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2월 정기 입행동기회 삼우회(三友會)소개
이 대 일 회원
45년전인 1970년 2월 서울의 하늘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輸出立國의 기치 아래 외국환전문은행으로 창
립된 외환은행은 당시 최고 선망의 대상인 직장이었다. 창립 3주년이 되던 해 전국에서 명문상업고등학교
를 졸업한 69명의 신입행원은 대졸출신 신입행원 50명과 함께 본점(현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별관 건물)에
서 입행식을 하고, 서소문 동화빌딩에 있었던 연수실에서 3주간 연수를 받고 은행 생활을 시작했다.
최초의 사령장에는 "임시직원에 임함. 월수당 10,400원을 급함. ㅇㅇ부점근무를 명함."이라고 되어 있었
다. 입행시험은 1969년 11월이었다. 1969년은 미국의 아폴로11호 우주선을 탄 닐 암스트롱이 인류사상 처
음으로 달에 착륙한 해로 인류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준 해이기도 하다. 우리가 입행한 1970년 7월에는 경
부고속도로 428km가 개통되어 산업화시대의 진입을 상징하는 해이기도 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234
달러에 불과하고 연탄 한장에 10원하는 시기였다. 우리 동기들은 그 시기, 나이 스물에 직장생활을 시작했
다.
한국외환은행 정기 제3차로 입행한 우리는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입행초기부터 입행동기회 명칭을 삼
우회(三友會)로 정하고 모임을 이어 왔다. 삼우회 입행동기들은 입행후 은행 본지점에 근무하면서 바로 우
수한 자질을 발휘하여 업무의 달인으로 인정받아 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동기중에는 실무고시에서 전체1
위를 하는가 하면, 실무교본을 집필하고 행내고시 출제위원을 하는 동기들도 있었으니 이를 증명하여 주고
있다. 주경야독의 어려움 속에서도 회원 대부분이 야간대학을 졸업하기도 했다. 입행동기중에는 행정고시
사법고시를 거쳐 공무원이나 법조계로 진출하기도 했고, 외국계은행이나 BOK, 수출입은행 등 타행으로,
일부는 외환카드 등 자회사로 전직을 한 동기도 있었다. 차관급 공무원을 하기도 하고, 변호사로, 외국계
은행 한국 대표로, 시중은행의 임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모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아 왔다고 생각된
다. KEB에 잔류한 동기는 대부분 승승장구하다가 1997년말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에 우리
입행동기들은 대부분 지점장으로 있었고, 명예퇴직이라는 명분하에 한 해에 몇 명씩 은행을 떠나기 시작했
는가 하면, 본부장으로 승진한 동기들도 있고, 임금피크제로 남아 있던 동기 한명은 42년을 근무하고 2012
년에 퇴직하기도 했다.
이제 입행동기 모두는 은행을 떠났지만 아직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동기가 많다.
회계사, 관세사, 변호사로 일하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회사 경영진으로 취업하여 일하는 동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레스토랑, 모텔, 화원, 편의점 등 자영업을 영위하는 회원도 있고, 강의를 하는 회원, 시골에서
영농사업을 하기도 하고 사회봉사단체에서 일하는 회원도 있다, 수필이나 시부문으로 문단에 등단을 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회원들도 있다. 모두 뛰어난 재주꾼임에 틀림없다.
입행초기부터 단합이 잘 되고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어 다른 선후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삼우회 활
동은 요즘도 왕성하게 이어지고 있다. 우선 회원간의 소통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삼우회 카페(http://c
afe.daum.net/keb)를 만들었다. 카페 자유게시판의 게재글이 5,500건이 넘을 정도로 활성화 되어 있다. SN
S 시대를 맞이하여 삼우회 대화방 BAND도 만들었다. BAND게시판에도 매일 같이 새 글이 올라온다. 그리
고 우리는 매월 만난다. 짝수월 두 번째 화요일에는 저녁 식사를 하고, 홀수월 두 번째 토요일에는 등산 모
임을 갖는다. 등산 모임에는 배우자도 동반할 수 있다. 동반하는 배우자는 회비가 없다. 송년모임에는 부부
동반으로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러 가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입행40주년을 맞이한 2010년에는 부부동
반으로 1박2일의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 날 저녁 40주년을 기념하는 만찬 모임의 현수막은 「허겁지겁 40
년, 여유만만 40년」으로 했다. 40년을 일했으니 이제부터 40년은 여유를 찾아 즐기며 살아보자는 의미였
다. 우리는 환호했고 우정을 확인했다. KEB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을 새롭게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40년
이상을 동고동락 했으니 어쩌면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입행동기중 별세한 사람이 5명이나 되고 해외로 이주한 사람도 있다. 지방으로 거주지를 옮겨 동기회에
서 탈퇴한 회원도 적지 않다. 그래도 현재 활성 회원이 38명이나 된다. 이제 나이 60대 중반이다. 6.25 한
국전쟁 중에 태어난 우리는 유달리 생명력이 강하다. 아직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삼우회는 「삼우회여, 영원하라」는 우리의 구호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할 것이
다. 마지막 한명까지. 아직 기금이 5천만원이나 남아 있고 매년 년회비도 내고 있으니 걱정이 없다.
지금도 45년전 입행초기 시절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세월은 많이 흘렀고 만물은 무상(無常)한 것일까. 합
병 소식이 오가는 시기여서 그런지 마음이 무겁다. 하나금융지주 안에서의 은행합병 후에도 외환은행 그
이름과 족보가 이어지기를 간망한다.
첫댓글 예온님, 우리 삼우회를 빼어난 글 솜씨로, 그리고 시대배경을 적절하게 나열해서 잘 기술하셨군요. 감동받았습니다. 수고하셨고, 존경스럽습니다. (이성근)
예온이 문공인가?
예온=문공=연제진
삼우회의 소개를 정말 잘 해주셨군요
수고하셨고 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