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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이 아닌 하나님을 향하여 (시2-133)
2026년 5월 31일 (주일)
찬양 : 주님 보좌 앞에 모였네
본문 : 시 133:1-3
☞ https://youtu.be/CvM9CxVtiBc?si=Lp-cHykMjsrD1uDr
거룩한 주일 아침이다.
어제 문득 설교자로서 예배가운데 내가 누구를 향하여 서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예배하는 자로 서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했다.
오랜 시간 설교자로서 서다 보니 설교자의 방향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착각하지 않았는가?
작은교회에 내가 무엇인가 도움이 되도록 설교를 잘하려는 생각에 빠지지 않았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진정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을 향하지 않는 청중을 향한 설교가 과연 무슨 힘이 있을까? 너무 당연한 이 사실을 이 나이에 와서 깨달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발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리며, 진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로서 청중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설교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
다윗은 사울의 죽음 이후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7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즈음 온 이스라엘 지파들이 다윗을 찾아와 <우리는 왕의 한 골육입니다>라며 예루살렘에서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했다.
왕이 된 다윗은 가장 먼저 들에 버려져 방치되었던 법궤를 예루살렘 시온산으로 모셨다. 이 시는 수십 년간 지파 간의 갈등과 영적 암흑기로 분열되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함께 법궤를 바라보며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언약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감격하여 부른 ‘연합의 찬가’다. 1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다윗은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보라, ‘힌네(הִנֵּה)’>고 외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사용된 경우를 보면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으로 되어진 상황과 사건에 사용되었다.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수양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에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즉 다윗은 지금 나누어졌던 유다 지파와 다른 11지파가 연합하는 이 사건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진 사건임을 보라고 외친 것이다. 즉 하나 될 수 없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내신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능력을 보라는 것이다.
여기 동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 아래서 운명 공동체가 되었고, 사명 공동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인위적인 타협을 통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신비로 이룬 하나됨이란 말이다.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완전한 결합이다.
그러면서 다윗은 그 선하고 아름다운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2-3절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첫 번째 이유는 구약에서 대제사장이 위임식을 행할 때 머리에 관유(기름)를 붓는 장면을 통해 설명한다. 이 기름은 대제사장의 머리에서 시작하여, 수염을 타고, 가슴에 있는 12지파의 보석이 박힌 흉패를 적시고, 마침내 온몸을 타고 흘러 ‘옷깃’까지 적시도록 되어 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기적이다.
기름은 철저히 ‘머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수염을 타고 가장 낮은 곳인 ‘옷깃’까지 흘러내립니다. 즉, 대제사장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부어진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전적 주권의 은혜가 아래로 가감 없이 쏟아져 내릴 때, 그 기름에 푹 젖은 지체들이 비로소 상처를 뛰어넘어 ‘감-야하드(완벽한 하나 됨)’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헐몬산(Hermon)’의 이슬로 설명한다.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단에 있는 해발 2,800m가 넘는 만년설 산이다. 반면 ‘시온산(Zion)’은 남쪽 유다에 있는 해발 700m 남짓의 거칠고 메마른 대지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 동안, 헐몬산의 차가운 대기가 북풍을 타고 내려와 메마른 시온산의 대지와 만날 때, 밤사이 시온의 들판을 촉촉하게 적시는 엄청난 양의 ‘이슬(Dew)’이 맺힌다. 이 이슬이 없으면 시온의 식물들은 다 타 죽는다.
<헐몬의 이슬>은 그러므로 100% 하늘의 공급이다. 사막 같은 시온산에 하늘의 이슬이 내릴 때 메마른 땅이 살아나듯,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전(시온)에 모여 예배할 때, 인간의 메마른 대책과 계산을 덮어버리는 하늘의 생명력(영생)이 임한다는 선포다. 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가?
이 기적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너무 놀랍고 자연스러운 기적으로 이 연합은 완벽한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은 복을 명령하셨다. <명령>이란 단어인 히브리어 ‘치와’는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나 절대 군주가 어떠한 반대나 타협도 허용하지 않고 내리는 ‘절대적인 명령’을 뜻한다.
이 단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셨을 때 무(無)에서 유(有)가 창조되었던 그 창조적 권세의 동사와 맥을 같이 한다. 형제가 연합하여 드리는 예배에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빼앗길 수 없는 복이 있다는 말이다.
거룩한 주일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연합을 통한 예배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있을 때 이루어지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기적이며,
이 기적의 현장에 하나님은 복을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한 사람 다윗의 세워짐이 만든 이 아름다운 연합과 복의 시작점이 되는 장면을 묵상한다. 오늘도 예배자로 선 한 사람의 세워짐이 세상을 은혜로 적시며 하나로 이루며 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명령을 듣는다.
인간의 인위적인 방법을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의 은혜의 기름부으심으로 만든 연합의 예배가 되고 복이 선포되는 복된 주일이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 거룩한 주일 겸손히 청중이 아닌 하나님을 향해 겸손한 예배자로 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받아주소서.
한줄 묵상 :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정직한 예배자로 섬이 온 세상에 복을 흐르게 하는 길이다.>
적용 질문 :
1.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닌 '내가 청중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도록 설교를 잘해야 한다'는 조바심과 은밀한 교만이 있습니까?
2. 오늘 내가 맡은 사명의 현장과 공동체를 온전히 연합시키고 살려내실 분은 내 설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뿐임을 확신합니까?
3. 오늘 주일 강단 위에 오직 왕의 주권적 통치만이 선포되도록 내 전 존재를 말씀 앞에 겸손히 굴복시키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