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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을 이행하는 바울 18:18~22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아볼로를 변화시킨 복음의 지식 18:23~28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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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서원을 이행하려고 머리를 깎습니다. 그는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남기고, 자신은 가이사랴를 거쳐 수리아 안디옥으로 갑니다. 다시 바울은 이전에 복음 전한 곳을 다니며 제자들을 굳건하게 합니다. 에베소에서는 아볼로가 아굴라 부부를 통해 복음을 정확히 깨닫고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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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을 이행하는 바울 18:18~22
서원을 지키는 것은 믿음과 결단의 행위입니다. 바울은 아굴라 부부를 데리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향합니다. 그가 일찍이 서원한 것을 이행하기 위해 머리를 깎았는데, 이는 나실인의 서원을 뜻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별된 종이라는 내적 결단을 외적 행위로 나타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들러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변론합니다. 그는 심한 박해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힘씁니다. 바울은 아굴라 부부를 그곳에 남기고 배를 타고 떠나 가이사랴에 상륙합니다. 그는 먼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그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로 내려갑니다. 이로써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이 끝납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머리를 깎은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내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나 약속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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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를 변화시킨 복음의 지식 18:23~28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이 시작됩니다(주후 52~57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 복음을 전했던 지역들을 다시 방문해 제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믿음을 굳세게 합니다. 이는 바울의 전도 전략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에베소에 약 3년간 머물면서 말씀을 가르칩니다. 에베소에는 아볼로라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했습니다. 아볼로는 성경을 많이 알았지만, 온전한 지식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 가르침을 받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는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정확히 풀어 줍니다. 아볼로는 아가야(고린도)에 가서 성경을 가르쳐, 믿는 자들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복음에 대한 온전한 지식이 온전한 사역자를 만듭니다.
● 더 깊은 묵상
아볼로의 장점과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성경 말씀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갖도록 내게 도움을 준 이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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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을 버려야 받는 선물
친구에게 받은 선물을 뜯어보니 다이어트 책자였다고 생각해 보자. 다른 선물을 뜯었더니 이번에는 ‘이기심을 퇴치하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고 생각해 보자. 친구에게 “정말 고마워.”라고 말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나는 사실 뚱뚱하고 이기적이야.”라고 시인하는 모양새가 된다. 이처럼 어떤 선물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자신의 흠과 약점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심을 완전히 버려야만 받을 수 있다. 복음의 선물은 우리가 철저히 잃어버린 바 된 존재라서 내 힘과 노력으로 나를 구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 아들의 죽음이 아니고는 그 무엇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한다.
인생에서 진정한 선물을 받으려면 내가 죄인임을 시인해야 한다. 은혜로 구원받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 삶을 통제하는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키지 않더라도 아주 낮은 데로 내려가야 한다. 예수님은 밑바닥까지 내려와 우리를 사랑하셨다. 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가! 영적으로 거듭나고 그분의 위대한 사랑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결국 그분이 가신 길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 삶에 과분한 은혜로 비치는 이 빛이 없이는 스스로 구원하기는커녕 자신을 제대로 알 수조차 없다는 것, 이것이 복음의 근본 진리다.
