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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는 있지만 솔직히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옆에 앉은 분들도 다들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이시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아. 부끄러워서 질문도 못 하십니다. 집에 돌아오면 또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냥 관세음보살만 열심히 부르면 되겠지 생각하십니다.
경전 공부 모임에 가시면 더 답답합니다.
한문으로 된 경전을 읽으면서 해설을 들으시는데 한문도 어렵고 해설도 어렵습니다.
연기법이 어쩌고 12연기가 어쩌고 사성제가 어쩌고 8 정도가 어쩌고 하는데 머리만 복잡해집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이해를 하는 것 같은데 나이 드신 분들은 그냥 졸음만 쏟아집니다.
그래서 생각하십니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부처님 말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 40년 설법의 핵심이고 모든 경전에 요지이고 모든 수행의 근본입니다.
먼저 문현부터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무념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잘못 이해합니다.
무념이라고 하면 아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머릿속을 텅 비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선할 때 억지로 생각을 멈추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념이 아닙니다.
생각을 억지로 막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여러분도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참선을 하려고 앉았는데 온갖 잡념이 다 떠오릅니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더 괴로워집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무념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6조단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념이란?
생각 가운데 있으면서도 생각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생각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여러분이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떠오릅니다.
병원에 가야 하나?
장을 봐야 하나?
자식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그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거기에 매달려서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검사 결과가 나쁘면 어떡하지?
큰 병에 걸린 건 아닐까?
수술을 해야 하면 어떡하지?
돈은 얼마나 들까?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면 어떡하지?
이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괴로워하는 겁니다.
무념이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오늘 병원에 가야 하는구나.
그렇게 알아차리고는 그냥 그대로 둡니다.
거기에 달라붙어서 이런저런 걱정을 더하지 않습니다.
생각은 떠올랐다가 저절로 사라집니다.
구름이 하늘을 지나가듯이
생각도 마음을 지나갑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일체의 경계에 마음이 물들지 않는다면
이것을 무념이라 한다.
여기서 경계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상황을 말합니다.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기거나 듣기 좋은 말을 들을 때나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 이 모든 것이 경계입니다.
우리는 보통 좋은 경계를 만나면 기뻐하고 집착합니다.
나쁜 경계를 만나면 화내고 피하려 합니다. 이것이 물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경계에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무념이란?
경계를 만나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생겨도 거기에 들뜨지 않고
나쁜 일이 생겨도 거기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도 할 일은 합니다.
병원에 가야 하면 가고
장을 봐야 하면 봅니다.
하지만 그 일에 마음이 휘둘리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에서
응무소주의 생기심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고 하셨습니다.
머무는 바 없다는 것이 바로
무념입니다.
어떤 생각에도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가 괴로운 것은 대부분 생각 때문입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며 후회하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며 걱정합니다.
지금 이 순간은 아무 일도 없는데 생각 때문에 괴롭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편안하게 앉아서 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만 본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생각이 일어납니다.
아까 며느리가 한 말이 서운하다.
내일 병원 검사 결과가 걱정된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의 평화가 깨집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념이 지나가고 후념이 오지 않으면 그때가
바로 무념이다.
앞 생각이 지나가면 그냥 지나가도록 두고. 다음 생각이 오기 전에 그 순간 그것이 무념입니다.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고요하고 청정합니다.
그 순간이 바로 우리의 본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념을 실천할 수 있습니까?
먼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아 지금 내가 걱정하고 있구나
. 아 지금 내가 화내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알아차리기만 해도 생각과 나 사이의 거리가 생깁니다.
전에는 생각과 내가 하나였습니다.
걱정하는 생각이 곧 나였습니다.
하지만 알아차리면 생각을 바라보는 내가 있습니다.
생각은 객관적인 대상이 됩니다.
그렇게 알아차린 다음에는 그 생각을 붙잡지 않습니다.
아 내가 지금 걱정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린 다음 그냥 둡니다.
그 생각을 계속 이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생각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알아차려도 금방 다시 생각에 빠져듭니다. 괜찮습니다.
다시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점점 생각과 거리를 두는 것이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생각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문제는 그 생각에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이 일어났다고 해서 자책하지 마십시오.
아 또 전념이 일어났네 하며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그냥 알아차리고 놓아주면 됩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드셨습니다.
마음은 하늘과 같고 생각은 구름과 같다. 하늘은 언제나 맑습니다.
