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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봉으로 올라 산길을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가벼워지네
막걸리 몇 잔 때문인 것 같기는 한데
무언가에 끌려가는 것 같네
59억 7천만 년 뒤에 오신다는
미륵불을 만나는 것 같네
미륵보살이 현신해 온 것만 같네
산에서 그러면 안 되지만
막걸리 몇 잔에 취해 그 흔하디 흔한
싸리나무도, 닭의장나무도, 누리장나무도,
개여뀌도, 달개비도, 팥배나무도, 물푸레나무도
나비들도 새들도 다 미륵보살이
현신한 미륵불 같네
엎드려 절을 하니 발밑에 무릎 아래
흙과 모래가 돌멩이들이 미륵이네
하늘과 바람과 구름이 미륵이네
내가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가
도솔천 하늘 아래 땅 위에
미륵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엊그제 세상을 떠나신 선생님이
바람이 되고 잔돌이 되고
풀꽃이 되었을까 미륵이 되었을까
매월당 김시습은? 연락되지 않는 친구는?
다 미륵이 되었을까
도솔봉으로 올라 산길을 걷다 보면
미륵보살이 현신해 이끄는 것만 같네
산에서 그러면 안 되지만
막걸리 몇 잔에 취해
59억 7천만 년 뒤에 오신다는
미륵불을 만나는 것 같네
<시작노트>
동네 뒷산이지만 깎아지른 듯 솟은 도솔봉을 올라가고 나면, 기운이 빠지고 헛헛해지는 기분이다. 할 수 없이 물 한 모금 마시는 셈으로, 막걸리 한두 모금을 마시면 힘이 난다. 이제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긴 능선의 산행길이 시작된다. 걷다 보면 싸리나무도 만나고, 닭의장 나무, 누리장 나무도 만난다. 개여뀌도, 달개비도, 팥배나무도, 물푸레나무도 만나고, 나비들도 새들도 만난다. 물론 등산을 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함께 나온 강아지들도 만난다. 59억 7천만 년 뒤에 오신다는 미륵보살이 현신한 미륵불이 아닌 것이 없다 하겠다.
이제 지구의 평균온도 1.5℃가 올라가는 시간이 5년 36일 남았다고 한다. 지구의 평균온도 1.5℃가 올라가면, 북극과 남극지방 빙하와 영구 동토층이 걷잡을 수 없이 녹아내리고, 극단적인 가뭄, 홍수, 폭염, 태풍 등 재난이 일상화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일단 선을 넘으면 어떤 노력으로도 돌이키기 어려우므로, 그 전에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한다. 기후 과학자들은 이를 위한 첫 번째 과제로 ‘화석연료를 더 이상 파내지 않는 것’을 꼽는다고 한다. 그러나 동해안 어디에 석유와 가스가 엄청나게 많이 매장되어 있어서 몇 천억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시추를 하자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는 모양이다. 물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것들이 미륵이 아닌 것이 없겠지만, 기후와 환경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시급한 일이 아닐까?
강상윤
1958년 제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2003년 『문학과 창작』에 「수평띠톱기계」「푸른 세상」
「자기 생을 흔들다」 등이 추천되어 시단에 나옴
2004년 첫 시집 『속껍질이 따뜻하다』를 간행한 이후
『만주를 먹다』 『요하의 여신』『너무나 선한 눈빛』 등을 출간함
2004년 문예진흥기금 수혜, 한국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회원
전자우편: ygrin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