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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하늘아!!!!! 너… 너!!!”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내게로 달려오는 여자 애들.
언제부터 애들이 나한테 관심이 많았을까.
난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녀들을 훑어보며 물었다.
“왜 그래?”
“너… 구름이랑 아는 사이야?”
아, 내가 반가웠던 게 아니라
그저 오늘 교문까지 바래다 준 한구름 녀석이 궁금했던 거군.
그 생각에 약간 씁쓸해지는 마음.
난 그녀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휘적휘적 걸어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재빨리 내 주위를 감싸는 아이들.
“응? 무슨 사인데 학교까지 바래다 준 거야?”
난 그 말에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 남자친구인데?”
나의 말에 자지러지는 아이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난 얄미워서 있지도 않던 일을 막 지어내 말했다.
“내가 됐다고 그래도 막무가내로 데려다 주네.
어제도 어찌나 놀아달라고 졸졸 따라다니던지.”
그러면서 가식적인 미소 날려주기.
그나저나 한구름 녀석 꽤 유명한 놈인가? 하긴 얼굴이 반반하긴 하지.
정말 귀찮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 공세들.
“언제부터?”
“어제부터.”
“어쩌다가?”
“구름이가 손바닥에 핸드폰 번호 적어주고 서는
사귈 생각 있으면 전화 하라고 하더라고.”
난 정말 지나가다 벼락 맞을 말들을 내뱉었다.
내가 말하고도 속이 더부룩하다.
한구름아, 아무렇게 널 써 먹어서 미안하구나.
“정말로 사귀는 거야?”
“그렇다니까.”
“눈물을 부르는 아이의 한구름을 정말로? 맙소사~”
그러면서 쓰러지는 흉내를 내는 어떤 아이.
그런데 난 내 두 귀로 들어왔던 말을 믿을 수 없어 물었다.
“눈물을 부르는 아이라니?”
내 말에 눈이 동그래지는 그녀들.
갑자기 얼굴이 싹 굳은 내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남자친구라면서 그것도 몰라? 눈물을 부르는 아이라는 밴드의 보컬이잖아.
이 부근에서 꽤 유명한데.”
그 말을 듣자마자 온 몸에 힘이 빠져 나가는 느낌.
어제 또순이가 했던 말들이 슬프게 날 감싼다.
그래서… 한구름 그렇게 슬프게 울었던 거야.
어제도 그 여자애 생각나서 그렇게 슬프게 울었던 거야.
예전에 보았을 때도,
그렇게 지독한 슬픈 냄새를 풍긴 이유가 다 이가은이란 애 때문 인거야?
왜 가슴이 이렇게 울렁거릴까.
어차피 오늘 사귀게 된 것도 순 나의 억지 때문이라는 거 아는 데.
분명 진심이 한 톨도 없다는 것도 내가 더 잘 아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이상하지. 심장이 힘들어 하지.
그 때 비아냥거리는 말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구름이는 일주일이면 다 깨진다던데.
하늘이랑도 역시 그렇겠지? 솔직히 한구름은 죽은 이가은 뿐이니까.
이가은만 진심이니까.”
난 그 말에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 찍었다.
떠들썩하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난 하나같이 놀란 눈이 되는 아이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안 깨져. 안 깨질 거니까 그 딴 말 함부로 뱉어내지마.
그런 말 내 앞에서 했다간 죽을 줄 알아.”
내 말에 모두 비웃으면서도,
무서웠던지 아무 말 못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난 가만히 있다가, 속이 답답해 펑 터질 것만 같아 아침자습을 제치고 교실에서 나왔다.
어제 또순이가 했던 말과 아까 어떤 애가 했던 말이 내 정신을 흩으러 놓는다.
실들이 엉키고 엉킨 듯 풀 수가 없어 답답해 미칠 것 같다.
어지러워 현기증마저 난다.
난 무작정 걷다가 예전 학교에서도 자주 가던 옥상이 생각나,
옥상으로 가는 문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곧 이어 바로 옥상으로 가는 문을 찾아내고, 계단을 올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뜨거워진 머리를 식어주는 차가운 바람이 날 맞이한다.