다만 구름이 지나가면 잠시 가려질 뿐입니다.
구름이 지나가면 다시 하늘은 맑습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는 청정합니다.
다만 생각이라는 구름이 지나가면 잠시 가려질 뿐입니다.
그렇다고 구름을 억지로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구름은 저절로 지나갑니다.
우리는 그냥 하늘처럼 고요히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구름이 지나가고 다시 맑은 하늘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무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요.
마음이 주인이요.
마음이 만든다.
만약 깨끗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르기를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한다.
깨끗한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무념의 마음입니다.
어떤 생각에도 물들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살아가면 자연이 즐거움이 따라옵니다. 아 억지로 즐거워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평화와 기쁨이 생깁니다.
여러분 오늘 밤부터 한번 실천해 보십시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난 생각들을 돌아보십시오.
어떤 생각들이 여러분을 괴롭게 했습니까?
그 생각들을 다시 떠올리되 이번에는 거기에 빠져들지 마십시오.
객관적으로 바라보십시오.
아 나는 오늘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걱정을 했구나.
그렇게 알아차리고는 놓아버리십시오.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뜰 때 첫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십시오.
그 생각을 붙잡지 말고 그냥 지나가게 두십시오.
이렇게 하루하루 실천하다 보면 점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무념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하신 다른 말씀들도 살펴보겠습니다.
반야심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색즉시공공즉시색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
이 말씀이 무념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생각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돈을 봅니다. 그러면 돈에 대한 생각이 일어납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야. 돈이 없으면 불안해. 이런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돈 자체는 그냥 종이일 뿐입니다.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색즉시공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는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것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슬퍼합니다.
무념이란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들이 본질적으로는 공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좋은 것을 고고도 들뜨지 않고 나쁜 것을 보고도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법화경에서도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법은 공상이니 실한 성품이 없다.
이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이 공한 모양일 뿐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이것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육조 단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본래 청정하다. 다만 망념이 일어나서 진열을 덮을 뿐이다. 망년만 없으면 본성이 저절로 드러난다.
여기서 망년이란 헛된 생각을 말합니다. 실체 없는 것에 집착하는 생각입니다.
진열한 참된 모습을 말합니다.
우리의 본래 면목입니다.
그 본래의 면목은 원래 청정합니다.
다만 망념이 일어나서 가려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망령을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억지로 없애려 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것이 망려임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아 이것은 실체 없는 생각이구나.
이것은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구나.
그렇게 알아차리면 그 생각은 힘을 잃습니다.
예를 들어
밤에 길을 가다가 뱀을 봤다고 생각해서 놀랐는데 자세히 보니 밧줄이었습니다.
그 순간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밧줄은 그대로 있지만 더 이상 무섭지 않습니다.
그것이 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 더 이상 그것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생각은 여전히 일어나지만 우리는 그것에 속지 않습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이 말씀이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의 생각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미래의 생각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현재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어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됩니다.
붙잡으려 하면 이미 사라진 뒤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붙잡으려 하지 마십시오.
생각을 붙잡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냥 흘러가게 두십시오.
이것이 무념입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념에 머물지 않고 후념에 머물지 않고 중간염에도 머물지 않으면 이것이 무주이다.
무주에 대해서는 뒤에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과거의 생각에 멉니다.
지난 일을 자꾸 떠올리고 거기에 매달립니다.
돈은 미래의 생각에 멉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자꾸 상상하고 거기에 매달립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의 생각에도 머무릅니다.
