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이공계 기피에 대해서 얘기들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급기야는 대입 수시모집에서 심층면접 문제로까지 출제가 되었다는데...
이공계 기피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고교생들의 이과 기피입니다. 작년 수능 자연계 지원자는
전체의 27% 정도로 21%의 예체능계와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해년마다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의 원인으로는
어려운 수학, 과학 공부를 기피하려는(물론 저처럼 잘하고 싶어도
태생적으로 잘 못하는 학생들도 간혹 있습니다^^) 쉬운 것만 찾는
요즘 세대의 세태, 그리고 굳이 자연계 공부를 하지 않아도 인문
계 수능을 친 다음 얼마든지 자연계 학과로 진학이 가능한 현 대
입제도의 '교차지원' 허용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 하에
서 굳이 '어려운' 이과 공부를 하려고 드는 학생이 적을 수 밖에
없으며, '쉽고 재밌는' 것만 찾는 세태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이
과 기피에 대해서는 딱히 대책이 없다고 할 만큼 심각합니다.
저도 경역학과나 무역학과를 지망하는(그리고 수학, 과학에 어마
어마한 시간을 투자하지만 소득은 별로 없는^^) 문과생입니다.
주변 친구들과 문/이과 선택때 왜 문과를 왔는가에 대해서 종종
얘기를 하고는 합니다만... 저처럼 적성따라, 특정한 목표가 있
어서 왔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1/3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그냥 수학, 과학이 하기 싫어서' '그냥 대충 시험보고 교차지원
하려고' 등으로 대답합니다. 자신이 왜 문과를 지원했는지, 어떤
목표를 갖고있는지에 대한 '답'을 갖고있지 못한 고교 문과생이
전체의 2/3에 달하는 기가막힌 현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
고 그것은 곧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통계로 신문지상에 오르
게 됩니다.(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의식은 문과생들
보다는 이과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확고하고 구체적입니다)
두번째 문제는 고교 이과를 선택한 학생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거의가 이과를 지원해서,
이과 애들의 전반적인 생각이나 분위기 등을 자주 접하고 있습니
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 역시 전국적인 현상이기는 합니다
만... 상위권 학생들의 의대/치대/한의대 선호현상입니다. 보통
수능 모의고사 점수로 350점 이상, 소위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학생들의 진학카드를 보면... 어김없이 희망학과에 1번이 '의'
자가 들어가는 학과가 적어져있습니다. 어떤 학생의 경우 1, 2,
3번이 모두 '의'자로만 채워진 학생마저 있습니다.
까놓고 얘기해서... 요새 공부 좀 한다는 이과애들 치고 공대 간
다는 애들 없습니다. 아주 특별한 케이스(원래 의대를 아예 생각
조차 안 하고 있던 몇몇 학생들)를 제외하고는 성적 좀 나오면
바로 의대 생각을 먼저합니다. 이런 상황도 몇 년째 계속되고, 심
화되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 뒤에 보면 점수대에 따라 지원이 가능한
학교/학과들이 나와있습니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고려대 공대가
인제대 의대랑 같은 급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인제대 의대는
서울대 웬만한 공과계열 학과랑 맞먹습니다. 서울대 공대 일부
학과는 이제 숙명여대 약대나 삼육대 약대같은, 예전에는 한참
밑에서 놀던 학과와 같은 급간 됐습니다. 최상위 급간에 서울대
의대, 성대의대, 경희대 한의대가 포진한채 바뀌지 않는 것도 몇
년째 지속되는 현상이고... 최상위 3개 급간에 포진한 유일한
공과계열 학과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건축과가 있는데, 그 점
수대에서 가능한 가장 '최악의 선택'으로 흔히 분류됩니다..-_-;;
예전에는 연/고대 공과계열 상위권 학과에 지원할 점수로 갈 수
있는 의/치대가 지방에 꽤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점
수로 갈만한 괜찮은 의/치대 찾기가 무지 어렵습니다..ㅡ.ㅡ;;)
비단 일반 인문계 고교의 이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지간하면
KAIST행이 보장되고, 또 미래 한국 '과학'을 짊어질 인재들이 간
다는 과학고에서도 이는 마찬가집니다. 서울 모 과학고의 경우
작년 성적 상위 10명 중에서 KAIST 등의 공과계열 학과로 진학한
학생은 겨우 3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의/치/한의대로 갔
다는 통계마저 나와있습니다. 과학고 학생들의 평균성적을 감안
할때 학교 전체로 본 의/치/한의대 진학자 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그만큼 '과학영재'를 육성하기 위해 과학고를 세우고 과
학에 우수한 학생들을 뽑았던 국가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본 셈입
니다.
