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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안보, 그 실체
원래 모든 국가는 ‘안보, 경제, 사회적 가치의 고양’ 등 3가지 기본기능을 갖는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역시 안보다. 경제와 사회적 가치는 어디까지나 ‘좀 잘살고 못사는 문제’이고 필요하면 시장이 보완 하거나 사회가 대행 할 수도 있지만 안보는 ‘나라가 죽고 사는 국가의 고유기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늘의 안보환경이 어디 범상한 때인가?
2009년,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한반도가 자유통일 되면 30-40년 내에 GDP가 프랑스, 독일, 일본을 능가하고 2050년쯤에는 1인당 GDP 8만 6천 달러로 세계 2위에 올라설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하버드 미래학자 니얼 퍼거슨 교수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과 미국 CSIS, 러시아 IMEMO 등 세계적 권위기구들은 ‘지금이 한반도 자유통일의 기회’라고 해 왔다. 북한 문제 최고 권위자의 한사람인 RAND의 브루스 베넷 박사는 2013년 그런 책도 냈다. 한국안보문제연구소에서「북한의 붕괴와 우리의 대비」라고 번역해 국방부 통일부 외교부 국정원 등 안보 관련기관들에 무료 배포 된 바 있다.
다만 흔히 한국의 의지를 문제 삼았다. 생전의 황장엽 선생은 ‘짧으면 3년, 길어야 5년이면 가능할 텐데-’하며 답답해했고, 2015년 10월 존스 홉킨스 대학 마이클 만델바움 교수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한국 대통령도 붕괴한 북한을 책임지겠다는 열정이 안 보이더라.’고 아쉬워했다. 그래도 지난 10여년 우리는 안보전문가로서 그런 ‘자유통일의 미래’를 어떻게 구현 할 것인가를 고뇌(苦惱)해 왔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지 불과 1년 반, 지금은?
많은 국민들이 ‘평화 평화’ 환호하고 있지만, 더 많은 국민들은, 특히 전문가들일수록 ‘혹시 우리 아들딸들이 오늘 북한 동포의 저 참혹한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따지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실 북한 핵미사일은 갈수록 기정사실이 되어가는 데도 우리 정부는 지난 수 십 년 우리 안보를 지켜온 전통적 안보태세의 기저를 통째로 흔들어 오더니 마침내 9.19 평양 공동선언, 특히 군사전문가들이 ‘나라를 들어 항복(降伏) 하겠다는 문서와 다를 게 없다.’고 펄쩍 뛰는 이른바「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까지 나왔으니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 북한 핵 폐기 더 어려워 졌다.
그런 우려의 한가운데는 여전히 완성 단계에 든 북한 핵미사일이 있다. 북한 WMD(대량살상무기)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연구해온 RAND의 브루스 베넷(Bruce Bennett)박사는 2014년 10월 한국안보문제연구소에서 ‘10kt 정도의 핵이 용산부근에 떨어지면 최다 64만의 희생자와 1조 5천억 달러의 피해’가 날것이라고 추정했다. 그것만도 끔찍하지만 직접 사용하지 않아도 그림자 효과(shadow effect)라는 것도 있다. 그래서 핵은 그냥 재래식 무기보다 위력이 좀 큰 무기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절대무기 정치무기라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만에 하나 북한 핵미사일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북한이 핵 국가로 정착이 되면 ‘남과 북의 군사력 균형은 결정적으로 붕괴되고, 한반도 자유민주통일은커녕, 대한민국이 졸지에 전략적(戰略的) 피그미가 되어 전쟁이냐? 항복이냐? 한없이 시달리면서 점차 한반도 적화(赤化)의 길로 끌려들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설사 평화가 유지된다 해도 ‘종속적(從屬的) 노예적(奴隸的) 평화’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한반도 적화의 길을 닦게 될 것이다.
우리로서는 완벽한 대책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킬 체인이나 KAMD(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같은 것을 배치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완벽할 수는 없고 굳게 믿고 있는 ‘미국 핵우산’도 중국 러시아처럼 다른 나라의 핵이라면 몰라도 우리에 대한 북한 핵의 위협은 ‘미국 핵우산’으로 카버 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크다. 설사 ‘미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아예 ‘우리 핵’을 만들어도,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만들어봤자 도움은 될망정 완벽한 대책은 못 된다.
남과 북이 함께 핵을 가졌다 치자. 우리는 우리 핵이 있든 없든 북한 핵을 여전히 겁낼 수밖에 없지만 수십 수백만의 국민을 굶겨 죽인 자들이 스스로는 완벽한 핵 방호시설에 들어앉아 있는데 그들이 우리만큼 핵을 겁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 국민만 북한 핵의 인질(人質)이 되면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응징보복하기가 어렵게 된다. 응징보복이 어렵다는 것은 사실상 억제가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북한이 마음대로 도발을 계속하면 우리가 과연 끝끝내 견뎌 낼 수 있을 것인가? 예컨대 오늘 한국 사회는 거의 구조적으로 북한의 도발에 취약하기 짝이 없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북한이 핵을 배경으로 그동안 자행(恣行)해온 다양한 도발들을 복합적으로 전개하면서 동시에 종북세력들로 하여금 적극 내응(內應)하게 해보라. 말도 안 되는 광우병 따위에도 뿌리째 흔들리던 이곳인데, 우리 경제가 마비되고 사회가 공황에 빠져들어 정말로 적화의 문턱을 끌려 넘게 되지 않겠는가?
이 부분이 오늘 우리 안보태세의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건(睷)의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우리가 핵을 갖더라도 북한이 핵 국가가 되면 우리가 질 수밖에 없을 가능성, 심지어는 북한이 연합사를 상대로 전면도발의 턱없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고도 적화통일에 성공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북한 핵은 어떻게든 폐기시켜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리가 살아날 길이 아예 없고, 그것이 언제이건, 핵미사일이 실전에 배치되고 북한이 핵 국가가 되는 날이면 그날은 자유대한에 조종(弔鐘)이 울리는 날이 될 것이다.
북한도 그래서 만들었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2006년 1차 핵실험 때 우리 언론에서 미국과의 ‘협상카드’니 뭐니 중언부언(重言復言)하니까 당시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이라던 김명철 조미평화센터 소장이 ‘그게 아니고- 김정일의 꿈인 통일, 즉 ‘적화통일의 원동력(原動力)’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일갈(一喝)했다. 또 작년 9월 6차 핵실험 후, 김정은은 ‘만능(萬能)의 보검’이라고 했다. 사실상 다 같은 뜻이다. 통일의 원동력이자 만능의 보검, ‘핵을 통한 적화통일의 전개과정’을 고려하면 표현이 제법 절묘(絶妙)하다.
