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 있었던 살해사건을 소재로 한 임채영의 장편소설 『평면거울』. 살인사건과 수사, 그리고 사법적 판단의 주체인 법원이라는 긴박감 넘치는 주제를 통해 ‘확신과 신뢰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특히 영화처럼 선명하고 빠른 문체가 돋보인다. 한 10대 소녀가 신축 공사장에서 강간을 당한 후 끔찍하게 살해 되었고, 경찰은 한 청년을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가난했던 그 청년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사실상 ‘유죄 추정의 원칙’하에서 수사를 받았고 결국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낙인찍혀,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된다. 그 청년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하여 홀로 진실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누구도 그의 진실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자신의 진실이 세상의 편견 앞에 얼마나 무기력하고 나약한지를 뼈저리게 느낀 청년은 결국 인질극을 벌이며 마지막 필사의 탈옥을 시도하는데 ….
저자 임채영
1965년 대전에서 태어나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장편소설 『바다, 그 얼어붙은 시간(1994년 웅진출판)』과 장편소설 『남자의 전설 1, 2(2000년 창해출판사. 전 2권)』 장편소설 『진실 (2001년 창해출판사. 전 3권)』과 장편소설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2002년 광개토출판사)』 그리고 어린이와 성인이 함께 읽는 짧은 장편소설 『해는 져서 어두운데 (2003년. 황금나무)』와 『광개토태왕 (전 5권 편저. 2007년 8월 황금나무)』 등의 소설을 발표하였다. 이밖에 『재출발로 성공한 9인 (2004년 8월, 황소자리. 共著)』와 『그때는 몰랐습니다 (엮음. 2006년 5월 예문출판)』 등을 출간하였다. 어린이를 위한 글로는 웅진 위인전집 『셰익스피어 (1995년 웅진출판)』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와 함께 떠나는 『법률 서바이벌 게임(2004년 3월, 황금나무)』 그리고 중편동화 『엄마 아빠 사랑해요 (2004년. 12월 가교출판사』와 저학년 수학동화 가제 『찾아라! 수리별 암호 (2005년. 12월 가교출판사)』등과 『성공하는 어린이로 키워주는 탈무드 (엮음. 2007년 5월 가교출판)』 등이 있다.
◆ 불빛 속에 숨은 남자 / ◆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체
◆ 현장부재증명 / ◆ 취조실의 거울
◆ 새로운 용의자, 그리고 얼룩진 신분증 / ◆ 반갑지 않은 의뢰
◆ 불신, 강력반 팀장과 여변호사 / ◆ 현장의 소리들
◆ 사건 번호 99 고합 572 / ◆ 굴절되는 빛
◆ 의문의 총성 / ◆ 에필로그, 작가의 글
한 소녀가 끔찍하게 살해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한 청년이 살인범으로 지목되었다.
그것은 진실일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임채영 장편소설《 평면거울 》은 10여 년 전 실제 있었던 살해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한 10대 소녀가 신축 공사장에서 강간을 당한 후 끔찍하게 살해 되었고, 경찰은 한 청년을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가난했던 그 청년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사실상 ‘유죄 추정의 원칙’ 아래에서 수사를 받았고 결국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낙인찍혀,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된다. 그 청년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하여 홀로 진실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누구도 그의 진실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편견과 틀에 박힌 사고로 ‘낙인’이 찍혀 버린 이 청년의 진실을 결코 믿어 주지 않았으며, 청년은 자신의 진실이 세상의 편견 앞에 얼마나 무기력하고 나약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결국 그는 인질극을 벌이며 마지막 필사의 탈옥을 시도하는데……
살인 사건이라는 긴박한 주제, 그리고 영화처럼 빠르고 선명한 소설적 필체
임채영 작가는 《 평면거울 》이라는 작품을 통해 살인 사건과 수사, 그리고 사법적 판단의 주체인 법원이라는 긴박감 넘치는 주제를 통해 이 같은 ‘확신과 신뢰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모든 이들이 ‘믿을 만하다’고 판단하는 공권력마저도 저지르는 이 같은 실수를 과연 우리들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과연 ‘올바르고 객관적인 판단’이라는 것을 얼마나 할 수 있는 것일까. 또한 작가는 이러한 정의에 대한 과도한 확신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해 왔으며, 그들이 견디고 느껴야 했던 고통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질문을 하고 있다.
