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의 「차경」 감상/ 김효은
차경
손택수
한옥에서는 풍경도 빌려 쓰는 거라네요 차경(借景), 창을 내고 문을 내서 풍셩을 들이는 일이 빚이라고,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고
직업이 마땅찮아 어떨지 모르겠으나 가능하다면 저도 풍경 대출을 받고 싶어요 집 살 때 빚지는 것도 누가 재산이라고 그랬지요 빚 갚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어느새 제집을 갖게 된다고
풍경 좋은 곳은 다 부자들 차지라지만 아무리 좋은 액자인들 뭐 하겠어요 청맹과니처럼 닫혀만 있다면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지기 힘든 게 풍경 빚인 줄도 모르겠어요 가난하고 외로워할 줄 아는 사람에겐 창가에 스치는 새 한 마리도 다 귀한 풍경이니까요
갚는다는 건 되돌려준다는 거겠지요 빌린 나도 풍경으로 내어주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도무지 뭘 빌려주었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앉아 있는 저 돌처럼, 저도 빌려갈 만한 풍경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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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자연을 빌려오는 순간 자체에 대한 숙고(熟考), 창작의 순간 그 자체에 대한 시인의 자의식과 자연에의 채무의식을 그는 섬세하고도 자연스럽게 포착해 풀어낸다.떠도는 먼지 한 올에서도 ‘빛남’을 포착하는 시선, 그 섬세한 시선이야말로 손택수 시인만의 미감(美感)과 미덕(美德)이 아닐까.
한옥을 지을 때, 건축 용어로 “창을 내고 문을 내서 풍경을 들이는 일”을 “풍경도 빌려쓰는” 일이라 하여 “차경(借景)”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시인은 차경이라는 말 단어 하나에서도 삶의 성찰과, 자연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시적 영감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결국 인간은 자연에게 빚을 지고 산다는 것, 나아가 시인 또한 그러하다는 것. 시를 짓되, 작품 안에 “창을 내고 문을 내서 풍경을 들이는 일”, 즉 서정시와 서경시의 본령도, 결국엔 자연에의 빚이라는 인식, 이 얼마나 겸손하고 겸허한가. “갚는다는 건 되돌려주는” 것임을, “빌린 나도 풍경으로 내어주어야 한다”는 원천으로 돌아가는 이 같은 인식은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는 데서 연유한다. 결국엔 ‘나’ 역시도 자연에서 빌려온 존재가 아닐 수 없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도무지 뭘 빌려주었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앉아 있는 저 돌”의 궁극적인 자태야말로, “빌려갈 만한 풍경”, 즉 아름답고 경이로운 있는 그대로의 자연 풍경임을 시인은 포착해낸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자연을 시에 들인다. 꽃 한 송이, 구름 한 점, 사과 한 알, 새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 하나, 일상의 생활은 물론 창작에 이르기까지, 자연에 빚지는 일을 우리는 자행하고 있다. 누구나가 이를 빚으로 인식한다면, 그들을 보다 소중하게 아껴 쓰고, 귀하게 대하고, 잘 쓰고 돌려줄 텐데, 우리는 정작 자연을 오용하고 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학도 자연에, 언어에 빚을 지는 일이 분명한데, 인간으로서의 모럴과 시인의 모럴이 자연 앞에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우리가 인식하고 그것들을 아끼고 신중히 한다면, 삶도 시도 부채감이 지금보다는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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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 / 1979년 목포 출생. 200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2010년 계간 《시에》 평론 등단. 서강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저서로 『아리아드네의 비평』 『비익조의 시학』이 있음.
첫댓글 '도무지 뭘 빌려주었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앉아 있는 저 돌처럼, 저도 빌려갈 만한 풍경이 되어서'
*자연에 대한 겸허한 자세에서 기발한 발상이 나온다. 우리가 자연풍꼉을 다 빌려 쓴다는 것 차경(借景),
한옥을 지을 때, 건축 용어로 “창을 내고 문을 내서 풍경을 들이는 일”을 “풍경도 빌려쓰는” 일이라 하여 “차경(借景)”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시인은 차경이라는 말 단어 하나에서도 삶의 성찰과, 자연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시적 영감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결국 인간은 자연에게 빚을 지고 산다는 것, 나아가 시인 또한 그러하다는 것. 시를 짓되, 작품 안에 “창을 내고 문을 내서 풍경을 들이는 일”,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