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술과 차가 발달한 나라고 이것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되는 일도 많아 저도 자주 마십니다만, 이날 이때까지 술자리의 뒷치닥거리만 맡아 하다보니까, 아직 만취해서 정신을 놓아본일이 없기에 ,세상사를 홀연히 잊고 즐거워 본 기억도 없습니다.
그저 적당히 체질에 맞을정도로 마십니다. 또 어느지역에 출장을 가더라도 주면 주는데로 마시지 향이 좋네,빛깔이 좋네하고 평을 할 정도의 미각도 없지요.
중국술의 종류가 일반적으로 4,500여종이나 된다지만, 실제 각지역의 이름없은 지방술까지 합하면 그보다는 한참 많은 수만종이 된다 합니다. 그 수만큼 중국은 술에 대해서는 발달한 민족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중국역사의 걸출한 영웅호걸들의 면면을 보면 반드시 술에 대한 얘기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지요.
중국은 석기시대부터 야생의 과실을 발효시켜 술을 빚어서 음용했다고 합니다. 물론 교역의 대상은 안되고 자가용이지요. 그러다가 商國과 周國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주조기술의 발달로 교역의 대상으로 삼고 고품질의 술도 개발하고 했습니다.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중국에는 술을 먹고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을 좀처럼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로부터 중국은 <酒禮><酒德>이 발달했습니다. 중국문화사를 보면 고대초기에는 지위구별이 없다가, 술을 만들어 마신 다음부터 그 구별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만큼 술을 마실 때 그 예의를 통제했습니다. 진한시대 이후를 보면 술에대한 예의 및 통제가 상당히 엄격했던 것 같습니다.<酒戒><酒警><酒誥><酒德><酒政>등.음주를 완전히 예의 질서상의 범주에 집어넣었던것입니다. 그를 관리하는 술관원(酒官) 이라는 특별관청까지 두었지요. 周나라때는<酒政>,漢代때<酒士>,晋代의<酒丞>,齊나라의<酒吏>,梁나라의<酒庫丞>등등…
예로부터 중국인은 아무때나 아무곳에서나 술을 마시진 않았습니다. 술을 마시는 상대와 장소,계절을 골라가면서 마셨죠. 술상대로는 고아(高雅),호협(豪俠),직솔(直率),지기(知己),고교(故交),옥인(玉人)등의 성품을 갖춘자와, 장소로는 꽃아래(花下),죽림(竹林),고각(高閣)등.분위기 있는곳에서 즐기며 마셨지요. 서민과는 다른 사대부 계층의 음주방식이겠지만, 이런가운데 野人취급받던 술이 淑女로 점차 변신해 갔던것이죠. 일반인들이야 정치가,관원,문학가등의 사대부들 만큼 그렇게 엄격한 酒禮는 없었지만, 그들을 따라하는과정에서 연장자에 대하 예의,지도자에 대한 존중의 酒禮가 자연스럽게 퍼져갔던 것이죠. 중국인이 말하는 그들만의 술에 대한 몇가지 효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제 및 예의>
술의 교제기능에 대해서는 중국에 좋은 예가 있습니다. 주은래(周恩來)가 1954년7월 인도문제해결을 위한 스위스 제네바 회의의 성공적인 결과에 대해, 두가지의 중요한 결정적 요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귀주모태(貴州茅台)이고 이는 술(酒)이였으며, 또하나는 양산박과 축영대(梁山伯與祝英臺)인데 이는 영화인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국제교류에서 술을 하나의 중요한 교재의 매개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사회의 모든 거래는 사람이 할것이며, 이들을 서로 맻게하는 중간매개로서 술을 으뜸으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종업원이 반드시 술은 무엇으로 마실것인가를 묻습니다. 공자(孔子)의 10대손인 공융(孔融)이 쓴 <與曺操論酒禁疏>에는 술의 정치.군사.외교부분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언급했으며, <左傳 莊公二十年>에는 술의 사회적기능을 “酒以盛禮”라 했고,노광(魯匡) 은 “百禮之會,非酒不行”(모든禮에는 술 없으면 안된다)라고도 했지요. <의약 및 건강>
중국은 예로부터 술을 정치.사회적 교류도구로도 많이 이용을 했지만, 의약방면의 연구도 같이 했지요. “의원어주(醫源於酒) ” 라고 의학의 “醫”자를 술에서 기원했다 할정도이니까요. 술을 제일먼저 사용한 것은 마취제로 사용되었다가,점차 내복약으로 사용했으며, 여러질병을 치료한다고 했지요.