팀 켈러의 예수, 예수 / 팀 켈러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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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장 20~21절
바울은 대적자가 많은 환경에서 사역했기에, 그를 사랑하고 아껴 주던 사람들은 그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더 크신 하나님 뜻 안에 그보다 작은 인간의 사랑을 귀속시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며 돌아오기도 합니다. 성도의 삶의 방향은 오직 하나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복음을 가슴에 새기고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 - 빙햄 헌터
오늘의 기도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고 전하는 일에 게을렀던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말하고, 신실하게 행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은혜가 날마다 더해져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453 예수 더 알기 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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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따라 우리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시고,
당신의 뜻을 따라 그 땅 가운데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주실 것임을 굳게 믿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가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심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들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부어 주실 것임을 믿고,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을 준비를 잘 해 나가도록 하자
- 항상 주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면서, 늘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나눔과 섬김을 실천해 나가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삶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자
8월4일 부천상동역과 동인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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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그의 인생 가운데 매우 중요한 일을 결심하고 나실인의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며 하나님 앞에 결단하는 시간을 가지길 소원합니다. 세상의 영향력에 쉽게 흔들렸던 우리의 모습을 뒤로하고 이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기쁨으로 참여하며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결단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아볼로와 같은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볼로는 배울 수 있는 마음을 가졌던 자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났을 때에 그것을 숨기거나, 자존심을 상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정확한 복음에 복종했던 자였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좋은 학생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가르치길 원하신다면 복음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음을 배워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지식적으로 습득하는 것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서로를 격려하며 배워갈 때에 교회에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18절을 보면 바울이 서원했었다는 사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전도여행중에 서원을 했었습니다. 그 서원은 주로 금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서원을 하였을까요? 그 서원을 왜 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고린도에 복음을 본격적으로 전도하기 시작하였을 때에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그 길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간구하였을 것입니다. 여하튼 서원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왜 약속을 합니까? 확실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하면서 자신이 스스로 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냅니다. 바울을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많이 겪었으니 그냥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재는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때로는 서원하며 때로는 간절히 기도하며 이루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꾸준히 하나님을 향하여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21절)고 바울이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부단히 하나님의 뜻에 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부단히 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구했기 때문에 그의 사역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가야 총독의 결정문 하나가 들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을 핍박하고자 하였을 때 아가야의 총독인 갈리오가 그것을 거부한 사건입니다. 이 거부는 그 총독이 기독교인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아주 큰 유익을 끼쳤습니다. 이 판결은 두고두고 그 지역의 판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복음 사역에 절대적 영향을 미칩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이 총독 갈리오의 마음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 전파를 위해 바울이 헌신하였을 때 하나님이 그 일도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서원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수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소망한다 하면서도 노력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결코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도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십시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 말하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집에 있는 애완견에 신경을 쓰며 수고하는 것보다 더 작은 신경과 마음을 쓰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애완견에 대한 관심보다 못한 그 노력을 진짜 노력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일어나야 합니다. 마음으로만 '가까이 가야지' 하는 것은 실재로는 위장일뿐 진짜 마음도 아닙니다. 가까이 가기를 원한다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어찌 해야 할지를 연구하며 할수 있는 발걸음을 한걸음씩이라도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고서는 갈 수 없습니다. 수고하지 않고, 찾지 않고는 얻을 수 없습니다. 공짜는 좋은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깨어 있어 수고하고 헌신하며 하나님께 움직여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진리를 알기 원하는 것이니 그것에 조금이라도 합당한 관심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찾아서 위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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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바울과 아굴라 부부와 그리고 아볼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 아볼로에 관한 설명으로, 일찍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열심히 전도하며 예수님에 관해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그가 어떤 경로로 주님을 영접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담대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회당은 모세오경과 선지서를 중심으로 율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지역의 유대인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 기독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마치 휘발유를 갖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흡사합니다. 율법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유대교의 하나님을 모독했다가는 당장 돌 세례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울과 버금가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 브리스길라 부부에 관한 설명으로, 회당에서 아볼로가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가슴 조이며 지켜 보고 있다가 집으로 데리고 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가르쳐주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도가 무엇인지 본문엔 나오지 않지만, 전후 문맥을 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는 것으로, 그것을 미루어 보면 침례를 통한 회개와 죄 용서의 차원을 넘은 예수가 모든 구약 성경이 가리키는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말씀으로, 구약 성경에 능통한 그였기에 유대인들의 입을 다물게 한 것입니다, 그 배후에 아름다운 부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남을 돕는 뛰어난 모델입니다.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 바울의 진가가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 시작되었다는 말로, 2차 전도여행이 끝나자마자 잠깐 있다가 곧장 전도여행을 출발한 것입니다. 휴식을 취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안식년을 가졌다는 말도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의 복음을 위해 또 달려갈 길을 간 것입니다. 지칠 줄 모르는 철의 사람 같습니다. 그리고 맛 있는 것 먹으며 지친 심신을 달래며 쉬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 속에서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명자의 본입니다.