그런데 북한 체제는 진작부터 ‘아예 구조적으로’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먹고 살수가 없고, 특히 적화통일을 실제로 이루는 외에는 항구적 체제위기를 벗어날 길도 없게 되어 있다. 왜? 어떤 통치체제가 살려면 적어도 그 국민을 먹여 살릴 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북한 경제가 그렇게 회생(回生)하려면, 그 체제를 바꾸고 사회를 개방하지 않는 한 불가능 하다는 것이 정설인데 북한은 체제는커녕 개방도 원천적으로 불가능 하다. 김정일 생전에 누군가가 ‘우리도 중국처럼 개방해야 삽니다. 개방합시다.’ 했더니 ‘여보 박사선생, 나 죽으라는 말이요? 수많은 동구라파 국가들이 개방했지만 지도자가 살아남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하더란다. 맞다. 맞지만 그래서야 그 경제가 어떻게 살아날 것이며, 체제위기 극복인들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굶고 있는 그들의 남쪽 바로 코앞에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것이 오늘 북한체제의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시대상황에 따라 전략적 접근 방식은 조금씩 바꿔왔지만, 일찍부터 ‘적화통일 전략’을 집요하게 추진해 왔다. 이른바 ‘3대 혁명역량 강화’전략이 그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상황을 보면 그 전략이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핵개발도 그렇다. 1974년, 등장하면서부터 경제고 뭐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오직 무력적화통일에 올인하던 김정일이가, 남측에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고 연합사까지 창설되는 것을 보면서 아하, ‘이제 보통수단으로는 안 되겠구나’하고 선택한 적화통일 특단의 대책이 핵 개발인 것이다.
그래서 그 후 북한은 핵개발에 더욱 더 전력을 집중해 왔다. 1990년대 후반에는 겨우 2억$이면 살리고 남는다는데, 수십 수백만을 참혹하게도 굶겨서 죽이면서 1발에 3-5억$씩 든다는 핵을, 그것도 온 세계가 ‘너 그것 만들면 혼내 줄거야.’ 둘러서서 겁주고 막는 가운데 절치부심(切齒腐心)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이제 겨우 완성을 했다. 그러니 북한이 쉽게 핵을 포기하겠는가? 더욱이 그렇게 핵을 만든 그 체제, 그 사람들이 지금도 다 그대로 있는데.
무엇보다도 오늘 북한에 있어서의 핵은 김가 왕조 체제 권위의 상징이자 북한의 체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인 ‘적화통일의 원동력’이자 ‘만능보검’이다. 그것을 협상으로 달래서 폐기(廢棄) 시킬 수 있겠는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지난 25년여, 6자회담이니 뭐니 거의 온 세계가 나서서 설득하고 달래고 온갖 노력을 다 해봤지만 계속되어온 완벽한 실패, 특히 햇볕정책의 실패가 그것을 증명한다. 사실 인류 역사상 햇볕정책 만큼 적대(敵對)하는 상대에게 그렇게 헌신적인 정책이 언제 있었던가? 그런 햇볕정책 속에서 핵이 개발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퍼주고 달래도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증거다.
그래서 브루스 베넷 박사는 일찍부터 ‘북한 핵은 이스라엘처럼 직접 파괴하든지, 아니면 적어도 김정일이가 핵 포기 않으면 자칫 죽든지 혼이 나든지 겁이라도 나게 해야지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해 왔다. 실제로 리비아의 카다피도 미군의 폭격에 혼이 난 다음에야 핵을 포기했고, 1994년 김일성도 클린턴이 영변을 공격하겠다니까 제네바로 나오지 않았던가?
그런 차원에서, 대규모 항모와 전략폭격기 등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면서, 강력한 군사적 협박으로 겁을 주고, 동시에 전례 없이 강한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중국을 묶어내(그동안에는 UN에서 아무리 강한 제재를 합의해도 중국이 앞을 가로막고 뒷문도 함께 열어주어 실효성이 없었는데), 사실상 처음으로 북한 경제를 제대로 옥죌 수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압박(Maximum Pressure)’은 나름 매우 합리적인 정책이었던 셈이다.
우리 정부는 전쟁난다고 펄쩍 뛰고 국민도 겁을 냈지만, 역사를 보면 이런 ‘최대압박’은 적대(敵對)하는 국가 간에 ‘전쟁 없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활용해온 전형적 방법의 하나다. 지난번에도 그래서 김정은이가 죽느냐 사느냐 겁이 나니까, 1994년 김일성처럼, 대화하자는 신년사(新年辭)를 냈을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말부터, 이미 태영호 공사를 비롯한 많은 북한의 최고 엘리뜨들이 줄줄이 서울로 향했을 만큼 지도층의 사기도 크게 떨어진데다가 작년 겨울에는 평양의 고급 아파트에서도 동사자(凍死者)가 나오고 군대도 흔들리는 가운데, 미 전략폭격기들이 수시로 날아와 겁을 주지-- 북한 지도층의 위기의식이 심각했다고 한다.
그 때 우리 정부가 앞장서 ‘전쟁난다.’고 국민 겁부터 줄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최대압박’의 효과를 높였더라면, 아니 방해만 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실질적 북 핵 폐기’의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전쟁? 솔직히 미국과 중국이라면 모를까, 미국과 북한이 어떻게 전쟁이 되나? 그냥 한 대 쥐어박는 것이지. 또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서울에 큰 피해 없이 타격할 수 있다.’고 했듯이 반드시 참혹한 피해가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지난 3월 우리 정부가 언필칭 미․북을 중재(仲裁)한다며 6.12 싱가포르 미․북 핵정상회담의 길을 열어주었을 때 조선일보 인터넷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들 평화를 환호하고 있지만, 실은 위기에 빠진 김정은 체제를 구해내는 대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기에 빠트리는 전략적 실수’라고 우려했다. 사실 중재라는 것이 결국 무엇인가? 갈등하는 양측의 요구를 절충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누구보다 앞장서 사생결단(死生決斷) 막아야 할 당사자가 나서서 ‘중재’를 하겠다고 하면 북 핵 폐기가 어떻게 가능 하겠는가?