난 좀 괜찮아진 기분을 느끼며 옥상 문을 쾅 닫고 들어섰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박하늘, 네가 그렇게 신경 써야 하는 일 아니야.
너는 몰라도 돼. 너도 진심 아닌 거잖아. 아닌 거야.
아니 여야만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제기랄. 박하늘, 너 정말 인 거냐?
그런데 그 때 내 코를 자극시키는 냄새.
난 담배냄새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누군가 옥상 바닥에 누워있는 게 보인다.
그 애는 다름 아닌 창가자리 그 자식이었다.
그 자식의 농땡이 부리는 장소가 이곳인가 보다.
담배를 꼬나물고 눈을 감고 있는 녀석.
내가 온지 모른 가 보다. 소리 못 들었나?
보니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 녀석의 귀에는 검은색의 이어폰이 꽂아져 있던 것이다.
난 조심스레 천천히 다가가 보았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살짝 그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무슨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 녀석의 모습에 심취하여 있을 때,
갑자기 눈을 뜬 녀석.
그래서 동시에 내려다보고 있던 나의 눈과 마주쳤다.
난 화들짝 놀라며 무안해 하다, 뜬금없이 체조하는 척 했다.
“아따~ 날씨 한번 기가 막히게 좋구나! 하하!
이런 날에는 운동장에서 축구 한 판 해야 하는데.”
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때 내 발을 붙잡는 저음의 목소리.
“야.”
갑작스럽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난 살짝 당황하며 뒤 돌아 보았다.
그 녀석은 윗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혹시 아무도 없으니 나 여기서 조용히 패려는 건가?
맞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다만 조용히 살고 싶었던 내 다짐을 깨뜨리기 싫다.
난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왜?”
그런데 내 말에 답이 없는 녀석.
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으나,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뭐야, 나 갖고 장난 친 건가?
주먹이 불끈 솟지만,
난 애써 치밀어 오르는 내 마음을 억누르며 다시 가기위해 몸을 돌렸다.
그 때….
“사람 최고로 고통스럽게 죽이는 게 어떤 거지?”
한 없이 싸늘한 말투. 한 없이 무서운 말투. 한 없이… 슬픈 말투.
난 입은 다문 채 귀를 열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없어서 모자를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어.”
“…….”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녀석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보고 있는 그 녀석의 새카만 눈동자가 울고 있었다.
눈물은 안 흐르고 있었지만, 분명 울고 있었다.
그 때 차가운 바람을 타고 내 귀에 흘러들어오는 시린 말.
“그게 안 된다면… 차라리 내가 죽을 까.”
난 한 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레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 녀석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푸른 하늘만 보고 있었다.
난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죽으면 당당한 패배. 지는 거야.”
“…….”
“제일 최고의 죽이는 방법 가르쳐 줄까?”
내 말에 드디어 그 녀석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검은 색이 잘 어울리는 녀석.
난 그의 검은 눈동자와 검은 마음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웃는 거야.”
“…….”
“그 사람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최고로 멋지게 웃는 거야.”
“…….”
“믿을 수 없어서, 너무 당당해서, 부러워서 뒈지고 싶을 만큼 멋지게 웃어.”
“…….”
“웃는 모습으로 더러운 마음을 짓밟는 게 최고의 죽이는 방법이다.”
난 그 말을 내뱉고 뒤돌아서 나왔다.
나머지 답은 그 녀석에게 달린 것이 기에….
*
모든 수업을 마친 후,
난 주저 없이 자습하고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고 학교에서 나왔다.
혼자 집으로 가는 길.
뭐 때문인지 몰라도 나한테 붙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난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해 그 애들을 억지로 떼어내고 혼자 가는 길이다.
난 계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한구름 녀석한테 전화해도 될지 안 될지.
분명 그 녀석은 나에게 연락을 먼저 하지 못 할 것이다.
만약 알고 있더라도, 전화를 먼저 할 것 같지는 않다만…
어쨌든 그 녀석은 내 핸드폰 번호를 모른다.