지금 느끼는 감정에 빠져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무념이란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머물지 않고 미래에도 머물지 않고 현재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일어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유마경에서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마음이 물과 같아서 집착함이 없다면 이것이 곧 보살의 청정한 마음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어디에 머물지 않습니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구멍을 만나면 채웁니다. 집착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도 물처럼 되어야 합니다. 좋은 일을 만나면 기뻐하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나쁜 일을 만나면 슬퍼하되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냥 흘러갑니다. 이것이 무념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운영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더 알려 드리겠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입니다. 첫째 호흡을 관찰하십시오. 생각이 많아질 때 호흡에 주의를 돌리십시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끼십시오. 코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 입으로 나가는 따뜻한 공기를 느끼십시오. 호흡에 집중하면 자연이 생각이 줄어듭니다. 둘째 몸의 감각을 느끼십시오. 지금 이 순간 몸이 느끼는 것에 추위를 기울이십시오. 의자에 닿은 엉덩이의 느낌 바닥에 닿은 발의 느낌 옷이 피부에 닿는 느낌을 느끼십시오. 몸의 감각에 집중하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셋째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밥을 먹으면 밥 먹는 것에만 집중하십시오. 밥 아래 촉감 음식의 맛 씻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걸으면 걷는 것에만 집중하십시오. 바리 땅에 닿는 느낌 몸이 움직이는 느낌에 추위를 기울이십시오. 이렇게 하면 자연이 잔념이 줄어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 있게 됩니다. 과거도 미래도 없습니다. 오직 지금뿐입니다. 이것이 무념입니다. 예능 스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좌선이란 밖으로는 모든 선악의 경계에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라하고 안으로 자성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선이라 한다. 좌선한다고 해서 꼭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앉아 있든 서 있든 걷든 눕든 항상 마음이 고요하면 그것이 좌선입니다. 밖으로는 온갖 일이 일어나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안으로는 본성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것이 진정한 좌석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생각에 휘둘리지 않으면 됩니다. 좋은 일이 생겨도 들뜨지 않고 나쁜 일이 생겨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무념의 힘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이 말씀을 깊이 새기십시오. 여러분도 이미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망렴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망령을 없애면 불성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망령을 없앤다는 것이 억지로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을 생각으로 볼 줄 아는 것입니다. 생각에 숙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은 저절로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이것을 도노라고 하셨습니다. 단번에 깨닫는 것입니다. 점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깨닫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닫습니까? 우리가 본래 부처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더 이상 닦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습니다. 이미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신수 스님은 몸을 보릴 수로 마음을 거울로 비유하고 때때로 닦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점수행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예능 스님은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끼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도노입니다. 우리가 본래 청정함을 아는 것입니다. 닦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둘 다 맞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점수행이 맞고 어떤 사람에게는 돈어가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캐능 스님의 가르침이 주는 희망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완전하다는 것 이미 부처라는 것 다만 그것을 모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깨달은 존재입니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무념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이해하셔야 할 핵심이 있습니다. 문념이란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생각의 노예입니다. 생각이 시키는 대로 움직입니다. 걱정하라고 하면 걱정하고 화내라고 하면 화냅니다. 슬퍼하라고 하면 슬퍼하고 두려워하라고 하면 두려워합니다. 생각이 주인이고. 여러분은 종입니다. 하지만 문형을 실천하면 이것이 바뀝니다. 여러분이 주인이 되고 생각이 종이 됩니다. 생각은 그저 도구일 뿐입니다. 필요할 때 사용하고 필요 없을 때는 내려놓습니다. 마치 연장처럼요. 목수가 톱을 사용합니다. 나무를 자를 때는 톱을 들지만 자르고 아면 톱을 내려놓습니다. 하루 종일 톱을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할 때 생각하고 필요 없을 때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하루 종일 생각을 들고 다닙니다. 자나 깨나 생각합니다. 밥 먹으면서도 생각하고 걸으면서도 생각하고 심지어 잠잘 때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곤합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개능 스님께서는 이것을 명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6 조 단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각 생각이 끊어지지 않으면 곧 윤혜에 묵힌다. 생각 생각이 끊어지면 모든 법에서 해탈한다. 생각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한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생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윤혜입니다.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합니다. 과거의 생각이 미래의 생각을 만들고 미래의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만듭니다.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끊어진다는 것은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면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다음 생각을 억지로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틈이 생깁니다. 그 틈이 바로 자유입니다. 그 틈에서 우리는 해탈합니다. 부처님께서 법구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방일하지 않는 것은 불사의 길이요. 방이란 것은 죽음의 길이다. 방이라지 않는 사람은 죽지 않고 방이란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같다. 여기서 방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늘 깨어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고 생각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사의 길입니다. 죽지 않는 길입니다. 반대로 방일하다는 것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생각에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의 길입니다.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고 생각 속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세워 보십시오. 하루 중에 진짜로 살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상상 속에서 보내지 않습니까? 그것은 진짜 삶이 아닙니다. 생각 속의 삶입니다. 무념을 실천하면 진짜 삶을 삽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삽니다. 과거도 미래도 없습니다. 오직 지금뿐입니다. 그 지금이 영혼입니다. 그 지금이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요. 부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토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이 마음에 있다고요. 그 마음이 무엇입니까? 무념의 마음입니다.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는 마음입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착한 벗이여. 