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1월 28일 화요일)
-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관광 -
아침부터 비가 내릴 듯 흐린 날씨에 빗방울까지 가끔 내리지만 바람도 없고 포근한 겨울 날씨로 여행하기 좋았다.
고대 로마시대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를 비롯하여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 등 2000년 역사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지역을 찾아 나섰다.
콜로세움은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고대 아치 건축의 백미로 손꼽히며 우리들이 평소에 사진이나 책에서 많이 보았던 건물이다. 장축 지름 187m, 단축 지름 155m, 둘레 527m, 높이 48m의 타원형 건물로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으로 각층 마다 건축양식을 달리했으며 외벽은 80개의 아치가 둘러싸고 있다. 신분과 성별에 따라 1층은 황제와 베스타 여신과 원로원, 2층은 귀족과 무사, 3층은 로마 시민권자, 4층은 여자 노예 빈민층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한 번에 5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이 경기장은 투기장 겸 극장으로 사용되었다. 로마인들은 치열한 검투사의 격투시합, 맹수들과 목숨을 건 잔인한 전투경기를 보면서 즐겼다고 한다. 전쟁 포로들인 검투사들의 생사를 건 경기를 보면서 마시고 환호하고 욕망을 불태운 승리자들의 오만이 로마의 패망으로 이어졌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쌓아 올린 벽돌 한 장 한 장에 노예들과 민초들의 피와 눈물이 서린 듯 원혼들의 아우성치는 함성으로 다가왔다, 1층부터 3층까지 콜로세움 경기장 관중석을 돌아보며 그 시대로 빠져든다. 경기장 바닥은 파헤쳐져 있다. 수로와 돌기둥이 있고 물이 채워져 모의 해전을 했던 흔적이다. 그 위에 나무 마루를 깔고 모래를 깔아 격투기 경기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한쪽 면만 재현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2층 회랑에는 로마시대 경기장에서 나온 유물, 사진, 역사기록물이 전시되어 있고 3층에 올라가니 높이 올라갈수록 스펙터클한 모습이 펼쳐져 로마인의 기운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난간에 앉아 카메라 렌즈를 주시하며 떠날 줄을 모른다. 굶주리고 목말라 울부짖던 노예의 환생이라는 생각이 들어 과자부스러기를 주고 내려왔다.
콜로세움에서 나와 서쪽에 세워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니 배경이 기막히다. 3개의 아치로 구성된 로마에서 가장 크고 보존이 잘된 개선문이다.
가까이에 포로 로마노 유적지가 있다. 티켓을 사고 줄을 서서 검색대를 통과하고 들어갔다.
베네치아광장과 콜로세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로’라는 뜻은 공공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서 생겼다고 한다.
로마시대의 상업, 정치, 종교의 중심지로서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고 말하는 로마 2500년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며 로마제국의 심장부다. 283년에 대부분 건물들이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화재와 지진으로 많은 유적들이 파괴되었으나 남아있는 건물들의 흔적만으로도 옛 영광을 되새겨 볼 수 있었다. 포로 로마노가 세워진 이 지역은 비가 오면 물이 괴는 습지였는데 하수시설을 확충한 후 도시생활의 구심점을 이루는 장소가 되었다. 또한 주변의 언덕들이 요새처럼 둘러쌓인 곳이어서 방어하기에 아주 좋았다. 테라스나 필라티노 언덕에 오르니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개선문, 많은 신전, 공화당, 기념관, 원로원, 기념비 등의 흔적이 남아있어 엄청난 권력과 부, 종교의 힘이 모여있던 장소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원할 것 같은 부귀영화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 조각 뜬구름처럼 흘러갔구나!
로마시내에서 점심 식사 후 피렌체로 이동하였다. 4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피렌체 톨게이트를 나와서 THE GATE HOTEL에 내려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4일차 (2020년 1월 30일 목요일)
- 피렌체 -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부지방에 있는 역사, 문화의 도시다. 도시 전체가 1982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14~15세기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 힘입어 르네상스를 꽃피웠으며 많은 예술작품과 건축물이 남아있어 로마와 더불어 이탈리아 관광의 메카로 일컬어진다.
피렌체지방은 기름진 땅, 온난한 지중해 해양성기후,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넓은 평야에 올리브와 포도의 향기까지 더하여 신이 내려준 축복의 땅이라 말한다. 붉은 피를 토하며 지평선에 지는 해가 유난히 눈부셨다. 피렌체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고향으로 유명한 ‘해바라기’ 그림이 떠오른다. 경제적인 빈곤, 슬픔, 우울, 무절제 등 불우한 상황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의 희망이 강렬한 황금빛 색채로 ‘해바라기‘ 화폭에 담겨있는 것이다. 고흐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다음에야 그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져 빛을 발했으니 ’인생은 짧고 에술은 길다‘는 격언이 맞는 말이다.
젖줄인 마르노강을 끼고 왼편에 있는 미켈란젤로광장에 오르니 피렌체의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광장 가운데에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 완벽한 비율로 만들어져있으며 강 건너로 두오모 성당, 지오토의 종탑, 시뇨리아 광장과 궁전(시청사), 베키오 다리 등이 중세풍의 건물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강가에서 차를 내려 피렌체의 랜드마크인 두오모 광장으로 걸어갔다. 두오모는 이탈리아의 대성당을 의미하며 종교가 곧 생활이었던 중세에는 모든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1296년부터 장장 140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된 두오모대성당은 건축, 조각예술의 극치를 이루며 내부 장식 또한 엄숙하고 장엄하다. 둥근 지붕은 포근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한 시간 동안 자유시간이 주어져 광장 주변, 중세 거리, 시장, 상점, 강가까지 여유롭게 구경하였다. 두오모 옥상까지 올라가 성당 내부와 시내를 조망하고 싶지만 1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여 포기했다. 피렌체의 정치 중심지였던 시뇨리아 광장, 1345년에 만들어져 2차 세계대전 때도 파괴되지 않은 베키오 다리까지 걸으며 평화로운 시가지를 둘러봤다. 피렌체는 가죽제품, 금 세공품, 명품 패션의 도시다. 가죽면세점에 들려 비싼 제품은 보기만 하고 선물로 주려고 가죽 벨트와 지갑을 샀다.
중식은 피자와 닭고기 감자튀김, 와인이 나왔다.
피렌체 관광을 마치고 베네치아로 이동하는데 3시간 정도 걸렸다.
17시 40분에 호텔(HOTEL POPPI)에 도착하여 체크인하고 짐을 풀었다.
엘리베이터가 오래되었는지 2인(캐리어 들고) 밖에 못 들어가는 조그만 규모라 어리둥절하고 방의 구조도 우리나라 원룸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에는 샤워시설도 없고 심지어 비누도 없다. 쉬어가는 잠자리가 편안해야 즐거운 여행이 되는데 기분이 찝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