세상에 겁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남을 돕는 것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람이 곧게 세워지고 하나님나라가 확장된다는 사실입니다. 공치사하고 싶고, 놀고 싶고, 안주하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뛰어넘어야 합니다. 경주를 마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명자는 쉴 수 없습니다. 안식은 하늘나라에서 하는 것입니다. 아볼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바울을 본받아 살면 좋겠습니다. 담대하게 사십시다.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사십시다. 불꽃같이 타오르며 사십시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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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꾼
고린도에서 바울은 고군분투를 하였습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을 우리는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18절)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 서원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원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서원이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간구하면서 그것을 위해 나 자신이 기간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먼저 헌신하는 것이며, 또한 한나처럼 그 간구가 이루어졌을 때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원이란 하나님을 향하여 일방적으로 간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나 자신을 낮추며 스스로 삼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그것을 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거룩한 약속을 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고린도에 복음이 전파되기를 서원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에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또한 바울이라는 거룩한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바울을 일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홀로 다 하지 않으시고 때로는 그 일꾼을 사용하십니다. 그 일꾼의 거룩한 헌신을 사용하십니다. 그 일꾼의 서원을 사용하십니다. 오늘날 교회의 일꾼이 자신의 헌신과 희생없이 일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지 못합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위해 어떤 희생을 하고 있습니까? 서원을 해 본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서원하며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 치는 바울의 모습을 묵상해 보십시오.
홀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작은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더 감사하십시오. 정직한 헌신(또하나의 욕심이 동반된 헌신이 아니라. 정직한 헌신은 승패에 개의치 않음. 헌신은 그 자체로 이미 받아진 것이기에)을 통해 우리의 작은 몸부림이 하나님의 역사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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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에베소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이때 에베소에 아볼로가 왔는데, 일찍부터 주의 도를 배워서 앎으로 회당에서 열심으로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을 풀어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까지만 알 뿐이었습니다 그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습니다
아볼로는 이미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지만 교만하지 않고 주의 도를 더욱 배우려는 겸손으로 그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많은 성경지식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열쇠가 더해지니, 더욱 강력하고 풍성하게 그리스도를 증언하여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줄 수 있었습니다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행18:27~28)
예수님은 항상 성경에 가장 큰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기록하였으되"(막7:6),
"기록된 바와 같이"(막9:13),
"기록하였거니와"(막10:5),
"기록된 대로"(막14:21)
그러므로 성경 대로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2:8)
왜냐하면 오직 성경이 우리의 믿음과 구원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오직 성경이 능력의 원천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만약 누가 힘을 잃었다면 분명 성경에서 멀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지식의 열쇠를 가진 자들이 천국문을 가로막고 있는 때입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11:52)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성경을 사랑하여, 이미 안다는 교만을 버리고,
오직 날마다 묵상하며 더욱 연구하여 더 많이 깨닫기 원합니다
성경의 기록된 말씀보다 더 확실하고 능력 있는 말씀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전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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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은 세 가지 주제가 너무 선명합니다.
첫 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둘째는 아볼로, 셋째는 에베소에 임한 성령입니다. 사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이야기는 주제로 살피기에는 자료가 부족해 보입니다. 어쨌든 아볼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헌신
행 18:2, 18, 26절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부리스길라아 아굴라 부부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있어서 두드러지는 점은 항상 이들의 이름이 언급될 때는 함께 언급이 된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서 바늘 가는데 실이 있었던 것이지요. 무슨 당연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씀하실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이야기입니다. 오늘날 부부가 바늘 가는데 실가는 관계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날 부부는 서로 다른 직장에서 서로 다른 가계부를 꾸리며 독립된 개체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몸이라기보다는 두 몸인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행18:2절에 의하면 그들이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 이사 온 부부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이 시작되는 1절 이하를 보십시오.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1,2절).
