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의 놀라운 독서법과 기억력
한때 속독법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방송국에서도 속독을 잘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경쟁적으로 책을 넘기는 풍경들이 연출되기도 하였고,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속독학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속독학원 강사들이 얼마나 속독을 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설령 빠르게 읽었다고 할지라도
읽은 만큼 그 책들을 이해하기나 했는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유행처럼 번지다가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속독법이었습니다.
속독과 정독, 어느 것이 좋은 독서법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책들을 읽은 뒤 가슴 속으로 내재되어
어느 순간이든 다시 끄집어 낼 수 있어야지,
천천히 읽든, 빠르게 속독으로 읽든
읽은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올바른 독서법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기억력이 좋았던 사람,
즉 기억력의 천재는 누구일까요?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사촌 베뜨>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남긴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발자크일 것입니다.
“그의 경우 독서를 통한 사상의 흡수는 특수한 현상이 되었다. 그의 눈은 한 번에 일곱 줄이나 여덟 줄을 읽었고, 그의 정신은 읽은 것의 의미를 그 눈길에 알맞은 속도로 파악하였다.
자주 한 문장에서 단 하나만의 단어만으로 전체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기억력은 기적이었다. 그는 독서를 통해서 얻은 사상을, 명상이나 담화를 통해서 얻는 것과 동일한 강도로 기억하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온갖 종류의 기억력을 가졌다. 장소, 이름 단어, 사물, 얼굴에 대한 기억력이었다.
그가 사물을 좋을 대로 기억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는 내면에서 자기가 그것을 읽거나 보았던 순간과 동일한 상황, 조명 색채를 지닌 그대로 기억해낼 수가 있었다. 그는 이 같은 능력을 가장 알기 힘든 개념능력의 과정에도 그대로 가졌다. 그는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자기가 읽은 책에 들어 있는 사상의 층위뿐 아니라 훨씬 더 이전 시기에 있었던 자신의 영혼의 상태까지도 기억하였다.
그의 기억력은 그러니까, 자신의 모든 발전과 정신의 삶 전체를, 그러니까 아주 어린 시절의 생각으로부터, 가장 복잡한 것과 가장 분명한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될 시점까지 모든 것은 다시금 눈앞에 펼쳐 보일 수 있는 전례 없는 특성을 가진 것이었다.
어려서 일찍이 인간이 가진 여러 능력들을 한 군데 집중한다는 매우 복잡한 활동에 익숙해진 그의 두뇌는 이 풍부한 자원에서 수많은 그림들을 경탄스러울 정도로 뚜렷하고도 생생하게 빨아들였다.
이 그림들은 그가 분명하게 관찰하는 동안 그의 양식이 되었다. 열두 살의 나이로 그의 상상력은 자신의 능력을 계속 연습함으로써 더욱 더 박차를 가해서 높은 정도로 발전되었다.
그러한 상상력은 그에게 독서를 통해서만 알게 된 사물들에 대해서 아주 정밀한 표상을 갖도록 만들어서 그 그림들은 그이 영혼에서 그가 진짜로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 분명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유추법으로 작업을 하든, 일종의 두 번째 눈을 가지고 있다고 보든 마찬가지였다. 이 두 번째 눈으로 그는 자연을 파악하였다.
그는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내가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묘사를 읽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것을 다 보았어. 대포의 일제 사격, 군인들의 비명소리 등이 내 귀를 울리고 나의 내면을 흔들었어. 무장한 병사들이 함께 맞붙어 싸우고 있는 평지를 내가 상통 고지에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 보았어. 이 장관은 마치 <묵시록>의 정면들처럼 무시무시한 것이었어.“
그는 그렇게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독서에 열중해 있을 때, 그는 자신의 물리적 삶의 의식을 어느 정도 잃어버리고 모든 능력을 갖춘 내면 기관을 통해서만 존재하였다. 이 기관의 능력은 적절하지 못할 정도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공간을 자기 뒤에’ 남겨두었던 것이다.”
발자크의 자전 소설이라 할 수 있는 <루이 랑베르>에 실린 자신의 기억력입니다.
어린 시절을 어머니나 가족들로부터 소외되게 살면서 온갖 가난과 고난을 감수하며 살았던 발자크는 오로지 책을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고 그것이 동력이 되어 세계적인 작가가 된 것입니다.
기억력은 타고난 것이지, 훈련이나 연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 아니지만,
가장 기억력이 좋을 나이인 십 대 초반에서 이십 대 초반의 독서야 말로
인간의 내면 깊숙이 침투해서 새어나가지 않는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좋은 책 속에 흠뻑 빠지는 것,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하듯 책을 읽는 것, 그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까요?
2025년 12월 7일.