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을 떼는 진통 (시2-131)
2026년 5월 29일 (금요일)
찬양 : 말씀 앞에서
본문 : 시 131:1-3
☞ https://youtu.be/hsEpLOBa4cc?si=xUKpYg94_rmxRDxr
말씀 앞에서는 시간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2번째 시다.
여기서 다윗은 인생 말년에 쓰는 영혼의 자서전처럼 이렇게 고백한다. 1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다윗이 누구인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면서 온갖 세상의 기획과 도모를 해보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성전에 올라가며 이런 고백을 했다는 사실이 오늘 내게 울림을 준다.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내 마음과 내가 바라보는 것과, 내가 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음이라는 사실을 묵상하게 된다. 왕이란 자리가 주는 마음과 눈과 욕망의 자유가 얼마나 큰가?
왕이란 자리는 인생의 주도권을 쥐려는 마음의 자유가 극대화되는 자리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이 자신의 힘과 계획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마음들이
불쑥불쑥 올라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다윗은 이런 마음의 교만을 내려놓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눈의 오만이란, 현실의 상황과 타인의 상태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내 기준과 경험으로 판단하고 재단하려는 시선을 말한다. 하나님의 크신 생각을 보지 않는 불신앙의 눈빛이다.
마지막으로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이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하나님의 영역에 대한 애씀이다. 실제로 다윗은 한 순간 인구조사를 하다가 큰 낭패를 보았던 쓰디쓴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다윗은 이런 것에 힘쓰지 않기를 다짐하며 성전에 올라가며 이것을 내려놓으려 했다는 말이다.
예배는 의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이 드려지는 순간임을 알게 된다.
다윗은 왕으로서 주어진 마음과 눈과 행동의 자유를 내려놓고
젖뗀 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예배에 나아갔음을 고백한다. 2절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 구절을 보면서 젖을 떼는 아이와 엄마 사이의 긴장이 이해된다.
아이는 정말 젖을 떼면 죽을 것 같아, 젖을 찾아 울고,
엄마는 젖을 떼어야 아이가 세상에 나갈 수 있기에 마음이 아프지만 외면한다.
깊이 묵상해 보자. 젖을 떼지 못한 아기는 오직 엄마가 가진 ‘젖(내 욕망을 채워줄 현실적인 대안, 눈에 보이는 대책, 당장 내 손에 쥐어질 품삯)’ 때문에 안겨있다.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당장 젖을 주지 않거나 숨기면, 아기는 엄마의 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숨이 넘어가라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친다.
반면 젖 뗀 아이(가물, גָּמֻל)는 대략 3세 전후로 이제 엄마가 내게 당장 젖을 주지 않아도, ‘나를 안고 계신 엄마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완전히 만족하며 그 품 안에서 온 체중을 빼고 든든한 고요와 안식을 누린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내 손에 쥐여주실 현실적인 대책과 안전장치(젖)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애쓴다. 바로 내 삶의 전반전이 그렇게 달려왔다. 내 뜻대로 대안이 생기지 않으면 "왜 내 집을 세워주지 않느냐"며 밤새 잠 못 들고 불평했다.
지금 내 모습이 바로 딱 이 모습이다. 표현하지 않지만, 내 생각대로 펼쳐지지 않은 현실에 나는 당황하고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나를 향해 주님은 다윗의 고백을 통해 이제는 젖을 뗀 영혼으로 이제는 하나님을 수단으로가 아니라 존재로 신뢰하며 하나님의 품에 안긴 그 자체로 만족하며 의지하는 삶이 되라고 하신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라고 말이다.
생각과 마음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그러나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굴복되지 않는 자인지를 실감한다.
어제는 너무 힘들어 우황청심환을 먹고야 내 몸이 진정되었다.
이렇게까지 나란 존재가 여전히 하나님의 젖을 떼지 못하고 아이처럼 울고 있는 자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내 모습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이런 나를 품에 안으시며 이제는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으로 나아갈 것을 요청하신다. 아직은 내 마음도 눈도 행동도 그 어느 것도 따르지 못하는 멍한 상태다. 당장 주일 사역과 다음주 중보기도와 특별 세미나가 줄지어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참으로 당황스럽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젖을 떼는 시간은 아이와 엄마에게 모두 고통이지만,
엄마는 사랑하기에 아이의 울음 소리를 외면하며 더 큰 소망을 품고 그 아픔을 견디신다.
주님, 이 종을 붙잡아 주소서.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소서. 진정 말씀 앞에서 내가 굴복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젖을 떼는 시간은 아이와 엄마에게 고통이지만, 엄마는 사랑하기에 아이의 울음 소리를 외면하며 더 큰 소망을 품고 그 아픔을 견디신다.>
적용 질문 :
1. 나를 장성한 분량으로 키우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과정을 신뢰하며 오늘이란 젖을 뗀 상황을 인정합니까?
2. 지금의 이 상황이, 주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명의 지경으로 내보내시기 위해 사랑하기에 소망 가운데 아파하시는 순간임을 아십니까?
3. 내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 나를 품에 안고 소망의 아픔을 견디시는 하나님의 품에 내 존재를 온전히 맡기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