바울은 고린도에 갔을 때 아굴라 부부를 만납니다. 이 때 바울은 상당한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고 있을 즈음이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유대인 말살 정책을 폈던 로마의 황제 가운데 한사람인 글라우디오 때문에 정든 고향과 집을 버리고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적어도 네 번 이상 주거지를 옮겨 다녔습니다. 본도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고린도로,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에베소에서 다시 로마로 갔던 것입니다. 한 번만 이사를 해도 힘들고 지겨운데, 이 정도로 주거지를 옮기면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경험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럴수록 더욱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초대 교회의 한 문서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우리 중에 가장 으뜸 되는 부부의 이상형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신약성경에 이 부부에 대한 언급이 여섯 번 기록되는데, 그 중 네 번은 부인의 이름이 먼저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보통 남편의 이름을 먼저 기록하는 법인데, 부인의 이름이 먼저 나온 것은 아마도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활동적이고 헌신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활동적인 여인의 헌신을 볼 때, 우리는 그 여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도 부인의 활동을 이해하고 함께 삶을 나누었던 남편의 이해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조의 공이 컸던 그런 부부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아굴라가 아내의 그런 모습 때문에 심각한 열등감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내를 세워주고 도와주고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가 그냥 편하게만 부부 생활을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번의 이사는 그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직장 따라 옮긴 것이 아닙니다. 박해와 어려움 가운데서 옮겨 다녔습니다. 이런 상황가운데서도 아굴라는 아내를 잘 도와주었고 부부 관계에 이상이 없었습니다. 견고한 신뢰와 사랑으로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을 지식적으로 알았던 것 같지 않습니다. 이들은 성경적인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섬기는 것이 진정한 섬김인가를 알았던 듯이 보입니다. 그들은 아볼로라는 청년을 불러 함께 말씀의 교제를 나누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화될 누 있는 삶의 위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아볼로가 온전한 설교자가 되어 활동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27-28절에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놀라운 모습은 복음을 향한 그들의 끊임없는 헌신입니다. 사도행전에는 하나님 나라의 꿈이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뛰고 일하고 호흡했습니다. 그들이 교회 앞에 충성했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 조직에 헌신했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였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들은 이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도구였기 때문에, 초대 교회 성도들은 단순히 교회 조직이나 인간에 대한 아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주께서 세우신 교회와 그 지도자들을 도우며 세계 선교에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굴라 부부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그리고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주님의 사역자들을 철저하게 섬겨야 한다는 의식이 깊이 박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8절 이하를 보면 바울이 1년 6개월 이상 고린도에서 사역한 후에 그 도시를 떠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18,19절).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갈 때 누가 함께 가고 있습니까? 아굴라 부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었습니다. 아예 이사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한다고 하니까 이들 부부는 에베소의 복음화를 위해서 함께 가겠다고 자처하고 사업을 정리한 것입니다. 요즘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까? 저는 이것이 지도자를 향한 이들의 신뢰였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을 향한 이들의 헌신이요, 신뢰였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서 한동안 사역한 후에 에베소를 떠나갑니다.
이제 아굴라 부부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고전16:19절에 보면 바울이 로마로부터 고린도 교회를 항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主)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그럽니다.
이때 아굴라 부부는 다시 로마로 이사한 후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은 후에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의 복음화를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로마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교회를 일구어 내었습니다. 그들이 가정을 Open하고 가정 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뒷날 사도 바울은 이들의 헌신을 이렇게 말합니다. 롬16:3절 이하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에게 문안하라” 바울은 지금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함께 복음을 위해서 신실하게 일하는 나의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가. "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4절).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복음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을 내어놓았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들이 알고 있는 복음에 헌신했다는 말입니다. 부부가 같은 마음이 되어서 했다는 말입니다.
저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에게서 세 가지를 보았습니다. 첫째는 부부 상호간의 헌신입니다. 어려움의 터널을 기꺼이 함께 걸어가는 부부의 따뜻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말씀에 대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원리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이 이들의 가정을 해친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했습니다. 어려움을 견딜 때에 힘을 주었습니다.