난 계속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오늘 학교에서 핸드폰에 등록시킨 한구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정말 허탈하게도, 하자마자 들리는 건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
전혀 반갑지 않은 목소리다.
[고객은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난 신경질적으로 닫으며,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그 애는 나한테 궁금한 게 하나도 없나?
어떻게 학교 가는 내내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안 물어 볼 수 있는 거지?
정말 걸어가는 내내 ‘졸려’라는 말과 ‘사과 먹고 싶어.’라는 말만 들은 것 같다.
한구름 그 녀석은 학교 가서 내 생각 한번이라도 했을까?
내 이름이라도 알고 있을까?
그냥 혼자 꿍얼꿍얼 대지 말고 찾아 가자.
가서 내 이름 안 잊어 먹도록 지겹게 말해주고… 나에 대해서 암기하도록 줄줄 말해주자.
어쨌든 박하늘 네가 지금 그 놈 여자 친구잖아.
여자 친구는 그 정도의 자격 충분히 있는 거야.
나는 집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재빨리 바꿔 옮겼다.
어제의 기억을 되살려 그 트러블메이커라는 카페에 가기 위해서 이다.
오늘도 공연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 녀석이 자주 가는 곳일 것 같기에.
어제 가면서 보았던 것 같은 간판들과 가게들이 보이자,
희미했던 생각이 또렷해진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그 곳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난 문 앞에서 길게 한 숨을 뱉은 뒤, 나의 에너지충전 주문을 외쳤다.
“앗싸! 박하늘 화이~ 화이~ 화이팅! 팅!”
평소보다 더 강하게 외친 후, 난 눈에 힘을 주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어제보다 더 정돈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즉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시각이 6시 조금 넘었는데, 저녁이 돼야 사람들이 몰려오나?
아님 오늘 공연이 없나.
웬만하면 첫 번째가 적중했으면 좋겠다.
그냥 가기에는 내 다리가 불쌍하잖아. 뭐, 튼실하기는 하지만.
난 그냥 발이 가는 데로 아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자 하나가 내게로 온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내게 묻는 종업원.
나는 왠지 속이 뜨거워서 이것을 식힐 만 한 것으로 주문했다.
“콜라에다 시원한 얼음 동동 뛰어서 주세요. 얼음 많이 넣어요.”
“아, 네. 콜라 한잔.”
“아니요!! 얼음 많이 넣은 콜라 한잔이요.”
“네, 그러니까 콜라요.”
“콜라에 얼음 안 넣어 줄 거예요?”
“아니요. 넣어 드릴게요.”
“그럼 얼음 넣은 콜라죠.”
“네~ 그래요. 얼음 넣은 콜라 한잔 주문하셨습니다.”
얼음을 강조하며 비꼬는 말투로 말하는 종업원.
난 찌릿찌릿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그 여자는 황당하다는 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나는 그 여자의 볼록 튀어나온 엉덩이를 흉보아주다,
카페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제 그 밴드의 멤버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단 한명 있었다.
그 이 카페의 주인장에다가 리더라는 사람.
그 사람은 테이블에 앉아서 무언 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폴딱 일어서 뚜벅뚜벅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 보니 무언 갈 열심히 쓰고 있었다.
난 그 연습장을 몰래 들여다보는데 어떻게 알아채고 재빨리 손으로 가리는 사람.
고개를 번쩍 쳐들며 나를 본다.
난 약간 무안해져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한테 할 말 있나?”
“그러니까 한구름이…”
“노노!! 나한테 묻지 마라. 절대절대 말 안 해 줄 거야.”
한구름이라는 이름만 나오자 치를 떨며 손을 휘젓는다.
도대체 왜 그러기에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난 다시 조심히 불렀다.
“저기…."
"안 돼. 이제 더 이상 알려주지 않을 거야.
구름이가 또 알려주면 이제 15분 동안 간질일 거라고 그랬어.”
생각만 해도 싫은 지 몸을 부르르 떤다.
그런데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 보시지.
내가 다시 입을 열려 하자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꾹 누른다.
내가 살짝 얼굴을 구기며 보자,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노코멘트.”
