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일 목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47-53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하느님의 그물은 엉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렸을 때 작은 삼태기 그물로 송사리를 잡고 새우도 잡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오염된 물에서 고기가 살지 않으니 잡을 수도 없고 설령 잡히더라도 기형으로 허리가 굽은 고기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물속에 많은 쓰레기들이 한꺼번에 쓸려 내려오고 오염된 물을 하수구에 함부로 버려서 심한 악취에 이제 영영 고기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고기 잡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니 안타까운 마음에 스치는 생각입니다.
'천망회회 소이불루실'(天網恢恢 疏而不漏失) 이라는 말이 있지요. ‘하늘나라의 그물은 엉성한 것 같으나 넓고 또 넓어서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잡아낸다.’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내가 하는 것은 은밀하여 하느님도 모르고, 이 세상에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늘나라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이 없고, 하느님께서 살피시지 않는 것이 없으시니 하느님께서 모르실리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그물은 일반적으로 몇 가지 이름으로 나뉘지만 오늘 말씀하시는 것을 중심으로 복음 선교와 교회를 상징하는 그물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1. 투망(投網) 그물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레아 호수에서 가장 많이 던졌을 그물일 것입니다. 고기가 있음직한 곳에 밑에 추를 달아서 원추모양으로 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밑바닥부터 잡아 올리는 그물을 말합니다. 이 투망의 형식은 피라미드식 선교로 고기를 잡아 올리시는 분은 주님과 주님의 제자들이고, 밑바닥에서부터 작은 범위로 부터 차곡차곡 그물 안의 모여 고기를 완전히 소탕하는 방식입니다.
2. 안강망(鮟鱇網) 그물입니다.
'안강'(鮟鱇)이란 메기의 아귀를 말하는 것으로 그물의 모양이 입을 크게 벌린 아귀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그물이 바다에서 크게 입을 벌리고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어서 고기가 그물 속으로 들어가면 그물의 꼬리부분에서 모두 모여 잡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방법은 교회에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모이게 하는 선교방법이지요. 고기가 많이 잡히는 서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해서 이 안강망 그물이 아주 적당합니다.
3. 예인망(曳引網) 그물입니다.
'예인'(曳引)이란 그물을 적당한 깊이로 띄어 놓고 끌고 가면서 고기를 잡는 방법입니다. 어느 일정한 깊이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그물코의 크기에 따라서 끌고 가면서 잡아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배가 두 척이나 세 척이 그물을 끌고 가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의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는 특정한 집단을 위한 선교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군인의 선교나 특정 집단의 선교 방법은 이와 같이 하면 아주 적합할 것입니다.
4. 저인망(底引網) 그물입니다.
예인망과 같은 방법이지만 깊은 바다 밑을 공략하는 방법입니다. 대부분 큰 고기를 잡으려고 하거나 깊은 곳에 서식하는 감춰진 고기를 잡기 위해서 사용되며 싹쓸이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도 선교를 세세하게 그렇게 싹쓸이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기를 투망으로 잡거나 낚시를 하는 방법을 권고하셨는지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싹쓸이를 하듯 고기를 잡으면 프랑크톤까지 잡게 되거나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잡지 않아도 될 즉 다시 버려야 할 것들도 모두 잡히기 때문입니다.
5. 촉고(觸錮) 또는 촉망(觸網)이라고 하는 그물입니다.
그물의 실이 아주 가늘고 질기면서도 느슨하게 그물이 쳐져 있어서 고기가 그물에 걸리기만 하면 빠져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도 못하는 그물입니다. 게나 가재뿐만 아니라 비늘이 큰 생선을 잡을 때 사용합니다. 이 그물과 같은 방법의 선교는 아주 느슨하게 보이지만 한번 빠져들어 오면 나올 수 없는 철저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6. 통발이라고 하는 물고기 잡는 것도 있습니다.
흔히 대나무나 싸리나무와 같은 것으로 엮어 만들기도 하지만 그물로 만들기도 합니다. 어항으로 잡는 방법과 같은 그물이지요.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아주 안일한 방법이랍니다.
오늘 주님은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을 하늘나라에 비유하십니다. 어떻게 고기를 잡을 것인지 깊은 바다에 어떤 그물을 칠 것인지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8,1-6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일어나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너에게 내 말을 들려주겠다.”
3 그래서 내가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갔더니, 옹기장이가 물레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4 옹기장이는 진흙을 손으로 빚어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하였다.