부처가 되려거든. 마음의 본성을 보라. 우리의 본성은 본래 청정하니 이 본성을 활용하면 곧 부처가 된다. 본성을 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각 너머에 있는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생각은 변하지만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생각은 왔다 갔다 하지만 본성은 항상 있습니다. 그 본성을 보면 부처가 됩니다. 어떻게 본성을 볼 수 있습니까? 생각을 관찰하면 됩니다. 생각을 지켜보는 그것 그것이 본성입니다. 생각은 대상이고 본성은 주체입니다. 생각은 보여지는 것이고 본성은 보는 것입니다. 지금 한번 해보십시오.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지 관찰해 보십시오. 그 생각을 지켜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본성입니다. 그것이 부처입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유의법은 꿈과 환상과 물거품과 그림자 같고 이슬과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하라. 생각도 유의법입니다.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실체가 없습니다. 꿈과 같고 한상과 같습니다. 이것을 알면 생각에 숙지 않습니다.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는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서우면 정말 무서웠고 기쁘면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깨고 나니 꿈이었습니다. 실체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할 때는 그것이 진짜라고 느낍니다. 걱정하면 정말 걱정되고 화나면 정말 화납니다. 하지만 그것도 꿈입니다. 실체가 없습니다. 깨어나면 사라집니다. 무념이란 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생각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현실이 보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보입니다. 이제 무상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무상 형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예능 스님께서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밖으로 일체 경기에서 형상을 떠나는 것 그것이 무상이다. 우리는 항상 형상에 집착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에 잡히는 것에 집착합니다. 이것이 실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영원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붙잡으려 하고 잃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예를 들어 돈에 집착하는 것을 보십시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모으려고 애쓰고 돈을 모으고 나면 잠시 기쁩니다. 하지만 곧 불안해집니다. 이 돈을 잃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더 모려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모아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항상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돈이 진짜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은 그저 종이일 뿐입니다. 우리가 거기에 가치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 가치는 우리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실체가 없습니다. 명예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칭찬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명예를 얻으면 잠시 기쁩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더 큰 명예를 얻으면 시샘이 납니다. 네 명예가 떨어질까 봐 불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명예도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명예는 다른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은 변합니다. 오늘 칭찬하던 사람이 내일은 욕할 수 있습니다. 그것에 집착하면 괴롭습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의 몸에도 집착합니다. 전고 건강하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몸은 변합니다. 나이가 들면 늙습니다. 병이 들면 아픕니다. 결국 죽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개능 스님께서는 신수 스님의 개송을 비판하셨습니다. 몸을 보리수에 비유하고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는 것은 형상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보리수도 형상이고 거울도 형상입니다. 그것을 닦는다는 것도 형상입니다. 진정한 깨달음은 형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거울도 대가 아니라고 하신 것은 그 뜻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어떤 형상으로도 나타낼 수 없습니다. 나무도 아니고 거울도 아닙니다. 그 어떤 것에도 비유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금강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고 음성으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삽된 길을 행하는 것이니 열애를 보지 못하리라. 여기서 열애는 진리를 우리의 본성을 말합니다. 그것은 형상이 없습니다. 그러니 형상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모습을 그린 불상을 아무리 많이 봐도 그것으로는 진짜 부처를 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목소리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것으로는 진짜 부처를 할 수 없습니다. 진짜 부처는 형상이 없습니다. 우리의 본성도 형상이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진짜입니다. 그것만이 영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그것들이 실체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보십시오. 젊었을 때와 지금의 모습이 다릅니다. 피부는 주름지고 머리는 희어지고 키는 줄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힘이 넘쳤는데 지금은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합니다. 몸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저녁에는 우울합니다. 어제는 화가 났는데 오늘은 괜찮습니다. 마음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영원하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붙잡으려 하고 잃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고통의 원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우상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법 구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 이것을 지혜로써 보면 곧 괴로움을 싫어하게 되나니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무상을 깨달으면 집착에서 벗어납니다. 어차피 변하는 것인데 붙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있을 때는 있는 대로 고맙게 여기고 없어지면 없어지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자유로워집니다. 혜능 스님께서 말씀하신 무상은 이런 뜻입니다. 모든 형상이 실체가 없음을 아는 것 그래서 어떤 현상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무상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가족도 사랑하고 그렇게 살면 됩니다. 다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면 됩니다. 있으면 감사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자식에게 집착하면 괴롭습니다. 자식이 내 뜻대로 살아주기를 바라고 내 기대에 부응해 주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면 집착입니다. 자식도 자식의 인생이 있습니다. 자식도 변합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할 때는 감사하게 여기고 아플 때는 아픈 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건강해야만 한다. 절대로 아프면 안 된다. 이렇게 집착하면 괴롭습니다. 나이가 들면 아
게 당연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합니다. 캐능.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경기에서 상을 여이면 곧 열애를 보리라. 여기서. 상을 여인다는 것은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열에 즉 진리를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
것입니다. 있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항상. 있습니다. 이렇습니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문해 보십시오. 이것이 영원합니까? 2
일상생활에서 무상을 실천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아. 나는 지금 돈에 집착하고 있구나. 아. 나는 지금 명예에 집착하고 있구나. 아. 나는 지금 건강에 집착하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문해 보십시오. 이것이 영원합니까? 이것이? 실체입니까? 돈은? 영원합니까? 아닙니다. 돈은. 왔다 갔다 합니다. 명예는. 영원합니까? 아닙니다.