그러면서 재빨리 회피하려는 도망간다.
슬슬 열 받기 시작한 나는 후다닥 도망치는 주인장에게 큰 소리로 소리쳤다.
“한구름이 오늘 안 와요?!”
나의 물음에도 계속 도망간다.
난 다시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 구름이 여자 친구에요!!!!!!”
그 말에 그제야 자리에서 멈추는 주인장.
뒤돌아 나를 보는 주인장의 눈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주인장은 천천히 다시 내게 되돌아온다.
갑자기 세발자국 정도의 사이에서 멈춰서더니 나를 아래서부터 위로 훑어본다.
난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얼굴을 찌푸렸다.
한 참 동안 훑어보던 주인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더니,
나에게 고작 하는 말이 이것이었다.
“뻥이지?”
난 그 말에 기가 막힌 표정으로 주인장을 보았다.
주인장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보았다.
그리고선 자신이 무슨 탐정이라도 된 듯 나를 뱅뱅 돌며 진지한 얼굴로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정체를 밝히시오.”
“이름 박하늘.”
내가 대답하자 주인장은 재빨리 자신의 연습장의 공백에 적기 시작한다.
“나이 19. 저기 도일고등학교 재학 중.”
“오호! 나의 후배구나~ Nice meet you!!”
그러면서 나를 안고 방방 뛰는 나이 값 못하는 주인장님.
발음도 안 좋구만, 뭣 하러 영어로 말하고 그래.
한국인이 한국말 써야지. 쓸데없이 영어를 쓰긴 왜 써. 그런다고 지가 양키되나.
(영어를 무지하게 싫어하는 박하늘이였다.)
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휙 파리 같은 주인장을 떨쳐 내었다.
“아무튼 오는 지 안 오는 지 그거 나 말해요.”
“너무 냉정해!! 후배님 미워!!”
상처 받았다는 얼굴로, 앙탈을 부리는 그대는 주인장.
나는 얼굴을 구기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성격이 그래요?”
“아니, 나 원래 멋있는데. 카리스마 넘치는데.”
“당신이야말로 뻥이시군.”
“아니야!! 난 거짓말 안 해!!”
“그럼 왕자병 이던가.”
“정말 너무 한데~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후배들이 좋다고 따라다녔는데.
이제 졸업하고 나이 먹어서 그런가.”
“나는 당신 같은 사람 혐오해요. 그나저나 대답해주라니까요!”
주인장은 대답을 절대 안 해주겠다는 듯 입을 가린다.
나는 가리고 있는 입을 거칠게 떼어 내며, 카페 안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말해요~ 말!!!!!!”
이젠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열 받은 나는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하기 위해, 입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후다닥 도망가는 주인장.
나는 톰과 제리에서 톰이 되어 제리인 주인장을 쫓아갔다.
정말 제리처럼 요리조리 잘 피한다. 오히려 나를 골탕 먹인다.
이래서 내가 제리 그 놈을 싫어했어.
이번엔 톰이 이기게 해주겠다는 굳은 마음과 함께,
난 넘어져도 굴하지 않고 계속 쫓아 다녔다.
거의 닿으려고 하면 멀어지는 제리 주인장.
우리는 카페 안의 손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체,
아니 오히려 재미난 구경거리를 주며 실랑이를 벌였다.
내가 앉았던 테이블 위에 놓여진 콜라의 얼음이 거의 다 녹을 정도로.
정말 이번은 톰에게 기회주시는 건지,
때마침 철퍼덕 넘어져 버린 제리 주인장.
나는 그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고 바로 달려가 제리 주인장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아까 보니 간지럼을 무서워했던 것 같아,
난 사악하게 웃으며 옆구리를 손가락 끝으로 살짝살짝 긁었다.
약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듯이 웃어대는 제리 주인장.
역시 간질이는 게 제리 주인장의 약점이었나 보다.
“이래도 안 말해 줄 거예요?”
“난… 모… 못 말한다.”
오~ 한번 해 보시겠다 이 말씀인가?
난 싱긋 미소 지으며 좀 더 강도를 세 개 하였다.