세 번째는 복음 사역을 위해서, 자신들이 신뢰하는 지도자를 위해서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복음에 헌신되어 살아갔던 이들 부부의 모습을 본받는 가정들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볼로(행 18:24-28절)
아볼로는 바로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에 익숙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가까이하면서 자랐습니다. 헬라철학을 익숙하게 배워서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아볼로에 대해서 부연하기를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웠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입니다. 성경도 익숙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기 전에도 구약 성경의 메시아사상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면서 가르쳤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것은 충분히 주목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열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열심 있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열심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열심이 있는 사람은 빨리 깨닫습니다. 열심이 있는 사람은 성장도 빠릅니다. 열심이 있는 사람은 주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설교자로서 아볼로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메시지에 힘이 있었습니다. 그의 많은 학문과 성경지식이 강당에서 그 열심과 함께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볼로는 아직 복음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있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볼로가 그것을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많이 배웠고 열심도 있고 좋은 청년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빠트린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자, 그런데 이런 아볼로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볼로가 비록 요한의 세례까지만 알지언정 열정을 다해서 설교하는 현장에 누가 있었습니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울에게 1년 6개월을 양육 받은 사람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무슨 신학 교육을 받을 적도 없고 학문이 대단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천막 업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요. 이 놀라운 사실을 보십시오. 이들이 아볼로의 설교를 듣는 동안에 아볼로의 문제점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아 이 분은 아직 복음을 제대로 모르는구나 하는 것이 깨달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르게 배운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바르게 아는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이들 부부가 시각이 삐딱해서 아볼로의 설교를 들으면서 비판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저절로 듣다보니까 문제가 발견된 것입니다. 아직 세례 요한에게 머물러 있구나. 성령세례를 잘 모르는구나. 참된 복음까지 나아가지 못했구나 하는 것들이 깨달아졌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앎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들의 앎이 참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들의 태도에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그것을 가지고 수군수군 하거나 나쁜 방향으로 끌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심사숙고한 끝에 아볼로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마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누면서 이야기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조용히 아볼로를 불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아볼로의 잘못된 신학을 교정해 주었습니다. 과장해서 아볼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당신 그런 것도 모르면서 설교 하십니까 라고 힐난하지 않았습니다. 그 부분만 세워지면 누구보다 훌륭한 설교자, 목사가 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아주 겸손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묵상은 우리가 이런 상황에 노출될 때 어떤 삶의 자세를 취하면서 살았는지, 또 살아갈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배움의 많고 적음과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 즉 내 한계를 바르게 인식하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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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은 여러 날을 더 머무른 뒤에, 고린도 신도들과 작별하고, 떠났습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시리아로 떠났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와 동행하였습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동역자로 얻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헌신적으로 바울을 동역한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는 고린도에서도 자신의 집에서 바울과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에베소로 이사를 가는 것도 바울과 동역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해 잠시 전도하고 안디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아굴라 부부에게 에베소 사역을 부탁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서도 자신의 집을 오픈해서 섬겼습니다. 장차 바울이 에베소를 개척할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에베소를 떠나는 바울)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그 일행은 에베소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두 사람을 에베소에 떼어놓았습니다. 그들이 에베소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나중에 아볼로의 성경 선생이 됩니다. 아볼로는 변화되어 고린도 교회를 사역합니다. 바울 자기 혼자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 사람과 토론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좀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하였으나, 바울은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고 작별 인사를 한 뒤에,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났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하였습니다. 바울은 삼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 다시 오게 됩니다.
(삼차전도 여행을 떠나는 바울)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내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문안한 뒤에, 안디옥으로 내려갔습니다. 바울은 얼마 동안 거기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동역자들과 교제하고 힘을 얻었습니다.
