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송승언
영화는 사람 없는 가로수 길을 걸어간다.
이어지는 돌담과 함께
지나가는 기억 몇을 메만진다.
그러나 영화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거울을 보는 대신
한 사람과 만나 밥을 먹고
한 사람과 잠을 자다가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실패하며
영화의 전신은 쏟아지는 빛에 수백 번 구타당한다.
영화에게는 친구가 없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들은 몇 있다.
가족보다 소중한
어쩌면 영화 자신보다 소중한
그러나 이 사회보다 소중하지는 않은
그들은 저마다 다른 병을 앓고 있다.
그들 중 몇이 예상되지 않는 길을 따라 여행을 떠나거나
그들 중 몇이 다음 계절에 더는 등장하지 않는 사이
그러나 영화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영화는 가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모를 시선의 공포를 느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
영화는 안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이 모든 일상이, 이 파탄이 공개되리라는 것을.
그러나 영화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여름비 쏟아진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되지 않는 시간들이 흘러내린다.
영화는 이불을 반쯤 걷어내고
상반신을 일으켜 세운다.
빗소리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진짜 친구는 아니라는 생각에
진짜 친구를 생각한다.
서로 욕할 수 있는 친구.
서로 때릴 수 있는 친구.
서로 증오할 수 있는 친구.
그건 친구 같은 게 아니라고 말하는
진짜 친구를.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당신 쪽을 잠깐 노려보기도 하지만
그러나 영화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ㅡ계간 《같이 가는 기분》(2023,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