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運命(운명)과 宿命(숙명)
운명론자들은 인간의 수명이나 삶의 궤도는 초인적인 어떤 힘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며 인간이 아무리 의지적으로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도 결코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로 자유의지론자들은 인간은 자유의지에 의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뿐 미리 결정된 운명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운명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자유의지론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고 또 지구에서 태어나고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서울에 태어난 것, 그리고 이 혼돈과 위기의 시절에 태어난 것, 그것은 자유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난 시간과 공간은 자유의지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또 인간이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이 거대한 태양계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물리적 법칙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운명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 넘어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분명히 운명적인 존재다.그렇다고 운명적인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만약 운명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삶을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의지적인 노력을 포기한다면 그야말로 운명론으로 빠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주어진 운명과 운명을 초래한 인과를 수용하면서도 그 불합리한 부분을 의지적으로 부단히 극복하고 바꾸어가고자 한다면 그것은 운명적인 존재에서 숙명적인 존재로 거듭난다고 할 수 있다.숙명(宿命)이란 한자를 보면 숙(宿)은 ‘머물 숙’, ‘잠잘 숙’ 자이다. 운명에 잠시 머문다는 그런 의미다. 달리 말하면 운명을 소화한다고 할까, 그런 개념이 숙명이다. 그러니까 운명과 숙명은 비슷한 것 같지만 실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예컨대 고달픈 시절에 태어난 것, 그리고 자신의 고달픈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순히 끌려간다면 운명론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이 고달픈 시절을 만든 동업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고 있는 그 문제를 직시하고 문제의 해결을 보고 가겠다는 의지적인 존재로 바로 설 수 있다면, 그것은 운명적인 존재로부터 숙명적인 존재로 거듭 났다고 할 수 있다.운명과 숙명의 차이는 이렇다. 운명의 비합법칙적 부분과 그 관성적 작용을 합법칙적으로 바꾸는 것, 그러한 의지적 실천까지도 운명적으로 보는 것, 그것을 숙명으로 말할 수 있다. 운명에 순응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합법칙적으로 개선하는 것, 그것까지도 운명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그것이 숙명일 것이다. 소극적인 운명의 개념을 적극적인 운명의 개념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숙명적 존재로 거듭난다는 의미다.지천명(知天命)이란 개념이 그렇다. 운명을 넘어 숙명(宿命)을 알 때, 천명을 안다고 한다. 천명을 안다는 것, 그것이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자유를 얻는 것이다. 출처:문화일보 글 배영순 영남대 국사과교수 baeysoon@yumai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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