바울은 다시 안디옥을 떠나, 갈라디아 지방과 부르기아 지방을 차례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든 성도를 굳세게 하였습니다. 브르기아는 박토’(薄土)란 뜻입니다. 소아시아 중부 내륙 리디아 동쪽, 비시디아 북쪽에 위치한 로마의 속주. 일찍부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거주했으며, 이들 가운데 오순절 성령 강림시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성령 강림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3차 선교여행 때 이 지역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한 바 있습니다. 주로 일이차 전도여행한 곳을 다니며 제자들을 굳게 하였습니다. 바울의 삼차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새신자에게도 복음을 전하였지만 제자양성도 힘을 썼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아는 아볼로)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런데 성경의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나온 알렉산드리아 태생으로, 아볼로라는 유대 사람이 에베소에 왔습니다. 그는 말을 잘 하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주의 도를 배워서 알고 있었고, 열심히 예수에 관한 일을 말하며, 정확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하였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장차 성령의 세례주시고 심판하시는 분으로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회개는 도덕적인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거듭남이 없었습니다. 그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구약의 사람들과 같은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요한보다 크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볼로에게 그리스도를 전한 브리스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회당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의 메시지를 듣고 거듭나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삶을 잘 전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지에 핵심인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없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에 비하여 학식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죄사함의 복음, 은혜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서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다시 오셔서 왕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아볼로는 겸손하였습니다.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전임사역자든 평신도이든 복음을 아는 자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굴라 부부의 대표적인 전도 열매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라는 유대인입니다. 그 후에 아굴라 부부는 로마로 가서 바울의 로마 선교여행의 길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에베소로 와서 디모데를 동역했습니다. 이렇게 아굴라 부부는 바울과 함께 동역하거나 부탁한 사역을 위해 고린도, 에베소, 로마(롬16:3), 에베소(딤후4:19)를 돌며 헌신적인 동역자로 살았습니다. 바울은 아굴라부부가 목까지도 내놓는 동역을 했다고 칭찬했습니다(롬16:4).
(고린도에 가서 예수는 그리스도라 전하는 아볼로)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아볼로는 복음을 아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가 있는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였습니다. 형제들이 아볼로를 격려하여 보냈습니다. 고린도의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아볼로를 영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에 가서 예수님의 은헤를 힘입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미 믿은 자들에게 복음에 기초한 성경을 가르쳐서 큰 유익을 주었습니다. 아볼로는 성경으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아볼로의 메시지는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공중 앞에서 힘입게 말씀을 전하여 유대인들을 설득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보고 내가 고린도에 나무를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복음을 알았다면 성경에 박식해야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기초하여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에 기초하여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전하는 삶)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고린도와 같이 인본적이고 물질적이고 도덕적으로 심히 타락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면서 복음역사를 섬기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볼 때 결코 시대 환경이 문제가 아님을 보게 됩니다.
이 시대는 고린도와 같이 힘든 환경이지만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붙잡혀서 잠잠하지 않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할 때 주님께서 친히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중풍병자를 낫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그리스도는 귀신을 쫓아냅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해야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한 몸으로 교회를 섬긴 부부
“온전한 지식에 기초한 온전한 사역자” 반태효 목사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많은 고난 가운데 마치며 큰 열매를 맺습니다.
특히 고린도에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사역을 마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수리아로 떠납니다.
바울은 갠그리아에서 머리를 깎고 서원을 합니다.
바울과 일행은 수리아로 떠나기에 앞서 에베소에 머물며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며 유대인들과 변론을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바울 일행에게 오래 있기를 청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작별인사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의 가이사랴에 도착해 선교 보고를 하고 안부를 물은 후 안디옥으로 내려갑니다.
바울 일행은 잠시 안디옥에 머물다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형제를 돌보며 모든 제자를 굳건히 합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를 섬기며 주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가는 주의 제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유대인이 에베소에 도착합니다.
그는 일찍부터 주의 도를 배워서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성령세례를 체험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세상을 통치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열심히 예수님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를 데려다가 일대일로 하나님의 도를 정확히 풀어 가르쳐 복음사역자로 거듭나게 합니다.
아볼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울의 손에 미치지 못하는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고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게 합니다.
아볼로는 고린도의 아가야에 도착하여 많은 믿는 자에게 큰 유익을 주고 은혜를 베풉니다.
오늘 하루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복음으로 무장된 사역자로 쓰임 받으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떠날 때가 있고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사역을 잘 마치고 안디옥 교회로 가는 길에
에베소에 들려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아볼로를 준비시켜서 바울의 빈자리를 채우게 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볼로도 복음의 부족함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평신도를 통해서
복음의 핵심을 듣게 하신 하나님!
