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신을 찾곤
한다. "신이여, 제발 도와주소서!" 하지만 신이 우리를 도와주는 일은 거의 없다. 신이란 존재 자체가 허구인 것인지 아니면 신이 너무 바빠
우리의 기도에 답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신을 찾는 기도의 '약발'은 좀처럼 세지 않다는
점이다.

현실에서의 기도는 '약발'이 없지만 가상의
세계에서의 기도는 '약발'이 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 역시 가상의 세계에선 기도의 '약발'이 세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연극에서 신이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 온갖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해주는 장면에서 비롯됐다. 한국 말로 "기계에서 나온
신"이란 의미의 이 말은 극 중에 신이 기중기와 같은 장치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온다는 점에 근거한다.
현실에서도 우리가 온갖 문제들로 시달리고 있을 때
기계를 타고 공중에서 신이 내려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는 역시 현실 속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의 신은
우리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 사회에선 신이 필요한 것 같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반복되는 사고의 고리들을 누군가는 끊어야만 한다.
지난 28일 발생한 서울 도곡역 화재 사건은 반복된
안전사고들을 해결할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줬다. 안전사고에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신도 아니고 그
어떠한 존재도 아닌 바로 안전에 대한 투자와 교육에 있었다.

2003년 192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지하철
참사와 흡사했던 이번 사고가 인명 피해 하나 없이 마무리 될 수 있었던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안전에 대한 투자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전동차의 의자 시트와 바닥, 벽과 천장은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재로 바뀌었다. 적지 않은 예산이 들었지만 만약 이처럼 예산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도곡역 화재 사고는 제 2의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이어졌을 것이다. 둘째, 반복된 화재 예방과 대응 교육의 결과다. 서울 매트로는 매월
직원들에게 안전과 관련한 교육을 실시했다. 이 교육은 지난 28일 도곡역 화재 사고 당시 기관사 등이 기민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한 밑거름이
됐다.
도곡역 화재 사고에서와 같이 다른 사고들에서도
'투자'와 '교육'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존재했다면 비극적인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하지 못했고 비극은
반복됐다. 이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후 안전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그 대책으로 정부 조직을 개편하고 공직사회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34일만에 나온 이 대책들이
재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정부의 조직 개편안이 발표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알 수 있다. 얼마나 졸속이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발표된 내용이 일주일만에 바뀌고 있을까.
정부는 지금이라도 재난 사고 등에 대한 예방의
과정에서 정부의 시책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에
있고 국민은 그러한 정부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현장에서도 숱한 시민들은 정부를 찾았지만, 정부의 대응은 허술했다.
이제라도 정부는 현실에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현실에서 정부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기
위해선 안전에 대한 투자와 교육이 필수적이다. 지금, 정부가 급하게 내놓은 대책들이 과연 안전에 대한 투자와 교육을 가능토록 하고
있을까. 정부는 이 대책들로 현실에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세월호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다시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