실제로 그 이후 상황의 흐름을 보면 우려 한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걱정스러워진다. ‘북한 비핵화’는 계속 허공을 맴돌고 있는 데, 6.12 싱가폴 미․북 핵정상회담 덕분에 김정은은 트럼프의 ‘최대압박’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악명(惡名) 높던 작은 깡패국가(Rogue State) 두목에서 졸지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온갖 예의를 다해 정중히 모시는 젊은 지도자로 거듭나는 등 아예 국제적 위상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반면 미국의 ‘최대압박’은 군사적 경제적 할 것 없이 사실상 형해(形骸)화 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까지도 북한 석탄을 들여왔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지금도 한미 양국은 ‘북한을 비핵화’ 시키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핵만 폐기하면 부자 만들어주겠다. 즉 북한 경제발전으로 핵 폐기를 견인(牽引)하겠다.’는데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위에 언급했듯이 북한 경제가 회생(回生)하려면 ‘체제를 바꾸고 사회를 개방(開放)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무릇 모든 독재체제는 정보통제체제위에 서 있는 것이어서 사회 개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이가 ‘개방하면 죽는다.’는데 김정은인들 그걸 모를까? 김정은으로서는 체제가 무너지고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개방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민을 부자 만들기’위해 자기 목숨을 걸 김정은도 아니다. 사실상 ‘북한 비핵화’의 기본 전략 자체가 틀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9.19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그런 흐름부터 바꿨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더 굳혀놓은 게 아닌가 싶다. 이번 회담 합의문중 거의 마지막 5항에 겨우, 그것도 그동안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주장해온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고 언급한데 그쳤으니까. 9월 24일 워싱턴 포스트(WP)는 사설(社說)로 북한이 주장하는 ‘핵무기와 핵위협 없는 한반도’는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주한미군철수와 한․일 핵우산 철거를 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우리 대통령은 같은 달 27일 73차 유엔총회에서 ‘이제 북한 핵 포기는 공식화됐으니까 대북제재를 완화하고 종전선언(終戰宣言)도 해서 평화체제로 가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다음달, 10월 브뤼셀 1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간 유럽에서도 각국에 사실상 ‘제재 완화’를 설득했다. 비핵화 첫 단계인 신고조차 거부하고 있는 판에 UN에서 ‘핵 포기가 공식화 됐다’는 것도, 또 대북제재 완화하자는 것도 생뚱맞고, 평화체제 거론도 놀랍지만 종전선언은 당장은 현 정전체제(停戰體制)를 관리하는 유엔사를 흔들고 우리 안보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사안(事案)이다. 오죽하고 블룸버그 통신이 우리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 됐다’고 비아냥댔을까? 유럽 각국 정상들도 ‘제재 완화’에 적극 반대했다. 그래도 북 핵의 직접 위해(危害) 당사자인 한국이 이렇게 제재의 발목을 잡으려드니까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제재해제’론은 자연히 더욱 힘을 얻고, 안 그래도 사실상 무시되던 트럼프의 ‘최대 압박’은 거의 와해되고 ‘북한 핵 폐기’는 더욱 더 요원해진 느낌이다.
2. 전통적 한국안보의 기저도 흔들고 있다.
북한 핵 폐기가 이렇게 어렵다면 우리 안보태세라도 더욱 튼튼하게 다져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더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6.25이후 우리 안보는 6.25를 통해 다져진 국민의 ‘반공안보의지’와 그런대로 강력한 ‘우리 군사력’ 그리고 튼튼한 ‘한미연합방위태세’가 3대 지주(支柱)가 되어 지켜져 왔는데 현 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병력과 복무기간을 줄이고 ‘전작권 전환’을 서두는 등 지난 수 십 년 우리 안보를 지켜온 전통적 안보태세의 이런 기저(基底)를 통째로 흔들어왔기 때문이다. 잠시 좀 살펴보자.
우선 원래 전투는 군인의 몫이지만 전쟁은 국민이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의 안보의지가 국가안보의 기저(基底)이고, 안보의지의 뿌리는 적에 대한 경계심, 적개심이다. 그런데 이번 9.19 남북정상회담은 평양과 백두산에서 김정은과 함께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우리 가수가 ‘아리랑’까지 불러 온 국민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우리사회 ‘우리민족끼리’의 정서도 크게 제고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수 백 명 측근들과 고모부까지 포살(砲殺)한 잔혹한 김정은이 하루아침에 우리 국민에게 친근한 지도자요 아이돌 이상의 인기인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당연히 안 그래도 와해되어가던 우리 국민의 ‘반공 안보의지’는 이제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되었다.
그 뿐일까? 문재인 정부는 온갖 비판을 무릅써가며 10월 23일 ‘9·19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 비준을 서둘 만큼 남북관계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반면, 우려하던 미국은 한․미간 대북정책 조정을 위한 이른바 ‘워킹그룹’도 만들었다. 특히 ‘남북 군사분야합의’에 대해서는 더 큰 우려가 있어왔다. 지난 9월 24일 신임 유엔군사령관으로 내정된 로버트 에이브람스 장군도 미 의회 청문회에서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DMZ 내 모든 활동은 유엔사 관할”이라고 직접 유감을 표시했다.
만약 장차 한․미간에 이런 이견과 갈등이 증폭된다면 이번 평양 백두산에서 더욱 제고된 우리 사회 ‘우리민족끼리’의 정서는 어떻게 반응할까? 백주에 세종 문화회관 앞에서 김정은을 연호(連呼)하는 ‘백두칭송위원회’가 결성되는 반면, 지난 8월 유엔사가 경의선 공동조사를 불허하자 당장 일부 시민단체가 ‘유엔사가 남북의 주권을 너무 침해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었고 지금도 세종로 미 대사관 주변에서는 거의 매일 ‘주한미군 철수’ 시위가 이어지고, 트럼프 대통령이나 매티스 국방장관은 별의 별 모욕을 다 당하고 있는데 말이다.