그러자 제리 주인장은 눈물을 찔끔 거리며 고통스러워한다.
난 왠지 재미가 붙여 겨드랑이며 발바닥이며 이리저리 간질였다.
“으하하하!! 아… 안 돼!! 살려… 으아!!”
“얼른 말씀해 주시죠?”
“이런… 항복이다. 말 할 테니 손 치워라.”
나는 겁을 주기 위해 그대로 바로 할 수 있는 준비 자세를 취했다.
제리 주인장은 한 숨을 길게 푹 내쉬며 말하려고 했다.
내 귀를 활짝 열고 들으려 할 찰나….
갑자기 예쁜 종소리가 울리며 누군가 등장한다.
하필 우리는 바로 문 앞에서 이러고 있는 것이다.
난 헝클어진 머리와 땀에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내 눈에 보이는 두 사람.
아삭아삭 사과를 베어 먹으며 동그란 눈으로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있는 한구름과,
별 표정 없이 바라보고 있는 어제 그 드럼을 치던 아이.
내가 멍하니 있는 틈을 타 날 밀어내고,
재빨리 그 두 사람에게로 가는 얍삽한 제리 주인장.
난 제리 주인장이 밀치는 바람에 뒤로 벌러덩 넘어진 자세였다.
망할 놈의 제리 주인장 나중에 두고 봅시다.
난 마음속으로 꼭 나중에 15분이 아닌 30분 동안,
제리 주인장을 간지럼 고문의 세계로 안내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활활 타오르는 나의 엄청난 복수를 품으며 난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엉덩이를 탈탈 털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느 새 옆에 있던 한 녀석은 사라지고,
한구름 옆에 서서 나에게 메롱을 하는 제리 주인장이 보인다.
날 놀리 듯 혀를 내밀며 이리저리 장난스럽게 움직인다.
이제 열 받는 것 보단 제리 주인장이 불쌍해 보인다.
이제 성인이 된 나이에 저 짓이 무엇인지.
분명 정신이 우리 보다 낮을 거라는 생각에 측은해 지기까지 하구나.
정신연령이 꽤 높은 내가 이해해야지.
그 때 날 황당하게 하는 한구름의 반짝이는 음성이 들린다.
“엄마, 왕구멍이랑 친해졌어?”
엄마? 난 엄마란 단어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란히 서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제리 주인장에게 엄마라는 호칭을 쓰다니.
만약 제리 주인장이 여자라 하였다 하여도 21세에 19세의 자식을 가질 수 없잖아.
그렇다면 단 하나네.
역시 특이한 한구름이다.
징그럽게 엄마라는 호칭을 서슴없이 제리 주인장에게 붙이다니.
그 때 극구 부인하는 제리 주인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쟤랑 절대 안 친해. 절대로!
쟤랑 놀고 싶은 맘 없어. 추호도 없어! 간지럼 보다 더 싫어!”
나도 제리 주인장을 느끼한 것 보다 더 싫어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눈이 아파 찔끔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불꽃 튀기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한 참 동안 서로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사과를 다 먹은 한구름은
우리 두 사람을 계속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말한다.
“엄마는 친한 사람한테만 본모습 보이잖아.”
그러자 날 노려보고 있던 눈을 집어 치우고,
한구름을 보더니 손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묻는다.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너 정말 저런 선머슴같은 애랑 사귀는 거야?”
제리 주인장의 말에 한구름은 한 참 가만히 있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어째서 한 참 생각한 후에 고개를 끄덕인 거지?
설마 나랑 사귀기로 했다는 이 중요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잠시 잊어버린 것일까?
난 살짝 굳은 얼굴로 한구름을 응시했다.
구름이는 귀에 꽂아 둔 담배를 꺼내 빙빙 돌리면서, 나를 보고 싱긋 웃는다.
그 때, 제리 주인장이 진지한 모습으로 한구름에게 말한다.
꽤나 심각한 목소리.
“엄마는 저런 여자랑 사귀는 거 절대 반대한다.”
“왜?”
동글동글한 눈으로 제리 주인장을 보며 묻는 녀석.
