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벌 곰취잎 산채
코로나 펜데믹과 겹친 3년을 머물렀던 거제는 교직을 마무리 지은 아련한 추억이 서린 섬이다. 퇴직 6년째 드는데 해마다 봄이면 그곳을 다시 찾아감이 연례행사다. 현직 시절도 그랬지만 올해도 지난 오월 초에 건너가 국사봉 북향 기슭 곰취 자생지에 올라 자연산 곰취잎을 따왔다. 그런데 고라니인지 노루인지 산짐승이 먼저 시식해 남겨둔 몇 닢만 따와 아쉬움이 남았다.
예년보다 장마가 더디 와 날씨는 쾌청하고 습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유월 하순 일요일이다. 국사봉을 오르려 새벽길을 나섰다. 창원대학에서 첫차로 출발한 진해 용원행 죄석버스를 탔다. 시내를 관통 안민터널을 거쳐 동진해로 가 웅천에서 용원에 닿았다. 부산 시내버스로 경제자유구역청 앞으로 가 하단을 출발 고현으로 가는 2000번 버스를 타니 거가대교 건너 장목이었다.
관포에서 연안을 따라 소계와 대계를 거쳐 옥포에서 송정고개를 넘으니 내가 근무한 연초였다. 학교 근처 연사리에 와실을 정해 3년을 유배가 아닌 휴양지 삼아 잘 지내다 왔다. 당시 새벽이나 퇴근 후 거제 연안이나 여러 산을 트레킹하며 국사봉 기슭 곰취 자생지를 알게 되었다. 현지인들도 모르는 국사봉 곰취잎을 퇴직 후 여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따 와 향기를 맡고 있다.
지난번 산채 곰취잎은 양이 적어도 종양을 달래느라 고생하는 진주 여동생에게 조금 보냈다. 여름이 다가오면 다시 찾아가 한 번 더 따 와야지 싶어 나선 길이다. 연초에서 내려 수월동을 거쳐 수양마을로 들었다. 여러 차례 지나 눈에 익숙한 산천으로 전원주택과 어린이집이 나왔다. 송정에서 문동으로 우회시킬 지선 국도 터널 공사 현장에서 등산로 따라 작은 국사봉으로 올랐다.
활엽수가 우거진 숲길에 무덤을 지나니 엉겅퀴가 자주색 꽃을 피워 저무는 때였다. 산허리로 개설된 임도 너럭바위에서 간식을 꺼내 먹고 땀을 식히고 숨을 고르며 쉬었다. 곰취는 강원도 산간처럼 해발고도가 꽤 되는 산자락이 자생지인데 국사봉은 다소 의외다. 등산로를 벗어나면 우거진 활엽수에서 부엽토가 삭아 쌓인 응달이고, 발길이 드문 원시림을 연상하게 해 자라는 듯하다.
산허리 쉼터에서 작은 국사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택하지 않고 개척 산행으로 숲을 헤쳐 나갔다. 부엽토와 바윗돌을 타고 넘으면서 사위를 경계해 청각은 쫑긋 귀를 기울였다. 고라니는 무섭지 않으나 멧돼지 무리를 맞닥뜨리면 얼른 몸을 피해야 해서였다. 작은 국사봉 정상부가 가까워진 산기슭에서 지난번 고라니인지 노루인지 시식하고 남겨둔 곰취 자생지를 어렵게 찾아냈다.
매번 숲으로 들어도 이정표가 세워지거나 깃을 매달아둔 곳이 아니라 곰취 자생지를 단번에 찾기는 쉽지 않다. 지난번 남겨둔 작은 잎사귀는 그새 동심원을 그리듯 조금 넓혀 자라 있었다. 그때 머물며 곰취잎을 시식한 산짐승은 어리론가 사라져 온전하게 남아 다행이었다. 배낭을 벗어두고 허리를 굽혀 곰취잎을 한 장 한 장 따 겹쳐 모았다. 서둘 일 없이 느긋하게 잎을 거뒀다.
거기 말고도 국사봉엔 한두 군데 더 있을 법한 곰취 자생지인데 숲을 누비려니 체력 소진이 염려였다. 하산 후 여름에 다시 오기도 어려워 곰취 수색에 나서 볼까 망설이다 마음을 접었다. 양이 적으면 적은 대로 진주 여동생한테 택배로 보낼 참이다. 숲길을 내려와 아까 머문 너럭바위 쉼터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젊은이 셋이 쉬다가 일어나 시동을 걸어 굉음을 내며 사라졌다.
수양마을 지나니 보리밥집은 휴무여서 수월동 상가 돼지국밥으로 열량을 벌충했다. 연초에서 하단행 2000번 버스를 타고 ‘두벌 곰취잎’을 남겼다. “달포 전 늦은 봄날 거제도 건너가서 국사봉 북향 기슭 곰취잎 산채에서 / 고라니 먼저 시식해 적은 양을 뜯었네 // 장마가 더디 오는 초여름 유월 하순 / 빈 배낭 둘러매고 가볍게 길을 나서 / 아쉬움 남은 산자락 두벌 곰취 찾았네” 2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