명예도 변합니다 건강은 영원합니까 아닙니다 건강도 변합니다 이렇게 깨닫고 나면 집착이 약해
집니다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약해집니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실천하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반야심경에서 새
풀이공 공부리색 색즉시00즉시색 물질
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 이 말씀이 어렵게 느껴지시죠 하지만 간
단합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는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파도를 보십시오 파도가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파도는 실체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파도는 물의 움직임일 뿐입니다 물 자체는 변
하지 않습니다 다만 형태가 변할 뿐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파도와 같습니다 형태는 변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본질이 공입니다 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집착에서 벗어납니다 파도에 집착하는 사람은 파도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파
도가 사라져도 물은 그대로 있습니다 형태만 바뀔 뿐입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파도와 같습니다 변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성은 물과 같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알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몸은 죽어도 본성은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능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성은 본래나고 멸함이 없다 우리의 본성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영원
합니다 다만 몸이라는 형상을 잠시 빌렸을 뿐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단지 형상의 변화일 뿐입니다 마치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바가바드기타에도 이런 말씀이 나온다고 합니다 영
우는 결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입듯이 영혼은 낡은 몸을 버리고 새로운 몸을 취한다 부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법 구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태어남이
반드시 죽음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상의 지혜입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젊음이. 가는 것도
잃는 것도 심지어 죽음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무상을 실천하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동안 변한 것들을 생각해
아침에. 연속입니다. 이미 소화되어 없어졌습니다. 아침에 기분도 이미. 변했습니다. 낮에 만난 사람들도. 이미 헤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변화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매일 무상을. 관찰하십시오. 그러면 점점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쉬워집니다. 집착도 약해집니다. 이제 무주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무주 머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케능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성품 위해서 생각 생각이 끊어지지 않되 전념에 머물지
않고 수념에 머물지 않고 중간염에도 머물지 않으면 이것이 무주다. 무주는 무념 무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념이 생각에 머물지 않는 것이고 무산이 형상에 머물지 않는 것이고 우주는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미래에 머물러 있거나 어떤 생각에 머물러 있거나 어떤 감정에 머물러 있습니다. 거기에 고착되어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일에 머물러 있는 경우를 보십시오. 10년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 일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때 그 사람이 한 말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 그것들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사람을 미워합니다. 지금도 그 일 때문에 괴롭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10년 전의 1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도 괴롭습니까? 마음이 그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검사 결과가 나쁘면 어떡하지? 다음 달에 돈이 모자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합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입니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미리 걱정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괴롭게 보냅니다.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환하게 한 사람은 이미 가고 없습니다. 상황도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화가 남아 있습니다. 그 화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화가 납니다. 개능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한 생각이라도 머물면 생각 생각이 머물게 되어 이것을 결박이라 한다. 머문다는 것은 곧 묵힌다는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가장 강조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응무소주의 생기심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라는 것입니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과거에도 머물지 않고 미래에도 머물지 않고 현재에도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두고 앞으로 올 일은 올 때 대처하고 지금 이 순간은 지금 이 순간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개능 스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드셨습니다. 마음은 물과 같아서 흘러가야 한다. 고이면 썩는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 머물러 있으면 속습니다. 집착이 생기고 번뇌가 생기고 괴로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흘러가게 두면 맑습니다. 계곡물을 보십시오. 계속 흐릅니다. 바위를 만나도 돌아가고 나뭇가지를 만나도 그냥 흘러갑니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맑습니다. 엉덩이에 물을 보십시오. 고여 있습니다. 흐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썩습니다. 냄새가 나고 벌레가 끓고 더러워집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흘러가게 두면 맑습니다. 고이게 두면 썩습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마음이 썩습니다. 미래에 머물러 있어도 마음이 썩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주를 실천할 수 있습니까? 먼저 지금 내가 무엇에 머물러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아 나는 지금 과거에 머물러 있구나. 아 나는 지금 미래에 머물러 있구나. 아 나는 지금 이 화에 머물러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붙잡아 봤자 소용없습니다. 놓아버리십시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걱정해봤자 소용없습니다. 