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내게도 믿음이 생겼다
김 상 립
영혼이 실제로 존재 할까? 참 오랫동안 많은 토론을 불러왔던 신학의 논제이기도 하다. 성경에 ‘인생은 잠시 머무는 길손’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데, 이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인증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또 불교 쪽에서도 부처님께서 영혼이나 윤회를 직접 말씀하셨는지 여부를 두고 아직도 논쟁을 한다. 그러면서도 거의 모든 사찰에서는 죽은 이의 영을 천도하는 49재를 시행하고 있다. 반대로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는 사람들은 영혼은 생각이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처럼 인류가 수 천 년을 살아오며 영혼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을 내놨지만, 이론에 모순이 없어 모두가 수긍하거나, 학술적으로도 체계가 확립된 답은 아직 없다고 보는 게 옳을성싶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밝혀진 영혼의 존재 여부는 고사하고, 그게 실제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떻게 받아들여져 활용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본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가 확실하게 믿지도 않으면서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적 흐름 때문인지 영혼이란 말을 너무 쉽게 쓰며 사는 게 현실이다. 당장 노래 가사만 봐도 영혼이란 말이 너무 자주 나오고, 문학작품을 비롯하여 여러 장르의 예술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평소 대중들의 대화 속에서도 영혼이란 말은 전혀 걸러지지 않고 멋대로 사용되지만 이를 두고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현대인들은 영혼이란 말을 자기 편리한대로 또는 자기 유리한대로 갖다 붙여 처세술로 활용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도 텔레스는 ‘영혼에 관하여’ 라는 책을 썼는데, ‘인간의 삶 전체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라 했다. 또 20세기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중 하나이며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 윌리엄 포크너(1897-1962)는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정과 희생과 인내를 실행하는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석학이신 이어령 선생도 죽음을 앞두고 구술로 남긴 ‘마지막 수업’이란 책에서 ‘영혼이 있으니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는 의미 심장한 글을 남겼다. 또 평소 무소유를 강조하시던 법정스님마저 노령에 들어 ‘영혼은 불멸의 존재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런 빛이다.’라고 썼다. ‘혼 불’ 작가 최명희는 ‘혼 불이란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으로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빠져나가게 되는 데 그 크기는 종발 만하며 맑고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했다.
나도 어렸을 때, 아버지나 주위 어른들로부터 ‘죽어 가는 사람 몸에서 새파란 불빛이 빠져 나와 날아가는 데 크기는 주먹만하고 가느다란 꼬리가 달렸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또 내가 정신세계를 공부할 때도 마음만 먹으면 제 영혼을 유체이탈(遺體離脫)시켜 가고 싶은 곳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하다 돌아올 수도 있고, 또 수시로 제 영혼이 여러 신들과 만나 대화한다는 사람들도 여러 명 만났다. 그 동안 나는 '광대무변한 우주의 상층부에는 의식을 가진 거대한 에너지 집단이 있어 거기서 영혼을 관장한다'고 배웠다. 지구상에서 한 아이가 탄생할 순간에 하늘의 으뜸인 조물주께서는 새 생명과 함께하라고 내려주시는 작은 빛 덩어리 가 바로 영혼이라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깊이 파헤쳐보면 그 끝은 모두가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에너지든지 완전히 사라지는 법은 없고,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계속 전환된다. 현대과학도 에너지 불변의 법칙을 내놓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렇게 따지면 사람의 육신도 끝까지 분해해 들어가면 에너지만 남을 것이다. 결국 사람도 다른 에너지들처럼 한 생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생으로 전환되고 계속 변화하며 유유히 흘러갈 것이다. 걸으면서 명상하기로 유명한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은 존재하는 것들의 불멸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가 종이를 태우면 그 중 일부는 연기가 된다. 그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 어떤 형태로든 계속 존재할 것이다. 또 타는 종이에서 나오는 열기는 우주 속으로 들어가 다른 것들과 뒤섞인다. 타고 남은 재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일부는 나무와도 합쳐질 것이다’라고.
황혼에 든 나는 영혼을 자주 생각한다. 한 생을 잘 살아 내지도 못한 내가 지금 와서 달리 기댈 데도 없고, 좋은 마무리를 위해서는 오직 믿을 것이라곤 영혼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혼 불에 대한 얘기며, 또 정신 공부하는 과정에서 입력된 영혼에 대한 내용과, 그리고 나이 들며 깨달은 나름의 판단을 종합해보면, 만일 영혼을 믿지 않으면 나의 삶과 죽음을 도저히 풀 수가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제 내게 깃든 영혼은 나에게 남은 마지막 종교가 되었다. 나는 여태까지 몇 가지 종교를 두고 진짜 신도가 되기 위해 고심하던 일을 이만 그치기로 마음 먹었다. 또 누가 뭐라던 전생이나 후생에 대한 얘기에도 귀 기울이지 안는다. 특히 운명이니 사주팔자니 복이니 재수니 하는 것 들도 멀찌기 치워버렸다. 그러니 이번 생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았던, 그 동안에 쌓아온 의식과 경험을 영혼에게 넘기고, 후손들에게도 내 유전자를 물려주고, 내 삶을 그대로 세상에 보이고 나면 나의 역 할은 끝난 것이다.
오직 바라 건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깃들었던 영혼이 내가 죽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서 아주 좋은 삶을 꾸리고 선한 일을 한다면 정말 좋겠다. 특히 나와 함께 살았던 기간에 내가 경험했던 어떤 일이나 생각이 영혼에게 선택되어 계속 확장 시켜가는 노력을 해준다면 그 이상의 보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영혼을 성장시키는 것이라 했다. 마지막까지 진심을 다한다면 단 한 번의 삶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는 위안을 얻을 것이라 기대한다. (2024. 12월)
첫댓글 자정 즈음에 일어나서 선생님의 글 읽고서 이 시각까지 '영혼'과 '믿음'에 대하여 여러 생각을 하다가 이 시각에야 댓글 씁니다.
영혼과 신앙에 대하여 깊이 접할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 잘 지켜가시기를 바라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