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게 서울 생활은 답답하기만 했다.
세 시간 넘는 출퇴근, 악다구니 같은 주차전쟁….
내집 마련의 꿈을 앗아간 건설 회사의 부도는 도시생활의
미련을 완전히 버리게 만들었다.
아내 오미정(40)씨는 처음에 어린 두 딸(당시 5살,3살) 때문에
반대했지만 결국 남편의 뜻을 따랐다.
부부는 1년 가까이 준비했다. 귀농운동본부 등을 통해 정보를 얻고,
배낭 여행을 하면서 귀농할 곳을 물색했다.
서울 신월동 집을 전세주고 받은 4000만원 중 500만원만 갖고
홍성으로 내려왔다. 홍성에 둥지를 튼 건 어느 농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젊은이들이 없어 부부의 노동력이 어느 곳보다 소중하게 쓰일 것 같아서였다.
부부는 헌 집을 구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부엌, 보일러, 수도를 놓는 데 200만원을 들였다.“뭐 하려고 왔느냐.”는
주위의 의구심에 찬 시선도 뿌리치고 오로지 일에만 매달렸다.
귀농첫해 논 2400평, 밭 1000평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밭 400평을 빼고는 모두 임차 농지였다.
자고 먹는 시간을 빼고 하루 16시간 이상 일했다.
“귀농 전 세 가지 원칙을 세웠죠.‘사람 사지 말 것, 우리 노동력으로 해결할 것,
농기계를 외부에 의존하지 말 것’이었어요.”
이를 지키기 위해 눈만 뜨면 논밭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부부는 첫해부터 완두콩-참깨-김장무·배추를 연이어 심어 3모작을 했다.
전문 농꾼들도 힘든 일이다. 논에도 보리와 조생벼를 심어 2모작을 해냈다.
“비옷 살 돈을 아끼려 쌀 푸대를 뒤집어 썼죠. 농기계도 중고품만 샀어요.”
악착같이 노력한 끝에 이씨 부부는 귀농 첫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다.1,600만원의 수입을 올렸고,
생활비와 농기계 등 구입비로 썼다.“자립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이씨는 귀농 이듬해부터 수십가지 작물을 심었다.
“귀농 3년차까지는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봤습니다.
벼도 여러 품종을 심었어요.”
귀농 2년째에는 농사 수입 1800만원, 농사외 수입 300만원을 올렸다.
6800평 넘게 농사를 지어 한 해 4000만원 넘게 번 적도 있지만
너무 힘에 부쳐 규모를 줄였다.
이씨 부부는 유기농을 고집한다. 벼는 물론 콩, 당근 등 작물을
제초제 한 방울 치지 않고 키운다. 직접 농사를 지어 보니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실감하게 됐다.
고된 호미질에 아내가 인대 수술을 받기도 했다.
부부는 평범한 농사꾼에 만족하며 산다. 이씨는 “소득은 많지 않지만
돈 쓸 시간도 쓸 곳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부부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유통·가공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찾아내는 일이다. 인터넷 카페도 개설했다.
이씨는 “농사일의 8할은 판로”라면서 “조직화된 소비자와
생산자가 만나 직거래를 하는 ‘CSA(소비자와 농민의 계약 농업)’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수익 모델도 개발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목소리에는 희망이 넘쳐났다.
글 사진 / 서울신문 이영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