발적이 있어야 한다. 흐흐. 돌아오는 길, 저녁까지 먹고 가려면 시간이 넉넉하다. 수산시장을 둘러보라고 한다. 창란젓을 3만원에 3개 사, 하나는 내가 하고 선물을 안겨준 친구와 또다른 친구에게 앵겨줬다. 그것도 잘한 일.
돌아오는 길, 예전에 많이 보았을 것이다. 관광버스 안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던 광경. 어쩌면 꼴불견이라고 눈시울을 찌푸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라고 예외가 있으랴. 노래자랑시간이다. 필자는 마침맞게 배달된 ‘전라도닷컴’ 1월호에 실린 ‘말치재 아래 내 고향의 전설’이라는 글을 낭독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내처 돌아가신지 1년이 다 된 어머니를 그리며 나훈아의 ‘홍시가 열리면’을 불렀더니 앵콜이 터져 나왔다. 이런 자리에 딱 어울리는 ‘진주난봉가’를 선사했다. 판소리도 아니고 창도 아니다. 최고령 아버지도 질세라, 김성환의 ‘묻지 마세요’를 부르며 흥이 나셨다. 마을에서 그래도 조금 젊은 아줌마들이 서너 명, 54년에서 56년생들이다. 마땅히 몸을 흔들고 박자가 맞든 안맞든 한 곡조씩 뽑아야하는 것은 기본. 1년내내 농사 지으며 쌓인 스트레스를 언제 어디서 풀 것인가? 이럴 때라도 맘껏 노시야지 않겠소. 그 와중에도 이것저것 간식 배달에 버스 안이 소란하다. 5시만 넘어도 캄캄해지는 요즘, 더구나 비까지 와대니 밖은 완전 암흑. 인근 오수에서 콩나물해장국으로 저녁을 마친 후 동네 회관앞에 도착한 게 6시가 넘었다. 친구가 선물한 봉지 하나씩을 나눠 가진 후 집으로 돌아오는, 어느 시골마을의 소풍 풍경. 하루가 짧았다.
* 그날 그날 쓰는 게 일기日記일진대, 며칠 지나서 쓰다니, 게으름 탓이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때마다 내는 일기숙제기 얼마나 지겹고 쓰기 싫었던가. 내동(내내) 미루고 미루다 개학 하루이틀 전에 몰아서 몰빵으로 쓰던 일기, 오늘의 일기가 꼭 그짝 닮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제가 좋아서 하는 짓, 생활글작가의 팔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