실은 ‘북한 비핵화, 남북관계 발전 등 회담의 기본 주제만 생각하면 이번에도 과거 대통령들처럼 공식 수행원 위주의 실무적 방문으로도 가능 했을 것이고 그게 오히려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연예인 등 대규모 특별수행단을 동행시켜가며 만들어 낸 결과다. 불현 듯, 이렇게 잘 기획된 퍼포먼스 그 목적이 궁금해진다. ‘설마 한미동맹을 흔들거나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가려는 것이야 아니겠지?’ 하면서도 은근히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따지고 보면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 설사 한국이 ‘철수하라’고 해도 미국은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 특히 중국 때문에라도 주한미군 철수는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미 의회에서도 22,000명 이하로의 주한미군 감축을 금지했을 정도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말도 못된다. 키신저는 그런 고려도 없이 ‘북 핵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교환’하라고 조언 했을까? 또 펜타곤에서도 주한미군을 주일미군에 통합하는 것이 중국에 대처하는데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도 미국은 이런 문제에 항상 ‘그 나라 국민이 결정한다.’고 답한다. 미국은 1992년 태평양 최고의 전략요충지 마닐라 만에서도 그래서 하루아침에 떠났다. 그리고 필리핀 앞바다는 중국 해군의 놀이터가 되고, 마닐라 코앞 스카보러섬(黃巖島)은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무릇 동맹의 기저는 신뢰다. 그리고 동맹관계란 수호천사(守護天使)가 아니라 공통의 위협을 전제로 한 상호지원 관계다. 그런데 2012년 12월 미 국가정보위원회(NIC) 보고서 ‘글로벌트렌드 2030’에서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들 것이고 그것이 미래 동북아 정세의 변수’라고 내다보았다. 2013년, 우리 사무실에서 ‘연합사가 튼튼해야 이라크 사태 아프간 사태 같은 유사시 한국의 적극적 참여가 용이 할 것’이라는 말에 동석했던 어느 미(美) 정보관계자는 ‘이제 유사시 한국이 동맹의 사명을 다해 줄 것으로 믿는 미국인, 나를 비롯해서 별로 많지 않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항상 한미동맹이 ‘유례없이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미국의 입장은 많이 달랐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니 오히려 미국의 내심을 전해주는 워싱턴 연구소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때도 아예 ‘한국의 중국 경사론’이 수시로 흘러나오곤 했다. 안 그래도 한국 정부가 ‘THAAD(사드)’ 배치를 두고는 ‘3 NO’ 운운(云云)하고 ‘남중국해 문제’에도 모호하게 대처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진작부터 의문스러워 했는데, 그런 우리 대통령이 2015년 9월 중국 천안문 열병식에 참석한 이후에는 특히 더 그랬다. 사실 중공군은 6.25 때 수백만 우리 국민을 살상하고 눈앞에 다가온 자유통일을 좌절시킨 ‘침략군’이고, 바로 그런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15만의 인명을 희생시켜가며 한국을 구해 낸 미국이니, 이해(理解)는 몰라도 공감은 잘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훨씬 더 했다. 2017년 10월 중국과 이른바 ‘3불 1한(한국이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에 가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 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3불(不), '중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하지 않게 사드 시스템의 사용제한을 가한다.'는 것이 1한(限))’이라는 사실상 안보주권을 포기한 망국적 약속을 했느니 아니라느니 논쟁거리를 만들어 놓더니, 2017년 12월 문재인-시진핑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4대 원칙(한반도 전쟁 불용,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남북관계 개선)을 합의하고 그러면서 “한중이 운명공동체”라고 발언해서 또 다시 더 큰 의구심을 키웠다.
더욱이 실은 어떤 동맹도, ‘튼튼한 한미동맹’도 결코 불변의 상수는 아니다. 잘 가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드 배치여부가 장차 한국이 미․중 어느 편에 설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던 미국인데 문재인 정부는 어렵사리 ‘사드’가 배치된 후에도 소수의 불법 시위대를 핑계로 시급한 사드 기지 완성을 머뭇거리면서 미군 장병에게 굳이 불필요한 고통을 감내하게 해왔다. 미국이 적어도 그것을 동맹적 호의(好意)로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위에 언급했듯이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사실상 ‘주한미군 밀어내기’나 다름없는 ‘전작권 조기 전환’을 서둘렀다. 그리고 지난 4월 판문점에서는 북한이 진작부터 ‘주한미군 몰아내기용’으로 집요하게 활용해온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해서 충격을 주고, 그 후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계속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거론 해왔다.
종전선언? 북한이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것은 그것이 불완전 하지만 오늘의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정전체제를 붕괴시키고 그래서 지금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의 존립근거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엔사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아래에 추가 설명되지만 한마디로 우리 연합방위태세의 한 축(軸)을 허물어 원만한 한국방위가 불가능하게 할 것임은 물론 주한미군의 한국 주둔 명분을 없애고 만에 하나 혹시 연합사가 해체될 경우 미국이 한국에 주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들게 될 것이다.
또 평화협정?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서부터 항상 병용(倂用)해오던 카드가 ‘미·북 평화협정으로 주한미군을 철수 시키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 시키자’는 것이다. 말이 좋아 ‘평화협정’이지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의 핵심은 ‘주한미군 철수’인 것이다. 특히 북한은 1994년 외교부 담화로 “북한의 평화체제 구축대상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못을 박아 왔다. 2016년 5월 김정은도 북한 7차 당 대회에서 ‘미국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면서 ‘그래서 남조선에서 침략 군대와 전쟁 장비들을 모두 철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친북, 종북단체들도 북한의 평화체제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주장을 해 온지 오래다. 어쨌든 청와대는 아니라지만 적어도 평화협정이 주한미군의 명분을 흔들고, 종전선언이 유엔사의 명분을 없애는 것은 분명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워싱턴포스트(WP)․파이낸셜 타임즈(FT) 등이 ‘북 비핵화를 둔 갈등이 70년 한·미 동맹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한 이유일 것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사실상 우리가 필리핀 못지않게 주한미군을 밀어내고 있는 모양새가 아닌가? 한국이 밀어내는 모양새가 되면 미 의회도 끝끝내 막아주지는 못할 것이다. 더욱이 지금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 뭐가 문제냐?’는 트럼프다. 그래서 10월 7일 폼페이오가 평양을 가면서 느닷없이 ‘평화협정’을 언급한 것이 은근히 불안스러웠다. 지난 9월 에이브럼스 청문회 당시 댄 설리번 의원이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하는 것 같아 매우 걱정스럽다”고 했는데 그런 트럼프를 막고 있던 참모까지 그런 말을 하니 미 정부의 분위기가 바뀐 게 아닌가 싶어서. 하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지난 4월 국방부에서 ‘평화협정 체결 시 미군의 한반도 주둔 필요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의에 “아마도 그것은 동맹과의 협상에서,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우리가 논의할 이슈의 일부”라고 답했다. 심지어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은 “지난 11월 5일 노스캐롤라이나 듀크 대학의 한 포럼에서 美·北 대화 진전 시 주한미군 변화” 가능성을 거론하며 “우리는 폼페이오 장관을 지원하기 위해 그것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까지 했다.
만약 정말로 한미군사동맹이 흔들리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당장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오늘 우리 안보 위협이 어디 북한 핵뿐인가? 더 큰 위협은 따로 있다. 시진핑 중국의 팽창주의적 야심이 바로 그것이다. 원래 중화사상(中華思想)의 국제질서는 주권평등을 전제로 한 서구적 횡적(橫的)질서와는 다르다. 중국을 정상으로 하는 종적(縱的)질서이고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은 바로 그것을 현실에 구현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와 19차 당 대회에서의 ‘인류 운명공동체론’이 다 무엇이겠는가?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까지 무시하고 국제 공해를 힘으로 장악해 가는 남중국해 사태는 시진핑 중국몽의 야심이 얼마나 저돌적(猪突的)인가 잘 보여준다.