놓아버리십시오. 화는 이미 그 역할을 다했습니다. 계속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놓아 버리십시오. 그러면 지금 이 순간만 남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됩니다. 캐능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전념이 금방 멸하고 후념이 즉시 일어나지 않으면 그 사이가 무주이다. 앞 생각이 사라지고 뒤 생각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순간 그때가 무주입니다.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법구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과거를 쫓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말라. 과거는 이미 버려졌고 미래는 아직 이루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법을 곧바로 관찰하여 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게 하라. 현재의 법을 관찰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억으로 보지도 않고 미래의 기대로 보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 일상생활에서 우주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에만 집중하십시오. 밥을 먹으면 밥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걸으면 걷는 것에만 집중하고 말하면 말하는 것에만 집중하십시오. 우리는 보통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합니다. 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걱정을 합니다. 걸으면서 다른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십시오. 밥을 먹으면 밥맛을 느끼십시오. 걸으면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을 느끼십시오. 말하면 내가 하는 말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자연이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금방 다른 생각에 빠집니다. 괜찮습니다. 알아차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됩니다. 이렇게 반복하십시오. 점점 현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것입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행주저와 어묵동정 행하고 머물고 안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할 때 모든 때에 본성을 떠나지 말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언제 어디서나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지금 이 순간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머물지도 말고 미래에 머물지도 말고 지금 이 순간에만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수행입니다. 절에 가서 경전을 읽는 것만이 수행이 아닙니다. 참선을 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모든 순간이 수행입니다. 밥 먹는 것도 수행이고 걷는 것도 수행이고 말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만 4천 번문이 있지만 모두 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 한 마음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는 마음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떠나 지금 여기에 있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문연 무상 무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 가지는 사실 하나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같은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무념이 되면 자연이 무상이 되고 무상이 되면 자연이 무주가 됩니다. 개능 스님께서는 이것을 종합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념을 종으로 삼고 무상을 채로 삼고 무주를 본으로 삼는다. 무념이 근본이고 무산이 본질이고 무주가 바탕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하나가 되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부처님께서 40년 동안 설하신 모든 법이 결국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집착하지 말라. 머물지 말라. 자유로워져라. 이것이 핵심입니다 환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제 중생이 다 열애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으나 다만 망상과 집착 때문에 얻지 못할 뿐이다. 우리 모두는 이미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망상과 집착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망상이란 무엇입니까?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무념을 실천하면 망상에서 벗어납니다. 집착이란 무엇입니까? 경상에 메이는 것입니다. 무상을 실천하면 집착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무주를 실천하면 완전히 자유로워집니다. 캐능 스님께서는 우주 스님께 법을 받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성이 본래 나고 멸함이 없음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성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음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성이 본래 흔들림이 없음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성이 능히 만법을 낳음을 이 5 가지가 케능 스님의 깨달음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본래 총점합니다. 더러워진 적이 없습니다. 닦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완전합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나구 멸함이 없습니다.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몸은 태어나고 죽지만 본성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스스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밖에서 무언가를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다고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완전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상황이 변해도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생겨도 나쁜 일이 생겨도 본성은 고요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능히 만법을 낳습니다. 모든 것이 이 본성에서 나옵니다. 생각도 감정도 세상 모든 것이 이 분성에서 나옵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부처가 됩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특별한 능력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법하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은 이미 부처가 되었다.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 그것을 모를 뿐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집에 보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보물은 집 안에 있는데 밖에 나가서 구걸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 안을 살펴보니 보물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순간 부자가 됩니다. 버물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