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전에도 제주도에 올 때엔 렌트카를 이용했지만 이번에는 좀 색다르게 전기차를 렌트하려고 계획했습니다.
기준은 주행거리가 길어야 한다는 것. 왜냐면 며칠 되지도 않는 여행 시간을 충전하는데 허비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대상은 당연히 쉐보레 볼트 EV였습니다(참고로 레이 전기차, 아이오닉 전기차, sm3 전기차 등은 주행거리가 볼트의 절반 이하입니다).
렌트카 회사에서 받은 볼트는 주행거리가 7000km 남짓된 타기 딱 좋은 상태의 차량이었습니다. 그 동안 유튭 동영상 등으로 조작법에 대한 시청각 교육을 충분히 하고 갔기 때문에(아마 유튜브에 올라온 볼트 시승기 동영상은 다 찾아본 듯 합니다), 차를 넘겨받은 뒤에 바로 오래 타온 차량인 것 처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는 아니고 기어 넣는데 기어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약 5초간 헤맸고, 후진 기어 넣는데 기어 버튼 누르지 않아서 헤맸습니다. 역시 아무리 많이 봐야 직접 겪어보는 것만은 못하더라구요.
1. 시동(또는 전원)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 버튼을 누르니 시동이 걸리지 않은 듯, 걸린 상태가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동'이라는 과정이 필요없어서, 전원을 넣어도 그냥 계기판이 켜지고 약간의 초기화 과정을 거치는 것 말고는 내연기관 차량처럼 '나 시동걸렸음'하고 알려주는 소음이나 진동이 전혀 없으니까요.
렌트카 회사에서 나와서 가속 페달을 밟으니 위잉~~ 하는 모터 회전음이 들립니다. 완전히 소음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더라구요. 그러나 엔진 소음과 비교할 바는 아닙니다. 요즘은 내연기관차량도 방음이 잘 돼 있어서 조용한 편이지만 더 조용합니다. 엔진룸 방음은 필요없지 않을까 싶은 수준이죠.
2. 가속력
전기차의 초반 가속력에 대해 칭찬(?)이 많아서 한 번 급가속을 해봤습니다. 음... 사실 약간 실망이었는데요. 메다 꽂는듯한 가속을 생각했는데, 지금 타고 다니는 올랑이 2.0 디젤의 초반 가속과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물론 볼트쪽이 좀 더 빠르게 가속되는 느낌이었지만, 올랑이도 초반 토크는 충분히 잘 나와주기 때문에, 생각만큼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전기차의 장점을 느낄 수 있었던 때는 추월할 때였습니다. 무조건 최대 토크가 나오는 전기차의 특성상 추월시 급가속은 정말 빨랐습니다. 특히 저속에서 추월할 경우 올란도는 터보랙 등이 있어서 바로 치고 나갈 수가 없었지만 볼트는 가속 페달만 좀 깊게 밟아주면 앞차 한대 정도 제끼는 건 일도 아니더군요.
제주도에 고속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 속도를 낼 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단속 카메라가 있어서 최대 속도까지 가속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고속도로 규정 속도인 시속 100 - 110km까지는 달리는데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볼트의 속도 제한이 시속 154km에 걸려있는데 고속도로에서도 그 정도로 달려본 적이 거의 없어서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네요. 특히 제주도 같은 경우엔 시속 154km의 제한은 사실 속도 제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 핸들링
가족들을 태우고 와인딩 할 일도 없고, 볼트의 기본 타이어는 와인딩하다 죽을 수 있는 타이어라 급격한 차선 변경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쉐보레 특유의 돌리는대로 잘 따라와주는 느낌은 여전했습니다. 충분히 만족스럽네요.
4. 운전 방법
볼트는 핸들에 리젠 버튼이 있습니다. 이걸 누르면 브레이크를 밟은 듯 차의 속도가 줄어들며 회생제동을 합니다. 그래서 속도를 줄이며 충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리젠 버튼만으로 완전 정지가 가능합니다. 리젠 버튼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경우 회생 제동으로 주행 가능 거리를 늘리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브레이크를 거의 쓰지 않고 다녔습니다. 처음엔 좀 적응기간이 필요했지만 그 이후엔 브레이크 대신 리젠 버튼으로만 주행이 가능했습니다. 앞차가 예상보다 속도를 갑자기 줄일 경우에만 브레이크를 썼죠. 사실 볼트의 브레이크는 약간 불만인데, 이 부분은 뒤에 타이어와 함께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리고 볼트엔 L모드가 있는데, 이게 엔진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용도로 쓸 수 있는 자동변속기의 저단 기어와는 다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L모드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자동으로 리젠 버튼을 눌러주는 모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가속하다 페달에서 발을 떼면 바로 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멈추게 됩니다. 사실 L 모드도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거 썼다간 동승자들이 멀미하기 딱 좋겠더라구요. 그래서 D+리젠 버튼의 조합으로 주행을 했습니다.