<說問>에는 “醫之性然得酒而使”(醫란 술에서 나왔다.),그래서 술은 질병을 치료한다(酒.所以治病也)라 하고,<漢書.食貨志>에는 술은 백약의 으뜸이다(酒.百藥之長)이라고도 했지요.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좋지요. 예를 들어보면 중국역사상 당나라의 “구노회(九老會)””나 송나라의 “五老圖”의 사람중 술 좋아하지 않는사람이 없었으며, 평균수명 4,50대인 시대에 孔子는 76세,荀子는 82세,賀知章은 86세,柳禹錫은 71세,白居易는 74세,陸游는 86세 등으로 모두 장수를 했으며, 하나같이 술마시기를 즐겼지요.
<자극기능>
술은 사람의 중추신경을 자극하여,혈관을 팽창시켜 혈액의 순환을 돕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떤 개인의 독특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수있게 하지요. 인간내면 깊숙히 잠재해있는 재치와 담력을 일시적으로 표출하도록 도움을 주는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술은 중국의 많은 영웅호걸과 문학가,예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주선(酒仙)이라 명명된 이백은 차치하고라도 당나라의 수많은 문학가 왕유(王維),맹오연(孟浩然),두보(杜甫),하지장(賀知章),한유,유종원,유우석,백거이,두목..등등…하나같이 술을 즐겼으며, 또 하나같이 취중에 쓴 시들이 많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소설 홍루몽,삼국연의,수호전,유림외사등에 술에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요. 특히 금병매(金甁梅)는 총 100개의 장르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중 98개의 장르가 술에 관해 언급되어있으며, 술마신얘기만 총 389번이나 된다합니다. 그러고 보니 성룡이 주연한 취권(醉拳)도 일리가 있는 무예인 것 같아요.
술을 마실때는 자신이 조절해서 몸에 적당히 마셔야 그 효용이 더 하는거지요. 중국에는 일반적으로 “勸戒四醉(음주의 4가지 계율)를 잘 지키면 무리가 없다고들 합니다. 첫째는 <自醉>-스스로 자제해서 마실 것. 晋國의 柳公榮이란자가 있었는데, 얼마나 폭주를 했으면 스스로도 말하기를 “나보다 술이 센 사람은 반드시 나와 술을 마셔야 하고, 나보다 술이 약한 사람도 반드시 나와 술을 마셔야 하고, 나하고 비슷한 사람도 반드시 나와 술을 마셔야 한다”(比我强的不能不和我喝/不如我的不得不和我喝/和我一樣的人不可不和我喝) 라고 앞뒤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는데, 이 양반은 반드시 취해야 그만 마셨답니다. 스스로를 조절 못해서지요. 술이 사람을 마셔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것입니다. 술 취해서 하는 허언과 흐트러진 자세를 경계해야지요.
둘째는<勸醉>-적당히 권할 것. “勸者盡其意,飮者盡其量”(권하는자는 마음을 표시하고,받는자는 자기 주량에 따라마신다.) 라 했듯이, 상대에 자신의 마음과 경의를 표하는선에서 상대의 주량을 살필 필요가 있지요. 상대에게 무조건 많이 먹이면 좋고,상대도 자신의 주량을 넘어서게 마시는 것을 무슨 큰 기쁨과 상대에 대한 배려,존중으로 잘못알아서는 안되지요.
셋째는<賭醉>-술 시합을 하지말 것. 술을 마시는 것을 주량경쟁을 하듯이 서로 뽐내며 마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돈쓰고 머리 아픈 일이지요.
