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이 끊어진 채로 (시2-129)
2026년 5월 27일 (수요일)
찬양 : 말씀앞에서
본문 : 시 129:1-8
☞ https://youtu.be/azuOcQOmWx4?si=ctYjjecm3QQSZsOe
어제 사단법인 라마나욧선교회 정기 이사회가 있었다. 바쁜 시간에 소중한 마음으로 달려오신 이사님과 감사님께 진심의 감사를 드린다. 사단법인으로 출발한 라마나욧선교회의 첫 이사회 첫 번째 안건은 대표의 교체였다.
어제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목욕하고 이발하고 나의 마지막 사명의 자리를 준비하였다. 나는 나의 사퇴 의사를 모두가 받아줄 것으로 예상했고, 라마나욧선교회에서의 마지막 자리로 여겨 신발도 주일에 신는 신발을 신었다.
그런데 이사회에서 이사님들의 반응은 내 생각과 달랐다. 차기 이사장의 대안이 있을 때까지 조금 더 하라는 결정이다.
이사회를 통한 이사님들의 소중한 결정이기에 무조건 수용해야만 한다. 또한 대안을 세우지 못하고 사퇴하는 내게 차기 이사장이 세워질 때까지 준비해 달라는 요청이라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난 난감하다.
역동성을 잃고 고인 물이 되어버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제 밤새 홀로 잠을 이룰 수 없어 방황했다.
주님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 시편 129편은 이스라엘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고난의 세월을 회상하면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0번째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1-2절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여기서 '어릴 때'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애굽의 종노릇 하던 때’를 뜻한다. 이후 이스라엘은 애굽, 앗수르, 바벨론, 그리고 지금의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세상 권력 아래 끊임없이 괴롭힘과 압제를 당해왔다.
시인은 여기서 매우 놀라운 고백을 외친다.
<그들이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그 강력하여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세상 제국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이러저리 휘둘리며 끝날 것 같았는데 여전히 살아남아 성전에 올라가 예배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승리의 선언이다.
그 과정을 시인은 이렇게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3-5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예전 농사지을 때 쟁기를 가지고 단단한 땅을 갈아엎어 고랑을 내었던 장면을 가지고 그렇게 내 등을 갈아 고랑을 내었다고 한다.
이 말은 대적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채찍으로 무자비하게 내리쳐서, 그들의 등 가죽이 마치 밭고랑처럼 길고 깊게 찢어지는 비참한 고난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비참한 고난의 현실을 겪지만, 그러나 여호와는 의로우사 이 고난을 가져오는 악인의 줄을 끊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히려 이들이 수치를 당해 물러갈 것이라 선포하며 예배자로 나아간다.
여기서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다. 소와 쟁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악인의 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히브리어 <아보트>라는 이 줄은 쟁기와 황소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가죽끈이다. 아무리 소의 힘이 세고 쟁기가 날카로워도 그 둘을 연결하는 가죽끈을 끊으면 더 이상 밭을 갈 수 없다.
오늘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나는 지금 하나님의 뜻을 향해 순종하여 걷는 길이라 믿었기에 달려왔는데
현실에서 거절되고 나니 참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런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10번째 시편 129편은 바로 이 부분을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세상의 압제와 나를 흔드는 난리들이 아무리 기고만장해 보여도,
그들이 휘두르는 지팡이와 쟁기는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 허용 아래 있을 뿐이며,
주님이 "여기까지다" 하시고 줄을 끊으시는 순간 아무것도 아님을 본문은 말한다.
세상에 갇혀버린 우리가 성전을 향해 올라가며 이 노래를 부르며, 우리의 시선을 확장하게 한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내가 생각한 하나님의 뜻이란 것도 결코 전부가 될 수 없다.
삶이란 자리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순간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달려간 그 길에서
생각지 못한 일을 겪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전을 향해 올라가 그분의 보좌 앞에 설 때 우리의 시선이 확장되어 크신 하나님의 뜻과 결말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순간 얼마나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힘겨웠을까? 그럼에도 이 노래를 부르며 올라갔을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국을 묵상해 본다.
나도 오늘 이 자리에 서기가 싫었다. 밤새 방황도 했다.
이것이 작고 초라한 내 모습의 실존이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나를 붙잡고 성전에 올라가게 하신다.
비록 이해되지 않지만, 또 아무 동력이 없고, 어떻게 가라는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발걸음을 주께로 향하여 올라가리라.
주님, 나의 비어버린 마음을 받으소서. 아무런 동력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주를 향해 올라가렵니다. 주여 받아주소서.
한줄 묵상 :
<인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성전에 올라가는 시간은 우리의 시선을 확장하여 나로 하나님의 뜻 아래 서게 한다.>
적용 질문 :
1. 내가 생각한 하나님의 뜻과 타이밍이 거절될 때, 밀려오는 난감함과 무력감 속에서 나는 무엇을 행하고 있습니까?
2. 내 삶에 다가오는 모든 결정이 하나님의 주권적 허용 아래 있음과 주님이 줄을 끊으시는 순간 이 땅의 힘은 아무것도 아님을 믿고 있습니까?
3. 아무런 내적 동력도 없고 미래의 대안도 보이지 않아 고인 물처럼 느껴지는 오늘, 내 계획과 지혜를 다 내려놓고 발걸음을 주께로 향해 걸어 올라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