5. 충전 및 주행 거리
연비라는 말을 써야 맞나 싶지만... 암튼. 볼트의 주행 가능 거리는 공식적으로 완충시 약 380km 정도입니다. 제가 차를 인도받았을 때 주행 가능거리가 370km 정도였으니까 거의 완충 상태로 받은 것이죠. 그리고 리젠 버튼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주행했구요. 그래서 첫 날 일정을 끝낸 뒤에 약 67% 정도의 배터리 잔량이 남아있었습니다. 둘째날 아침에 숙소 인근 충전소를 찾아서 고속 충전을 했습니다. 80%까지 충전하는데 약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렌트카를 반환할 때에 약 50% 정도가 남아있었구요.
태풍의 영향권을 피해 주로 제주도 서쪽으로 돌았는데 이틀 일정이었지만 충전 없이 다닐 수 있는 주행 거리를 보여줬네요. 아마 둘째날 아침에 80%까지 충전하지 않았더라도 1/3 정도는 남아있었을 겁니다.
이정도면 일상생활 및 장거리 주행도 가능한 주행 거리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충전 시간이죠. 주유등이 깜빡여도 2-3분안에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내연기관에 비해 80%까지 한시간이 걸리는 전기차의 충전 시간은 단점이니까요.
그래서 아마도 전기차가 좀 더 널리 보급되면 자동차 문화가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다니다가 주유등에 불 들어오면 주유소에 가서 충전하는 방식이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주차장에서 수시로 충전하는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수소차 등 연료를 사용하는 전기차로 이동하게 되겠죠(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습니다만). 어쩌면 주유소의 종말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6. 실내 공간
겉으로 보기엔 스파크인가 싶지만 의외로 실내는 넓습니다. 엔진룸이 작아서 2열에서도 레그룸은 충분히 나오고, 해치백 스타일이라 머리 공간도 충분합니다. 다만 폭은 차급의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이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차에 앤트맨 슈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트렁크는 25인치 여행용 트렁크 2개를 넣고도 배낭형 가방을 넣을 정도의 공간이 남습니다. 생각보단 큽니다. 올란도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공간이지만, 올란도는 짐차니까요.
7. 아쉬운 점들
먼저 타이어.
전기차에 에코 타이어가 들어가는 건 기본이고 에코타이어의 접지력이 안좋은 편인 만큼 볼트의 기본 타이어도 접지력이 안좋습니다. 딱 시내 주행 정도만 하라는 타이어인 것 같습니다.
브레이크.
타이어의 영향 때문인지 밀립니다. 생각보다 더 깊이 밟아야 원하는만큼 멈춥니다. 식은 땀 난 적이 한두번 있었습니다.
L 모드.
제동력이 매우 세서 울컥거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동승자들은 멀미를 할 수 있습니다. 리젠 버튼도 있는 만큼 약간 제동력을 낮춰주면 좋겠습니다.
안드로이드 오토.
기능은 활성화시킬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애플 카플레이도 반쪽이죠. 근데 이건 볼트의 단점이라기 보단 어른의 사정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
8. 총평
다음에 차를 산다면 전기차로 사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했었습니다. 볼트는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충전 문제만 해결된다면요.
380km라는 주행 가능 거리는 내연기관 차량에 비하면 짧지만,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정도가 아니라면 1회 충전으로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곳은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전기차의 특성상 고속도로의 연비가 시내보다 안좋지만, 휴게소에 들려서 고속 충전을 걸어놓고 한 30분 정도 쉰다고 생각하면 턱없이 짧은 거리도 아닙니다.
게다가 2020년 정도면 주행 거리가 600km 정도로 늘어나는 3세대 전기차들이 선보일 예정이라 그 이후엔 주행 거리가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습니다. 문제는 충전 시간이죠.
그리고 올란도나 캡티바 정도의 실내를 가지는 차량이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사실 충분히 가능한 일이거든요. 차체가 크면 배터리를 깔 공간도 그만큼 넓어지므로 주행거리도 늘어나겠죠. 아마도 올란도나... 캡티바 정도의 크기면 주행거리 500km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배터리 가격이 문제지만, 대량생산하면 보조금 없이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희망해 봅니다.
그래서... 다음에 차를 산다면 전기차로 사고 싶다는 희망은 계속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가능할 것 같구요.
첫댓글 그래서 알맞은 녀석을 사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