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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보테힘(הַבֹּטְחִים) (시2-125)
2026년 5월 23일 (토요일)
찬양 : 비 준비하시니
본문 : 시 125:1-5절
☞ https://youtu.be/dKnNeVB1iaE?si=ru1zjVl4s7hGM-31
어제 작은교회를 위한 교재를 준비하면서 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그 분명한 해답을 적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해답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과 그 은혜를 아는 자의 뜨거운 하나님과 세상을 향한 사랑의 헌신과 믿음의 열정이라는 것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진정 교회는 우리의 구원자되시며 완전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사랑과 그 지혜와 능력을 통해 구원받은 자들의 반응에 달려있다.
주일을 준비하는 오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오직 주님께 붙들려 굴복된 삶으로 주님께 드려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서 125편은 세상의 통치안에 사는 우리가 진정한 예배를 위해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3절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여기서 '규(圭)'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셰베트(שֵׁבֶט)’이다. 이는 왕이나 통치자가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 홀(Scepter), 혹은 지배권’을 의미한다. 이 시의 역사적 배경인 포로귀환 이후로 들어가 보면, 당시 이스라엘은 독립 국가가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주변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총독들과 악인들이 권력의 지팡이(셰베트)를 휘두르며 성도들을 압제하고 흔들던 척박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오직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거룩한 기업, 사명의 자리를 살아가는 의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세상의 가치관과 거대한 힘에 휘둘리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아무리 신실한 의인이라 할지라도,
세상 악인들의 통치 지팡이(셰베트)가 내 삶을 누르는 기간이 길어지고 그 압제가 한계치를 넘어가면,
낙심하여 세상과 타협하고 죄의 유혹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해 봐야 결국 세상이 이기는 것 같은 현실에 좌절하는 영적 침체의 순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 시인은 강력한 믿음의 노래를 외친 것이다. 1-2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여기 '의지하는 자'는 히브리어로 '하보테힘(הַבֹּטְחִים)'인데, 이는 <온 체중을 다해 완전히 기대어 안식하다>라는 뜻이다.
세상은 돈과 권력과 세상의 화려함으로 성도를 흔들려 하지만, 여호와께 자신의 전부를 기댄 자는 예루살렘의 시온산처럼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의 실존은 세상이 결코 흔들 수 없다는 전적 신뢰의 고백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지형학적으로 이것을 예로 들어 선포한다. 예루살렘은 사방이 더 높은 산들 감람산, 스코푸스산, 사악산(멸망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분지 요새다. 적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려면 반드시 사방의 산들을 먼저 넘어야만 했다.
히브리어로 '두르다'는 '사비브(סָבִיב)'로, <사방을 빽빽하게 겹겹이 에워싸다>라는 뜻이다. 대적들이 성도를 치러 오려면, 먼저 성도를 사방으로 겹겹이 에워싸고 계시는 하나님의 불 성벽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위대한 주권적 신학의 선언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들을 선대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죄를 범하는 자와 함께 다니게 하시지만,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게 하시기를 선포한다.
오늘 주님은 내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신다.
히브리어 <하보테힘> 자신의 온 체중을 다 여호와께 기대는 믿음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힘이 아니고는 완전히 쓰러질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내 온 체중을 나의 힘과 지혜와 산성과 피난처 되신 주님께 완전히 기댈 때,
비로소 내 사방을 불 성벽으로 빽빽하게 에워싸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가 작동한다는
영적 메커니즘을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보여주셨다. 아멘.
지금 사단은 나의 삶의 모든 자리를 흔들면서 나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다. 라마나욧선교회 사역을 흔들었고, 나의 건강을 흔들었고, 나의 자녀들을 흔들고 나의 미래를 흔들며 온전히 하나님께 기대지 못하도록 난리를 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고백처럼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한다. 여기서 사용된 <권세>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고랄(גּוֹרָל)>로 이 단어의 본래 뜻은 “제비, 제비뽑기”다.
구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제비를 뽑아 각 지파별로 분배받은 영원한 합법적 토지(기업)’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본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문장이 됩니다.
"악인의 통치 지팡이(셰베트)가 의인들에게 분배된 제비(기업/고랄) 위에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의 삶은 악인들의 통치가 흔들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언약으로 주어진 그 땅에서는 악인의 통치가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세상 악인들의 통치 지팡이(셰베트)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의 지경(고랄)을 통째로 장악하여 지배하려 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의 지팡이가 성도의 기업 위에 서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세상의 현실이 아무리 내 사명의 자리를 쥐락펴락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땅의 진짜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할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의 고백이 생각난다. 수 24:15절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기 ‘섬기겠노라’는 단어의 원형은 <에베드(종)>이란 단어로 아바드에서 나온 단어다. 이 단어의 핵심은 <노예가 되어 주인을 위해 땀 흘려 노동하다, 전인격적으로 봉사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외친 것은, 세상의 거대한 권력 지팡이(셰베트) 앞에서도 <내 남은 인생의 소유권은 오직 하늘의 주인 한 분에게만 종속되어 있다>를 선언하며 이제는 애굽의 종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종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목숨을 건 고백이었다.
나도 이제 후반전의 문을 열면서 내 남은 생애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오직 주님만 예배하고 전하는 삶을 살기를 다짐한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아멘.
주님, 이 종이 진실로 오직 하나님께 내 삶 전부를 맡깁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이끄심이 없으면 완전히 고꾸라지는 그런 삶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받아 주소서.
한줄 묵상 :
<믿음은 내 실존의 온 체중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흔들리는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시온산의 평강을 경험할 예배로 나아가는 것이다.>
적용 질문 :
1. 오늘 내 삶을 사정없이 흔들며 하나님께 온전히 기대지 못하도록 난리를 치고 있는 현실의 압박(셰베트)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눈앞의 현실이 나를 요동치게 만들 때, 나는 어디에 나의 체중을 완전히 실어 던지고 있습니까?
3. 여호수아처럼 오늘도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