우리가 아볼로는 되지 못할지라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은
복음에 무장된 평신도 사역자가 되게 하여 주셔서
아버지 하나님! 복음의 일꾼 복음의 동역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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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6개월 동안의 고린도 사역을 정리하고 고린도를 반환점으로
2차 선교여행의 정리가 나온다.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18)
배를 타고 수리아로 떠나간다.(18)
겐그레아에서 바울이 머리를 깎았다.(18)
다시 에베소로 돌아온다.(19)
오늘날로 말하자면 그리스에서 터키로 돌아가는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고린도에서 에베소까지 동행을 한다.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과 변론한다.(19)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이스라엘의 북쪽인 가이사랴에 상륙한다.(22)
예루살렘 교회에 올라가서 선교 보고를 한다.(22)
예루살렘교회에서 다시 안디옥으로 내려간다.(22)
안디옥에서 출발한 제2차 전도여행이 안디옥에 돌아 옴으로 끝이난다.(22)
놀랍게도 얼마 있다가 떠나(23)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한다.(23)
바울은 가는 곳 마다 먼저 제자들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것 같다.
3차 전도 여행의 출발이다.
환란과 핍박과 매맞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없이는 못사는 한 남자 바울
이런 열정과 비전과 불타는 사명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한 자리에 머무르기 원하고 안주하길 원하는데
그래서 직장도 한번 안 옮겨보고 집도 한번 안옮겨보고 사는데
바울은 너무나 쉽게 자주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닌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그 만큼 수고를 했으면 좀 쉬어도 될 것 같은데
바울은 얼마있다가 바로 3차 전도 여행을 떠난다.
아마 얼마 머무른 것도 3차 전도여행을 위한 준비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환락의 도시 고린도를 반환점으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고,
에베소에서 유대인들과 변론을 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헤어져서,
배를 타고 가이사랴로 상륙해서, 예루살렘에 선교보고를 하고,
안디옥으로 돌아 옴으로 2차 선교 여행을 마쳤다.
불과 얼마 있다가 바울은 다시 제 3차 선교 여행을 떠났다.
계속해서 바울 중심의 1차 2차 3차 선교여행에 대한 말씀 중에
오늘은 바울 사역과 관계없이 독특한 한 사람이 소개 된다.
바로 아볼로 라고 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소개하는 아볼로라는 인물은 어떤 인물인가?
1.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24)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요 학문의 중심지였다.
2. 유대인이라고 소개한다.(24)
아마도 영적 믿음의 유산이 있었던 자 이다.
3. 학문이 많은 사람이다.(24)
학문의 중심지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라고 다 학문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대학자였는지 모르겠다.
4. 성경에 능한 자이다.(24)
유대인이라고 다 성경에 능통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마도 구약학 박사학위가 몇개 정도는 되었나 보다.
5. 일찍 주의 도를 배웠다.(25)
유대인이였으니 가정에서 주의 말씀을 배웠고
신학교에서 말씀을 배웠는지도 모르겟다.
6.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친다.(25)
열정이 있었고 설교를 하고 좋은 선생님인지도 모르겠다.
아볼로라는 사람 참 매력적이다.
그러나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
7.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다.(25)
요한의 세례만 안다는 의미가 성령의 세례는 모른다는 의미로 들린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던 자 세례요한이 선포하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는 말씀만 잘 이해했나 보다.
메시야가 오시기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가르침을 가르쳤는지도 모르겟다.
오순절 이후에 성령님이 오셔서 성령세례가 임했음을 모르는 것 같다.
아볼로가 회당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잘 듣고 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듣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다(26)
조용히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른다.(26) 할렐루야.
물론 사도 바울의 사역과 생업의 동업자요 동역자이기 때문에 존경 스럽지만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참 돋보인다.
바로 이점 때문에 내가 이 부부를 너무나 좋아하게 된다.
회당에서 공개적으로 예수의 도를 반박하면서 전하지 않았다.
조용히 집으로 불러다가 식사 대접을 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전했다.
이런 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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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여시고
그 마르지 않는 샘물의 은혜로 부어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성을 쌓아가는
거룩한 제자로 걸어가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기름 부어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의 위협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겸손과 순종으로 나아가도록 손잡아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