넷째<媚醉>-윗사람에 아양떨지 말 것. 통상 윗사람과 술을 마시면, 주량을 떠나서 윗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않기위해 무리하게 과음을 하게 됩니다. 술은 명령계통과는 상관이 없겠지요. 옛말에”食唯半飮不廉味,酒至三分莫過頻.””酒飮半酎正好,花開半吐偏姸”이라, 술뿐아니라 모든일이 다 적당해야 좋은것이라 했지요.
“酒禮가 중국음주문화의 핵심이라면, 酒德은 음주문화의 포장이다”라 했듯이, 술은 많이 마시면 惡이요,적당히 마시면 善이 되는 것입니다. <禮記>에 “君子之飮酒也,一爵而色溫如也,二爵而言斯,三爵而衝突以退” 라(군자가 술을 마심에 한잔을 마시면 온색이 돌고,두잔을 마시면 말이 많고,석잔을 마시면 흥분을 한다) 했지요. 또 酒德은 술의 품질과 건강에도 관련이 있지요. 술의 품질은 아주 엄격히 통제하지 않으면 사람의 건강에 엄청난 해를 주기 때문일겁니다. 따라서 중국은 술의 품질에 관해서는 예로부터 그 통제가 엄격했지요. 서구에도 금주령이 있었지만 중국의 금주령과는 그 목적이 틀립니다. 중국도 각 시대에 금주령을 내린적이 많았지만, 그 원인은 전쟁시,흉작시 식량의 부족에서 비롯되었지요. 그만큼 술에대해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을 중시한 문화일겁니다.
중국업체와 미팅을 하면 저녁만찬은 기본입니다. 제가 처음 중국에 와서 중국말도 모르던 시절. 그쪽이쪽 십수명이 함께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건네는 과정에서 저는 기실 꿔다논 보리자루 그대로 였습니다. 덕담 한마디 하고 “깐뻬이(乾杯)”,또 한마디하고 “깐뻬이”, 새로운 음식이 나왔다고 “깐뻬이”, 도데체 우리처럼 그냥 편히 마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식사와 함께 음주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예전의 중국술은 일종의 음료수로서 역할을 한것같습니다. 특별한 음료수가 없던 시절에 술과 차는 귀중한 접대상품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알콜농도가 지금과 같이 높지를 않고 극히 낮았던 것입니다. 무송(武松)이 18통의 술을 마신체로 호랑이를 잡은 얘기나, 이백이 술 한말에 시 백편이라고 하는말이나, 중국영화를 보면 술을 통째로 벌컥이고도 제정신으로 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지금과 같은 도수높은 술을 마시고 그렇게 하기는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 일겁니다. 우리가 처음 중국으로 올 때 잘못배워온 것중 하나가 바로 중국사람들은 시도때도 없이 술을 마시고, 한번 마시면 그 높은 도수의 술을 컵에다가 우리의 폭탄주를 마시듯이 한다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술을 마실줄 모르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습니다. 단지 그들의 오래된 손님접대의 관습에서 식사시간에 술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 뿐입니다. 중국에는 우리와 다르게 단지 술만 마시기 위한 술집이 거의 없습니다. 즉 식사의 반주로서의 성격이 짙으며, 손님접대를 위한 필수품인것입니다. 따라서 상대가 술을 못마시면 강권하지를 않고,그저 마시는 흉내만 내도 흠이 되지를 않습니다.