지금 그런 시진핑의 야심이 가장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는 곳이 남중국해, 그리고 특히 한반도다. 천안함 사태 때 중국이 “서해엔 공해(公海)가 없다”며 미 항모 조지 워싱턴호의 서해 진입을 한사코 막아 나선 속내도 그랬다. 서해가 중국의 내해가 되면 한반도 중국화의 디딤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9월 항저우(杭州) 미중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논의하던 시진핑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 사드 배치는 중국의 안보이익에 배치되니 철회해야 한다.’는 데서도 그의 야심이 약여(躍如)하게 들어난다. 어디까지나 ‘방어무기’인데-, 그런 말은 내 땅에 남이 무기를 배치하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나오기 어려운 말이다. 2017년 4월 마라라고 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는 원래 중국땅이라고 설득한 것이 무의미한 한담(閑談)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연합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까지 철수시킨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 멀리 있고 중국은 압록강에 붙어 있다. 그래서 주한미군으로 한반도상의 전략균형이 유지되어 온 것인데, 주한미군까지 철수하면 겨우겨우 유지되던 한반도상의 전략균형은 일시에 붕괴되고 한반도는 저절로 중국의 배타적 영향권 하에 들게 될 것이다. 중국이 ‘쌍궤병행(雙軌竝行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미․북 평화협정체제 협상 병행 추진), 쌍중단(雙中斷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해가며 북한보다 더 ‘주한미군 철수’에 목을 매 온 이유다.
그리고 그리되면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국제질서 속에서 이루어 낸 오늘 우리의 자유와 평화, 번영은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것이고, 자칫 자유 대한민국이 제2의 티베트가 되거나 끝내는 김정은 밑으로 내 던져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싱가폴 미․북 정상회담 후, 청와대는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기록’이라며 “뜨거운 마음으로 축하” 한다고 했지만, 그 보다는 ‘김정은을 회담최고의 승자(勝者)로, 중국을 또 다른 승자라면서 한국만 완전 패자’라던 일부 외신의 보도에 더 공감이 가는 이유다.
3.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여전히 문제다
바로 그래서 과거 참여정부, 그리고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서두는 ‘전작권 조기 전환’을 특히 더 우려해왔다. ‘전작권이 전환’되면 1978년의 한․미 합의에 따라 ‘한․미 양국군을 유기적으로 통합 운용하는 한미군사동맹의 핵심 연결 고리이자, 동맹 기능을 수행하는 핵심 수단인 동시에 사실상 주한미군을 묶어두는 실질적 장치’이기도 한 한미연합사가 자동적으로 해체되고, 그리되면 자연스럽게 한미군사동맹이 형해화(形骸化)하고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번 50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전작권 전환’관련 합의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전작권을 전환’해도「미래사령부」를 만들어 사령관만 한국군이 맡고 주한미군의 계속주둔과 현 한미연합방위태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전환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2014년 10월 합의한 대로 ‘3가지 조건(한국군의 연합방위 주도 능력과 북 핵미사일에 대한 필수 대응능력 구비 그리고 적합한 한반도 및 주변 안보환경 등)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원칙을 따르기로 했다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는다. 당장 한국군 사령관이라도 위에 언급한 연합사의 3가지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보니 한미동맹의 위기가 연합사 사령관 덕분에 극복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 중요하다. 당장 한반도 통일과정에서는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소요가 발생 할 것인데 그 소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밖에 없고 오늘의 연합사는 그 양호한 통로이자 관리 기구이기 때문이다. 아니 설사 통일이 된 후라도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기세 속에서 팽창주의적 중화사상을 견제 하고 자유대한이 살아남는데, 연합사만큼 효용성이 높은 기구가 어디 있을 것인가? 만약 세계사의 흐름이 오늘 같다면 북한이 중국의 배타적 영향력 하에 드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일가? 연합사로 연결된 오늘의 한·미동맹체제를 튼튼히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길이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2005년 연합사 해체 논란 당시 미 8군 사령관 캠벨(Charles C. Campbell) 중장이 “한국은 미국 장성, 특히 4성 장군이 지휘관을 맡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하던데 실제로 오늘 연합사의 ‘전략적 억제력’은 주로 ‘튼튼한 한․미 군사동맹과 그 동맹이 세계 최강 미국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는 ‘미국인 연합사령관’의 상징성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상징성이 지난 수 십 년 한반도의 안정을 지키고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우리가 위기시마다 미 전략자산을 적시적절하게 활용해온 것이나 유사시 대규모 미군 증원전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한미연합방위태세’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연합사령관이 ‘미4성 통합전투사령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동안 우리 정부, 특히 이른바 진보정부는 끊임없이 “군사주권”을 핑계로 전작권 전환을 서둘러 왔다. 그러나 실은 지금도 연합사령관은 미국과 한국 양국 국방부와 합참의 지시 하에 작전을 수행 한다. 그러니까 작전권은 어디까지나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항상 한국 측이 전작권 ‘전환’대신 ‘환수’라는 표현을 사용 하는 것을 불만스러워 하는 이유다. 지금까지 연합사령관이 한국의 작전지시를 거부한 사례도 전혀 없다. 특히 기억해야 할 것은 ‘평시 작통권’은 노태우 정부 당시의 합의를 거쳐 김영삼 정부 이후부터는 이미 우리가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시 작통권’을 단독행사하기로 한 것은 그래야 우리 군을 우리의 전략적 목적에 맞게 개혁하고 장비하고 훈련하는 것은 물론 특히 유사시 필요하면 한국이 단독 작전을 수행 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군 구조(構造) 혁신을 위한 이른바 ‘8.18 사업’과 병행추진 된 것이다.