특히 영화처럼 선명하고 빠른 문체를 구사하는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소설 읽는 재미’도 한껏 느끼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듯한 캐릭터와 예상치 못한 사건 전개,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수많은 모습들도 독자들을 흡입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 …… 잠시 후 남자는 점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휴대폰 액정 화면에 비친 숫자는 8:45. 수영은 그때까지도 그것이 자신이 세상에서 마지막 확인한 시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누군가 주정석에게 랜턴을 내밀었다. 주정석은 배관 통로 아래쪽을 랜턴 불빛으로 이리저리 비췄다. 랜턴 불빛이 닿자 배관 통로가 밝아졌다.
“저게 뭐지?”
주정석은 배관 통로 한 곳에 랜턴 불빛을 고정시켰다. 그곳에 반투명의 비닐봉지 안에 혀를 내밀고 눈이 뒤집힌 채 반듯이 올려다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아악!” “사람, 사람이 죽었다!”
■ …… “살인과 강간 미수, 사체 유기로 들어왔습니다.”
정수가 자신의 죄명을 밝히는 순간 웬만한 범죄 앞에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수감 생활에 이골이 난 다른 재소자들도 일순간 조용해졌다. 정수가 이번에 수감된 것이 세 번째라고 밝혔을 때는 한숨 소리까지 들려왔다.
정수가 송 형사를 떠올릴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눈동자에 핏발이 곤두서는 것도 그래서였다. 정수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송 형사였다.
‘이 자식,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가기만 하면……. 죽인다.’
정말 그랬다. 정수는 법원에서 무죄가 입증되어 나간다면 송 형사를 살려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시 붙잡혀 정말 사형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 …… “잠을 안 재웠나요?”
김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승희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단지 잠을 못 자서 그런 진술을 할 수 있을까, 민승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지 잠을 못 자서 안 한 짓을 했다고 말했단 말이에요?”
“정말 죽을 지경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몇 번 경험해 보니까, 경찰에서는 아무리 안 했다고 그래도 결국 경찰이 말하는 대로 되기에 될 대로 되라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힘든 경찰 조사를 빨리 끝내고 싶어서 그랬단 말이죠?”
“그런 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또 어떤 생각을 했죠?”
“내가 경찰에서 진술을 잘하면 현태를 빨리 내보내 준다고 그랬어요.”
■ …… “김정수가 유력한 용의자가 된 것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본드를 가택수색에서 발견했기 때문이죠?”
“그래요.”
“그것 말고 뭐가 더 있을까요? 아, 김정수가 이미 강간 전과를 두 차례나 갖고 있다는 것도 있겠군요.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도대체 뭘 알고 싶은 거요?”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팀장님이 왜 김정수를 범인이라고 단정 지었는지 말이에요.”
“제 경험이오.”
“그렇다면 팀장님. 박현태를 범인이라고 생각했다가 틀렸던 것처럼 팀장님의 경험이나 육감, 뭐 이런 것도 틀릴 수 있겠군요?”
“형사 생활 20여 년 동안 거의 틀린 적이 없었소.”
■ …… 검찰에서는 정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민승희는 마지막 변호인 측 의견에서 정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건을 경찰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기망 수사를 한 것으로 변론했다. 민승희는 30분 이상 정수의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과 민승희는 극과 극의 선고를 요구한 것이었다. 이제 모든 것은 재판부의 판단 결과에 달려 있었다.
‘난, 나간다. 오늘 내 발로 걸어서 나간다. 아니면……’
■ …… 재판부는 거칠 것 없이 사건 번호와 피의자 이름을 부르면서 형량을 선고하기 시작했다. 민승희는 책상 아래에서 마주 잡은 두 손을 비비면서 김정수를 바라보았다. 김정수는 꼿꼿이 선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사건 번호 99 고합 572, 피고인 김정수!”
김정수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민승희도 재판부를 바라보았다.
“피고 김정수를 검찰의 공소 사실대로 그 죄를 인정하여 검찰의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한다. 판결의 요지는 서면으로 대신한다. 피고는 7일 이내에 항소할 수 있다. 다음!”
“으아악!”
민승희도 당황하여 비명이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김정수가 수갑을 찬 손으로 자기 가슴을 쥐어뜯었다. 김정수를 향하여 법정 정리들이 뛰어갔다. 그러나 그보다 정수가 재판부를 향해 피고인석 칸막이를 뛰어넘은 게 더 빨랐다.
“난 하지 않았어요. 내가 한 짓이 아니에요. 그 새끼들 불러와! 다 죽여 버릴 거야! 내가 한 짓이 아니란 말이야!”
김정수가 재판부를 향해 돌진했다. …… “내가 아니야, 다시 수사하라고 해!”
첫댓글 임채영 지음 / 출판사 북퀘스트 | 2012.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