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년도에 공직을 끝내고,전라도 강진에 있는 '계산초등학교'로 잠시 근무를
하어 간적이 있었다. 물론 관사를 주어서 편안히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관사의 위치는 강진 중학교의 앞에 있어,중학생들의 방과 후의 운동하는 모습
그리고 강진중학교 축구부가 아주 열심히 운동연습을 하는 것을 보았다.
강진중학교 뒤에는 '강진농고'가 우람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학교의 역사가 깊어,교문을 들어서면 우람한 가로수가 오래된 학교의 역사와
함께 묵묵히 서 있다. 나무잎들이 바람결에 나브끼고 있었다. 정말 나무들이 하늘을
치솟듯이 서 있다.
그런데, 그가로수 나무의 맨 윗쪽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까치집'이 2 개가 나란히
하고 있다. 나는 매일 아침 식사하기 전에 이 강진농고의 캠퍼스를 산책 하면서 농촌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걷기를 하면서 학교에서 생활의 피로를 잊곤 하였다.
아침마다 그 학교의 거리를 걸을때마다, 이웃집의 까치들이 사이좋게 재잘 거리고 다정하게
대화를 하고 있다. 다정히 두집다 까치집을 지어 '둥지'를 마련하여 새끼들을 키우고,부부간의
까치들이,우리인간 못지 않게 서로 사이좋게 함께 오손도손 다정히 살고 있는 모습이 영 ...
나의 시야에는 아름답게 보이고 ,한편으로 부럽기도하고,.....
그게 매일 아침 산책 할 때 마다, 이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나는 어렷을적에는 부모님이 마련한 보금자리인 오막살이에서 태어 났고, 거기서 커 나왔다.
그러니 농촌의 오막살이 단칸방, 방1에 부억1나 광1 어떻게 저런데서 내가 생겨 났을까?
고향의 나의 탯자리를 가끔 나는 가 보곤 한다. 나의 탯자리가 궁금도하여,그리고 초등학교의
교정에서 내가 뛰어 놀고 공부를 하던 초등학교 교정을 거닐어 보고 살피기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 오기도 한다.
초등학교 5학년때는 나주로 이사 와서 보산리라고 하는 자자일촌하는 조그마한 동네서 학교를
다녔다. 아트막한 산이있는데, 유독 방패연을 잘 만들어 그 추운 겨울에도 '연'을 띄면서 즐거워
하고 또한 재기를 잘 차기도 하였다. 이 나주에 있는 집은 초가집으로 지어 졌으며, 사랑방이
있는 쪽으로는 크나 큰 감 2주가 아주 커서 감을 많이 열어 나의 학자금이 되곤 하였다.
아마도 할아버지께서 주위에 '앵두나무' '살구나무' 보리앵두'등을 심어서 내가 학교에 갔다 와서
이 과일들을 따서 먹으면서 ,나의 간식거리가 되었다.
근데 문제는 초가집이어서 여름철에 비만 오면, 사랑방쪽으로 빨간 비가 샌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래서 "내가 크면, 검정기와 집을 마련하여 절때 이렇게 살지 않겠다" 맹세를 하곤 하였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둘째누나 집에 언쳐 살면서 내 집도 없이 누나네 집에서 신세만 지고 살았으며
나중에 부모님이 서울에 오셔서는 마포꼭대기에 스럼가의 판자촌의 신세를 지며 주거생활을
하였으며,나중에는 전세방의 신세만 지고 살았으며. 나중에 하두 남의 전세 살이가 초라해
용산구 도원동에 초라한 나의 집을 마련 하였다. 그러니 , 내가 직장에서 10 년정도 되어서
인 것 같다 .그러니 이제사 나의 집이라고 하는 '둥지'를 마련 한 것이다.
이 곳이 재개발이 되고,가격이 상승하여 나의 재산 형성이 되는 것이다.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둥지를 틀면서 살아 갈 수 있는 기반이 서서히 조성이 되어가는 것이다. 연이어 분당에 공무원
아파트 당첨 등으로 나의 둥지 마련이 내 눈 앞에 다가 온다. 과연 내 인생의 얼마만에 나의 집
마련이며, 나의 꿈의 실현인가?
서울에서 화순으로 내려 올 때 자녀들이 수도권에 있는 집을 팔지 말자고 한다. 나도 그렇게
팔고 싶지가 않다. 그래 세를 내놓고 내려 왔으며,화순에도 나의 '둥지'를 마련하여 졸지에
1가구 2주택자로 되었다. 지금 생활이 편리하고 , 교통이 좋고 ,병원이 가까운 곳으로 평수도
줄여 이사를 하는데 ,혼자 좀 힘이 든다. 물론 포장이사를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과거의 어려운 시절의 나의 '둥지'를 생각 하면서 ...
노후에 나의 둥지의 걱정이 없고 의식주의 걱정 없이,병원비도 거의 걱정 없이 살아고 있는
나의 모습은 과거의 너무나 많은 세월동안 '허름한 둥지'에서 살아 온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기 짝이 없이 즐거운 마음이다.
첫댓글 젊을 때는 나의 것을 이루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첫째는 가정을 이루고,
내 가족이 편히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었나 싶습니다.
지금은 노년을 즐기면서
하고자 한 못다한 것을 이루려는 사람이 많지요.
그것도 과욕을 부리면 무리가 오겠지요.
적당히 생활을 즐기면서
오늘에 만족하는 마음도 즐거움의
척도라 해도 될까요.
감사하는 맘을 가졌을 때는
잘 살아 오신 것 같습니다.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최고의 지성인들이 글을 쓰고있는 수필방
항상 수고하시는 콩꽃운영위원님....
그냥 안분자족하면서 시간으로보내고 있습니다
공직생활도 나의 현재의 삶도 ...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석촌 님 감사합니다
과찬에 무어라 말씀을 ....
그냥 내분수에 맞게 살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결혼해서 젊었을때는 집장만이 1순위라,
오직 내집하나 마련하려고 안쓰고 안입고
정말 검소하게 살았어요...
그래도 그때가 그립네요...
감사합니다
집장만과 자녀교육이 힘이 들었지요
그때의추억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