그러니까 전작권을 미국인 사령관이 행사하는 것은 전시(戰時)일 뿐이다. 그래도 미군이 연합사 사령관이어서 한국에는 군사주권이 없다? 그럼 한국군이 사령관이 되면 우리가 미국의 군사주권을 갖게 되는가? 도대체 유럽 각국은 자존심이 없어서 NATO의 최고사령관을 미국군에 맡겨두고 있을까? 미국에 유럽 방위에 더 큰 책임을 부여해서 유럽 방위에 더 큰 부담을 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도 그렇다. 특히 우리는 ‘미 4성 통합전투사령관체제’를 통해 한·미 군사동맹 체결 시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게 갈구(渴求)하면서도 끝내 얻어내지 못했던 ‘한반도 유사시 미국군의 자동개입’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제 한국군이 사령관이 되면, 유사시 미 증원(增援)전력도 복잡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치다보면 적시(適時) 참전은 구조적으로 어려워 질 것이다. 특히 위에 언급한 통일 전역(戰役)을 관리하고 그 후 중국과 러시아 등의 팽창주의적 야심에서 자유대한의 생존을 지키는 데는 훨씬 더 불리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미군을 외국군 지휘관아래 두지 않는다는 이른바 ‘퍼싱(John J. Pershing)원칙’까지 허물었다며 뿌듯해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미국은 지금까지 ‘퍼싱 원칙’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는 나라다. 그 많은 유엔 평화유지군에도 미군은 단 한명이 없다. 도대체 월남전 당시 우리 군이 월남군 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아야 했다면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이 파병을 했을까? ‘한국군 사령관을 양해했다.’는 것은 결국 미국이 유사시 의미 있는 전력은 파견하지 않겠다는 뜻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설사 미국이 약속대로 대규모 전력을 파견해 준다 해도 한국군 사령관 지휘 하의 연합사가 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도 의문이다. 우선 미래사령부가 출범하면「유엔군사령부」는「미 4성 부사령관」이 지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 산재해 있는 현 연합사의 전략적 후방지원 부대들은 지금도 유엔군 사령관의 이름으로 통제되고 있고, 주한미군을 비롯한 다른 미군도 전시에 자동적으로 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미 태평양사령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지금은 연합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으니까 문제가 없지만, 장차 미래사령부가 출범해서 한국군이 지휘하게 되면 유사시 한국군 사령관의 통합 작전지휘가 원천적으로 어려워지게 될 것임은 물론, 한국의 방위작전 지휘가 미래사령부와 유엔사로 2원화 되어 원활한 지휘통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또 있다. 한국군은 당장 지금도 정보·감시·정찰(IRS) 및 정밀타격 능력 등등 많은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런 한국군 지휘관이 유사시 수많은 항모(航母)와 전함, 수 천대의 증원 항공력 등 대규모 전력을 효율적으로 지휘 운용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경우 타국 군의 작전지휘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미국군이 자연스럽게 심복(心腹) 할 것인지도 의문스럽다는 사람도 있다. 비록 미 4성 부사령관이 적극 협력하면 도움은 되겠지만 한국인 사령관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미래사령부가 오늘 연합사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아예 구조적으로 불가능 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원칙이 재확인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우리 정부가 그 원칙을 제대로 준수한다면 적어도 오늘 같은 국가안보 위기에 ‘전작권 조기(早期) 전환’으로 스스로 안보태세를 흔드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좀 불안스럽다. 이번 공동성명에도 한미 양국은 “조속히” 변화시키고, 그를 위한 준비를 “조기에” 완료하며, 필요한 조건을 “조기에” 충족시키기 위해 협력하자는 등 ‘조기 전환’을 반복 강조하고 있는데다가, 특히 그동안에도 이미 연합사와 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을 가볍게 보고 우리 안보태세에 적지 않은 타격을 무릅쓰면서까지 그 입지를 흔들어 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참여정부에서 시작한 한강 이북 주한미군 부대들까지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집결시키는 ‘주한미군 재배치’ 조치부터가 그랬다. 사실 주한미군이 한수이북(漢水以北) 작전적 요지(要地)에 배치되어 있는 것과 멀리 평택에 몰아두는 것, 어느 것이 우리 안보에 유리하겠는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지난 6월 말 유엔군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등 연합사 사령부를 제외한 거의 전 주한미군 사령부들을 61년간 주둔하던 용산기지에서 평택 험프리스 기지로 이전시킨 것은 한결 더 하다. 억제는 원래 심리적인 것이어서 북한의 전면도발을 억제하고 북한 핵에 대처하는 데는 연합사 등 주한미군 사령부들이 수도 서울에 존재하는 이상의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서둘러 강행 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앞으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생길 가능성이 있다. 진작부터 “연합사 해체가 결국은 미군이 한반도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게 할 것”이라는 미국 전문가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실제로 주한미군 추가 감축 또는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택에 미국의 해외 최대 전용 기지를 만들어 주었다고 느긋해 하지만 그것으로 안심 할 일은 아니다.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도 확보했겠다, 만성적 병력부족으로 골머리를 앓는 미국이 2만 8천의 건강한 병력을 일없이 내버려 둘리도 없지만 지금도 주한미군 철수 시위를 이어가는 우리 사회인들 가만있겠는가?
더욱이 평택의 미군 전력은 한국방위 못지않게 미국의 극동 전략기동군의 성격이 강하다. 한수이북의 작전적 요지에 배치되어 있던 미군들을 이곳으로 몰아넣은 우리 사회인데, 그런 우리 사회, 특히 종북세력들의 눈에는 ‘한국 방위에 직접적 책임이 없는 미군 주둔지는 미국의 배타적 식민지’에 다름 아닐 것이니 이곳은 점차 ‘반미시위의 성지(聖地)’가 될 것이고 그리되면 주한미군의 조기 전면철수를 재촉하게 만들 가능성을 높이지 않겠는가 하는 염려다. 한미동맹보다 남북관계를 더 중시하고 김정은의 심기부터 살피는 정부가 은근히 앞장이라도 서는 날이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이래저래 ‘전작권 전환’은 사실상 ‘연합사 해체’를 호도(糊塗)하는 것일 뿐, 의도했든 아니든, 또 당장은 아닐지라도 결국은, 연합사 해체->한미동맹 와해 및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통로의 문을 여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은 2015년 “미일방위협력지침”을 통해 우리 연합사의 기능과 비슷한 “동맹조정메커니즘”(Alliance Coordination Mechanism)이라는 상설 연합 조직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여기에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등 미국 군사전문가들이 지난 10월 3일 ‘신(新) 아미티지 보고서’를 통해 팽창주의적 중국과 북한 등의 위협에 대비해 ‘미일 통합임무부대’를 창설하라는 제언을 쏟아내는 등 미국도 적극 나선다고 한다. 지금도 이미 미·일 양군은 첨단 전력이 포함된 대규모 해상 연합훈련을 수시로 하고 있고 최근엔 전년의 2배 규모인, 전면전 수준의 고강도 훈련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미 연합훈련이 줄줄이 중단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서 이미 ‘미국이 유사시 한·미 동맹보다는 미·일 동맹이나 유엔 참전국을 중심으로 대응하려는 것 같다.’는 전문가도 많다.
4. ‘9.19 남북군사합의서’는 폐기해야 한다.
이러는 판에 우리는 이번 ‘남북군사합의서’나 발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은 9.19 정상회담 두 번째 항, 언필칭 ‘상호호혜와 공리공영의 바탕위에서 교류와 협력으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자는 것도 불합리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상 ‘퍼주기’ 즉 한국의 일방적 지원만 가능할 뿐 참된 의미에서의 ‘상호호혜와 공리공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장 개성공단은 몰라도 지금까지 북한에 투자해서 재미 본 기업은 단 하나도 없었다. 투자 할 만 한 적합한 인프라가 안 되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운대 백사장에 모를 낸다고 쌀을 수확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더라도 ‘북한의 경제발전으로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해서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런 접근도 이해 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군사 분야,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는 이해, 아니 용서를 할 수가 없다. 당장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우리 군의 독자적 전력증강 계획까지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기로 한 1조 1항부터 어처구니가 없다. 북한은 핵에다 유례없는 대규모 남침 역량을 이미 갖추었는데 우리는 Kill Chain 같이 이에 대처할 수단의 확보조차 가로막히게 생겼고, 무릇 훈련은 군의 기본임무요 연합훈련은 동맹이 존재하는 한, 동맹군의 기본 임무인데 그런 연합훈련을 일일이 북한의 통제를 받아가며 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것도 우습지만, 그래서 연합훈련이 어려워지면 한미군사동맹인들 어떻게 유지될 것인가?
