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눈물이 많은 내가 영화를 보고 우는 일이야 다반사지만, 영화 <컨텍트>를 보고 감정에 북받쳐 펑펑 울었던 일은 쉽게 잊히질 않는다. 그 후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다. <컨텍트> 영화의 원작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인데, 원작 소설의 훌륭함을 지닌 채로 소설에서 이해할 수 없던 부분을 더 풍성하게 해석해주는 느낌에 더해 결말이 좀더 드라마틱하게 보태지면서 최고의 영화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이 작품에 매료되었는지, 눈물을 쏟아냈는지 생각해본다. 이유는 세 가지 정도인 듯하다. 첫째,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존재가 만나 서로를 깊이 탐색하는 행위가 나에게 묵직한 감동을 주었다. 내 안에 나만의 이야기를 가득 안고도 쉽게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던 나는, 그 이야기들이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굳고 또 굳어 단단한 돌덩이가 될 때까지 끌어안고 살았다. 그것이 꼭 슬프지만은 않았던 것이, 누군가에게 그다지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고 다른 이들도 다들 돌덩이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사는 줄 알았던지라 꽤 오래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엄마가 되어 독백을 하는 장면에서도 수없이 반복되듯이, 나 역시 아이를 낳고서야 아이의 마음을 알고싶어 안달이 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밤새워 해석해가며 혼자 기뻐하고 혼자 슬퍼하는 시간을 보냈다. 타인의 마음을 알아채는 일이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오래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깨달을 즈음, 그것이 바꿔 말하면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채기 위해 공을 들였던 적이 없었단 뜻임을 알게 되면서 눈물이 차오르진 않았을까 싶다. 둘째, 미래소설의 주인공이 늘 그렇듯, 테드 창 소설 속의 주인공들 역시 신념이 강한 사람들이고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상적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을 정도로 나는 나만의 가치관, 신념을 지키는 삶을 동경하는 측면이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은 오늘은 바게트빵에 와인을 홀짝이다가 내일은 김치찌개 없으면 밥을 못 먹겠다며 이랬다저랬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도 줏대 없이 흔들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의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내리고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나고 뇌기능이 폭발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고 경찰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용기있게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늘 나를 감동시켰던 듯하다. 셋째, 지난 번 함께 읽었던 주제인 ‘리터러시’에 이어 언어에 대한 고찰이 나를 매료시켰다. 헵타포드의 글이 정교한 그래픽 디자인의 집합체처럼 보인다거나, 헵타포드가 인간의 문자체계를 과잉 투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는 게리의 말을 듣고서는, 순차적인 사고방식을 따르지 않는 글을 볼 때면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헵타포드의 함축적인 문자가 현실가능한 이야기인지 진짜로 궁금해지는 지점이었다. 주인공은 시간이 지나고 연습이 되고나니 헵타포드의 함축적인 문자에 익숙해졌단 말이지.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내가 눈물을 펑펑 쏟았던 것은 원작 소설이 아니라 영화 <컨텍트>의 후반부, 외계인이 주인공(조디 포스터 분)에게 미래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선물한 덕분에 딸의 미래를 알면서도 게리와 아이를 갖기로 선택하는 부분에서였던 것 같다. 인생의 책을 보았다면 나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그 부분이 나를 울렸던 걸까. 과거가 중요하지 않듯 미래를 안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 현실을 살지어다.
첫댓글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 미래를 선택할까. 정말 주저되는 질문이지요. 미래를 안다고 해서 과연 나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