(여러분은 과연... '최상위급 두뇌와 학습능력'을 갖춘 이 나라
의 과학영재들이 의/치/한의대로만 몰리는 이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세번째는 이공계 대학에 진학한 대학생들의 문제입니다.
대학에서 공대, 혹은 자연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이공계 기피'의 방법은 몇 가지 되지 않지만, 나날이 이공계
진로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있는 대학생들이 늘어만 가는 상황이
'안 그래도 지원자가 적은' 이공계의 현실을 더욱 어렵게 합니
다. 현재 대학에 다니는 이공계 대학생들은 그래도 고교시절
'이과 기피' 세대는 아닙니다. 그러나 의대 열풍이 강타한 것이
벌써 4~5년은 돼가고 있으니 이들도 그 상대적인 박탈감(물론
본인 적성과 희망대로 진학한 학생들 제외)에서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로에 불안감을 느끼는 일부 학생들은
아예 공부를 때려치고 고시(사시, 행시, CPA 등)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어느 대학의 경우 공과대학 내에 '고시반'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할 정도입니다. 이런 현상은 취업 등에서 상
대적으로 공대보다 불리한 자연대, 혹은 공대 비인기학과를 중
심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학부제 시행으로 인해서 학생들이 인기학과, 혹은 취업이 잘
되는, 소위 '잘 나가는' 학과로만 몰리는 것도 문제-이것은
비단 이공계 뿐 아니라 인문사회계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이 종합적으로 '이공계 기피'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비슷한 공부
를 하고도 의/치/한의대 출신보다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
는 보수,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 밖에 없는 근무(혹은 연구)환
경 같은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대한민국은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있는 나라입니다. 우
리는 해외에 끊임없이 자동차, 선박, 반도체, 컴퓨터, 휴대전
화, 기타 화학, 기계관련 제품 등을 수출해야하는 그런 나라에
살고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기술개발의 중요성은 따로 설명
을 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
출에 있어서 기술낙후는 곧 시장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
니다. 수출이 막히게 되면 우리나라는 총체적인 경제위기에 봉
착하게 됩니다. 이공계 기피가 큰 문제가 되고있는 이유가 바
로 이것입니다.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제품의 품질개선을 위해
서는 그것을 연구하고 개발할 인력이 계속해서 공급돼야합니다.
그러나 이공계 지원자 수가 줄고, 우수인력은 의대로만 몰리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이런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는데, '이공계 홀대론,
혹은 이공계 기피 현상 지속론이 제기되는 건 근본적으로 공부
를 잘 했지만 의대에 가지 않고 공대를 갔던 사람들의 상대적
인 박탈감에서 오는 일종의 하소연이다' 라는 것입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공계 기피 현상
을 이런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에 대한 성취감 보다는 돈을 좇는 현 세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이공계 인력에 대한 대우는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리
고 사람들의 이공계에 대한 인식 역시 개선되어야만 합니다. 그
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돈'이 아닌 직업 자체에 대한 성취
감을 중요시 하는 직업관의 정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대
내에서 조차 인기학과인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 등에는 사람이
몰리고, 비인기학과인 내과 등에는 지원자가 적고, 특히 기초의
학 분야에는 지원자가 거의 없다는 현실을 볼때... 우리 세대의
직업관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심각하게 생각을
해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
을 맞보는 것을 최우선으로 꼽는 사회... 더 이상 '돈'에 연연
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국가 경제의 근본이고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이공계를 살
리기 위해, 정부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조치들이
취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공계가 죽으면, 대한민국이 죽습
니다.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