더욱이 그런 합의를 하면서 관할 권자인 유엔군사령부와 제대로 합의를 한 것 같지도 않다. 미국더러 ‘무조건 따라오라, 한미관계가 어떻게 되든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태도는 우리가 동맹을 배제하고 국방을 오직 내 혼자만의 힘, 독자국방(獨自國防)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쉽지 않은 행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국방태세는 그래도 좋을 만큼 강력한가?
정부는 지난 7월「국방개혁 2.0」을 발표했다. 유능한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자심(滋甚)한데 실제로 ‘국방태세 강화가 아니라 좀 심하게 표현하면 국방태세 무력화를 합리화하기 위한 문서’같다는 이가 많다. 대표적인 문제점이 병력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이다. 원래 재래식 전력은 기본적으로 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전력이고, 첨단 무기로 전력효율을 높인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서 병력감축은 곧바로 전력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통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병력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은 지금도 강행중이다. 병력이 줄면서 지난 11년간 2개 군단을 해체했는데「국방개혁 2.0」대로라면 현 정부는 임기 내에 2개 군단을 추가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핵 등 대량살상무기(WMD)에다 7-10년을 복무하는 128만 북한군을 겨우 18개월 훈련 받은 50만 재래식 국군으로 대처하겠다는 발상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그 전제가 되는 전력증강에는 소홀하기 짝이 없다. 북한 핵미사일에 대비하는 3축(軸) 체계 중 L-SAM 같은 것은 판문점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발사 시험이 연기된 후 7개월간이나 개발이 중단된 상태이고 킬체인과 KMPR(대량응징보복) 전력(戰力) 강화는 고사(枯死) 상태라고 한다. 심지어 지상군의 대표적 공격 전력인 K2 흑표전차도 신규 생산이 멈춰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동안 추진되어 오던 군 전력 강화 계획들이 거의 휴면(休眠) 상태에 드는듯하다. 그 뿐인가? 징집된 장병들을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戰線)에 묶어세우는 것은 군기(軍紀)이고 그들을 잘 싸우고 살아남게 하는 것은 강한 훈련이다. 특히 그래서 훈련은 전투처럼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권(人權)과 안전(安全)이 군기를 허물고 훈련을 가로막고 있어 전선 지휘관들이 스스로 ‘군 지휘관이 아니라 유치원 보모 같다’고 자조(自嘲)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여기에 대법원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가 합법이라고 하고 그러자 법무장관까지 나서서 ‘병역 거부자 특사(特赦)까지 검토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것 참, 유사시 군의 임무수행이 과연 가능 할지, 아니 그래도 군이 유지 될지 그것이 두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이번 남북군사합의서까지 발표되었으니, 군사상식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유능한 군사 전문가들이 ‘전쟁에 패배한 군대의 항복문서(降伏文書)와 뭐가 다르냐?’고 펄쩍 뛴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군비통제 관행과도 전혀 맞지 않고 오늘의 군사상황에 비추어 보면 그만큼 비합리적인 합의라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실제로 총 7개 분야의 합의를 보면 어느 것 하나 우려되지 않는 것이 없지만 특히 몇 가지는 거의 치명적(致命的)이다. 당장 ‘NLL포기다 아니다’ 말들이 많은데 ‘붙임자료 4’에서 ‘구체적인 경계선은 남북군사공동위에서 협의하여 확정한다.’고 되어 있으니 적어도 NLL을 인정 한 것은 아니다. 설사 대통령 말대로 인정했다고 해도 소위 ‘평화수역’으로 남북 ‘공동어로구역’을 만들면 ‘평화수역’이 아니라 상시 분쟁지역이 될 것이고 그러면 NLL은 자연스럽게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다. 군사 훈련도 못하게 했으니 서해의 해상 방어력은 치명적으로 약화 될 것이고.
더욱이 우리 정부가 발표한 ‘해상 적대행위 중단구역’의 덕적도 동쪽에는 선(線)이 없지만 합의문에는 ‘남북의 경계선은 덕적도 이북-초도 남쪽’이라고 명시해 놓은 채 동서(東西)의 한계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어쨌든 인천 앞바다까지 북한 해군이 넘나들고 인천항에 이르는 Sea Lane이 위협을 받으면 어찌될까? 만약 인천 항로의 통항이 원활하지 못하면 점차 한국의 심장지대인 경인(京仁)지역이 죽어가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직접 위협을 받는다는 뜻이다. 도대체 북한이 ‘해상 적대행위 중단구역’을 굳이 인천 항로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덕적도까지 요구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한강하구 공동 이용’문제도 유사시 한국 방위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가 있다. 오래 전 1974년경 ‘김포반도가 한국의 아르덴느(Ardennes : 2차 대전시 독일군이 불란서의 마지노 요새선[Maginot Line]을 피하기 위해 주(主) 공격로로 선택한 삼림지대)가 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후 이 지역 방위태세가 크게 강화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위협적이다. 그런데도 이제 남과 북이 함께 이 지역의 유속과 수중지형을 조사한다고 한다. 그래야 할 이유야 있겠지만, 유사시 북한군의 도하(渡河) 작전준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전통적 남침 주 접근로인 개성 및 철원 축선은 더 큰 문제다. 북한의 대규모 장사정포들이 서울을 직접 노리고 있고 북한은 기본적으로 공격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점차 DMZ를 비우고 우리의 정찰 감시 활동까지 무력화 될 상황이니까. 더욱이 이 지역에 배치되어있던 주한미군 전력들은 진작 평택으로 이전하고 이곳에는 이제 없다. 그동안 미국 대북인계철선 전력의 중심이었던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의 미 제2보병사단 본부도 지난달 16일 폐쇄되었다. 여기에 지금 우리는 이런 적의 주 접근로 상에 준비되어 있던 대(對)전차장애물까지 제거 중(올해만 13개소)이라고 한다. 아니 세상에, 군비통제 한다고 상대를 위협하는 공격무기도 아니고 자기 방어태세를 허무는 경우는 본적이 없다. 망해버린 월남조차도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단기속결(短期速決) 작전을 노려온 북한에게 유사시 기습 공격의 더없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셈이다. 그래서 만약 장차 어느 날 북한이 기습공격을 감행해 오면, 특히 그런 유사시 북한의 대규모 기계화 부대가, 동맹 미군 전력도 없고 적절한 방어시설까지 훼손된 우리 방어선의 주(主) 정면 개성과 철원 축선으로 압박해 내려오고, 그와 동시에 혹은 그 직전에, 북한 상륙 전력이 ‘해상 적대행위 중단구역’을 활용해 인천 등지로 상륙하면서 북한의 다른 기계화 전력들은 한강 하구 김포반도로 도하 한 후 함께 한강 남쪽으로 우회 포위하려들면, 그 때쯤에는 잘 훈련된 북한 특수전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온갖 방법으로 우리의 효율적 방어 작전을 방해하고 있을 텐데-, 잠시 상상만 해도 모골(毛骨)이 다 송연(悚然)해진다.
