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C5ujRHpZw?si=QRC0hw9kEl1nq2xx
Isaac Stern - Edouard Lalo - Symphonie Espagnole, Op.21
1873년(50세)에 작곡하여 사라사테의 초연으로 대성공을 거두어 랄로의 이름을 일약 유명케 한 작품이다. 스페인풍의 정열과 프랑스풍의 세련미가 합쳐진 랄로의 대표작으로 전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곡은 스페인의 피(할아버지가 스페인 사람)을 이어 받은 작곡가의 작품답게 스페인풍의 이국 정서가 넘친다. 독주 바이올린은 화려하고 정열적이며 다채로운 관현악과 어울려 매혹적인 멋을 풍기고 있다. 전곡을 통해 제4악장 안단테가 극히 아름다우며 제3악장은 연주시 생략되기도 한다.
1악장: Allegro Non Troppo 투티로 시작되는 힘찬 곡으로 독주 바이올린의 서정적 선율이 매우 돋보이는 탄탄한 형식의 악장이다.
2악장: Scherzando-Allegro Molto 스페인의 색채가 가장 두드러져 제목의 이미지를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주는 곡이다. 관현악의 화려한 색채감, 템포의 자유로운 변화가 특징이다.
3악장: Intermezzo-Allegrotto Non Troppo '인터메초'는 연주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가끔 생략되 기도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2악장처럼 스페인적인 색감이 진하게 느껴지는 곡이다.
4악장: Andante 안단테의 빠르기로 연주되며 애수 띤 풍부한 정서와 아름다운 선율을 특징으로 한다.
5악장: Rondo-Allegro 론도 악장으로 독주 바이올린의 화려한 연주기교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랄로의 나이 50세 때인 1873년 작품이다.
작품의 개요 & 배경
일반적으로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을 설명 할 때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게 되는 것은 이 곡의 제목에 관한 부분이다. '교향곡'이란 말이 있지만 이 작품의 성격을 먼저 밝힌다면 어디까지나 바이올린 협주곡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랄로의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랄로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총 네 편 썼는데 제 1번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곡에는 모두 이런 식으로 표제를 붙였다. 제 2번은 지금 얘기한 것처럼 '스페인 교향곡'이고 제 3번은 '노르웨이 환상곡' 그리고 제 4번은 '러시아 협주곡'이다. 자세히 보면 이들 표제들은 각각 나라를 앞에 내세우고 '교향곡','환상곡','협주곡'이란 악곡 종류를 붙여서 만든 것 이다. 물론 이런 식의 표제 사용은 작곡가의 이국적 취미를 반영한 것이었다.
랄로는 프랑스 사람이긴 하지만 할아버지가 스페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몸에는 스페인 사람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거기다가 랄로가 이 작품을 쓸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국적 풍조가 한창 유행 하였기 때문에 많은 작곡가들이 스페인 풍의 작품을 쓰곤 했다. 랄로의 작품도 그런 음악계의 취미나 유행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대중적인 사랑을 흠뻑 받고 있지만, 이 곡에 대해 차이코브스키는 '아주 즐겁고 참신한 작품이긴 하지만 진지한 면은 없다'고 비꼬기도 했다. 기교를 앞세운 대부분의 바이올린 작품들이 그렇듯이 랄로의 이 명곡도 깃들어 있는 정서는 매혹적이고 화려한 기교도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지만 음악적인 깊이는 별로 없다.
Lalo, Edouard Victor Antoine 1823~1892
프랑스의 작곡가. 스페인 교향곡〈Symphonie espagnole〉과 명료한 관현악법으로 유명하다. 스페인계 군인집안에서 태어나 1839년 무일푼으로 파리로 가서 파리 음악원에서 프랑수아 아브네크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J. 쉴로프와 크레브쾨르에게 작곡 개인교수를 받았다. 1848년 첫 작품을 출판했고, 1855년에는 아르맹고(Armingaud) 현악 4중주단에 비올라 연주자로 들어갔다.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스페인 교향곡〉을 사라사테가 1875년 초연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1876년에는 첼로 협주곡, 1882년에는 발레곡 〈나무나 Namouna〉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은 안무솜씨보다는 수준 높은 음악이 더 돋보인다는 점에서 디아길레프의 발레 작품들을 예시했다.
뒤이어 1887년 〈교향곡 G단조 Symphony in G Minor〉를, 1888년에는 오페라 〈이스의 임금님 Le Roi d'Ys〉의 결정판을 발표했다. 역시 후대에 영향을 준 바 있는 실내악으로는 현악 4중주, 3개의 3중주, 피아노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가 있고,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도 작곡했다. 그의 음악은 슈만, 베버와 유사한 점이 있기는 하나 매우 독창적인 재능의 산물이다.
https://youtu.be/AE9_qHVT3ec?si=fcs5Oj-v6q_qtgmg
(Lalo: Symphonie Espagnole - Oistrakh, Martinon)
안네 소피무터
바이올린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는 1963년 6월 29일 라인펠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5살때에 피아노를 시작했 으나 곧바로 바이올린으로 바꾸었다. 6살 때 Jugend Musiczier에서 처음으로 입상했고 Carl Flesch의제자인 Erna Honigberger와 스위스의 Winterhur 음악학교 교수인 Aida Stucki로부터 사사받았다.1976년에 있었던 Lucerne Festival에서 카라얀은 무터에게 깊은 음악적 애정을 갖게되었고 1977년 13세의 나이로Salzburg Easter Festival에 카라얀과 함께 데뷔공연을 가졌다. 그 다음해인 1978년에는 카라얀의 베를린필과 함께 그녀의 첫 레코딩을 했고 그 레코드는 Grand Prix Disque와 Deutsch Schallplatten Preis를 수상했다.
안네 소피 무터의 국제적 경력은 1977년 Salzburg Whitsun Festival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그녀는 솔리스트 또는 챔버 뮤지션으로서 유럽, 미국, 카나다, 일본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연주회를 가졌다. 그녀는 Witold Lutoslawski, Norbert Moret, Krzysztof Penderecki , Wolfgang Rihm의 작품들을 주 레퍼토리로 연주하였고 많은 작곡가들은 특별히 그녀를 위한 곡들을 썼다. 무터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많은 상을 받았다. 그리고 1985/86년에는 런던에 있는 왕립음악학교는 그녀를 honorary fellow로 지명했다. 그녀가 16세가 되던 1979년에는 그해의 아티스트로 불려졌고 prestigious Deutscher Schallplattenpreis 를 받았다. 1983에는 옥스포드대학의 모자르트협회의 명예회장이 되었고 1987년에는 독일공화국의 일등훈장을 받았다. 1996년에는 본에 있는 베토벤협회의 명회회원이 되었다.무터는 세계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 결과, 에이즈 퇴치와 암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를 위한 자선 콘서트를 가졌다.
자료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MQ243_sUsKw?si=Llmtf-Su-na-AFC9
Lalo, Symphonoie Espagnole, 3.Intermezzo, 5. Rondo - Alleg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