5 그때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6 “이스라엘 집안아,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축일8월 1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Alphonsus Mary de Liguori)
신분 : 설립자, 주교, 교회학자
활동 연도 : 1696-1787년
같은 이름 : 알폰수스, 알퐁소, 알퐁수스
성 알폰수스 마리아 데 리구오리(Alfonsus Maria de Liguori, 또는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는 1696년 9월 27일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근교 마리아넬라(Marianella)에서 주세페(Giuseppe de Liguori)와 안나 카발리에리(Anna Cavalieri) 사이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나폴리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다. 아버지 주세페는 나폴리 공국의 해군이었으며 어머니는 트로야(Troja)의 카발리에리 주교의 동생으로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였던 성 알폰수스는 불과 16세 나이로 나폴리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아 변호사가 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결코 패소하지 않는 변호사로 널리 알려졌다. 1723년 토스카나(Toscana) 대공과 어떤 공작 사이에 큰 돈이 걸린 소송이 벌어졌는데, 이 소송에 참여했던 성 알폰수스는 어떤 중요한 문서를 잘못 해석하고 서명한 사실로 패소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변호사로서의 자격이 상실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며 기도하던 중 1723년 8월 28일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찾아갔다가 신비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성 알폰수스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1726년 12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2년 정도 나폴리 근방을 돌며 선교사로 봉직하였고, 1729년에는 나폴리의 중국 신학원에서 활동했다.
1730년 친구인 토마스 팔코이아(Thomas Falcoia)가 스칼라(Scala) 지방에 있는 카스텔라마레 교구의 주교가 되자, 성 알폰수스는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스칼라에서 수녀들의 피정을 지도할 때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를 만났고, 새로운 수도회에 대한 그녀의 환시를 확신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팔코이아 주교가 로마(Roma)에서 경험한 환시와 일치하였다. 그래서 1731년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환시에서 받은 규칙을 따라 여자 구속주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스칼라로 이주하여 팔코이아 주교, 파가노 신부와 다른 몇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남자 구속주회(Redemptoris)를 설립하였다.
이 회는 공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주님의 말씀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성직 수도회였다. 본부는 스칼라 수녀회의 숙박소를 이용하였으며 명예원장으로 팔코이아 주교를 모셨다. 그런데 초창기에 중대한 알력이 일어나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떠나가서 포치아에 따로 수도원을 설립하고, 또 1733년에는 쿠르시오(Curtius)라는 수도자 한 명만 남고 모든 회원들이 다른 회를 설립하여 떠났다.
하지만 성 알폰수스는 흔들리지 않고 회를 지키면서 다른 회원들을 맞아 1734년에 빌라 데글리 스키아비에서 두 번째 창립을 맞이하였다. 그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수도회를 발전시켜 나갔다. 마침내 구속주회는 1749년 2월 25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같은 해에 열린 총회에서 수도회 종신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다음 해에 여자 구속주회도 교황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왕권주의를 내세워 수도회들을 적대시하던 왕과 타누치(Tanucci) 후작 때문에 나폴리 왕국의 인가를 받지 못하였다. 1752년 왕은 교황령과 시칠리아(Sicilia)만을 사목 활동 영역으로 한정한다는 조건으로 인가를 해주었다.
이 기간 동안 성 알폰수스는 인근 지역을 다니면서 설교 사도직을 열렬히 수행하였으며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였다. 그러던 중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는 1762년 6월 20일 산타 아가타 데이 고티(Santa Agata dei Goti)라는 나폴리의 한 작은 교구장 주교로 알폰수스를 임명하였다. 그는 이 교구를 돌보는 13년 동안 성직자, 수도원 그리고 전 교구의 혁신을 계획하였으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열정적 활동으로 중병을 얻었고, 또 죽을 때까지 괴롭혀온 류머티즘으로 마비될 때도 많았기 때문에 1776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의 허락을 받고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주교직을 사임한 후에도 그는 구속주회의 정립과 운영을 위해 주력하였다. 하지만 나폴리 왕국의 당국자들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예수회가 박해를 받은 이후 구속주회도 위험에 처하자, 성 알폰수스는 중개자를 내세워 당국자들과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왕이 승인한 규칙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가 수도회를 인가한 교서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므로 늘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교회와 나폴리 왕국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교황령 외의 지역에 있던 공동체들이 성 알폰수스의 관할권을 벗어나게 됨으로써 회는 두 계열로 분열되었다. 성 알폰수스는 둘로 분열된 수도회가 다시 합쳐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1787년 8월 1일 살레르노(Salerno)에서 선종하였다.
구속주회는 성 알폰수스가 선종한 직후 다시 하나로 재건되어 발전하였다. 성 알폰수스는 윤리, 신학, 수학에 관한 놀라운 저서들을 남겼다. 특히 그의 윤리신학은 얀세니즘(Jansenism)과 반성직주의를 극복하면서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한 저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신심서에서 가장 돋보이는 책은 “마리아의 영광”이다. 그는 1816년 9월 15일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871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그 후 1839년 5월 26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50년 4월 26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고해사제들과 윤리 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