이쯤 되니까 누구는 낙랑공주 생각이 다 난다던데, 그리고 보니 이번 군사 합의가 꼭 ‘북한의 도발과 남침을 유혹’하는 것만 같다. 지나친 우려라고?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라. 북한의 군사작전을 담당하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역량과 기회만 되면’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합의는 즉각 폐기(廢棄)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가 오늘 같은 정전체제 하에서의 평화라도 유지하려면, 아니 국가가 자살(自殺)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모름지기 안보는 원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하는 법이고, 특히 ‘적이 오지 않을 것을 믿지 말고 내 방비의 튼튼함만을 믿으라.’는 손자(孫子)의 말은 군사작전의 기본이요 철칙(鐵則)이다.
5. 희망적 기회, 마지막 한번은 남았다.
이렇게 해서, 그러니까, 북한 핵은 중재한다고 나서서 오히려 기정사실화의 가능성을 높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한미동맹과 우리 군사력 등 전통적 우리 안보체제의 근간(根幹)을 흔들다가 마침내는 9월 19일 평양합의로 그동안 안정되어 있던 군사대비태세까지 헤집어서 자유통일을 꿈꾸던 우리가, 불과 1년 반 만에 ‘과연 미래에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불안하게 만들어 놓은 셈이다. 그것도 모두 우리 스스로 만들어 온 일이다. 도대체 그 저의가 무엇일까?
여기서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우리가 조금만 전략적 지혜와 국가적 용기를 발휘했으면 적어도 북한 핵미사일문제는 해결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는데, 아니 어쩌면 골드만삭스가 단언한 그런 미래도 열어 갈 수 있었을 법도 했는데 그런 기회를 오히려 위기로 뒤집은 셈이기 때문이다. 하긴 돌이켜 보면 과거에도 그런 기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름지기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되고 기회를 버려두면 위기로 되돌아오는 법인데, 우리가 미루고 회피하고 또 상대를 도와주기까지 해 가면서 가위 운명적인 기회를 스스로 훼손하고 낭비해 버리고는 이제 존망(存亡)의 어려움으로 되돌려 받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가만 보면 아직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한 번은 더 올지도 모른다.’ 싶다. 우선 미 정보기관에서는 북한이 지금도 핵을 만들고 있다고 하고 브루스 베넷 박사는 금년에만 5-9개의 핵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라고 달라질까? 아닐 것이다. 그 반면 미국의 북한 특히 ‘북 핵의 범세계적 확산’에 대한 의구심은 매우 크고 역사적 배경도 깊다. 그런 미국이 북한이 핵 국가가 되는 것을 쉽게 용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10월 25일 워싱턴포스트의 한 기고문대로라면 미국이 ‘중국과 북한을 미사일로 에워싸기 위해’ 중거리핵전력조약(INF)까지 폐기했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머지않아 그것이 한계에 부딪치는 ‘진실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럴 경우 허장성세(虛張聲勢)로 겨우 겨우 감싸고 있는 오늘 김정은 체제의 실상이 백일하에 들어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릇 기회도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것이다. 그렇게 기회로 만들자면 이젠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군사분야합의서’ 같은 것은 서둘러 폐기하고 지난 1년 반 동안 흔들리고 훼손된 안보태세도 총체적으로 서둘러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여기서 논할 수는 없는 일이고,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우리 국민의 ‘깨달음’이다. 모든 국가정책은 국민의 공감대 위에 서야만 효율적 집행이 가능 한 것이고, 그래서 국민이 지혜로워야 국가정책도 지혜로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제는 평양과 백두산의 화려한 퍼포먼스나 누가 했는지도 모르는 ‘잘 지내자’는 몇 마디에 너무 쉽게 ‘평화 평화’ 환호하기 보다는 그 뒤 숨은 뜻도 살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손자(孫子)의 첫 구절이 ‘병자(兵者)는 궤도야(詭道也)’, 한마디로 ‘전략은 속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인류 역사에 그렇게 속아서 멸망한 나라가 어디 하나 둘이던가? 개인을 속이면 사기(詐欺)가 되지만 국가를 속이면 속인 자는 영웅이 되고 속은 나라는 국민이 죽는다.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상대의 말이나 가변적인 상황이 아니라 위협의 핵심적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그것이 모든 안보업무의 첫걸음이다. 예컨대 앞에서 ‘적화통일 외에는 김정은 체제가 살아남을 길이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 역시 먼저 자유통일을 하는 외에는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안보문제의 항구적인 핵심이요 본질이다. 지난 70여년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왔다. 여기서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만약 오늘처럼 우리 안보태세가 계속 흔들리고 와해되는 가운데 이번 기회마저 놓치고 말면 이제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날 기회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도 용기와 지혜가 부족해 그냥 흘려 넘기거나 또 때로는 ‘평화 평화’ 하면서 자해적(自害的) 실수를 하고도 별 탈 없이 살아 왔지만 이제는 그런 행운을 기대하기 어려울 상황이기 때문이다. 평화? 평화는 본래 말로 구걸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특히 회피하고 도망하면 뒤따라와 뒷덜미를 물어뜯는 것이 전쟁이고 전쟁을 각오하고라도 결연히 맞서야 지켜지는 것이 평화인 것이다. 그래서 자유와 인권 등이 함께하는 참된 평화는 용기 있는 국민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물론 그러자면 혹 다소의 희생이 따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작은 희생을 너무 두려워하면 내일 더 참혹한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1938년 뮌헨에서 영불양국의 국가적 비겁성이 불과 1년여 만에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다는 제2차 세계대전의 문을 열어 주게 되었듯이 용기가 필요할 때 비겁한 것은 때로는 더 할 수 없는 죄악일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오늘 우리가 이 엄연한 운명적 현실을 못 본체 외면하면서, 역사 앞에 어리석고 비겁하면 우리 아들딸들의 미래에 더 할 수 없는 죄업(罪業)을 짖는 게 될 것이다. <끝>
<김희상 육군중장(예) 정치학박사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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