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다리며 (시2-130)
2026년 5월 28일 (목요일)
찬양 : 말씀앞에서
본문 : 시 130:1-8
☞ https://youtu.be/r7f9TTq2Gzs?si=KTnd5vM6ZZoxL11Z
오늘은 목회사관학교 종강부흥회가 있는 날이다. 사관생도의 교회에서 진행되는 종강부흥회 시간 주님의 은혜가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은 내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날이다. 그래서 깊은 묵상을 할 수 없다. 멍한 상태로 그러나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기에 그분 앞에 선다.
본문 130편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7절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여기 나오는 <바랄지어다>란 히브리어는 ‘야할(יָחַל)’로 이 단어의 본질은 "현실의 폭풍이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닻을 깊은 바다 바닥에 내리듯 내 마음의 무게중심을 하나님께 완전히 이동시켜 꼼짝하지 않고 버티는 상태"를 뜻한다.
시인은 전지하신 하나님의 시선 앞에 누구도 당당할 수 없음을 말하며 그분을 바라라고 외친다. 이해되지 않고, 또 흔들릴지라도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맡기고 버티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두 가지 하나님의 속성을 근거로 든다.
첫 번째 하나님의 속성은 인자하심(헤세드)이다. 즉 우리의 자격이나 상태와 상관없이 영원히 신실하신 언약적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다.
삶을 살면서 우리는 스스로 뭔가 잘했다고 느낄 때 하나님앞에 당당하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은 전지하신 하나님이 보신다면 누가 그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겠느냐고 3절에서 고백한다.
인간은 그 누구도 자신의 의로움으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자격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고 영원하신 절대 변하지 않는 언약하신 사랑에 근거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속성을 본문은 풍성한 속량이라 말한다.
‘속량(페두트)’은 노예나 포로의 몸값을 대신 지불하고 해방해 주는 법정적 개념이다.
여기에 ‘많다, 차고 넘치다’라는 뜻의 ‘하르베(הרבה)’가 결합되어
"대적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방법과 대가가
단 1%의 부족함도 없이 완벽하게 차고 넘친다"는 뜻이 된다. 할렐루야~
그렇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죄악이나 현실의 척박함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언제나 ‘과잉(Overflowing)’ 상태에 있다. 인간이 가진 대안과 동력은 바닥날지라도, 주권자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카드는 언제나 풍성하며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아멘.
아직 내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아침,
그저 겸손히 하나님의 인자와 풍성한 속량하심을 신뢰하며
그분을 향해 나의 온 몸과 마음과 영혼을 열고 시인의 외침을 따라 바랄(야할) 것이다. 5절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함으로 ~
주님, 오늘도 내 감정을 굴복시키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한줄 묵상 :
<조건이나 자격이 아닌 변하지 않는 사랑과 풍성한 속량 즉 완벽한 구원의 길을 가지신 하나님께 오늘도 나를 맡깁니다.>
적용 질문 :
1. 오늘 주님 앞에 서 있는 나의 솔직하고 초라한 영혼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2. 무언가 내 생각대로 될 때의 당당함과 스스로 낙제점이라 느낄 때 하나님앞에 서는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3. 오늘도 주님이 예비하신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차고 넘치는 ‘과잉(하르베)’ 상태에 있음을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