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는 다윗 가문의 유다 지파에서 태어났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성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으나, 요아킴 성인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한 뒤 하느님의 섭리로 마리아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10세기에는 서방 교회에 두루 퍼졌다. 요아킴 성인에 대한 공경은 훨씬 뒤에 시작되었다.
본기도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이신 주님,
복된 요아킴과 안나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어
성자의 어머니를 그들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으니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희도 주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제1독서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모든 민족들이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3,14-17
14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나는 너희를 이 성읍에서 하나,
저 가문에서 둘씩 끌어내어 시온으로 데려오겠다.
15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
16 너희가 그날 그 땅에서 불어나고 번성하게 될 때, ─ 주님의 말씀이다. ─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의 계약 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떠올리거나 기억하거나 찾지 않을 것이며,
다시 만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17 그때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의 옥좌’라 부를 것이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이름을 찾아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다.
그러고는 더 이상 자신들의 악한 마음을 고집스럽게 따르지 않을 것이다.
복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18-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무엇이든 끝까지 이루어내는 사람의 비밀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농부 비유의 해설입니다. 예수님은 길은 말씀을 듣고도 깨달으려 하지 않는 교만한 마음, 그리고 돌밭은 육체적 기분에 따라 사는 사람, 가시밭은 돈에 대한 욕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들 안에서는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많은 열매를 맺으려는 영웅적인 의지입니다.
영화 ‘박하사탕’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었지만, 교만과 음란함, 그리고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 사람의 일생을 담았습니다. 반면 세상에서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이 세속-육신-마귀를 이깁니다. 이것을 이기지 않고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교만함을 어떻게 이길까요? 자기 처지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이깁니다. 1990년대 CIA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말단 직원 ‘카멘’이라는 여성은 매우 능력자였습니다. CIA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일의 효율이 오르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를 찾아냅니다. 그래서 하루 3시간 정도는 부처마다 실시간 정보 공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이 주장은 무시당하였습니다. 정보 유출 위험이 크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카멘이 그럼에도 계속 그러한 주장을 하자 친구들까지도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극소수의 사람들은 아직 때가 아니니 힘을 키우고 능력을 보여주며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위치에 먼저 서는 게 중요하다고 간언하였습니다. 3년이 지나자 인정받는 직위에 오르고 능력을 인정받은 다음 그녀는 다시 그러한 제안을 하였고 결국 사내 내부자용 ‘인텔리피디아’를 만들어냅니다.
자기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교만한 상황에서는 금방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처지를 깨닫고 나니 기다릴 줄 알게 되었고 그동안 자기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재정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겸손해지는 이유입니다.
그다음은 육체적 욕망에 따라 기뻤다가 슬펐다가 하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기러기는 혼자서는 40,000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혼자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뜻을 함께 이뤄줄 공동체를 찾습니다. 그 공동체에 있으면 혼자서는 포기하고 싶어도 그들을 보아서라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나약함을 안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가게 만들 시스템에 자신을 몰아넣습니다. 이는 마치 열쇠공이 잠긴 문을 여는 과정과 같습니다. 수많은 열쇠를 꽂지만 지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것 하나는 맞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있는 공동체와 함께라면 지치는 일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탐욕이라는 가시밭을 벗어나야 합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일한다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실패했을 때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잠깐만 게임을 못 하게 하거나 한 끼만 굶겨도 죽을 듯이 고통스러워합니다.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충분히 이겨나갈 고통도 못 살겠다며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약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큰 꿈이 있다면 어떨까요? 나의 손해는 큰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래서 참아나갈 수 있습니다. 아이보다 부모가 더 잘 참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나 자신만의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닌 자녀를 키워내야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모든 사람은 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모든 실패를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신앙에서 적용되는 법칙이 이 세상의 성공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결국 마귀-육신-세속의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깨닫고 이 세상에서도 원하는 것을 이뤄내고 천국에도 들어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외국 아이가 생양파를 먹는 영상을 봤습니다. 생양파가 과연 맛있을까요? 아이가 먹기에는 너무 맵지 않을까요? 사실 이 아이는 엄마가 양파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라고 우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어디 한번 먹어보라고 하자, 정말로 맛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생양파를 먹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이 과정에서 너무 우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떻게 생양파가 사과처럼 맛있겠습니까? 아이는 처절하게 생양파를 사과처럼 먹었습니다. 터져 나오는 콧물, 그렁그렁 맺힌 눈물, 새빨개진 얼굴. 그러나 자기가 사과라고 했던 말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최대한 아삭아삭 맛나게 생양파를 씹어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아이 엄마도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아이가 힘들어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해보라 하고 또 여유 있게 영상까지 찍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부모는 이 순간 무조건 말리지 않을까요? 직접 체험하고 한 입 정도는 허락할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의 경우처럼 끝까지 기다리는 부모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아이는 더는 양파를 사과라고 우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기가 결정했고, 자기가 선택했으며, 자기가 행동하고, 그래서 자기가 책임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깨달았겠지요. ‘양파는 사과가 아니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그래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더라도 간섭하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선택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면서 당신께로 나아가길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렵고 힘든 일은 모두 주님께 책임을 떠맡기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은 며칠 전에 나왔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설명해 주시는 장면입니다. 보통 농부가 길가에 그냥 씨를 뿌리고 할 일 다했다고 할까요? 또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는 농부도 없습니다. 농부는 보통 좋은 땅을 만들고 그곳에 씨를 뿌리는 것이지요. 바로 복음에 등장하는 땅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길가의 마음을, 주님의 말씀이 오래가지 못하는 돌밭의 마음을,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주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시덤불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에도 당신의 말씀이라는 씨앗을 뿌리십니다. 우리가 직접 선택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그래서 좋은 땅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사랑 가득하신 분이십니다.
나쁜 마음을 좋은 마음으로, 그래서 주님과 언제나 함께 많은 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것을 받으려면 아무것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분께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