중국인도 한국인의 술 습관을 오해한 면이 많습니다. 개방초기 한국인을 처음 만나게 될 때 ,그들의 습관대로 식사시간에 술을 권했는데,하나같이 거절하는 사람이 없고 또 끝도없는 건배를 당당히 받아 마시는 것을 보고는 한국인은 모두 주량이 대단하구나 하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당시 중국에 출장온 한국인은 처음만난 중국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서 그들의 건배권유를 받아들인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실례인것으로 잘못 알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호간의 오해에서 중국인들은 한국인을 접대할 때 그들만의 재미있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물론 개방된 도시에선 그 방법이 많이 사라졌으나 내륙의 미개방된곳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방법입니다. 예를 몇 개 들어보면… 우리쪽이 2명이면 그들은 꼭 3명이상이 오는 것을 봅니다. 식사시간에 복무원이 돌아가며 술잔을 모두 채우면, 그들의 최고위자가 먼저 일어서서 외국손님을 향해 거창한 인사말을 하곤 건배(깐뻬이:잔을 비움)를 청합니다. 그리곤 앉아서 음식을 권하고 시간이 좀 지나 다시 일어서서 또 우리측에 건배를 권합니다. 이렇게 세번을 권하고 나면, 그다음 사람이 일어서서 덕담한마디하고 건배를 또 세번 청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단순계산으로 그들은 한사람당 3잔을 마실 때 우리측은 이미 인당 9잔 이상을 마신 것이 되어버립니다.
중국식 풍습에 따라, 물고기요리가 반드시 나오도록 되어있는데, 회전식탁 중앙에 물고기접시를 놓고 복무원으로 하여금 식탁을 돌리도록 한뒤, 멈추는 싯점에서 물고기 머리가 향한 사람은 6잔을 꼬리가 향한사람은 12잔을 마시도록 합니다. 실제는 이미 복무원에게 탁자를 돌릴 때 손님에게 머리나 꼬리가 향하도록 부탁을 해놓는경우가 있습니다. 꼼짝없이 그 많은 잔을 비워야 합니다.
이렇게 한국인을 접대할려면 그들로서도 만찬자리를 빛내기위한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지만, 한국인이 술을 잘한다는 오해에서 비롯된면도 많습니다. 솔직하게 통역을 통해서 식사전에 술을 못한다고 못을 박아놓으면, 위와 같이 번거로운 형식을 마련하지를 않거나 하더라도 손님은 콜라잔으로 해도 좋다는 양해를 받아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도 한국인의 주량에 두려움을 느끼고, 본인의 주량이 약하거나 못마실경우 반드시 우리가 말하는 술상무를 대동합니다. 쭉 인사하는 과정에 그 자리에 맞지않는 성격의 인물이 있다면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라 보면 됩니다.
중국에서의 술자리는 아무리 어깨동무하면서 朋友(친구)라 하면서 가까워져도, 어디까지나 즐기는 자리일 뿐입니다. 그냥 인간적으로 친근해 지는 것 외에는, 우리가 말하는 업무협조나 중요사항 결정이 없습니다. 단지 사업계산 이외의 일에는 스스럼없이 부탁하고 들어주기가 편할뿐입니다. 우리만큼 접대가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보는게 좋습니다. 우리 기업의 임원이나 대표가 중국인과 이런 자리를 한번하고는 일이 잘 풀리고 있고 합작하기에 전혀 이상이 없다는 판단을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만, 사실 다음날 A4용지 한장에 그 구체적 결정내용을 써 보라하면 쓸 것이 하나도 없음을 봅니다. 그냥 분위기 좋고 상당히 우호적이라는 내용외에는…..
제 개인적으로는 중국인과 술자리를 같이 할경우, 특별히 내용좋은 한시(漢詩) 한두수 정도를 준비해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복무원에게 종이와 필을 달라해서 한시 한수를 써서 돌아가며 구경을 시킵니다.
꿔다논 보리자루 되기보담, 적극적으로 화두를 던져 그날 분위기를 살리고 싶어서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중국사람중에 한시 한편을 온전히 다 외우고 있는 사람을 이때까지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업하는사람이 그것도 외국인이 멋있는 한시를 읊었다고 신기해하고 친밀한 호감을 나타냅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少年易老學難成,一寸光陰不可輕” 만 써도 신기해 합니다. 그것도 어렵다는 繁體로 쓰면 한번더 놀랍니다.한시가 반드시 문학가만 사용할 필요는 없는것입니다. 중국에서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모든 것을 배워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가격의 양보는 없다손 치더라도 적극적으로 도와 줄려는 마음은 살수가 있을것이라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