그런데 제리 주인장 누구마음대로 네가 반대 하는 거야.
설마 그 어이없는 엄마라는 호칭으로 불리 운다는 이유로?
내가 다가서며 뭐라고 말하려 찰나,
제리 주인장은 후다닥 도망가며 외친다.
“아무튼 절대 사귀지마!
쟤는 얼굴 꽝, 스타일 꽝, 몸매 꽝, 거기다가 성격까지 꽝이다!!
몸매는 봐줄라 했는데 가슴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더라.”
“야!!!!!!!!!”
안 그래도 그 이유 때문에 열 받는 일이 한 두 가지 아닌데,
더 휘발유를 뿌리고 번개탄을 집어넣고, 숯도 왕창 집어넣는 제리 주인장.
당신은 이 카페의 사장이라는 것,
눈물을 부르는 아이의 리더라는 것,
21살이나 쳐 먹었다는 게 꽝이야.
다시 유치원부터 다닐 것을 극구 추천한다.
난 씩씩 거리며, 제리 주인장을 내 블랙리스트 1위로 선정했다.
그러다 갑자기 뛰어난 내 후각을 자극시키는 담배 냄새에 휙 뒤돌아 보았다.
한 테이블 위에 올라 앉아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는 한구름.
어린 것이 벌써부터 담배를 피우고 난리야.
요즘 얼마나 청소년 흡연 문제 때문에 심각한데.
지금부터 그렇게 피면 너의 그 예쁜 얼굴은 괴물이 되고,
너의 그 우유 빛 피부는 더러워지고,
너의 그 별빛 같은 목소리는 잃어버리게 될 거야.
그러다가 결국 죽는 거야.
담배 피는 것은 죽으려고 자살하는 것과 같아.
난 담배라면 치를 떨 만큼 혐오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재빨리 그 녀석 앞으로 휙 담배를 뺏었다.
그리고는 전 학교에서 흡연부장이었던 나는 진지한 얼굴로 녀석에게 말했다.
“담배 피지 마. 주머니에 있는 것도 압수!”
난 손바닥을 내밀며 그 녀석에게 어서 내 놓으라고 눈짓을 줬다.
그러자 피식 웃는 한구름.
내가 보아왔던 예쁜 웃음이 아니라 약간 비웃는 웃음이었다.
난 그 모습에 순간 움찔했고, 그 녀석은 살짝 굳어진 얼굴로 나를 보며 묻는다.
“싫다면 어쩔 건데요?”
딱 보니 이 녀석 반항아 기질이 있는 것 같다.
겉모습부터 심상치 않고, 화려한데 지금의 눈빛을 보니
불량학생들을 많이 상대한 나로 써는 느껴졌다.
이 녀석 분명 학교에서 트러블메이커 일 듯 하다.
이 녀석은 보통 문제아들과는 달랐다.
한구름 마음속은 전혀 불량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맑고 예쁘다.
그런데 이 녀석은… 일부러 만들고 있다.
그렇게 만들고 있다.
자신을 까맣게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여전히 굳은 얼굴로 날 보고 있다.
난 그에 기죽지 않고, 씩 웃어주는 여유까지 보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놔. 담배가 얼마나 해로운 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알고 있으면 서 왜 피워. 죽고 싶어서 피는 거야?”
“어.”
그 말에 순간 내 심장이 멎은 듯 했다.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내 말에 서슴없이 대답하는 한구름.
차갑게 식은 그 녀석의 얼굴이 슬프게 느껴진다.
난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가 까맣게 되잖아. 그럼 무섭잖아.”
“폐가 까맣게 되면…”
“…….”
“심장도 까맣게 되잖아.”
한구름은 눈물에 푹 젖은 목소리로,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심장이 까매졌으면 좋겠어.”
지독히 강한 슬픔 냄새가 내 심장을 짓누른다.
떠나 갈 줄 모르는 그리움은…
지독히 강한 슬픔과, 지독히 미쳐버릴 아픔과, 지독히 쓴 눈물이 되어
첫댓글 감사히 잘봤습니다~
잘~감상~~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