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를 직역하면 중국으로부터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입성한곳은 고구려로써 제 17대 소수림왕 2년, 서기로는 372년이다. 그 해 여름에 중국 대륙의 진나라왕 부견이 사신을 보내어 왔을 때 그 사신과 함께 승려 순도가 동행하여 불상과 불경을 함께 보내왔으며 그 후 2년 뒤인 소수림왕 4년에는 같은 진나라 승려 아도가 고구려에 파견되어 왔다. 이에 고구려에서는 다음해 봄 2월에 성문사와 이불란사 두 절을 지어 성문사에는 순도스님이 머물게하고 이불란사에는 아도스님이 있게 하여 포교케 하였으니 이를 일컬어 해동불교의 시초라 하고 이 두 사찰이 한국불교사원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소수림왕 2년을 고구려 불교의 시작점으로 보는 것은 국가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불교를 믿을 수 있도록 표방하여 포교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공식적인 불교인정에 따라 불교는 활발한 수용과 개척에 국가의 공지가 큰 도움이 되어 왔으며 제 18때 고국 양왕은 불교를 믿고 또한 그 진리를 받아들여 복을 얻으라는 교지를 내림으로써 전 국민들은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한 방편으로 불교를 믿고 따르게 된다.
고구려가 정식으로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서기 372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백성들 사이에서는 민간종교 활동으로 은밀함 속에 중국불교와의 접촉을 비밀리 약조하여 실행해 왔었다.
중국의 고승 지둔 (314-366)은 고구려 도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순도는 중국의 강남사람이므로 불법에 대한 연구 및 포교에 있어 추앙 받을 만한 인물이다" 라고 높이 칭찬하였다.
지둔은 서기 366년에 열반했는데 이 연대는 순도가 처음으로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372년보다 6년이 앞선 일이었다. 고구려 도인을 고구려에서 강남으로 간 유학승려로 추정한다면 중국 불교에서 처음으로 고구려에 포교하기 위해 입성한 불교계의 성직자는 바로 순도일 것이다.
당시 중국 황하 유역에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전란이 일어나 흥망이 함께 교차하던 아주 어지러웠던 시대이다.
그 후 고구려 불교가 쇠퇴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나라가 기울고 국력이 쇠퇴하면서 배불정책도 함께 시행되어 불교는 급격히 국가에서 도외시 되었다.
당나라시대에는 도교가 날로 성하고 그 한 갈래인 중국의 민속신앙인 오두미두(五斗米頭)가 백성들에게 퍼져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급증하였다. 이렇듯 불교가 국가에서는 배불정책으로 외면당하고 국민들에게는 신앙의 분열로 인하여 소외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고승과 불자들이 신라나 일본국으로 망명하여 불교을 전파하게 된다. 일본불교의 형성도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